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범
먼저 저희 세 사람은 디자인 개념어 사전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하고, 그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오늘 이 자리를 갖게 되었다는 것을 밝힙니다. 디자인 사전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저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생각했을 것이고, 또 없지도 않습니다. 예전에는 일본 책을 짜깁기 번역한 것들이 더러 있었고, 나중에는 안그라픽스에서 출판된 것도 있습니다.
이처럼 기존의 디자인 사전이 없진 않지만, 우리가 새삼스럽게 디자인 개념어 사전이란 것을 만들고자 하는 뜻은 따로 있습니다. 물론 사전이라는 것은 한 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롭게 만들어져야 하기도 하죠. 그리고 그냥 디자인 사전이 아니라 굳이 디자인 개념어 사전이라고 말하는 것에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은 우리가 생각하는 디자인 사전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기존의 용어 사전, 즉 영어로 dictionary가 아니라 encyclopedia, 그러니까 백과사전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일본에서는 전자를 辭典, 후자를 事典이라고 구별하여 씁니다. 두 가지 사전의 의미 중에서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것은 후자, 즉 encyclopedia입니다. 디자인 개념어 사전은 디자인 백과사전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렇게 보면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디자인 용어사전은 있었지만, 디자인 개념어 사전은 없었다고 하겠습니다.
일단 저는 디자인 개념어 사전이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디자인과 관련된 용어의 뜻풀이 수준을 넘어서 개념의 정의와 역사, 다양한 용례, 특히 한국 사회에서 특화된 의미 등을 포함하는 교과서 수준의 사전이 되어야 한다고 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런 면에서는 이런 책이 나온다면 한국 디자인 지식의 발전에 새로운 발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디자인 개념어 사전이 어떤 것이고,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 우리 자신이 먼저 공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차례로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김경균
네, 이번 학기 최범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디자인 비평 강의를 나오시면서 학기 초부터 개념어 사전을 만들어보자는 논의를 계속 해왔었습니다. 그리고 직접적인 논의는 없었지만, 김상규 선생님께서도 마음속으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우리나라 디자인계가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언어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디자인 실행, 디자인 행위, 디자인 교육 등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막상 그 속을 들여다보면 과연 필요한 언어가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서구에서 채용해온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의 언어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이론적인 수업을 할 때나 필드에서 디자이너들이 이야기할 때 항상 다른 나라의 사례만 언급합니다. 이렇게 다른 언어의 디자인에 대한 것들을 여전히 숭배하거나, 추종하거나,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베끼고 있는 이러한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죠.
과거 디자인이 상업적인 영역에서 머물러 있었을 때는 오히려 문제의 심각성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것이 공공 디자인, 소셜 디자인, 커뮤니티 디자인, 서비스 디자인 등으로 확대되면서 더더욱 문제는 심각해지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디자이너와 기업이라는 클라이언트 사이만의 문제였다면, 지금은 시민이나 공무원들과도 대화해야 하는 상황인데 우리의 언어가 없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디자이너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후배나 제자들에게는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현실을 물려 줘야겠다는 생각에서 개념어 사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고맙게도 『타이포그래피 서울』에서 연재할 