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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 개념어 사전_최범 편] ⑦ 디자인 방법

    디자인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방법이든 간에 그것은 디자인 방법이 좋으면 디자인 결과물도 좋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렇지 않다면 방법은 필요 없다. 그러니까 방법과 결과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


    글. 최범

    발행일. 2015년 01월 06일

    [디자인 개념어 사전_최범 편] ⑦ 디자인 방법

    디자인 잘하기

    디자인하기(Designing)의 차원에서 중요한 것은 디자인 잘하기(Well Designing)이다. 어떻게 하면 디자인을 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은 자연스레 방법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간다. 그러니까 디자인을 잘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을 알아야 하고, 그 방법을 알기 위해서는 방법의 이론인 방법론이 필요해진다. 이리하여 ‘디자인 방법론(Design Methodology)’이 탄생하였다.

    디자인의 과학화

    디자인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방법이든 간에 그것은 디자인 방법이 좋으면 디자인 결과물도 좋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렇지 않다면 방법은 필요 없다. 그러니까 방법과 결과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 그런데 방법과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마치 방법 자체가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방법 자체가 과학적이라는 말은 방법이 자신의 내부에서 과학적으로 완결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 결과 방법의 논리 자체를 과학화하려는 경향이 디자인 방법론을 지배하게 된다. 하지만 방법 자체가 과학적인 것과 방법과 결과의 관계가 과학적인(즉 인과적인) 것은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디자인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매우 다양하고 그것은 정확하게 계측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히 방법과 결과를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일정하게 결과를 보장해주지 않는 방법이라면, 그 방법 자체가 아무리 과학적인들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아무튼 디자인 방법(자체의 논리)이 좋으면 그 결과도 좋을 것이라는 논리가, 곧 디자인 방법을 통제하면 그 결과도 좋은 방향으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고로 발전한다. 그리하여 디자인 방법론이 발달하게 된다. 디자인 방법을 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과학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디자인 방법론은 디자인 방법의 과학(Science of Design Method)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디자인의 과학화(Scientification of Design)가 되겠다.

    이처럼 디자인 방법을 과학화하면 디자인 결과물도 과학적으로(?) 좋게 나올 것이라는 믿음이 이른바 1960년대의 ‘디자인 방법론 운동’을 이끌었다. 그 진원지는 바로 저 유명한 ‘울름조형대학(Hochschule für Gestaltung Ulm)’이었다. 울름조형대학은 2차대전 이후 서독에 설립된 학교였는데, 바우하우스를 계승하였다고 해서 뉴바우하우스라고 불렸다. 바우하우스는 모던 디자인의 정점을 이룬 학교였고, 디자인에서의 합리주의를 대변한다. 그러니까 바로 그 바우하우스를 계승한 울름조형대학이 합리주의를 지향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우리가 흔히 바우하우스를 가리켜 기능주의, 울름조형대학을 가리켜 신기능주의라고 부르듯이, 바우하우스를 합리주의, 울름조형대학을 신합리주의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울름조형대학의 신합리주의가 바우하우스의 합리주의를 넘어서는 초합리주의(Ultra-rationalism)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울름조형대학의 합리주의는 디자인의 합리성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과잉 합리주의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디자인의 과학화였다. 그것은 물론 2차대전 이후의 어떤 새로운 낙관주의가 만들어낸 분위기였을 텐데, 울름조형대학은 디자인의 과학화를 통해 환경의 최적화를, 환경의 최적화를 통해 세계의 이상화를 꿈꾸었다고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울름조형대학에는 당대의 두뇌들이 몰려들어 디자인을 과학화하기 위해 이른바 디자인 방법론 연구에 매진했던 것이다. 토마스 말도나도(Tomás Maldonado), 기 본지페(Gui Bonsiepe), 브루스 아처(Bruce Archer) 등이 그들이었다.

