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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엘리아나의 DiCulto #1 에콰도르의 디자인 스튜디오 ‘아무키’

    스튜디오 ‘아무키(AMUKI)’ 바네사 주니가 티니사라이(Vanessa Zúñiga Tinizaray)의 고고학적 타이포그래피


    글. 김엘리아나

    발행일. 2023년 01월 19일

    김엘리아나의 DiCulto #1 에콰도르의 디자인 스튜디오 ‘아무키’

    DiCulto(디꿀또)는 김엘리아나가 자신의 모토로 쓰는 말이다. 스페인어 diseño(디세뇨, 디자인), culto(꿀또, 문화), oculto(오꿀또, 숨겨짐)의 철자로 만든 조어다. 김엘리아나의 DiCulto는 ‘라틴 아메리카와 한국의 숨겨진 디자인 문화를 밝히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그녀의 표현을 빌면 “디자인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의 과(課)와 업(業)”을 함축한 말이기도 하다.
    
    김엘리아나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디자인을 공부하고 한국에서 박사학위(서울대학교 디자인역사문화전공)를 받았다. 지금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를 무대로 활발히 학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직은 다소 낯선 ‘라틴 아메리카 디자인’을 국내에 알리고, 한국과 중남미 디자인계의 교류를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타이포그래피 서울』 시리즈 [김엘리아나의 DiCulto]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중남미 디자인계의 문화와 역사, 현지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와 타이포그래퍼, 디자인 스튜디오를 소개한다. 이 시리즈를 통해 우리 인식 체계 안의 ‘디자인 영토’가 라틴 아메리카 대륙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기를 바란다.

    타이포그래피로 중남미 토착 문화를 기록하다
    에콰도르의 디자인 스튜디오 ‘아무키(AMUKI)’


    한국에서 에콰도르라고 하면 바나나 상표 ‘보니타(Bonita)’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에콰도르는 전 세계적으로 수출하는 바나나 사업만큼이나 풍부한 문화적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문화나 인종의 다양성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9개 토착 언어를 구사하는 12개 인종이 4개 지역에 걸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양성이 살아 숨쉬는 에콰도르에 디자이너 바네사 주니가 티니사라이(Vanessa Zúñiga Tinizaray)의 스튜디오 ‘아무키(AMUKI)’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디자인 스튜디오보다는 연구소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 정도로 역사와 문화, 그리고 고고학과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 실험적 타이포그래피가 현현하는 공간이다.

    바네사 주니가 티니사라이

    스튜디오 이름인 ‘아무키’는 안데스 산맥 토착 부족인 께추아(Quechua)가 사용하는 언어의 명칭이다. ‘묵념’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런 말뜻과는 반대로 바네사의 타이포그래피는 시각적으로 매우 강렬하고 신비로워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킨다. 가독성 높은 합리적 모던 타이포그래피와 달리 추상적 형태와 반복적 모듈화를 통해 글자 하나하나가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의미를 경험하게 한다.

    바네사는 “실험적 알파벳 디자인은 현지 토착 문화와 역사에서 나타난 고고학적 사물들을 추상화시켜 최소한의 단위인 모듈로 전환해 글자를 구성하는 방법”을 채택한다고 설명한다. 아무키의 활자 주조소가 디자인한 글꼴을 보면, 문자를 읽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이해하는 정도 즉 가독성(readability)보다는, 문자를 봤을 때 순간적으로 특정한 이미지(지역적 특성)가 연상되는 시인성(visibility)이 뛰어나다. 글자를 ‘특정 공동체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나타내는 매개체’로 바라보는 바네사의 시선이 작용한 결과다. 그녀는 각 지역 토착민들의 이야기를 주목해서 들어볼 필요성을 강조한다.

    “각각의 문화는 특별하고 서로 다른 지역과 역사적인 배경을 가진다. 물론 다른 집단과 공통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어떤 문화든 ‘목소리’가 존재하고,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고유하다.”

