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에 얼마나 많이 눈을 쓰고 살아갈까? 일반적으로 주입하는 정보의 90% 이상은 눈을 통해 습득한다고 한다. 뭐, 그렇게 많으냐고 할 수 있겠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을 확인하는 나는 거의 100% 눈으로 보고 이해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눈뜨고 있는 게 잠자는 시간 빼고 대부분이니, 숨 쉬고 걸으면서 한순간도 쉬지 않고 무언가 보게 된다.
며칠 전 일본에 갔다가 시부야의 유명한 X자 횡단보도에서 사람들이 서로 붙었다가 떨어지면서 교차하는 게 보였다. 음…. 이렇게 붙었다가 떨어지면서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니라, 영화에서처럼 사람들이 복제하면 어떨까? 아니면, “윽! 저놈은 외계인이야!” 영화 〈맨 인 블랙〉처럼 외계인을 찾아보고 비밀을 파헤친다면? 이런 궁상을 떨고 있다가 신호를 놓치고 말았다. 어쨌거나 이런 쓸데없는 상상도 모두 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쯤 되면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나에게 눈은 그냥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것이 아닌 온갖 잡동사니 생각이 일어나는 출발점이자 가장 활용도가 높은 도구다. 상상은 무의식적으로 본 것을 머릿속의 어떤 경험과 합쳐 복잡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고도의 화학(?)작용처럼 보이지만, 그냥 걷다가 배고프듯 자연스레 일어난다. 아마, 눈으로 보고 축적한 수천, 수만 가지 이미지가 가끔 머릿속에서 오작동을 일으키며 뒤죽박죽 떠오르는 것이 영감이나 아이디어가 아닐까. 그러고 보면, 일단 아무거나 많이 무의식적으로 보는 게 중요하다.
법학을 공부하다 잡지와 단행본으로 디자인을 시작한 일본 디자이너 마츠타 유키마사의 『눈의 모험』(김경균 옮김, 정보공학연구소, 2006)은 이처럼 무의식으로 보는 다양한 형태와 함께 본다는 것에 숨겨진 문화적, 역사적 이야기를 찾아 지평선으로 넓게 파고들어 가는 백과사전 같은 책이다. 점, 선, 면의 기본 형태에서 ‘뒤덮다’, ‘감싸다’는 행위, 숫자나 암호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보는 것에 연관된 주제를 56가지 에피소드로 보여준다. “오토바이는 정면보다는 측면에서 보는 것이 매력적이다. 비행기의 정면은 그 표정이 빈약하여 정면이나 측면보다는 위에서 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120쪽)로 시작하는 ‘정면과 측면’이라는 에피소드에서는 19세기 중반 범인수배 전단에 사진을 사용하여 몽타주 사진의 기초를 만든 인체 계측학자 알퐁스 베르티옹을 언급한다. 그는 피의자의 정면과 측면 얼굴을 엄밀한 축적(1/7)의 촬영법으로 찍었는데, 이는 정면만 보면서 야기되는 눈의 오류를 측면과 함께 계량화하여 사람의 얼굴을 하나의 기호로 만든 것이다.
예전에 버스 정류장에서 어떤 분이 “반가워!”라고 이름을 부르며 아는 척을 했는데, 가만히 그 사람의 얼굴만 봤던 기억이 있다. 알고 보니 내게 안면인식장애가 있었다. 특히 얼굴 측면보다 정면을 알아보기 힘든데, 다행히 측면을 보면 훨씬 빠르게 인식된다.(측면은 정면에 비해 눈, 코가 입체적으로 튀어나와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마 나 같은 사람 때문에 범인수배 전단도 친절하게 측면 얼굴을 보여주나 보다. 오히려 이런 눈의 오류를 활용하여 작고한 일본 디자이너 후쿠다 시게오는 <앵콜>(1976)이라는 작업에서 어디가 정면이고 측면인지 경계를 모호하게 하여 우리가 보는 대상의 시점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안광과 빔」이라는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서양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는 르네상스를 맞이하기까지 창문을 통해 밖을 보는 것이 죄악시되었다. 보는 것을 포함한 감각적 쾌락 전반을 죄악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의 시선도 항상 위를 향하도록 했고 모든 창문은 스테인드글라스 등으로 가려져 밖을 볼 수 없었다.”(272쪽)는 구절은 보는 것이 사회적, 종교적 힘을 가지고 다른 나라와 문화적 차이를 나타내는 이유를 보여준다. 한 곳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눈은 마치 절대자에 대한 믿음과 신앙을 보여준다. 주술사나 무당의 부리부리한 눈을 보면 뭔가 신들린 듯 보이는 이유도 그러할 것이다.
『눈의 모험』이 보는 것에 대한 다양한 소스를 제공하는 뷔페식 요리와 같다면, 네덜란드의 타입 디자이너인 헤라르트 윙어르의 책 『당신이 읽는 동안』(장문경 옮김, 워크룸 프레스, 2013)은 읽는다는 행위에 집중한 단품 요리다. 신문이나 책을 읽거나 거리 간판의 글자를 보면 우리는 하나의 기호로 인식한다. 읽기는 어떤 면에서 의식하며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읽는다는 행위는 다르다. 우리가 어떻게 글자를 읽고 문장을 읽어 내려가는지 보는 관점에서 읽기를 바라본 책은 드물다. 그런 점에서 『당신이 읽는 동안』은 우리에게 읽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글자는 왜 이 모양으로 인식하고 문장을 읽을 때 어디서 쉬어가고 끊어 읽는지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일반적으로 타이포그래피나 타입 디자인에 관련한 책이 글자의 역사나 이론을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면, 이 책은 딱히 그렇지 않다.
