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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엘리아나의 DiCulto #5 어도비가 선택한 디자이너 ‘누비아 나바로’

    그래픽 디자이너 누비아 나바로(Nubia Navarro)와 스튜디오 ‘누비키니(Nubikini)’


    글. 김엘리아나

    발행일. 2023년 05월 18일

    김엘리아나의 DiCulto #5 어도비가 선택한 디자이너 ‘누비아 나바로’

    DiCulto(디꿀또)는 김엘리아나가 자신의 모토로 쓰는 말이다. 스페인어 diseño(디세뇨, 디자인), culto(꿀또, 문화), oculto(오꿀또, 숨겨짐)의 철자로 만든 조어다. 김엘리아나의 DiCulto는 ‘라틴 아메리카와 한국의 숨겨진 디자인 문화를 밝히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그녀의 표현을 빌면 “디자인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의 과(課)와 업(業)”을 함축한 말이기도 하다.
    
    김엘리아나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디자인을 공부하고 한국에서 박사학위(서울대학교 디자인역사문화전공)를 받았다. 지금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를 무대로 활발히 학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직은 다소 낯선 ‘라틴 아메리카 디자인’을 국내에 알리고, 한국과 중남미 디자인계의 교류를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타이포그래피 서울』 시리즈 [김엘리아나의 DiCulto]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중남미 디자인계의 문화와 역사, 현지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와 타이포그래퍼, 디자인 스튜디오를 소개한다. 이 시리즈를 통해 우리 인식 체계 안의 ‘디자인 영토’가 라틴 아메리카 대륙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기를 바란다.

    디자인 스튜디오 ‘누비키니(Nubikini)’에 들어가면 사탕 가게를 방문한 것처럼 기분이 밝아진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 위치한 이곳은 깔끔한 하양 배경에 눈에 띄는 마젠타 색 소파와 가방, 채도가 강한 색감의 타이포그래피 포스터들로 꾸며져 있다. 얼마간 장난기도 묻어나는 누비키니 고유의 공간감은 웹 사이트로도 이어진다. 브랜드 전문 그래픽 디자이너 누비아 나바로(Nubia Navarro)의 세계관을 잘 드러낸다.

    스튜디오 누비키니의 공간과 웹 사이트

    동글동글한 3D 로고와 다채로운 색의 로고들은 이탈리아의 포스트 모던 가구 스튜디오 멤피스(Memphis)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멤피스의 유쾌하고 빛나는 색감 뒤에는 건축가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의 엄격함이 존재했다. 누비키니도 그렇다. “친구들과의 말장난에서 시작된” ‘누비아’와 ‘비키니’를 조합하여 이름을 정하고 2012년 문을 연 스튜디오 누비키니. 그 뒤에는 레터링과 타이포그래피, 일러스트레이션, 색의 배합을 오랜 시간 연구하고 발전시켜 온 누비아 나바로가 있기 때문이다.

    누비아 나바로의 누비키니는 라틴 아메리칸 디자인 어워즈(Latin American Design Awards)타입 디렉터스 클럽(Type Directors Club), 커뮤니케이션 아트(Communication Arts) 등 다수의 국제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하며 세계적 스튜디오로 입지를 다졌다. 또한 그녀에게 작업을 의뢰한 글로벌 기업들의 명단에서도 그 능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글자-이미지 실험가’ 누비아 나바로

    베네수엘라 카비마스(Cabimas) 태생인 누비아 나바로는 20대에 “해외 광고 회사를 위해 머그잔, 포스터, 티셔츠, 배너 등 다양한 굿즈를 디자인”하며 디자인 세계와 만났다고 한다. 그녀는 이 회사에서 CI, 브랜딩을 연구하다가 크로스 미디어 기업으로 적을 옮겼다. 그곳에서 실험적 타이포그래피와 첫 만남을 가지게 된다. “식품 브랜딩을 하는 회사였는데, 요거트 브랜드를 디자인하면서 제품의 콘셉트와 이미지를 타이포그래피로 표현하는 방법을 모색”했다고 한다.

    이렇게 모국에서 축적된 경험은, 이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디자이너로 자리를 잡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누비아는 회고한다. “콜롬비아에 온 지 7년이 되었다.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시간이었고 (…) 여러 중소 스튜디오에서 디자인을 하는 틈틈이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던 타이포그래피, 구성, 색채 등을 연구하고 개발하여 디자인 스튜디오를 열었다.”

