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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 개념어 사전_김경균 편] ⑤ how > what > why

    육하원칙이란 신문 기사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여섯 가지 요소를 말한다. 기사만이 아니라 범인을 신문해 조서를 꾸밀 때도 이 원칙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어떻게(how), 왜(why)의 영어 이니셜을 따서 5w1h라고도 한다.


    글. 김경균

    발행일. 2014년 11월 04일

    [디자인 개념어 사전_김경균 편] ⑤ how > what > why

    육하원칙이란 신문 기사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여섯 가지 요소를 말한다. 기사만이 아니라 범인을 신문해 조서를 꾸밀 때도 이 원칙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어떻게(how), 왜(why)의 영어 이니셜을 따서 5w1h라고도 한다. 신문 기사나 검찰 조서뿐만이 아니라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고대 신화에서부터 오늘날 디지털 미디어 속에서 꿈틀거리는 하이퍼텍스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야기는 이 원칙을 토대로 전개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야기는 그 극적인 표현을 위해 이 육하원칙의 순서를 조금씩 바꿔놓게 된다.

    * 이 기사는 타이포그래피 서울에 게재했던 김경균 칼럼 중 한 편을 필자가 재구성한 것입니다.(원문 바로 가기)

    예를 들어 추리소설의 경우는 가장 먼저 등장해야 할 ‘누가(who)’를 감춰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만약 추리소설이 ‘누가(who)’를 감춰놓지 않고 처음부터 공개해 버린다면 그것은 더 이상 추리소설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SF나 판타지에서는 ‘언제(when)’나 ‘어디서(where)’를 의도적으로 생략하거나 혼재시키는 경우가 많다. 특히 온라인 게임은 이런 시간이나 장소의 혼재를 오히려 즐길 수 있어야지 그 재미가 더해진다. 만약 온라인 게임에서 이런 시간과 장소의 혼재를 허용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많은 사람이 중독에 빠질 정도의 심각한 상황을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왜(why)’는 트럼프의 조커처럼 연극이나, 코미디, 대중가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그 위치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복선과 반전을 만들어내게 된다. 그런데 대입 논술은 이런 육하원칙의 순서 바꾸기를 허용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크리에이티브한 글쓰기에 오히려 방해될 뿐이고, 오히려 달달 외워서 빨리 베껴 쓰는 나쁜 습관만을 일찍 심어주는 것은 아닐까?

    때로는 인간을 ‘무엇을(what)’형과 ‘어떻게(how)’형의 두 가지 타입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즉,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과 ‘어떻게 살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어떻게(how)’는 실행 방법에 불과하고, 그 본질이 ‘무엇을(what)’이기 때문에 실행 방법이 본질을 앞서거나 망각해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많다. 대입 수능 성적에 따라 아무렇게나 자신의 적성을 바꿔 버리거나, 학교의 이름값에 따라 전공이 쉽게 뒤집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전공에 상관없이 고시에 매달리는 것 역시 ‘어떻게(how)’라는 실행 방법에 자신의 인생 전부를 걸기 때문일 것이다. 고시의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해 보면, 글로벌 시대이지만 외국인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평생 공부가 당연시되는 시대에도 합격만 하면 다시는 공부할 필요가 없고, 합격과 함께 돌아오는 보상이 그 어떤 노력의 결과보다 크다는 것이다.

    이렇게 고시원의 딱딱한 의자 위에서 엉덩이 종기처럼 크게 자라난 ‘어떻게(how)’에만 인생을 거는 사람들로 이미 우리 사회는 넘쳐난다. 그리고 결국 이들이 법과 행정을 집행하고, 그런 경력을 토대로 정치인이 된다. 그들은 처음부터 실행 방법이 인생의 목표였기에 자신의 삶의 본질은 안중에도 없다. 자신의 삶의 본질이 명확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역할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는 편이 현명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디자인 분야도 이런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디자인에 대한 본질적 문제를 고민하기보다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어떻게 하면 가장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지에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런 훈련은 학생 시절의 과제해결에서부터 몸에 익혀 사회에 배출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 현장의 문제를 발견하러 나가기보다는 책상 앞에 앉아 마우스 딸깍거리며 검색어 입력이 자료조사와 분석 전부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디자이너는 이미 이 사회에 넘쳐날 정도로 많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더 이상의 경쟁력이 없다.

    이런 소극적인 태도로는 디자이너로서의 미래가 더 이상 보이질 않는다. 크리에이티브는 딱딱한 의자 위에서 두꺼운 사전 달달 외운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디자인 고시가 없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디자이너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how)나 무엇을(what) 보다는 왜(why)에서부터 생각을 시작해야 한다. 스스로 의지가 희박한 프로젝트에 크리에이티브는 존재하지 못한다. 클라이언트의 지시에 어떻게 눈치 빠르게 대응할 것인지를 고민하기에 앞서 과연 이 프로젝트는 왜 존재해야만 하는가?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사회를 향해 어떤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가? 무엇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전에, 왜 이것을 디자인해야만 하는가를 먼저 생각해야만 한다. 리처드 솔 워먼은 이렇게 말했다. “디자인, 저널리즘,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는 학교는 무엇을(what)’형의 인간을 키워내는 데 힘써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은 ‘어떻게(how)’형의 인간을 길러내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만약 교육이 지적 영웅을 추구한다면 교육 현장은 영원한 지적 감옥이다.” 디자인을 성공시키는 방법은 그 의미(what)와 해석(how)의 커뮤니케이션에 있고, 그 근본적인 해법은 바로 왜(why)라는 자문에서 시작된다.

    김경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디자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다수의 심포지엄과 전시회 기획, 공공디자인 프로젝트 등에 참여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십인십색』, 『일본문화의 힘(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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