기회를 주셔서, 우리가 좀 더 확신을 하고 이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1년이 될지, 3년이 될지, 어쩌면 10년이 넘어 우리가 디자인계를 은퇴할 즈음에 책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이렇게 첫발을 내딛는 것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일단 우리 세 사람은 편집자로서 우리가 모든 원고를 집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제와 분야에 따라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분에게 부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일단은 이렇게 저희 세 사람이 시작하지만, 이 일이 알려지고 판이 커지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최범
사전을 만든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말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죠, 말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전문 영역의 경우에는 말이 자연언어를 넘어서서 정확하게 규정되고 공유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사전은 반드시 필요한 것 같고요. 그리고 김경균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는 디자인이라는 것이 전문 영역을 넘어서서 사회적인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의 소통을 넘어서 사회적인 소통도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몇 해 전부터 공공디자인이니 디자인 행정이니 하는 분야들이 성행하고 있지만, 과연 우리가 시민이나 공무원들에게 제대로 된 텍스트를 제공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도 디자인에 대한 정확한 개념들과 함께 시대에 적합한 언어들이 갈무리 될 필요는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김상규
몇 년 전에 최 범 선생님과 개념어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있었죠. 그땐 에이드리언 포티(Adrian Forty)가 쓴 『건축을 말한다』(원제: Words and Buildings)를 떠올렸어요. 저희가 목표로 바라볼 순 있지만 도달하긴 어려운 작업의 결과물인데요. 저는 『건축을 말한다』의 내용을 보면 ‘정보’라기보다는 땀의 기록, 즉 연구하는 사람들이 후대에 남길 수 있는 자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전을 ‘정보’로 본다면 위키피디아 정도로 충분할 테지만, ‘기록’으로 본다면 브리태니커 사전처럼 당대에 있던 연구자들이 온갖 정성을 모아서 당대의 언어로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언뜻 떠오르는 질문이 있는데요. 이미 서구에서 만들어진 여러 사전이 있고 에이드리언 포티의 저서와 같은 좋은 성과물이 있다면 그것을 번역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언어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뭘까. 아마도 동시대뿐 아니고 한국이라는 맥락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부분과 우리가 활용하고 있는 용례가 있기 때문에 우리말로 된 또 하나의 사전이 필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논의가 이뤄지는 것은 저희가 이제 제법 나이가 들었고 예전보다는 여유, 실질적인 시간이든 사고할 여유든 돌아볼 틈을 갖게 된 덕분일 것 같습니다. 한창 바쁘게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얘기에 몰두하기에는 여건이 허락하질 않지요, 그래서 세대 간의 역할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두 분에 비하면 저는 아직 이른 감이 없잖아 있지만 말이죠…. 지금 몇 사람의 역량으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다 못하면 다음 세대에 넘길 수 있는 장대한 숙제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해요. 길게 보고 가야 할 첫걸음을 뗀다고 해야겠지요.
최범
맞습니다. 저희가 한국 디자인계의 몇 번째 세대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전 세대들도 그 시기에 이루었던 것이 있겠지만,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역할이 분명히 있는 것 같고요. 지금 두 분이 얘기한 것처럼 우리 세대가 가장 필요로 느끼는 것들은 이런 문제인 것 같아요. 우리 세대의 중요한 임무는 한국 디자인 제도의 창설도 아니고, 양적 팽창도 아닌, 실은 질적 성장을 담보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 디자인이 이제는 양적 성장으로부터 질적 성숙의 단계로 전이되어야 한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디자인 지식의 문제, 특히 한국화된…. 그러한 것들의 바탕을 얼마나 잘 쌓느냐일 것입니다.
