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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구룡의 디자인 책 읽기] 발전에서 발견으로 이어지다, 『프로세스를 디자인하라』

    사람에게는 저마다 자기만의 프로세스가 있다. 일반적인 의미로는 일하는 순서가 될 것이고, 또는 자기 만의 일하는 노하우도 된다. 같은 일을 하는 경우에도 누구는 빨리 일을 끝내고 누구는 늦게 일을 처리한다면 서로 다른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일의 성과도 프로세스에 따라 차이가 난다.


    글. 강구룡

    발행일. 2014년 12월 17일

    [강구룡의 디자인 책 읽기] 발전에서 발견으로 이어지다, 『프로세스를 디자인하라』

    사람에게는 저마다 자기만의 프로세스가 있다. 일반적인 의미로는 일하는 순서가 될 것이고, 또는 자기 만의 일하는 노하우도 된다. 같은 일을 하는 경우에도 누구는 빨리 일을 끝내고 누구는 늦게 일을 처리한다면 서로 다른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일의 성과도 프로세스에 따라 차이가 난다. 일뿐만 아니라, 음악을 듣거나 식사를 하는 반복적인 행동이나 버릇처럼 작은 습관의 차이도 자신만의 사소한 행동 프로세스로 볼 수 있다. 좋아하는 소설가 김중혁은 하루에 원고지 1매를 쓴다고 하여 ‘일매 김중혁’이라는 별칭을 얻었는데, 이런 사소한 버릇이 한 권의 책으로 바뀌는 것을 보면 프로세스는 작지만 강력한 도구이자, 일하는 사람의 분신처럼 자신의 성향을 대변하기도 한다.

    ‘정의로운 사람들이 행동하지 않을 때, 살아있는 악은 만연한다(Evil prevails when good men fail to act)’, 디자인: 랄프 슈라이포겔(Ralph Schraivogel), 검은 바탕에 흰색 글씨로 적힌 EVIL은 아래에서 읽으면 LIVE로도 읽힌다. 검은색의 EVIL과 흰색의 LIVE은 삶과 악의 대비를 보여주며 우리의 삶에 숨어있는 악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하나의 문장을 포스터 한 장에 담기 위해 스위스 디자이너 랄프 슈라이포겔은 300개가 넘는 포스터를 만들고 그 과정을 기록했다. EVIL이라는 단어에 집중한 초반의 스케치에서 거울에 비친 EVIL의 글자에서 발견된 LIVE를 찾기까지 작업의 과정은 규칙적으로 발전하기 보다는 하나의 발견으로 건너뛴다. 디자인 프로세스가 흥미로운 것은 지속적으로 작업에 집중함으로써 다른 순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숨겨진 이미지를 찾을 때이다. 이 점이 다른 분야의 프로세스와 디자인 프로세스의 차이이다.(출처: www.ralphschraivogel.com)

