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ulto(디꿀또)는 김엘리아나가 자신의 모토로 쓰는 말이다. 스페인어 diseño(디세뇨, 디자인), culto(꿀또, 문화), oculto(오꿀또, 숨겨짐)의 철자로 만든 조어다. 김엘리아나의 DiCulto는 ‘라틴 아메리카와 한국의 숨겨진 디자인 문화를 밝히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그녀의 표현을 빌면 “디자인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의 과(課)와 업(業)”을 함축한 말이기도 하다. 김엘리아나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디자인을 공부하고 한국에서 박사학위(서울대학교 디자인역사문화전공)를 받았다. 지금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를 무대로 활발히 학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직은 다소 낯선 ‘라틴 아메리카 디자인’을 국내에 알리고, 한국과 중남미 디자인계의 교류를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타이포그래피 서울』 시리즈 [김엘리아나의 DiCulto]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중남미 디자인계의 문화와 역사, 현지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와 타이포그래퍼, 디자인 스튜디오를 소개한다. 이 시리즈를 통해 우리 인식 체계 안의 ‘디자인 영토’가 라틴 아메리카 대륙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필자 김엘리아나가 2023년 1월 초 집필한 시점 그대로 이 글(인터뷰)을 게재한 것임을 밝혀둔다. 2023년 3월 현재의 시의성과 다소 차이는 있겠으나, 우리나라의 〈타이포잔치〉에 해당하는 라틴 아메리카 대륙의 〈티포스 라티노스(Tipos Latinos)〉를 처음 만나는 데 ‘시차’는 큰 방해 요소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비엔날레 개최를 준비 중이던 인터뷰이들의 당시 시제와 소회를 원문 그대로 수록해야만 필자 김엘리아나가 의도한 생동감이 온전히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 편집자 주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티포스 라티노스〉가 4년 만에 열린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이례적 상황 속에서도 역대 아홉 번째 〈티포스 라티노스〉가 중남미 14개국에 걸쳐 대대적으로 관람객들을 맞게 된 것이다. 2022년 선발된 출품작들이 2023년 1월부터 각 개최국마다 다채로운 방식을 통해 소개된다.
〈티포스 라티노스〉는 과테말라, 니카라과, 멕시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우루과이, 칠레, 콜롬비아, 쿠바, 파라과이, 페루 등 라틴 아메리카 14개국이 참여하는 대규모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다. 또한, 중남미 타이포그래퍼들을 위한 교류의 장이자 그들의 연구 활동에 양적·질적 발전을 도모하는 디자인 단체이기도 하다.
〈티포스 라티노스〉는 2년마다 개최되는 행사다. 앞서 열거한 14개국 외에도 전 세계 유수의 타이포그래퍼들이 이 국제 이벤트에 참여한다. 이들의 열성적인 활동과 더불어 세미나, 워크숍, 전시, 투어, 강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행사 기간 동안 운영된다.
〈티포스 라티노스〉의 전신은 〈레트라스 라티나스(Letras Latinas)〉. 2004년 루벤 폰타나(Rubén Fontana)가 주선한 타이포그래피 계몽 모임이다. 2007년 폰타나가 활동을 중단하자, 한 팀을 이루고 있던 타이포그래퍼들이 〈티포스 라티노스〉로 개칭하여 20년 가까이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
2004년부터 지금에 이르는 동안 〈티포스 라티노스〉는 꾸준히 확장되어 왔다. 이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본 〈티포스 라티노스〉 팀 파블로 코스가자(Pablo Cosgaya)와 마르셀라 로메로(Marcela Romero)를 통해 이 역사적인 비엔날레를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한다.(두 사람은 초대 수장 루벤 폰타나와 함께했던 원년 멤버로서, 지금까지 〈레트라스 라티나스〉의 전통과 사상을 이어 오고 있다.)
과거 〈레트라스 라티나스〉가 지금의 〈티포스 라티노스〉로 전환된 배경이 궁금하다.
1942년생인 루벤 폰타나는 『티포그라피카(Tipográfica)』라는 전설적인 타이포그래피 잡지를 창간한 인물이다. 1987년부터 20년간 이 잡지를 발행했고, 2007년 3월 마지막 호를 끝으로 활동을 중단했다. 그는 개인 작업뿐 아니라 출판, 전시, 행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중남미 타이포그래피를 크게 발전시켰고, 스페인어권 국가들의 타이포그래피 학계에 큰 기여를 했다.
안타깝게도 『티포그라피카』 폐간과 함께 〈레트라스 라티나스〉 비엔날레 기획도 멈췄다. 루벤 폰타나라는 큰 기둥이 사라진 것이다. 이를 계기로 『티포그라피카』와 한 가족처럼 활동했던 당시 디자이너들이 의기투합하여 폰타나를 계승하는 새로운 단체, 〈티포스 라티노스〉를 출범했다. 폰타나가 기획했던 2004년 제1회, 2006년 제2회를 이어 2008년 제3회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를 〈티포스 라티노스〉라는 이름으로 개최했고, 지금까지 약 20년째 ‘라틴 아메리카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의 역사를 이어 오고 있다.