    그러면 그 결과는 어떠했나. 바우하우스처럼 단명했지만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울름조형대학에 대한 평가 역시 간단히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울름조형대학이 기본적으로 디자인 과학주의의 첨단을 걸었던 것은 사실이고, 그에 대해서 지금 우리는 나름대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디자인 방법론 운동,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실패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인은 과학이 아니다

    디자인 방법론 운동은 디자인이 과학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니까 디자인을 과학화하려는 시도는 역설적으로 정반대의 결론을 이끌어내었다. 디자인 방법론 운동의 중심인물 중 하나인 존 크리스 존스(John Chris Johns)의 다음 말은 그것을 한마디로 증언한다.

    “나는 1970년대에 들어와 디자인 방법에 반대하였다. 나는 삶의 전체성을 논리적 틀 속으로 집어넣으려고 시도하는 기계적인 언어와 행태주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1)

    1) John Chris Johns, “How my thoughts about design methods have changed during the years”, Design Methods and Theories, No.1, 1977. p.11.

    디자인을 과학으로 보려고 했던 다소 지루한 여정은 사실 이제는 끝났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을 잘 해보려는 시도는 그치지 않을 것이고, 과정을 잘 조절하면 결과가 좋을 것이라는 믿음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은 합리적으로만 파악할 수 없는 부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오랫동안 예술의 특성으로 이해되어온 그런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디자인 과학화의 실패가 바로 디자인의 예술화로 결론지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물론 디자인이라고 하더라도 매우 다양한 양태의 것들이 있는 것이고, 그것들을 디자인이라는 말로 일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엽서를 디자인하는 것과 항공기를 디자인하는 것은 결코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디자인 방법론은 필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파산한 것은 디자인 과정을 과학적으로 엄격하게 예견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과잉 과학주의 또는 유사 과학주의(Pseudo-scienticism)일 뿐이다. 우리는 매우 과학적이지는 않지만 약간 과학적이거나 적당히 과학적인 방법의 유용성을 부정하지 않으며 잘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과학적인 방법 못지않게, 아니 그것과 함께 다소간의 비과학적인 방법, 즉 직관이나 영감을 이미 적절히 혼합하여 사용하고 있다. 어쩌면 과잉 과학주의는 디자이너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려는 담론적 계산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앞으로도 오랫동안 디자인은 과학으로 환원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영역으로 남아 있을 것이고, 이 부분이 예술처럼 디자인에 모종의 신비감을 부여해주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그리 나쁠 것이 없다. 부디 디자인을 과학화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넘어가지 말기를. 디자인의 역사는 디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꼭 집어 알려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디자인이 무엇이 아닌지에 대해서는 잘 말해주고 있다. 그것은 디자인은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오히려 디자인 방법론 운동의 파산 위에서 새롭고 다채로운 디자인 방법론이 제안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이제 그것들은 과학임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과학이 아닌 대신에 디자인을 다양한 인간적 실천과 상호작용의 하나로 파악하려고 한다. 이러한 경향을 가리켜 ‘디자인 방법론 운동 이후의 방법론’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2)인간적 실천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명확하지 않으며 관계적이며 변덕스럽고 냄새나는 뭐 그런 것이 아닌가. 이제 우리는 디자인이 과학일 수도 예술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것보다는 다양한 인간적 실천의 한 양식이라는 점, 결국 디자인도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는 여러 짓 중의 하나라는 평범한 사실을 확인하고 있을 따름이다. 과학을 넘어서, 예술을 넘어서, 마침내 이 냄새 나는 인간 세상에 진입한 ‘디자인 방법론 운동 이후의 방법론’들에 대해 격려를 아끼지 않는 바이다.

    2) ‘디자인 방법론 운동 이후의 방법론’에 대한 연구에서 중요한 저자는 C. 토마스 미첼(C. Thomas Mitchell)이다. 참조: 한영기 옮김, <다시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청람신서, 1996. 김현중 옮김, <혁신적 디자인 사고>, 도서출판 국제, 1999.

    최범

    디자인 평론가이자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디자인인문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여러 대학에서 디자인 이론을 강의하며 디자인 연구와 전시,

    공공부문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평론집으로 <한국 디자인을 보는 눈>,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 한국 디자인 신화를 넘어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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