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그런 버릇이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습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영화의 주된 이야기와 상관없이 영화 속에 스며있는 디자인을 찾아 끄집어 내고 엿보는 것이 혼자만의 비밀스런 기쁨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과학 잡지 아트 디렉터 시절 만났던 필자의 칼럼명이자 책 제목이 떠오르네요.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는 영화에서 디자인을 본다’도 가능하다 싶어 겁도 없이 연재 요청을 수락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영화에서 디자인을 본다’라는 말이 영화 자체의 디자인적 스타일이나 예술 영화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앞으로 쓰게 될 글에서는 영화의 주된 줄거리나 테마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건 아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찾아낼 수 있는 디자인, 디자이너라는 직업 세계 등을 티타임의 수다처럼 소소하고 즐겁게 풀어내려 합니다.
예를 들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바닐라 스카이〉,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을 볼까요? 누군가는 이 영화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영화들에서 미국의 잡지 산업과 디자인 프로세스를 엿봅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면서 앤디(앤 헤서웨이 분)가 미란다(메릴 스트립 분)에게 전달하던 스프링 제본의 두꺼운 책이 무엇인지 궁금했던 사람들을 위해, 마치 영화 속 이스터 에그처럼 숨겨진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장성환의 Design in Cinema]는 2012년 1월 10일 첫 번째 신(scene)을 시작합니다.
장성환
디자인 스튜디오 203 대표.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VIDAK) 타이포분과 이사, 디자인단체 총연합회 실행위원을 역임했다. 홍익대학교 재학 시절 홍대신문 문화부장을 맡으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졸업 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입사해 잡지를 만들며 서체 디자인 작업을 했고, 이후 『주간동아』 및 『과학동아』 아트 디렉터로 활동했다. 『시사저널』, 『까사리빙』, 『빅이슈 코리아』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서울대학교·서울여자대학교·호서대학교 등에서 편집 디자인 강의를 해왔다. ‘홍대앞’(서교동·망원동·연남동·합정동 등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일대를 일컫는 고유 명칭)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2009년 홍대앞 동네 잡지 『스트리트 H』를 창간하여 홍대앞이라는 역동적 장소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