이런 세대의 과제를 의식하고 행동한다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뿌듯함도 느껴지네요. 덧붙여서 좀 더 말씀드리자면, 지금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충격을 받고 가슴 아파하는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한국 디자인의 현실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세월호 문제가 정말 한국 사회의 액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우리 디자인계도 똑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세월호가 침몰한 이유를 아주 직접 이야기하면 배의 밑바닥은 가볍고 윗부분은 무거웠기 때문이잖아요. 배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밑바닥의 물탱크는 비어 있고, 배 위의 꼭대기는 증축해서 무거워졌다는 거잖아요. 이것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현실, 그대로가 아닐까요. 우리 사회가 기반이 튼튼한 사회인가요. 그렇지 않잖아요. 정말 허약하거든요. 외화내빈, 사상누각. 이런 부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정말 앞으로 정말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 디자인계의 문제도 똑같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국 디자인이 사실은 얼마나 지적 기초가 허약한가, 그러면서도 그 빈약한 토대 위에 또 얼마나 높은 탑을 화려하게 쌓고 있는가, 이것이 세월호처럼 전도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어쩌면 이미 그랬을지도 모르죠. 하부구조의 허약함과 그에 대비되는 상부구조의 화려함, 이것이 정말 우리의 구조적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건데, 구체적 예를 하나 들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 법률이 수 천 개 있다고 합니다. 그 수많은 법률 중에 제목에 디자인이 들어간 법률이 딱 하나 있죠, ‘산업디자인진흥법’이지요. 모든 법은 법의 대상을 정의합니다. ‘산업디자인진흥법’에도 제2조에서 대상을 정의하고 있는데, 인용하자면 이렇습니다. “이 법에서 산업디자인이란, 제품 등의 미적, 기능적, 경제적 가치를 최적화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의 물질적,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창작 및 개선 행위를 말하며 제품디자인, 포장디자인, 환경디자인, 시각디자인 등을 포함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산업디자인이란 제품디자인, 포장디자인, 환경디자인, 시각디자인 등을 포함한다, 라는 정의에 동의하십니까? 선별적으로 압축하면 “산업디자인은 시각디자인을 포함한다.”라는 정의도 가능한데, 저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연극이란 뮤지컬, 오페라, 영화를 포함한다는 정의만큼이나 웃기는 것입니다. ‘산업디자인진흥법’에서 정의하고 있는 산업디자인 개념 자체가 학술적으로 엉터리라는 겁니다. 대학에서 디자인 개론만 배워도 이 정의가 엉터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법률이라고 하는 것은 어느 분야의 가장 기본적인 측면을 규정하는 것이잖아요. 우리나라의 유일한 디자인 관련법인 ‘산업디자인진흥법’이 이 모양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이런 수준의 법률을 가지고 있으면서 몇 년 전에는 디자인 7대 강국 진입을 부르짖었죠. 맨날 디자인 경쟁력이니 한국 디자인의 세계화니 하는 이야기들만 하고 있고요. 이것이야말로 균형을 잡아주는 물탱크는 비어 있는데, 상부구조만 화려한 것 아닐까요, 저는 이것이 한국 디자인의 민얼굴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상부구조의 화려한 증축이 아니라 바로 물탱크를 채우는 일입니다. 물탱크를 채우기 위해서는 저희가 생각하는 이러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김경균
사실 교육 현장도 비슷하죠. 다들 학교에서 강의하고 계시지만, 모 대학은 시각디자인과에서 시각정보디자인과로 명칭만 바꿨는데도 지원자가 엄청나게 늘어났다고 하지요. 이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지요. 최 범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소위 ‘뽐뿌질’만 엄청나게 해서 거품 부풀리기만 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학교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디자인과, 디자인 진흥원에서 이야기하는 디자인과 필드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디자인과 관공서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디자인이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면서 각자가 편리한 해석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학교에서 배운 디자인은 현장에 나가면 쓸모가 없거나, 공무원들을 설득하기에는 또 다른 언어를 가져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이 우리 디자인계에 넘쳐나고 있고, 사실은 그것을 다 알면서도 그냥 조용히 덮고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점점 더 세월호 같은 상황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까 말씀하신 물탱크를 채워야 한다는 말씀에 저는 100% 동의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개념어 사전이라는 것이 학교와 현장과 행정 모두에게 통용될 수 있는 프로토콜로 자리 잡기를 기대합니다.
