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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구룡의 디자인 책 읽기] 창의력은 어디에 위치해 있을까? 『정보의 우주』

    만약 우리가 집 앞 골목이나, 어느 도시를 여행하는 중이 아니라 우주 공간에 이런 비슷한 상황을 마주한다면 어떨까? 우주복을 입으며 구글과 Siri를 이용해 "여기가 어디야?"라고 묻는다면? 생각만 해도 엉뚱하고 대책 없어 보일 것이다.


    글. 강구룡

    발행일. 2015년 05월 12일

    [강구룡의 디자인 책 읽기] 창의력은 어디에 위치해 있을까? 『정보의 우주』

    “지금부터 위치 안내를 시작합니다.” 차 안의 내비게이션은 내 위치와 앞으로 내가 가야 할 목적지를 보여준다. 가장 빠른 길과 우회할 길도 알려 주지만, 내비게이션의 매력은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정면만 보고 달리게 하는 편리함에 있다. 걸어 다닐 때도 내비게이션은 함께 한다. 구글맵을 이용해 위치를 전송받고 골목을 걸어 다니며 처음 가보는 병원도 한 번에 찾을 수 있다. 영어 회화를 배우면서 가장 많이 외우는 “Where is city hall?” 같은 문장은 길가는 사람보다는 스마트폰에 자판을 입력해 묻는다.

    만약 우리가 집 앞 골목이나, 어느 도시를 여행하는 중이 아니라 우주 공간에 이런 비슷한 상황을 마주한다면 어떨까? 우주복을 입으며 구글과 Siri를 이용해 “여기가 어디야?”라고 묻는다면? 생각만 해도 엉뚱하고 대책 없어 보일 것이다. 우주는 신비롭지만 그만큼 두렵고 두려운 공간이다. 너무 넓기도 하며 아직 지구에 사는 우리에겐 동·호수로 주소를 알 수 있게 공간을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니터 앞에서도 유효하다. 컴퓨터 모니터의 사각형 프레임은 매우 비좁고 작아 보이지만, 화면 안의 디지털 공간은 만지거나 구역을 나누어서 고정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마우스 커서를 조금만 이동하면, 게임 속 캐릭터를 다른 행성으로 이동시킬 수 있고, 클릭 몇 번으로 미국 쇼핑몰로 한 번에 들어가 직구를 할 수 있다. 컴퓨터가 만드는 디지털 공간은 우주와 비슷하다. 그 크기를 알 수 없고, 하염없이 정보가 업데이트되면서 공간이 확장된다.

    우주선 아폴로 17이 찍은 지구 사진, ‘The Blue Marble'(1972)과 맥북프로. 미국 NASA는 Blur Marble이라는 이름을 시리 즈로 2001, 2002, 2012년을 비롯해 지구의 모습을 낮과 밤 등 다양한 조건에서 사진을 찍었다. 컴퓨터 화면에서 지구의 크기와 위치는 x, y축의 좌표에서 하나의 픽셀에 불과할지 모른다. 모니터 화면은 광활한 정보의 우주이다.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Earth
     구글맵에 ‘Where am I’라고 입력하면, 바로 자신의 위치를 알려준다. 이제 누구나 길을 헤매면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위치를 검색할 수 있다. 디지털 지도의 등장으로 처음 가본 여행지도 낯설지 않게 지명을 찾고 목적지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가 어디야’라는 질문은 더는 필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처음으로 달에 착륙한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 1969년 7월 20일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달에 발을 내디딘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사진은 조종사 올드린의 모습이고 선장 암스트롱이 사진을 찍었다. 만약 이때 내비게이션이 개발되고, 구글맵이 나왔다면 실시간으로 이들의 움직임을 TV와 인터넷으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출처: http://www.nbcnews.com
    마우스 커서. 원래는 정확히 위쪽을 향하는 모양이었으나, 개발 당시 디스플레이 화소 수가 적어 그리기 쉬운 지금의 대각선 모양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손가락을 화면에 가리키는 모습과 유사하다는 설도 있다. 우리가 모니터 화면에 커서가 사라져 마우스를 흔드는 것은 마치 잃어버린 손가락을 찾는 것처럼,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려는 본능에 가깝다. 