제9회 라틴 아메리카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가 올 1월 개최된다. 2018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의 제8회 행사 이후 4년 만이다. 지난 팬데믹 기간을 극복한 〈티포스 라티노스〉의 결실이기에 굉장히 기대된다.
우리도 무척 설렌다.(웃음) 비엔날레는 2004년부터 2년 주기로 꾸준히 열렸고, 2020년은 제9회의 순서였다. 알다시피 그해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을 선언했다. 그래서 2022년이 되어서야 겨우 제9회 비엔날레의 프로그램과 일정을 확정할 수 있었다.
이번 비엔날레 심사위원은 멕시코, 볼리비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우루과이, 칠레, 콜롬비아의 타이포그래피 전문가들로 구성했다. 이들이 선정한 우수작 100점을 라틴 아메리카 14개국 개최지를 돌면서 차례로 전시할 계획이다.
지난 회들과 달리 제9회 비엔날레는 주최국(개최지) 소개가 생략되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역시나 팬데믹 영향 때문이다. 앞서 설명했듯 제9회 비엔날레의 프로그램 및 일정은 2022년에야 정할 수 있었다. 심사위원들이 특정 도시에 모이지 못하고, 각자 거주지에서 온라인으로 각종 협의와 심사를 진행했다. 멕시코 정부로부터 기술 지원을 받은 덕분에 원활한 비대면 소통이 가능했다.
현재 비엔날레는 중남미 14개국의 후원을 받는다. 즉, 과테말라, 니카라과, 멕시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우루과이, 칠레, 콜롬비아, 쿠바, 파라과이, 페루 등 14개 나라에서 비엔날레가 동시 개최된다. 전시 장소와 기간, 방식, 플랫폼 등은 각 개최지가 개별적으로 고안한다.
라틴 아메리카 대륙 33개 국가들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14개국에 걸쳐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가 열리는 셈이다. 각 개최지의 연계 프로그래도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나?
물론이다. 타이포그래피 전시 외에도, 14개 각국의 지역적 특색을 반영하여 세미나, 투어, 교육, 워크숍, 특강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카탈로그 또한 14개국 버전으로 발행된다.
심사위원 및 작품 선발 기준은 무엇이며, 라틴 아메리카에서 〈티포스 라티노스〉 비엔날레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중남미 각 지역마다 〈티포스 라티노스〉 집행위원들이 조직되어 있다. 이들이 매회 비엔날레의 주제와 특성에 따라 적합한 심사위원들을 섭외한다. 이번 제9회 역시 지난 회들과 마찬가지로 라틴 아메리카 각국의 우수한 타이포그래퍼들이 심사위원단으로 구성되었다.
일단, 출품작 부문은 ❶문서, ❷제목, ❸손글씨, ❹슈퍼패밀리, ❺장식, ❻실험적, ❼선진 타이포(emergent) 등 7개로 나뉜다. 각 부문에 제출되는 작품들은 선발 요구 사항을 모두 준수해야 한다. 기본 조건을 갖춘 작품들만 심사를 받는다. 매회 비엔날레가 지향하는 기준에 따라 중남미의 다국적 전문가들이 초빙되어 심사에 임한다.
디자인 완성도와 연구의 우수성이 궁극적인 잣대다. 심사위원들은 각 지역의 선정작들을 타지의 선정작들과 대조하여 최종 엔트리를 선발한다. 이렇게 엄격한 심사를 거쳐 〈티포스 라티노스〉에 이름을 올린 디자이너는, 라틴 아메리카 전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자신의 타이포그래피 업적을 알리는 기회를 얻는다.
〈티포스 라티노스〉는 중남미의 여러 지역에서 선발한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하는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다. 관람객들은 중남미 곳곳의 지역 정체성을 한눈에 살피고, 동시대 라틴 아메리카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의 경향과 방향성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약 20년째 이어져 온 〈티포스 라티노스〉만의 전통이자 가치라 할 수 있다.
이 인터뷰를 읽게 될 한국의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
2004년부터 지금까지 총 아홉 차례 비엔날레를 개최하며 〈티포스 라티노스〉는 라틴 아메리카의 타이포그래피 디자인 산업을 총망라하는 쇼윈도 역할을 지속하고 있다. 중남미 타이포그래피 발전을 위해 종사하는 우리의 행보에 관심 가져준 한국 독자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가까운 미래에, 〈티포스 라티노스〉 비엔날레에서 한국의 타이포그래퍼들과 함께 유의미한 교류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라틴 아메리카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티포스 라티노스〉
공식 사이트 / 인스타그램 볼리비아·브라질·아르헨티나·에콰도르·우루과이·칠레·콜롬비아
디자인 연구자, 교육자.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디자인을 공부하고 한국에서 석박사 학위(서울대학교 디자인역사문화전공)를 받았다. 중남미 국가들과 한국을 오가며 학술 행사에 참여하고 학생들을 가르친다. 아르헨티나, 칠레 등 라틴 아메리카의 디자인 잡지들과 국내의 월간 『디자인』 및 『디자인 프레스』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 @DiCul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