그냥 저자의 작은 호기심에서 읽는다는 행위를 일상적인 상황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는 다시 세분화하여 글자의 작은 단위부터 하나의 문장, 문단으로 이어지면서 중간중간 타입 디자인의 원리와 역사를 조금씩 설명한다. 그런 면에서 타입 디자이너의 작은 외도(?)로 보인다.(종일 책상 앞에서 글자를 디자인한다고 생각해보라. 아마, 심심해서라도 딴짓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윙어르는 영민하게도, 크게 밖을 돌아다니지 않고 본다는 행위에 관련된 글자의 형태와 역사를 타입 디자인의 역사에 비추어 서로 연결하고, 자신의 주종목인 글자를 만들면서 얻은 노하우를 하나씩 이벤트로 흘려준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는, 저명한 타입 디자이너 윌리엄 A. 드위긴스의 마리오네트 M 효과를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그가(드위긴스) 인형을 만들게 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의 친구가 마리오네트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인형이 모자랐던 것이다. (중략) 드위긴스는 자신의 인형이 관중과 너무 거리가 멀고 조명도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다음에 만든 인형은 뺨과 얼굴 사이에 강한 곡선이 있는 훨씬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하지만 무대의 조명과 관객과의 거리는 이런 날카로움을 순화시켜 인형의 얼굴을 인상적으로 만들어 주었다.”(107쪽)
드위긴스의 ‘M의 공식’은 마리오네트의 이니셜에서 따온 것으로, 인형을 만들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활자 디자인에 적용, 8~12포인트의 칼레도니아 서체를 선명하게 유지하는 방법에 활용하였다. 칼레도니아의 h의 바깥쪽과 안쪽의 곡선을 보면 안쪽이 훨씬 날카로운 것을 볼 수 있는데, 인형을 만들면서 얻은 경험이 반영되어 작은 글씨도 더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장을 읽으면서 우리 눈이 고정되는 과정을 설명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단속성 운동사이 시선이 고정될 때 우리 눈의 가장 날카로운 부분은 글의 중심이 아니라 왼쪽 끝쪽에 머문다. 한 번 고정될 때 최대 18자가 눈에 흡수된다고 치면 두세 글자만이 정말 뚜렷하게 보이는 셈이다.” (64쪽) 그냥 무심코 책을 읽으면서 모든 글자를 다 읽는다고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몇몇 단어를 중심으로 무의식적으로 끊어 읽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처럼 읽는 속도가 느린 사람은 끊어 읽는 곳이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히 많을 것이다.
디자이너가 만드는 대부분 작업은 우리 눈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염두에 두고 이루어진다. 만드는 사람도 계속 뚫어지게 작업을 본다. 시작부터 끝까지 보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그러니, 디자이너에게 본다는 것은 평생 업으로 삼아야 하는 일인지 모른다. 요즘 디자인은 어떻게 생각하고 경험하는지 의식하고 계획하는 것에 많이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보면서 생각하듯, 우리 눈과 머리는 항상 연결되어 있다. 어떻게 보느냐는 곧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다르지 않다. 역설적이게 생각하는 것에 몰입한 만큼 보는 것에는 소홀해지고 무뎌지는 것 같다. 직접 해보지 않고 가상의 이미지만 보다 보니, 감각도 둔해졌다. 실제로 만지고 질감을 느끼고 손으로 해보면서 얻는 경험도 보는 시야를 넓혀주는데 말이다. 이쯤 되면 본다는 것은 단지 보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의식적으로 읽어가는 것이든, 무의식으로 바라보는 것이든 이 두 책은 그런 질문에 친절히 정답을 주기보다는 다양한 질문과 예제로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눈의 모험』은 무의식으로 보는 것에 키워드를 만들어 다양한 분야와 접목하며, 『당신이 읽는 동안』은 의식적으로 읽는 행위에서 보이지 않는 글자 형태와 이야기로 우리를 이끈다. 디자이너에게 역시 가장 중요한 도구는 눈이고, 가장 중요한 행위는 보는 것이다. 감수성의 차이를 구분하는 능력이라면, 디자이너에게 감수성은 차이를 구분하며 보는 눈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다른지 왜 그런 모양인지. 이러한 질문은 역설적이게도 보는 것으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보는 것의 역사는 인류 문화의 역사이고 그것은 곧 디자인이라는 학문이 문화와 사회를 읽어내려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일 것이다. 아…. 그나저나 이런 이야기는 조금 거창한 것 같고, 한 가지 작은 소망이 있다면 이제 사람 얼굴을 보면 좀 더 빨리 인식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장애는 많이 보는 것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공부해서 이해해야 할까?
북칼럼 – 강구룡의 디자인 책 읽기
[강구룡의 디자인 책 읽기]는 매회 디자인에 관련한 이야기와 책을 소개하는 서평형식의 칼럼입니다.
책 정보
눈의 모험
저자: 마쓰다 유키마사
역자: 김경균
출판사: 정보공학연구소
출간일: 2006.09.10
가격: 17,000원
책 정보
당신이 읽는 동안
저자: 헤라르트 윙어르
역자: 최문경
출판사: 워크룸프레스
출간일: 2013.03.15
가격: 15,000원
강구룡 그래픽 디자이너, 디자인 저술가, 공저로 『위트 그리고 디자인』, 『디자인 확성기』가 있으며 버라이어티 디자인 토크쇼 〈더티&강쇼〉를 진행하며 디자인과 사회, 문화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