    바네사 주니가 티니사라이
    〈비세베 볼리비아(BICeBé Bolivia)〉 비엔날레 10주년 기념 포스터, 2018

    스튜디오 ‘아무키’의 타이포그래피 원칙
    “타자의 언어, 문화, 지역에 대한 이해와 존경”

    바네사는 “타자의 언어, 문화, 지역에 대한 이해와 존경”을 타이포그래피 원칙으로 삼는 디자이너다. 그런 만큼 새로운 글꼴을 형성하는 과정도 엄격하다. 먼저, 지역 박물관 탐방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녀는 “박물관에서 눈에 띄는 사물을 발견하면 그것에 ‘실험 132’ 같은 식으로 연구 번호를 지정하고, 그 사물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에 대한 서적과 자료를 샅샅이 뒤져본다. 고고학적 해석이나 논문, 또는 에세이가 있는지, 그리고 이와 연관된 시각 자료가 존재하는지” 알아본다. 여기까지가 사전 조사 단계다.

    다음은 사물을 시각적으로 분석하고 그 기호를 추상화시키는 단계다. “우선 추상적 기호 10~20개를 만들어 이를 모듈화한 뒤 100~500가지 형태로 세분화하여 체계적 알파벳으로 구현하고, 그런 다음 패턴폰트[pattern font(otf)]로 전환”한다. 이 모듈 체계가 패턴폰트로 완성되었을 때 이를 출판, 사물,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디자인에 적용해보기도 하고 “글꼴을 상업적으로 판매하고 싶을 경우, 디지털 주조소에 가서 서체를 보여주고 검토 과정을 거쳐 시장에 선보인다”고 한다.

    서체 [안디노스(Pattern Font Módulos Andinos)], 2017
    패턴폰트 제작 과정 / 출처: 스튜디오 ‘아무키’ 유튜브

    이런 디자인 철학을 기반으로 아무키는 2014년 『아비아 잘라의 시각 일기(The Visual Chronicles, Abya Yala’s book)』라는 책을 출판했다. 216쪽이 넘는 제법 두툼한 단행본이다. 이 책은 “17개 실험적 타이포그래피, 115개 기호, 425개 안데스 지역 모티프, 40여 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채워져 있다. 이 모든 것은 “고고학적 발굴, 전통 직물 및 페이스 페인팅(face painting) 등 에콰도르 토착민들의 기호를 조사·연구하여 이루어진 50가지 실험”을 통한 결과물이다. 『아비아 잘라의 시각 일기』 출간을 계기로 에콰도르 소수 민족들의 목소리가 라틴 아메리카를 넘어 국제적으로 알려졌다. 바네사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 현실화된 것이다. 그녀의 실험적 타이포그래피에 힘입은 성과이기도 하다.

    그녀가 개발한 서체들은 스페인어권에서 개최된 디자인 및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뉴욕 TDC(Type Directors Club)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프랑스와 미국 포틀랜드에서 진행한 강연을 통해 바네사 자신의 타이포그래피 철학을 알리기도 했다. 특히 스튜디오 아무키의 서체 [틴쿠이 패턴]은 타이포그래피 공동체 겸 활자 주조소 ‘수드티포스(Sudtipos)’를 통해 상업 서체로 유통되어 국제적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아비아 잘라의 시각 일기』를 필두로 한 바네사의 [아비아 잘라 시각 프로젝트]는 “200개가 넘는 실험적 폰트와 제목체로 적합한 100개 이상의 디스플레이 폰트(display font), 텍스타일이나 편집 디자인에 용이한 50가지 패턴폰트, 3D 인쇄를 염두에 둔 2만 개 모듈 디자인”으로 전개되었고, 전 세계 디자인계와 타이포그래피 현장에서 큰 관심과 호응을 얻었다.

    ‘토착 문화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바네사 주니가 티니사라이와 스튜디오 아무키의 실험과 열정은 본국 에콰도르를 넘어 콜롬비아 전역, 브라질 아마존 일대까지 번져 나갔다. 현재 바니사는 새로운 프로젝트 4개를 병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들과 함께 그녀는 2023년 더 많은 상업 폰트를 개발하고 라틴 아메리카의 시각 정체성을 알리는 세계 일주에 나설 계획이다.

    디자인 스튜디오 ‘아무키’ 바네사 주니가 티니사라이
    사이트 ➲ AMUKI.com.ec / 인스타그램 ➲ @amuki.ec

    디자인 연구자, 교육자.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디자인을 공부하고 한국에서 석박사 학위(서울대학교 디자인역사문화전공)를 받았다. 중남미 국가들과 한국을 오가며 학술 행사에 참여하고 학생들을 가르친다. 아르헨티나, 칠레 등 라틴 아메리카의 디자인 잡지들과 국내의 월간 『디자인』 및 『디자인 프레스』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 @DiCul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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