    디자이너로서 누비아가 발휘하는 역량이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에서 쌓은 경험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음악, 색, 시 한 편, 시장에서 보는 식품, 거리의 행인들을 관찰하고 읽음으로써 얻게 되는 창조적 영감”이 그녀에게는 모든 디자인 활동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호기심 많은 누비아는 시간을 들여 한 대상을 관찰한 뒤, 그것의 이미지를 분해하고 재구성해보는 단계를 거친다. 일종의 실험이다. 이렇게 자신만의 시선으로 프로세싱 된 이미지들을 서로 결합시키며 새로운 형태를 개발해낼 뿐만 아니라, 각각의 이미지가 본래 지닌 존엄성을 탐구하고 깨닫는 과정을 누비아는 즐긴다. 그녀의 디자인은 끊임없는 ‘이미지 실험’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LGBTQ 프로젝트 [퓨어 퀴어니스(Pure Queerness)]의 포스터들도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개인 프로젝트 [퓨어 퀴어니스], 2021

    누비아 나바로의 이 같은 실험 정신은 스튜디오 오픈 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누비키니가 여타 스튜디오와 차별화되는 특징적 요소는 임팩트 강한 배색과 타이포그래피다. 누비아는 “타이포그래피는 메시지의 의미를 다양한 유형의 시각적인 형태로 나타낼 수 있는 실험 언어의 기본”이라고 단언한다. 타이포그래피는 “메시지, 형태, 시각미의 구성 요소로서 포스터와 동영상, 2D와 3D에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비아는 자신의 이러한 성향 탓에 스스로 힘들어질 때도 있다고 한다. 실험하고 연구하는 시간 자체를 즐기는 편이지만 끝이 안 날 듯 길게 이어지면 그때부터는 즐거움이 지난함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폰트 제작 과정이 대표적인 예다. 그녀는 “레터링 작업물을 폰트 패밀리로 변환할 때가 늘 어려웠다”라고 호소한다. “비판적인 눈과 수많은 교정이 요구되는 지루한 과정”이라는 표현에서 누비아의 심정이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누비아의 레터링은 타이틀이나 로고를 위한 작업이라 꽤나 실험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데, 그만큼 디지털 서체로 변환하는 과정에 변수가 많다. “레터링의 오리지널리티를 폰트 한 종만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워, 서로 다른 4개의 폰트를 동시에 만들어낸 적도 있다”는 누비아. 이런 하소연(?)에 걸맞게 그녀의 폰트는 개성 넘치는 베리에이션을 가지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시장 ‘어도비 CC 캠페인’ 팀 리더

    누비아의 완벽주의 성향은 프로젝트 하나하나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그녀는 여러 국제 프로젝트 중 하나인 라틴 아메리카 어도비(Adobe Latinoamérica)와의 작업을 가장 인상 깊은 경험으로 꼽는다. 몇 년 전 누비아는 콜롬비아 꼰테니도스 레이(Contenidos Rey)라는 디지털 콘텐츠 회사의 일을 맡아서 하고 있었는데, 당시 멕시코와 협업 중이던 어도비가 콜롬비아와도 팀을 구성하고자 이 회사에 제안을 해왔다. 어도비는 라틴 아메리카 시장을 겨냥한 참신한 콘텐츠를 요구했고, 누비아는 팀 리더로서 디자인 콘셉트와 전략, 분위기를 정하는 작업에 임했다.

    누구에게나 재능은 있다(El Talento Está en Todos).’ 이것이 누비아가 제시한 방향성이자 슬로건이었고, 그 맥락은 “도구가 좋아야 뛰어난 작품을 창조할 수 있다는 관념 깨부수기”였다. 누비아와 그녀의 팀은 “디자인의 가장 기본 요소인 ‘원’과 인간의 상호 작용을 보여주자는 취지로 기하학적 형태에 인간의 특징을 부합시키고 이 프로젝트를 통해 도구 만능주의의 환상을 깨고자 했다.” 이는 누비아 본인의 디자인 철학을 반영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누비아에게 디자인이란 “내 생각을 경청해주고, 나 자신과 세상을 더 알게 하며,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친구이자 동료”라고 한다. 그녀는 기본적인 형태를 깨부수고 새로운 창조의 지평을 넓혀 가기 위해 나날이 세상을 관찰하고 틀의 바깥을 상상하는 디자이너다. 누비아 나바로의 철학과 작업이 『타이포그래피 서울』을 통해 한국 디자인계에도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

    스튜디오 ‘누비키니’
    사이트 ➲ nubikistudio.com / 인스타그램 ➲ @nubikini

    디자인 연구자, 교육자.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디자인을 공부하고 한국에서 석박사 학위(서울대학교 디자인역사문화전공)를 받았다. 중남미 국가들과 한국을 오가며 학술 행사에 참여하고 학생들을 가르친다. 아르헨티나, 칠레 등 라틴 아메리카의 디자인 잡지들과 국내의 월간 『디자인』 및 『디자인 프레스』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 @DiCul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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