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과정(design process)은 문제 해결 과정이다. 여기서 문제라는 것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뜻하고 해결은 개발 단계의 최종 결과를 일컫는다. 그래서 문제 해결은 사전에 정의된 요구 명세(requirements specification)를 충족시키려는 활동 체계가 된다.
디자인 프로젝트에서 문제 해결은 지식에 기반을 둔 과업인데 이때 지식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학습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선험적인 데이터와 선행 사례가 있다고 해도 현재 상황과 조건에 맞게 접근 방법을 재구조화하게 된다. 그래서 동일한 과업이라고 해도 똑같은 해결책이 나오지는 않는다. 게다가 문제 해결 과정은 평가(evaluation) 기법이 필수적으로 동원되기 때문에 단선적이지 않다.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단계 마다 디자인 결정을 하게 되는데 혁신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한다. 이 때문에 이전 단계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심지어 문제 자체를 되짚어 보기도 한다.
디자인 과정은 여러 사람이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구조화한 것이지만 기계적인 절차나 구조적인 단계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수행 방법뿐 아니라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방법까지 포함되며 두 가지 방법이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된다. 디자인 문제만 하더라도 서로 다른 분야를 가로지르는 여러 이해관계와 영향이 맞물려 있기 때문에 몹시 복잡하다. 궁극적으로 디자인 과정은 완전히 자동화될 수 없고 매뉴얼을 만들어 낼 만큼 기록할 수도 없다. 다만, 단편적인 해결책을 짧은 시간에 찾아야 하는 경우는 전형적인 방식을 따르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
한편, 디자인을 문제 해결로 이해하는 것은 ‘주어진’ 문제를 고민하는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즉,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의 관계를 설정하고 클라이언트가 요구한 미션을 수행하는 서비스를 전제하는 것이다. 『디자인 방법론』의 저자 크리스토퍼 존스(John Christopher Johns)도 디자이닝을 문제 해결로 보는 것은 생생한 프로세스에 대해 생기 없는 은유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디자인이란 현상을 조절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실현하고 그것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앤서닌 던과 피오나 레비(Anthony Dunne and Fiona Raby, 이하 던 앤 래비)는 더 비평적인 태도로 문제 해결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MIT press)에서 “디자인의 표현적인 형태들조차도 미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여긴다.”고 하면서 문제 해결에 대한 믿음과 편견을 지적한다. 예를 들면, 디자이너들은 인구과잉, 물 부족, 기후 변화와 같은 거대한 도전에 맞서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들려는 충동이 강한데 이때 그들은 마치 이 문제들이 노력하면 자연스레 와해되고 충족되고 해결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앤서니 던(Anthony Dunne)은 이것을 “디자이너들의 타고난 낙천주의”로 보면서 우리가 오늘날 직면하는 도전들은 사실상 해결 불가한 예가 많고 그것들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가치, 믿음, 태도, 행동을 바꾸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문제’라는 것은 일반적인 디자인 과정에서 염두에 두고 있는 과업과 견주기에는 규모가 훨씬 큰 것이긴 하다. 하지만 세계가 직면한 문제가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디자이너들의 한계를 보여준다.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을 ‘문제 해결’로 단순화시키는 것은 마치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전능자의 관점을 견지하게 된다.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작 그 ‘문제’가 미션을 준 클라이언트의 기반 구조를 흔들어야 해결이 되는 것이라면 디자인 과정을 거쳐서 해결하기 어렵다. 또한, 그 이전에 문제를 현실적으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분명하게 정황을 파악할 능력, 즉 주어진 요구사항과 목표를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던 앤 래비의 표현대로라면, 미래 시나리오를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문제 해결이란 그저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는 직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김상규
가구회사, 디자인회사, 미술관에서 디자이너와 큐레이터로 활동했고 현재는 서울과학기술대 디자인학과 교수로 있다.
『사회를 위한 디자인』을 번역했고 『의자의 재발견』, 『착한디자인』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