    영화 〈그래비티(Gravity)〉를 보면, 주인공은 한 번의 사고로 지구의 궤도를 이탈해 망망대해인 우주로 떠다닌다. 검은색 공간에 하얀 점으로 보이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인간은 정말 작은 먼지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론 컴퓨터 화면에 사라진 마우스 커서처럼 불안하다. 마우스를 만지작거리며 위치를 확인하듯 위태롭다. 이런 불안감은 모두 내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려는 본능에서 출발한다. 우주에서는 물리적으로 달과 지구를 기준으로 나의 위치를 알아야 가야 할지 목적지를 알 수 있다. 디지털 화면에서 우리는 이와 유사하게 마우스를 이용해 자신이 사각형 프레임의 x, y의 축에서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 한다. 모두 내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뇌가 있는 신체를 찾으려는 몸부림이다. 몸을 움직이고 땅 위에 발을 지탱해야 안심이 되는 것도 그러하다.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주인공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 역)이 우주 잔해로 인해 우주선에 분리되어 떨어져 나간다. 
     무중력 우주선 안 주인공의 모습에서 자궁 속 태아가 연상된다. 태아의 탯줄처럼 영화에서 끈은 우주선과 주인공을 이어주는 생명줄이자, 거대한 우주에서 길을 찾아주는 유일한 희망이다. 

    『정보의 우주』라는 책은 천지창조의 탄생 신화에서부터 최근의 디지털 환경까지 ‘1부. 우주론의 모험, 2부 관계성의 힘, 3부 미디어를 넘어서’를 거치며 사고하고 창조하는 인간의 창의력을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을 빌려 정보 디자인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예전부터 우주는 무한한 상상력의 공간으로 비쳤고, 디지털 환경에 정보는 데이터로 무한히 업데이트된다. 이 책이 흥미로운 지점은 아날로그나 디지털, 또는 아톰이나 비트로 나누어 이분화시키지 않고, 관계성을 바탕으로 디지털 환경에 놓인 인간의 위치를 새롭게 질문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관점에 있다.

    2부에서 스나가 다케시 교수는 컴퓨터 화면에서 종종 위치를 까먹고 헤매는 경험을 바탕으로 정보환경과 물질환경에서 위치의 차이를 설명한다. “정보공간을 향하는 ‘자기’와 그 공간 안에 있는 ‘대상’과의 상호관계는 물질 환경에서 일어나는 상호관계와는 다른 구성을 지닌다. 그 특징은 ‘내’가 보고 있는 스크린이라는 정보공간에서 자신의 신체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라며 신체가 연결되지 않으므로 느끼는 어색한 디지털 환경의 위치 개념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위치라는 개념을 물리적인 x, y의 좌표가 아닌 인식하는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하고 찾아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3부에서 시카타 유키코 교수의 글 “언제든, 항상,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온라인 상태로 둔다는 것은 자신의 기억이나 정체성을 네트워크와의 관계 안에서 자리매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문장을 보자. 페이스북과 트위터, 구글맵, 인터넷으로 불특정 다수와 연결함으로 우리는 고정된 위치를 포기하고 유령처럼 포워딩 되어 퍼져나간다. 타임라인도 누군가의 댓글과 리트윗으로 첨가되고 덧붙여지면서 오염되고 확장된다. 이렇게 퍼져나가는 네트워크 안의 연결은 개인의 정체성을 신체 안에 놓인 물리적 공간으로만 해석할 수 없게 만든다. 접속과 동시에 우리의 몸은 껍데기가 되고 정신은 디지털 디바이스를 타고 세계를 떠돌아다닌다. 이는 마치 우주에서 떠돌아다니며 목적지를 배회하는 것처럼 위험해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무한한 상상력과 창조력을 불러일으키고, 그 힘은 목적지를 찾을 필요 없는 자유로운 연결을 만든다. 하지만 저자는 “모바일 기술이 초래한 네트워크화에 따른 정보의 구조적 변화는 더는 비트와 아톰이라고 하는 분기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실제 공간이 가상 공간과 결합해 인간의 위치가 새로운 세계 안에서 자리 잡는다고 한다. 창의력이란 그러므로 실제와 가상의 공간이 뒤범벅된 세계에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 아닐까. 단, 앞으로 위치는 나와 연결된 다수의 위치이다. “Where am I?”보다는 “Where we are?”라는 질문이 더 효과적이다.