    컴퓨터 용어로 프로세스는 연속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더 복잡해 보이지만, 프로그램이 하드 디스크에 저장된 실행코드라면 프로세스는 프로그램을 구동하여 메모리에 적재된 상태로 실행하는 하나의 작업 단위이다. 즉, 프로세스는 작업(Task)과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인다. 결국, 모든 작업은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고 누적된 프로세스의 수만큼 컴퓨터가 처리해야 할 일의 양도 커진다. 그렇다면 디자이너에게 프로세스는 어떤 의미일까? 과거에는 영감이라는 단어가 디자인에 자주 사용되었으나 이제 프로세스라는 말을 더 많이 듣는다. 이는 디자인이 한 사람의 아이디어나 기발한 상상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나아가, 여러 집단이 함께 일하는 체계적인 과정을 겪어야 하는 조직적인 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혼자 일하는 경우도 감각으로만 무엇을 만드는 상황에서 디자인 과정을 합리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이는 디자인 결과물에 숨겨진 프로세스를 읽어내다 보면 그 사람의 디자인 성향과 문제 해결 방식, 그리고 스타일까지 볼 수 있다. IDEO의 대표인 톰 켈리는 한 인터뷰에서 “모든 사물은 디자인되어있다.”고 했는데, 이 말을 다시 보면 모든 디자인은 프로세스로 이루어졌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방안에 놓인 책상이며 의자, 연필, 지우개….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이 디자인되어 만들어진 제품이라면, 그 제품을 만든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들은 모두 자기만의 일하는 방식 즉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디자인 분야 외의 경계를 넘나들며 서로의 프로세스를 도입하고 적용해보며 새로운 결과를 얻으려는 시도를 불러일으켰다. 2006년 한국의 한 강연에서 디자인 듀오 덱스터 시니스터의 스튜어트 베일리는 자신의 서점에서 책을 만드는 방식을 주문이 들어 올 때마다 제작하고 유통하여 수요를 충당하는 과정으로 보여 주었다. 이는 자동차 회사 도요타의 생산방식인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 JIT)’ 제조 공정을 따르고 있는데, 기존 대량 생산하여 판매하던 포드 자동차의 ‘어셈블리 라인(Assembly line)’과는 대조되는 프로세스 방식이다. 자동차 제조 공정의 프로세스가 책을 만드는 데뿐만 아니라 옷이나 요리를 만들 때도 적용할 수 있다. 디자인도 어떤 프로세스를 거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내므로, 앞으로 디자이너는 새로운 프로세스와 제작 방식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덱스터 시니스터의 뉴욕 지하 건물의 ‘간헐적 서점'(occasional bookstore), 덱스터 시니스터의 간헐적 서점은 책을 기획하여 그때 그때 필요한 양만큼 찍어낼 수 있게 제작한다. 디자인이 조형적인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이처럼 생산 방식까지 개입하게 되면, 디자이너는 물품의 수량과 유통방식까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정보나 지식 등 콘텐츠를 어떻게 배급하고 생산할 것인가는 디자인을 결과에 집중하기 보다는 프로세스를 디자인하는 과정 중심으로 바꾸어 준다.
    도요타의 Just in Time과 포드의 Assembly line 생산 방식, 1950년대 생산성이 미국 자동차 시장의 1/8에 그친 도요타는 차량 재고로 파산 지경에 이른다. 이에 도요타는 ‘저스트 인 타임’ 생산기법을 도입해 위기를 극복했다. 기존 자동차 업계의 대표적인 생산방식은 포드의 ‘어셈블리 라인’ 방식이었다. 하나가 만들어지면 다음 파트가 더해지는 어셈블리 방식은 일의 분업화를 만들었지만, 대량 생산되는 제품의 재고를 해결하지 못했다. 도요타는 외주 업체에게 필요한 수량만 그때 그때 주문해 부품을 공급받는 일명 JIT 방식을 도입해 제고를 해결하고 생산성을 올렸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도요타의 JIT 방식도 쓰나미와 지진 등의 사고로 일본 본토의 공장이 타격을 입자, 부품 한 두개 때문에 핵심부품의 제작이 늦어지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에 최근 도요타는 재고를 최대 4개월분으로 늘렸다. 이런 생산 방식의 차이는 디자인 프로세스에도 영향을 미친다.

    책 『프로세스를 디자인하라』는 이런 관점에서 디자이너가 주목할 만한 다양한 프로세스 방식을 실제 디자이너들의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리서치, 영감, 드로잉, 내러티브, 추상, 개발, 협업의 7가지 테마로 나누어 디자이너의 인터뷰와 작업 과정을 담고 있다. 영감 테마에 인용된 “과학적 방법은 존재하는 것의 본질을 찾는 데 사용되는 문제 해결 행동의 패턴인 반면, 디자인적 방법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가치 있는 것을 발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행동 패턴이다. 과학이 분석적이라면 디자인은 건설적이다.”는 디자인이 과학적인 접근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는 독특한 과정임을 보여준다.

    책에 소개된 디자인 스튜디오 GTF의 작업은 재료의 사용에 있어 문제 해결 능력과 디자인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54회 카네기 인터내셔널을 위한 전시 디자인에서 GTF는 리본이라는 일반적인 재료가 다양한 역할에 맞게 변주되면서 콘셉트를 시각적으로 어떻게 확장하는지 보여준다. 카네기 인터내셔널 전시가 가지는 전통과 그 안에 전시되는 미술품의 현대적인 모습이 가지는 이중성을 리본이라는 오래된 재료의 익숙함과 새로운 활용으로 대조적으로 풀어낸다. 리본이 책갈피의 기능에 벗어나 전시 벽면과 바닥, 아이덴티티 전반에 적용하여 유연하게 표현했다. 막스 앤 스펜서의 카페 리바이브에 사용한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일반적으로 로고를 유리컵이나 벽면에 붙이는 방식에서 벗어나 커피의 거품에 코코아 가루로 패턴을 활용하여 먹을 수 있는 로고를 만들었다. GTF의 디자인 프로세스에서 재료는 단지 생각을 표현하는 물질이 아니라, 생각 자체이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그래픽은 3D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것이 책이라면, 당신은 책을 집어 들 것이고 종이의 무게, 표지의 질감, 그리고 어떻게 제본이 되었는지 느낄 것이다.”는 GTF의 생각은 컴퓨터 화면에서 머문 단조로움을 깨트리고 재료와 공간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로 디자인 프로세스를 접근하게 한다.