디자인 전시를 비롯한 디자인 관련 서적, 잡지 등에서 항상 디자이너들끼리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디자이너 내지는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 실질적으로는 디자인 필드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책을 거의 안 읽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우리의 언어가 희박해지고, 우리의 주장은 사회에서 점점 통용되지 못하고, 그래서 결국 우리를 위축되게 만들거나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서 오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문제의 본질은 모르는데 장식적으로 멋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의사한테서 받은 처방전을 A, B, C 안 중에서 선택하겠다고는 말 못 하잖아요. 우리는 사실 디자인 처방전을 내야 하는데, 그 처방전에 쓸 언어가 너무나도 빈약하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런 hdid, 저런 색깔을 종류별로 제시하고 돈 내는 사람이 고르라고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자신도 없고 비겁한 디자인을 하고 있는지가 이런 데서 드러나는 것 같아요. 이러한 것들이 반복되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사회에서 디자이너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정착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디자인 개념어가 정립되고 통용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김상규
그동안에는 디자인 언어에 대한 정의가 미진하였을지라도 별 무리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디자인 프로젝트에서 언어의 뉘앙스, 감각적으로 어느 정도 소통되었던 것 같아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경험에서 비롯된 ‘감’이 비슷하기 때문이었겠죠.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사회에서 언어, 용어를 요구하기 시작했어요. 왜냐하면,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려면 도큐먼트가 필요했으니까요. 그래서 많은 말들을 급한 대로 써왔죠. 융합, 통섭, 소통, 경험, 최근엔 서비스까지. 공감할 만한 정의도 내리지 않은 채, 유행을 따르는 새로운 용어를 찾기에 급급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낱말이 닳아 버리는 것이죠. 그 낱말에 대한 본질을 찾고 이것이 과거엔 어떻게 쓰였고, 지금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찾기보다는 세련되고 참신한 것만을 찾다 보니깐 기껏 등장한 의미 있는 낱말도 짧은 시간에 소멸하고 그 가치를 발견하기 이전에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어 버리고 마는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마 지금은 흔히 통용되는 낱말의 뜻부터 정리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나은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최범
사실 그동안 디자인계의 언어라고 하는 것은 은어에 가까웠죠. 특정 집단이 사용하는 언어들, 우스갯감으로 많이 인용되는 조폭 세계의 언어라든지 하는 것들이 은어, 즉 일종의 직업적 방언인데 과연 디자인계에서 사용한 말들이 직업적 방언을 넘어설 수 있었는가, 실제 그 집단 내에서만 통용되는 언어 수준 아니었나, 집단 밖으로 나갔을 때는 우스꽝스럽거나 오해가 되거나, 부풀려지거나 하는, 그런 식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 사회 전체도 그렇지만 디자인계도 일종의 게토(Ghetto), 즉 폐쇄된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계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전문영역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들의 언어에 대한 정의, 태도에 대한 정당성, 사회적 책임 등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봤을 때, 한국 디자이너들에게 사회적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원망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이는 니체가 말한 르상티망(Ressentiment), 강자에 대한 약자의 적개심 같은 건데, 저는 이러한 디자이너들의 원망이 반드시 정당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요구들을 하기 위해서는 자격과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방금 김경균 선생도 그랬듯이, 디자이너를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과 비교를 많이 합니다. 디자이너도 전문직과 같은 사회적 지위와 대접을 받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데, 그러기 위해선 저는 디자인계가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자격을 갖춰야 한다고 봅니다. 디자인계가 사용하는 말이 이제는 폐쇄된 집단의 언어, 직업적 방언을 넘어서서 사회적으로 통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디자인계 리더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 개념어 사전이 이런 부분에 이바지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김상규
