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라는 단어가 이제는 구태의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여기저기에서 마구 사용되고 있다. 처음에는 신선한 아이디어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국가의 주요 정책에 이르기까지 ‘창조’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정부는 디자인이 ‘창조경제’ 실현의 핵심요소로 여기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 강화 차원에서 관련 법규까지 개정했다고 하지만, 막상 디자인계에서 체감되는 ‘창조경제’는 여전히 추상적이다. 그러나 정부는 ‘창조경제타운’이라는 사이트까지 운영하면서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고, 한편에서는 국민행복창조를 디자인하기 위해 설립되었다는 ‘국가디자인연구소’라는 곳도 생겨나 우리 디자인계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위키피디아는 크리에이티브(creative)를 ‘창조적인’이라는 뜻의 영어 낱말이라고 설명하고 있고, 영어사전은 크리에이티브(creative)를 창의적인, 창조적인, 창작적인, 독창적인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어사전에서 그 하나하나의 뜻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창의(創意)는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생각이나 의견, 창조(創造)는 새로운 것을 처음으로 만들어 냄, 창작(創作)은 예술 작품을 독창적으로 짓거나 표현함, 독창(獨創)은 예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들어 내거나 생각해 내는 것이라고 각각 설명하고 있다.
이런 사전적 의미들을 종합해 보면 광고대행사나 디자인 스튜디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역할은 거의 신에 가까운 경지가 아니면 불가능 해 보인다. 그러나 디자인 현장에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클라이언트인 갑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해 을을 대표하는 역할의 사람’ 정도로 해석되는 것이 현실이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디자인 현장에서 크리에이티브라는 단어는 더 이상 창조적이라는 의미를 강조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만큼 많은 분야에서 크리에이티브라는 단어를 무의미하게 남발하고 있고, 디자이너에게는 그 정도의 책임을 감수할 수 있는 역할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어쩌면 디자이너 스스로 크리에이티브, 아니 크리에이터라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학생들마저도 이대로는 더 이상의 크리에이티비티를 기대하기 어려우니 휴학하고 어디 어학연수라도 다녀와야겠다고 푸념하는 모습을 종종 접하게 된다.
이렇게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학창시절부터 크리에이티브를 생명처럼 생각하고 이것이 고갈될까 봐 두려워하지만, 막상 자신의 크리에이티브가 고갈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 단지 컴퓨터 툴을 적당히 다룰 수 있다는 것, 아직은 철야 작업을 견딜 만큼 체력이 남아 있다는 것, 다른 디자이너보다 견적을 싸게 낼 수 있다는 것,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따라 컬러나 서체는 물론 디자인 콘셉트까지도 즉각 수정이 가능하다는 것은 결코 크리에이터로서의 경쟁력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면 이렇게 수동적인 ‘기업 하인형 디자이너’들로 차고 넘치는 것이 현실이다.
이른바 ‘눈칫밥’만 늘어서 광고에서 공공디자인으로, 편집에서 웹으로, 캐릭터에서 게임으로 송사리 때처럼 몰려다니며 갈아타기를 반복하는 것은 더 이상 크리에이터의 조건이 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막연히 클라이언트로부터의 디자인 의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자세를 탈피하여 스스로 프로젝트를 발생시킬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 즉 ‘자가발전형 디자이너’야말로 진정한 크리에이터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롱 라이프 디자인’을 테마로 숍, 레스토랑, 출판 등 다양한 장르에서 디자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나가오카 겐메이는 ‘의뢰받지 않으면 디자인을 하지 않는 그런 디자이너는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자신의 책 <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에서 주장한 바 있다.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누군가가 일을 의뢰하지 않으면 작업 자체를 시작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그런데 회화나 문학, 음악 등 다른 장르의 크리에이터들은 누군가의 의뢰가 없더라도 평소 끊임없는 창작활동과 연습을 거듭해 나가고 있다. 따라서 “요즘은 너무 일이 없어 그냥 놀고 있다.”고 신세 한탄만 하고 있지 말고, 스스로 일을 만드는 ‘대형사고’를 칠 때야 비로소 숨어 있던 크리에이티브도 샘솟게 되는 것이 아닐까. 크리에이티브는 밤새워 머리카락을 쥐어뜯은 결과 반짝하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와 연관된 모든 사람과 환경을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그들과 소통해야지 비로소 그 싹이 보일 것이다.
김경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디자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다수의 심포지엄과 전시회 기획, 공공디자인 프로젝트 등에 참여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십인십색』, 『일본문화의 힘(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