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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이너의 낙서 #9 낙서와 노이즈 – 간섭과 우연으로 이루어진 흔적

    다른 신호의 간섭으로 인해 나타나는 잡음이나 시각적 효과를 일컬어 노이즈(Noise)라고 한다. 시끄러운 소리가 대표적이지만, 넓은 의미로 보면 내가 의도하지 않은 어떤 불가항력적인 상태나 끼어든 여러 현상도 노이즈로 볼 수 있다.


    글. 강구룡

    발행일. 2016년 05월 27일

    디자이너의 낙서 #9 낙서와 노이즈 – 간섭과 우연으로 이루어진 흔적

    ‘RGB-056-006-080-823-715’, Casey REAS
    ‘KNBC’, Casey REAS, 미디어 아티스트 캐시 리스(Casey Reas, 홈페이지: http://reas.com)가 2015년 12월 한 달 동안 602~608MHz의 텔레비전 시그널을 이용해 오디오와 비주얼을 왜곡해 만든 설치 작업.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은 전파나 신호를 시각화하여 노이즈와 잡음으로 펼쳐놓은 그의 작업은 보이지 않는 신호를 새로운 형태의 이미지로 만들어내는데 의미가 있다.  

    다른 신호의 간섭으로 인해 나타나는 잡음이나 시각적 효과를 일컬어 노이즈(Noise)라고 한다. 시끄러운 소리가 대표적이지만, 넓은 의미로 보면 내가 의도하지 않은 어떤 불가항력적인 상태나 끼어든 여러 현상도 노이즈로 볼 수 있다. 종이에 아무 목적 없이 그리는 낙서가 있다면, 정성스레 그림을 그리다 갑자기 쏟은 커피나 잉크처럼 의도하지 않은 얼룩도 있다. 최근에 스마트폰에 찍힌 우연한 사진도 취미로 모은다. 이런 급작스러운 상황은 쏟은 커피처럼 창작 활동을 방해할 수도 있지만, 우연히 찍힌 사진처럼 기대하지 않은 재미난 형태도 만든다. 낙서와 노이즈의 공통점은 이처럼 의도치 않은 어떤 불가항력적인 결과에 있다.

    ‘Signal to Noise’, Casey REAS, 방송용 신호 데이터를 콜라주로 만든 작업. 디지털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정보를 새로운 데이터 구조에 집어넣어 자가생성하는 작업 방식이 흥미롭다. 

    MIT에서 벤 프라이(Ben Fly)와 함께 프로세싱을 만든 캐시 리스(Casey Reas)의 라는 작업을 보자. 텔레비전 시그널 정보를 왜곡해 노이즈로 만든 이 작업은 정상적인 신호를 조작함으로써 내용보다는 형태를 새롭게 구성해 표현하고 있다. 간섭이나 조작의 부정적 의미가 형형색색으로 표현되어 묘한 쾌감과 아름다움을 준다. 정상적인 신호에 끼어든 노이즈를 일상생활에 적용하면, 산만이나 집중력 저하가 아닐까. 집중하지 못하고 장난치고 싶은 순간은 모두 이런 노이즈가 우리에게 놀자고 신호를 보내는 거다. 구체적인 형태나 내용이 아니라, 추상적이고 읽을 수 없는 이런 간섭으로 인해 만들어진 효과는 모두 현실과 가상 세계에 모두 같이 존재한다. 만약 음악을 작곡하는 작곡가에게 정확히 원하는 소리와 음표만 있다면 생각 이상의 노래를 만들기는 힘들 것이다. 의도치 않은 간섭과 노이즈가 없다면 오히려 우리는 생산적으로 일하기 힘들다.

    ‘Followers 1K’, Casey REAS, 캐시 리스가 자신의 트위터(@REAS)를 팔로우하는 사람의 프로필 이미지를 이용해 만든 작업  
    독일에서 활동하는 스튜디오 Ariane Spanier Design(홈페이지:http://arianespanier.com)의 작업. 드로잉 매거진 FUKT의 표지를 디자인하면서 연필로 그리면서 나오는 흑연 덩어리와 가루를 활용해 글자를 만들었다. 그릴 때 버리는 부산물인 흑연 가루를 역으로 이용하여, 부산물과 우연의 결과로 만들어진 방해물을 새롭게 활용하고 있다.  
    독일에서 열리는 드로잉 페스티벌 ‘The Big Draw Berlin 2012’를 위한 포스터 디자인 

    낙서는 이런 간섭의 대표적인 예이다. 망상, 궁상을 떨고 심지어 ‘멍때리고’ 있는 나의 머리를 탓하며 ‘나는 왜 한 번에 바로 정답을 찾지 못하지….’라며 한탄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똑똑하지 못한 머리를 가지고 말도 안 되는 농담이나 상상을 할 수 있는 머리가 참 고맙기도 하다. 엉뚱하거나 의도치 않은 간섭으로 인해 머릿속에 떠오른 어떤 생각의 실마리가 낙서를 통해 그려진다. 100% 의도만 갖고 무엇을 만든 작업보다 훨씬 재미있다. 아마 이런 간섭의 정도에 따라 사람마다 느끼는 작업의 쾌감이 달라지겠지만, 정확히 짜인 프로세스와 생각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사람은 존재하기 힘들다. (아마 알파고나 미래의 기계는 그럴 수 있겠지만, 그것마저…. 갑자기 정전되면 전원차단이란 간섭을 피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간섭을, 노이즈를 친구라 생각하고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일하며 창작 활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예전처럼 텔레비전 화면이 ‘지지직…’ 거리지 않지만, 갑자기 잘 나오던 텔레비전 화면에 잡음이 끼어들면 멍하니 드라마만 보고 있는 내 뇌가 번뜩 깰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 고른 신호와 정보만을 원한다. 100% 정확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디지털 세계에 익숙하다. 때로는 전파 방해로 머릿속의 굳어진 생각을 펼쳐 보여야 할지 모른다. 다른 누군가의 간섭이 필요하다.

    강구룡
    그래픽디자이너, 디자인 저술가. 포스터와 책을 주로 디자인하지만,
    디자이너로 작업하며 실패한 경험과 성공 이야기를 8:2로 버물려 글도 쓴다.
    틈틈이 이 둘을 왔다갔다하며 낙서를 한지도 제법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그린 낙서로 조만간 새로운 책을 내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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