    내러티브에 소개된 로레인 와일드(Lorraine Wild)의 작업도 흥미롭다. 북 디자인에 있어 권위자인 그녀의 작업은 책의 이야기를 물리적인 외형으로 변환시키기 위해 모든 요소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비율은 물리적이다. 그래서 프로토타입은 화면이 아닌 물리적인 결정이어야 한다.”는 그녀의 말은 직접 만들어봄으로써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디자인 제작 과정을 보여준다. 디자인 프로세스는 머릿속으로만 해결할 수 없다.

    추상 파트에 언급한 스위스 디자이너 랄프 슈라이포겔(Ralph Schraivogel)은 포스터 한 장을 만들기 위해 수백 번 실패하고 다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디자인 프로세스가 계속 전진하는 단계적인 성공이 아니라, 실패와 건너뜀을 반복하는 발견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디자인 과정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글자를 이미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그는 수백 번 생각과 표현을 반복한다. 이런 과정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이미지가 콘셉트로 나아가 메시지를 전달할 때 한 장의 포스터로 살아남는다. 그러므로 디자인 프로세스는 어떤 면에서는 잉여적이고 실패와 실수가 필요하며 어떤 면에서는 비합리적이다. 이점이 투여된 노력만큼 결과를 얻어내는 다른 분야의 노동과는 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리서치, 영감, 드로잉, 내러티브, 추상, 개발, 협업까지 실제 언급된 테마뿐만 아니라 더 많은 방식이 실제로 디자인 프로세스로 존재하고 있다. 재료에서부터 형태, 색상 등 작업 제작부터 유통과 배송까지 실제 일상에 존재하는 모든 측면에서 디자인의 과정이 개입할 수 있고, 그것을 역으로 시각적 표현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도요타와 이케아의 생산방식도 포스터 디자인에 사용할 수 있으며, 요리하는 레시피도 북 디자인에 이용할 수 있다. 이는 디자인 프로세스가 디자이너만의 것이 아니라, 디자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 책의 제목처럼 디자인이 아닌 디자인 프로세스를 디자인하라는 말은 언급된 디자이너들의 작업 방식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디자인을 만들어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준다.

     〈54회 카네기 인터내셔널 전시 디자인(54th Carnegie International) 2003〉, 디자인: GTF, 전시 도록의 책갈피에서 전시의 벽면과 계단의 사인물까지 확장해서 펼쳐지는 리본은 전시 아이덴티티가 하나로 고정되지 않고 유연하게 확장할 수 있게 여지를 준다. GTF의 멤버인 스티븐스는 이를 두고 “우리는 원하는 정도로 아이덴티티의 목소리를 크게 할 수도 낮출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리본의 자유로운 활용이 익숙한 재료를 낯설게 만들어주고 있다.(출처: www.graphicthoughtfacility.com)
    카페 리바이브 아이덴티티 디자인, Cafe Revive 2004, 디자인: GTF, 흔히 커피숍의 로고는 컵이나 간판에 사용하지만, GTF가 디자인한 카페 리바이브의 로고는 커피 위에 코코아가루로 만들어져 직접 먹어볼 수 있다. 커피 애호가에게 자신의 커피 브랜드를 마셔볼 수 있게 하는 것만큼 확실하게 브랜드를 경험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지 않을까?(출처: www.graphicthoughtfacility.com)

    이 책에 소개된 예는 디자이너의 작업 과정에 제한되어 있지만, 이를 바탕으로 다른 분야의 제작 방식을 함께 도입하고 혼합해 사용함으로써 디자인 영역을 넓혀갈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인의 범위는 멋진 포스터 한 장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생산단가를 낮추고 제작 방식을 개선해서 노동 환경을 개선할 수도 있으며, 역으로 이런 제작 방식으로 포스터도 다르게 디자인할 수 있다. 영역을 넘나들며 다른 프로세스를 도입하고 발전시켜 디자이너는 특수하게 문제를 해결할 힘을 기를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다른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때로는 작고 세밀한 글자와 이미지의 형태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어떨 때는 생각의 과정을 추적하여 어떻게 일하는지에 질문도 던져야 한다. 만약 언제나 똑같은 결과만 나와 좌절하는 디자이너가 있다면 잠시 작업을 멈추고 자신의 작업 과정을 바라보길 권한다. 아인슈타인은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과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디자인 프로세스에 대한 관심은 반복되는 병을 치료할 수 있게 생각하는 기회를 만들어 줄지 모른다.

    책정보

    프로세스를 디자인하라
    저자: 낸시 스콜로스, 토마스 웨델
    역자: 장동련, 이연준 출판사: 시드포스트
    출간일: 2014.06.30.
    가격: 18,000원

    강구룡 
    그래픽 디자이너, 디자인 저술가, 공저로 『위트 그리고 디자인』, 『디자인 확성기』가 있으며 버라이어티 디자인 토크쇼 〈더티&강쇼〉를 진행하며 디자인과 사회, 문화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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