어떤 내용을 다룰지에 대해서 얘기해야 할 텐데요. 예전에 한국디자인학회에서 최 범 선생님과 함께 디자인 개념어에 대한 연구를 한 적이 있었죠. 그때는 크게 범주를 정하고서 시작했었지요. 지금은 저희가 그렇게 확고한 범주를 설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실험적으로 상위의 개념, 아주 세부적인 개념 등 샘플처럼 다뤄보는 게 좋겠습니다. 어떠한 것이 있는지 한번 정리를 해보고 그것을 풀어내었을 때 어떤 모양새가 나올지 가늠해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고요. 이번에 『타이포그래피 서울』에 연재하는 것도 그런 탐색의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김경균
우선, 책으로 나오는 것은 3년 뒤가 될지, 10년 뒤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목차를 먼저 잡고 시작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를 그 틀 안에 갇히게 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5년 안에 사물 인터넷에 대한 판도가 스마트폰으로 전부 집중 관리될 것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연재하는 동안에도 필드의 테크놀로지 환경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바뀔지 가늠하기 힘들어서 우리가 처음부터 목차를 정해놓는 것은 사실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틀을 안 가진다는 것은 또 말이 안 되기 때문에, 나름의 틀이 생기는 과정을 1년 정도 잡고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저희가 돌아가면서 연재를 하면 1년 동안 한 사람이 4번 정도의 글을 쓰게 됩니다. 그러면 각자 생각의 차이가 조금씩 드러날 것이고, 접근하는 방식에 대한 차이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조율하는 과정도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처음부터 우리가 한 챕터에서의 원고지 매수라던가, 사진은 몇 장씩 넣어야 한다거나, 이런 것을 과연 강하게 규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것은 길게 써야 할 부분이 있고 어떤 것은 그냥 A4 절반 정도로 끝나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것들은 상·하위 항목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그럴 때 이것을 이른바 사전식 가나다라순으로 배열해야 할지, 장르별로 나눠야 할지, 한 권의 책이 될지, 여러 권의 책으로 나눌 것인지가 결정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남용어만 모아서 따로 출간하는 등의 방법도 가능하므로 지금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최범
사전을 만든다는 것은 노력과 시간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이번 『타이포그래피 서울』에서 시도하는 것은 일종의 워밍업, 대장정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고요. 우선 이번에는 저희 세 사람이 편집자를 자처하고 나섰으니까, 우리 편집자들끼리 서로 간의 교감, 조율이 중요할 듯싶습니다. 이번은 정말 샘플 중에서도 샘플 작업이 될 것으로 생각해요. 처음부터 틀을 잡고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고 이번 작업 자체가 앞으로의 틀을 잡기 위한 예비 작업 정도이니깐, 그러한 취지를 살려서 자유롭게 작업을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상규
글쎄요, 관심사는 조금 다르겠지요. 그래도 포맷은 맞춰볼 수 있지 않을까요? 두 분께서 생각하시는 포맷은 있을 것 같아요. 역사적인 내용도 어느 정도 담고, 현재 활용되고 있는 용례들을 포함한다든지. 최 범 선생님이 첫 원고에서 보여주시면 그 부분을 기준으로 해서 가감하여 진행될 것 같아요. 지금은 아무도 글을 쓰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다음번에는 먼저 첫 어휘를 던져 주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포맷과 관심 주제는 어쩌면 태도, 즉 열의를 갖고 도전하다 보면 자연스레 나오지 않을까요? 저는 이시이 유야 감독의 〈행복한 사전〉이라는 영화에서 봤던 ‘열의’가 생각납니다. 영화 속에서 몇 사람이 십 년을 계획하고 사전을 만들기 시작했죠. 전자사전이 많이 활용되는 오늘날에 굳이 그렇게 많은 돈과 시간과 인력을 들여서 사전을 만드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영화에서는 계속 그러한 얘기가 나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 과정에서 만들어낸 성과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언어에 대해서 더 섬세하게 접근한다는 것, 당대에 활용되고 있는 언어들을 채집하면서 그것을 꼼꼼히 기록한다는 것, 하나의 지식이 쌓여 있을 때 그것이 주는 엑스타시스 같은 것들도 분명 있었던 것이죠. 저는 그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본다면 그 과정에서 오는 희열이 분명히 참여자들에게 있을 것이고 독자들과도 그 희열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최범
그렇죠. 저희가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이 돈을 받아서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의 요청을 받아서 하는 것도 아니므로 우리 자신의 쾌락이 제일 중요하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다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 세 사람도 디자인을 보는 관점이나 관심사가 조금씩 다를 순 있어요. 두 분은 디자인 실무를 거쳐서 지금 대학에서 교육하고 있는 입장이지만, 저는 디자인 평론가로서, 어떻게 보면 한국 디자인계의 아웃사이더이거나 경계인이라고 할 수 있죠. 사실 제 평론집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저는 감히 한국 디자인계의 감시자를 자처했던 사람입니다. 디자인계의 바깥에서 디자인계를 보고자 했던 사람이지요. 그런 면에서 저의 관심이나 관점은 디자인계의 내부, 전문 디자이너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저는 제 나름대로 각도를 분명히 드러낼 것입니다.
