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이 작업 환경은 발전하고 있다. 더 빠르게 그리고 더 간단하게. 자리에 앉아 키보드와 마우스를 건드리는 것만으로 모든 업무의 시작과 끝을 마무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디자이너 각자의 여가가 풍족해지지 못하는 이유는 뭔가.
가중되는 업무에 반비례하여 점점 바닥을 치는 체력. 화면을 향해 뻗은 목을 뻐근한 어깨가 간신히 받치고 있다. 기껏해야 ‘저장’ 버튼을 한번 누르고 한숨을 돌리며 기지개를 켜는 게 운동의 전부일까. 날이 갈수록 가늘어지는 팔다리. 체중이 줄어도 기쁘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월초가 되면 이번 달 만큼은 꾸준히 운동을 해야지, 체육관 등록하러 가야겠다 마음을 먹어보지만, 정신없이 쏟아지는 작업들을 처리하다 보면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가 있다. 덕분에 굳었던 결심마저 다음 달로 패스. 작업실에서 간단한 운동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보지만, 정작 간간이 생기는 짬에는 벌게진 눈을 가라앉히는 데 급급할 뿐이다. 골고루 움직여줘야 탈이 없을 몸뚱어리를 그저 마우스를 잡은 손 하나만을 내세워 모든 노동을 전담하게 하니 어깨와 손목에는 무리가 오고, 나머지 관절과 근육은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편리함이 가져다주는 퇴보의 아이러니라는 생각도 별로 새롭지 않다.
지금 작업실로 이사 오기 전, 작업실 겸 사용하던 방의 불편한 가구 배치 덕에 컴퓨터의 전원을 켜기 위해 테이블 아래로 힘겹게 손을 뻗었던 때가 문득 떠올랐다. 지금이야 훨씬 ‘편리하게’ 전원을 끄고 켜지만, 생각해보면 그만큼의 ‘움직임’을 상실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필요한 움직임들을 모두 작업 환경에 반영한다면 어떨까. 클릭 한 번, 포인터 이동 한 번이 모두 운동이 되는 불편한 장치로 작업을 한다면 어떨까. 그래서 고안해본 것은 ‘기계식 신체반응형 그래픽 툴 제어장치’이다. 본 장치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작업을 위해 쉴새 없이 페달을 밟아야 하며, 사소한 조작을 위해서도 몇 번이고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한다.
일견 생각 없는 듯 세심하게 배치된 동선은 유산소 운동의 효과를 맛보게 해 줄 것이다. 불편해 보이는가? 작업 하나를 마치고 뻐근해질 양팔과 두 다리엔 어느새 탄탄한 근육이 붙을 것이다. 언젠가는 떡 벌어진 어깨와 탄탄한 다리가 디자이너의 표준체형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림은 일러스트레이터 사양이다. 포토샵, 인디자인 사양 등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으며 자매품으로 40제곱미터 넓이의 키보드 매트도 준비 중이다. 높은 단가와 낮은 공간효율의 문제는 잠시 접어두도록 하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저장은 생각날 때마다 하도록 하자. 정신 건강뿐 아니라 체력 증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김기조 붕가붕가레코드 수석디자이너. 스튜디오 기조측면 운영 중. 전반적으로 시크하지만 칭찬 앞에서는 과감히 무너진다. 다양한 작업에 관심이 많고 스스로 재능도 있다고 믿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뭘 보여준 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