    MIT 학장 존 마에다와 그래픽 디자이너 나사하랴 야스히로의 대화도 흥미롭다. ‘부드러운 디지털’이라는 대화에서, 존 마에다는 “제가 키보드에서 타이핑하는 문자는 다른 사람이 타이핑한 문자와 똑같습니다. 그런데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칠 때는 건반을 두드리는 방법이나 사람에 따라 소리가 전혀 다릅니다.”라며 디지털 표현의 한계와 함께 ‘포스트 디지털(Post Digital)’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커서가 사라지면 마우스를 휘저으며 커서와 나를 동일시하는 것처럼 우리는 디지털을 본능적으로 신체와 연결하여 생각하고, 찾으려 한다. 존 마에다의 말을 종합해보면 디지털에서 남과 다른 표현을 하려는 욕구는 더 커질 것이고 피아니스트가 코딩하며 연주를 하게 되는 시대가 출현할 것으로 보인다. 나사하야 야스히로는 이를 디자인에 적용해 “디자인은 크래프트에서 분리시켜 제품으로써 물건을 만드는 시스템이지만, 디지털이 심화함에 따라 다시 공예의 개념을 참조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똑같은 프로그램과 컴퓨터로 작업하는 디자이너에게 손으로의 희귀는 표현하고 만드는 행위에 인간의 신체를 주목한다. 즉 신체를 새롭게 디지털과 연결하려는 것이 이 책이 주목하는 또 다른 창의력의 관점이다.

    존 마에다의 대표작 ‘디자인 바이 넘버(Design by numbers)'(1999). MIT 미디어랩에서 프로그래밍 언어이자 교육 프로그램으로 시작된 『디자인 바이 넘버』는 책으로 출간되어 많은 아티스트와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코딩으로 점, 선, 면을 긋고 형태를 만들어 컴퓨터라는 매개체를 예술 표현 도구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만들었다. 후에 벤 프라이와 케이시 리즈에 의해 프로세싱(Processing)이라는 프로그래밍 툴을 개발하는데 영향을 줬다. 존 마에다는 컴퓨터를 연주자가 연주하는 악기처럼, 화가가 사용하는 물감처럼 예술가가 스스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사용하여 자신만의 표현 도구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정보의 우주』는 한마디로 잃어버린 우리의 창의력을 정보환경과 물질환경의 관계에서 인간의 위치를 새롭게 찾아 나가며, 11명의 저자가 자신만의 관점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정보의 우주에서 창의력이란 자기의 위치를 찾고 방향을 설정하는 능력이 아닐까. 정보는 거대하고 추상적이며 비물질적이며 만질 수 없다. 그러나 역으로 구체적이고 물질적이며 촉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상반되는 두 개의 개념 사이에서 우리가 나가야 할 위치를 찾아 나가는 것. 그것이 태초부터 우주라는 공간을 부유하는 인간이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려는 본능이다. 창의력은 우주라는 공간에서 우리의 연결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도서 정보

    정보의 우주: 디자인을 위한 상상력
    저자: 미나토 치히로, 나가하라 야스히토 외 9인
    역자: 김남주
    출판사: 안그라픽스
    출간일: 2013.12.20
    가격: 20,000원

    강구룡
    그래픽 디자이너, 디자인 저술가, 공저로 『위트 그리고 디자인』, 『디자인 확성기』가 있으며 버라이어티 디자인 토크쇼 〈더티&강쇼〉를 진행하며 디자인과 사회, 문화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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