김상규
저는 오용되고 있는 용어들을 살펴볼까 합니다. 제가 바로 잡겠다는 것은 아니고요, 자주 사용되는 그 용어가 과거에는 어떻게 쓰였는지, 서구에서는 이런 뜻으로 사용되었지만 우리는 지금 어떤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얘기하는 정도일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혹시나 우리가 작위적으로 쓰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이런 부분을 지적할 수 있겠지요. 예를 들어 인터랙션이나 사용자 경험 같은 용어는 지금 산업의 요구에 따라 굉장히 빠르게 부상했지만, 몹시 협의적인 기술 용어에다가 디바이스에 국한된 것으로 사용되고 있지요. 그런 점을 한걸음 뒤에서 둘러본다면 우리가 관계성, 경험의 포괄적인 의미를 곡해한 지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포던스의 경우, 도널드 노먼이 이야기한 부분에 대해서 무비판적으로 그 용어를 수용하고 있는 것도 한 예가 됩니다. HCI와 같은 연구 분야나 관련 산업에서 공유하고 사용하는 개념에 이의를 제기할 순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겠지요. 그들은 그들의 약속된 기호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 분야의 종사자가 아닌 디자인 관계자, 연구자, 학생들이라면 원래의 뜻은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통섭과 지적 사기』라는 책에서 보듯이, 방송과 정부 정책에서 얘기하는 용어는 연구자들의 본래 의도와 달리 사용되곤 합니다. 심지어 원저자의 책은 읽어보지 않은 채 몇 사람이 상상한 편의적 개념을 대중이 공유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부분을 다뤄보고 싶습니다.
김경균
일본에 스즈키 히토시(鈴木一誌)라는 디자이너가 있어요. 북 디자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데, 이 사람이 아사히신문사에 매년 나오는 『지에조(知恵蔵)』라는 백과사전을 디자인했어요. 3년 정도 하다가 디자인 의뢰가 끊어졌는데 그해 나온 책이 원래 디자인했던 포맷과 거의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포맷 디자인의 지적 재산권 문제로 아사히신문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무려 7년을 싸우게 됩니다. 그는 7년 동안의 재판을 통해 자신이 자신의 디자인을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판형과 마진을 정하고, 자간과 행간을 정하고, 적절한 서체를 결정하여 책을 디자인하는 과정을 미분화 시키면 디자이너의 권리는 그 어디에도 없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행위가 되어버리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런 디자인 과정에 의해서 완성된 포맷은 지적재산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법정에서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야 했기에 공부를 시작해 결국은 포맷 디자인 교과서를 만들게 됩니다. 재판에서는 졌지만, 스즈키 히토시는 이 과정을 통해 스스로 디자인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획득한 것입니다. 결국은 우리가 하는 디자인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을 생각해 보면 잘 설명하기 참 힘듭니다. 클라이언트가 밤새 당신이 한 게 무엇이냐고 물어봤을 때 떳떳하게 나는 이렇게 좋은 디자인을 해냈다고 설명하기 어렵다는 거죠. 우리가 개념어 사전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는 디자인 행위가 지극히 추상적이거나 아니면 감각적인 것으로 분류되어 버렸던 것인데,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제대로 설명하고 그 지적재산권은 우리에게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논리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논리가 없으므로 자꾸 우리 디자이너의 힘이 약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범
