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이란 우리 모두가 함께 책임져야 할 영역이다. 그러나 여러 지자체에서 공공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결과들을 보면 공공이란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영역처럼 보인다. 공공디자인의 클라이언트는 그것을 이용하는 일반 대중이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일반 대중은 수혜자인 동시에 클라이언트인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공 디자인은 관공서의 최고 책임자에게 결정권이 주어진다. 시민 공청회나 전문가 심의 등의 과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형식적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 땅에는 진정한 의미의 공공디자인은 없고 관공디자인만 판친다.
참여 디자인이나 커뮤니티 디자인이라는 말은 여전히 공허할 뿐이다. 이렇게 조성된 거리에 일관성 없이 서체가 개발되고, 스트리트퍼니처가 등장하고, 사인이 설치되고, 휴지통이 놓이고, 간판이 바뀌고, CI가 적용되고, 캐릭터가 활용된다. 결국, 그 결과는 과시형, 예산낭비, 주먹구구, 따라 하기 등의 비난을 면치 못한다. 100년 이상을 내다봐야 할 일이 자치단체장의 임기 안에 급조되어야 한다. 이렇게 급하게 이루어진 결과는 사용자의 니즈에 의한 커스터마이징, 즉 지속적인 개선이나 관리가 불가능한 구조다. 따라서 클라이언트이자 이용자인 일반 대중은 영문도 모르고 그 결과에 적응해 나가기 급급하다.
공공디자인은 그 디자인의 조형적 결과가 좋고 나쁨을 평가하기 이전에 그것이, 왜, 그곳에 필요한지에 대한 맥락과 일반 대중들이 수용 가능한 시스템 구축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디자이너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주변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파악하려는 노력보다는 특이한 조형적 완성도에 치중하다보니 주변과는 어울리지 못하고 나만 잘난 것들의 각축장으로 변해가는 듯하다. 서울시 신청사를 비롯한 수많은 지자체의 신청사가 그렇게 만들어졌고 결국 전문가나 일반 대중의 비난을 피할 수가 없었다.
특히 공공정보디자인은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그런데 공공정보가 우선 되어야 하는 공간이 상업적 광고에 침해당하고 있다. 버스 정류장의 노선도는 어두워지면 제대로 읽을 수가 없지만, 광고판은 밤새 훤하게 주변을 밝히고 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등장 이후 공공정보디자인은 설 자리를 잃었지만, 그 대신 광고로 점령당해 버렸다. 비상구 사인도 제대로 인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만약 사고가 발생한다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것은 너무나 뻔하다. 언제나 과한 것은 화를 부르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공공디자인은 너무 과해 결국 화를 부르지 않을지가 걱정이다.
섣불리 해외의 성공 사례를 도입하여 실패한 경우도 많다. 스페인의 빌바오, 이탈리아 볼로냐, 일본의 요코하마, 미국의 시카고, 브라질의 파넬라 등 우리가 벤치마킹했던 성공 사례는 너무나 많다. 그 성공의 배경에는 나름의 시간, 공간, 인간이 만들어 온 문화적 맥락이 있다. 그러나 그 문화적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외형적 결과만 급하게 이식해 오다 보니 우리 도시의 문화적 맥락과는 맞지 않아 부작용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 이런 무조건적인 개발논리를 따르다 보면 결국 개발업자들에게만 이익이 돌아갈 뿐이다. 도시의 맥락을 모두 끊어버리는 재개발 행위 자체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공공디자인적이지 못한지를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주민 참여가 이루어진 해외 도시 디자인의 성공 사례 뒤에는 그 행정 담당자의 일관성 있는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성공한 곳에는 도시 디자인 사업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한 자리를 지키며 관리해온 행정 전문가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행정 담당자는 2~3년마다 자리를 바꾸는 순환 보직으로 그 전문성도 책임감도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자치단체장의 바뀌면 도시 디자인 정책 자체가 송두리째 사라지기도 한다. 언 듯 보기에는 근사해 보이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못하고, 실제 살고 있는 주민조차 불편해하는 공공디자인의 결과물은 일시적 착시현상에 불과한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해외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할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가 저질러온 공공디자인의 실패 사례를 뼈아프게 되돌아보아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공공디자인 사업이 결국 주민을 소외시키고 지자체만의 반짝 이벤트가 되어버린 점에 대한 현실적인 비판과 반성의 자세가 필요하다. 다음 세대를 위해 환경과 공존하면서 지속 가능한 가치의 공공디자인이란 과연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전문가와 시민이 능동적인 참여로 개선과 발전을 거듭해 나가는 과정을 지자체는 꾸준히 지원하면서 지켜보는 인내심이 필요할 것이다.
김경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디자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다수의 심포지엄과 전시회 기획, 공공디자인 프로젝트 등에 참여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십인십색>, <일본문화의 힘(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