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평소 어떤 과정을 거쳐 작업하는지 궁금합니다.” 이 질문에 “저의 작업은 보여주고 싶은 단어를 하나 골라 수백, 수천 가지 이미지 중 하나와 적절히 연결해주는 코디네이터와 유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다시 이 말을, 낙서를 즐기는 습관에 적용해보면 “낙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획하기보다 우연히 이 이미지와 저 이미지 사이를 오가며 연결하는 겁니다. 그리고 적당히 어떤 이미지 조합이 좋은지 선택하는 거죠.”
연결과 선택….
아, 요즘 이 말에 꽂힌다. 디자이너로 내가 하는 일은 어떤 이미지와 이미지를 연결해주는 역할로 볼 수 있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어느 출발선에서 움직이거나 영감을 받아 그리기 시작도 하지만, 사실 그런 경우는 10에 3, 4개 정도이고 대부분은 문득 지나친 이미지나 형태를 보면서 떠올릴 때가 많다. 때마침 작업실에 꽂힌 그래픽 디자인 듀오 메비스&반 되르선의 책, 를 보면서, ‘이 책과 저 책을 연결해보면 어떨까.’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에서 주로 사진과 이미지 작업이 많은 큰 책을 골라 서로 펼쳐서 겹쳐 보았다. 딱히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는 행동은 아니지만, 이렇게 서로 연관 없는 책의 펼침면을 서로 겹쳐놓고 사각형 프레임에 담아보니, 무심코 재미난 형태와 효과가 떠올랐다. 그러니깐 이런 식의 이미지 연결은 일종의 유희다. 디자인 작업을 하다 가끔 쉬고 싶을 때 하는 놀이. 공을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낙서라고 해야 할까? 펜을 들어 끄적이지 않고, 그냥 이 책과 저 책을 펼쳐서 겹치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패션 코디네이터가 된 상상을 해야 하는 거다. 무엇을 만들기보다는 ‘아! 저기 좋은 게 있군… 이 녀석과 저 녀석을… 합쳐볼까?’라는 생각만 하면 끝이다. 마네킹에 여러 천을 겹쳐놓으면서 대략 이런 느낌이야? 라는 감각을 기르는 것처럼 말이다. 여러분이 할 일은 될 수 있으면 이미지가 큰 책을 골라 전혀 엉뚱한 분야와 연결하는 거다. 컴퓨터로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직접 손으로 책을 잡아보고 무게와 질감을 느끼며 얹혀봐야 알 수 있다. 이런 식의 연결과 선택은 직접 몸으로 해야 하는 것을 말이다. 불확실한 이미지에서 구체적인 생각을 길러보자. 연결과 선택… 또 다른 형식의 이미지를 그려보는 낙서의 방법이 아닐까.
강구룡
그래픽디자이너, 디자인 저술가. 포스터와 책을 주로 디자인하지만,
디자이너로 작업하며 실패한 경험과 성공 이야기를 8:2로 버물려 글도 쓴다.
틈틈이 이 둘을 왔다갔다하며 낙서를 한지도 제법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그린 낙서로 조만간 새로운 책을 내려고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