디자이너의 작업을 미분화된 노동의 단위로 쪼개면 결국은 제스쳐들만 남겠죠. 그것은 분명 문제가 됩니다. 다만 우리가 소위 ‘인정 투쟁’이라는 말이 있죠.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한국 디자이너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원한 감정이 있습니다. 저는 물론 당연히 디자이너들이 사회적으로 정당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정당한 대우라는 게 과연 무엇인가, 정당한 대접을 받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라는 것은 스스로 생각해야 될 것 같고요. 흔히 말하는 디자이너의 권리 투쟁, 디자이너의 인정 투쟁도 이제는 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집단들은 다른 집단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합니다. 다만 이제는 사회적인 인정을 주장하거나 요구하는 것만으로 되지 않고 인정받기 위한 자신의 조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지금과는 다른 태도가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까 김상규 선생님께서 디자인 오남용어 문제에 대한 관심도 표명했는데, 대단히 중요하고 재밌는 작업이 될 거라고 생각됩니다. 이는 달리 말하면 한국 전문 분야의 자생성의 문제이기도 해요. 다른 분야에서도 그런 것들이 꽤 있죠. 사회과학만 하더라도 일찍이 한국적인 사회과학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개념적 기초가 마련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과 성찰들이 있었습니다.
김상규
저는 사실 이런 작업이 굉장히 부담스럽습니다. 우선, 개인적인 역량도 문제가 있고요. 게다가 디자인 분야는 다른 분야보다 체계적인 것에 강박적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디자인 석사, 박사 과정의 학생들이 논문을 써도 너무 논문처럼 쓰려고 하고 책을 만들어도 다른 분야를 의식하는 것이죠. 그 때문에 오히려 디자이너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상실되는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사전의 경우도, 괜히 체계적이고 구색을 갖춰야 하는 부담이 걱정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일이 즐겁고 행복한 작업이고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을 줄 수 있는 그런 실험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언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건지 아느냐고 사람들에게 겁을 주는 것보다는 언어의 세계를 알면 알수록 깊은 뜻을 우리가 찾아가게 되는, 그러한 기쁨이 있는 작업이고, 참여하고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그렇게 받아들여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김경균
요즘은 융합이라는 말을 너무 식상할 정도로 많이 쓰고 있긴 합니다. 예를 들어 저희 과는 명칭도 그냥 디자인과이고 내부에서도 세부 전공을 나누지 않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스마트폰이 어디까지가 제품 디자인이고, 어디까지가 인터랙션 디자인이고, 어디까지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인지를 구분하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학교 교육이나 현장에서는 디자인을 세세한 장르로 나누려고 하고 있죠. 그리고 이것은 내 장르이기 때문에 넌 이해하지 못한다는 식의 태도가 상당히 많습니다. 앞으로 그것을 전부 다 아우르지 못한다면 살아남기가 힘든 것이 아마 우리 디자이너가 아닐까요. 따라서 우리는 사전이라는 작업을 통해서 장르를 나누지 않고 함께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면 정말 행복한 사전이 되지 않을까 해요.
최범
아마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전은 18세기 프랑스의 백과전서일 거예요. 백과전서가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의 근간이 되었고, 계몽주의가 또 프랑스 혁명의 토대가 되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죠. 그 위대한 백과전서를 편집한 사람은 단 두 사람이었습니다. 디드로와 달랑베르. 그에 비하면 우리가 한 사람 더 많네요. 제가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전을 만든다는 것은 사실 불온한 것이다, 사전은 혁명을 꿈꾸는 행위이다, 일제 식민지 시기에 주시경 선생이 조선어사전을 만든 것이 민족해방운동의 일환이었듯이, 백과전서가 프랑스 혁명을 이끌어 내었듯이, 디자인 개념어 사전이 한국 디자인의 혁명을 이끌어내는 동력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런 기회를 제공해준 『타이포그래피 서울』에 감사 말씀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