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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석훈의 한글 디자인 품과 격 #10 한글 폰트 대중화를 이끈 ‘스타 폰트’

    윤디자인그룹 편석훈 회장 저서 『한글 디자인 품과 격』 요약본 ― 연예인 손글씨체 붐을 일으킨 ‘스타 폰트’


    글. 편석훈

    발행일. 2021년 05월 28일

    편석훈의 한글 디자인 품과 격 #10 한글 폰트 대중화를 이끈 ‘스타 폰트’

    한글 디자인 품과 격』(편석훈 저, 윤디자인그룹, 2020) 내용 일부를 재구성한 글입니다.
    더 많은 내용은 책 안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고등학생 성시원(정은지 분)은 H.O.T.의 열렬 팬이다. 시원이 가장 아끼는 물건은 당연히 H.O.T.의 굿즈(goods). 이중 H.O.T. 상징이기도 한 하얀색 우비는 시원의 잇템이었다.

    어느 비 오는 날, 아버지 성동일(성동일 분)은 잠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면서 별 생각 없이 그 우비를 입고 나가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시원은 경악하며 우비를 찾기 위해 비를 흠뻑 맞으며 뛰쳐나간다. 집 앞 골목길에서 시원은 성동일에게 당장 그 우비를 벗으라고 난리를 치고, 그 난리통에 그만 우비는 찢기고 만다. 결국 시원은 세상을 잃은 듯, 골목에 주저앉아 펑펑 울어버린다.

    이 장면은 시원이처럼 어떤 스타를 열렬히 좋아했던(혹은 지금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명장면(?)이 아닐까 싶다. 〈응답하라 1997〉에서 제대로 보여준 것처럼, 1990년대 말에 생성된 팬덤 문화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리고 2000년대 초, 이 팬덤 문화는 수많은 굿즈를 토대로 본격적인 스타 마케팅 붐업을 일으키며 더욱 고도화되었다. 디지털 분야도 예외는 아니어서 다양한 스타 콘텐츠들이 발굴되고 있었다.

    폰트 업계에 30년 이상 종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최신 트렌드와 마케팅에 주목하게 되는데, 간혹 ‘바로 이 아이템이다’ 싶은 촉이 곤두설 때가 있다. 스타폰트가 그랬다. 스타폰트는 새로운 디지털 폰트 시장을 개척할 만한 충분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웹과 모바일 폰트 시장이 본격화된다면 스타폰트 시장은 충분한 잠재력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스타폰트 홍보용 포스터, 2006년 11월

    싸이월드 웹 폰트와 애니콜랜드 모바일 폰트

    스타폰트는 스타의 자필이나 이미지를 바탕으로 만든 디지털 폰트로, 2003년 처음 기획되었다. 기획 당시에는 모바일 다운로드용 폰트 개발이 컬러링(통화연결음)과 맞먹을 정도의 시장성을 확보하리라 기대했건만, 2005년 처음 스타폰트를 모바일 시장에 내놓을 당시만 하더라도 스타폰트를 탑재할 수 있는 단말기 보급률은 채 1% 수준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결국 처음으로 선보인 모바일용 스타폰트는 안타깝게도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005년 싸이월드 선물가게에서 웹 폰트를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스타폰트 시장이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처음 선보인 스타폰트는 문근영, 테이, 동방신기 등이었다. 당시 스타폰트는 무엇보다도 ‘디지털 폰트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주목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폰트 구매는 인쇄매체 분야를 비롯한 디자인 분야의 전문가들이 구매하는 상품일 뿐, 일반 대중이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고자 구입하던 때가 아니었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한글 폰트를 직접 돈을 주고 구매하는 거의 혁신적인 시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싸이월드 선물가게 웹 화면

    여기서 잠깐! 싸이월드를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대한민국 1세대 SNS’라 불리는 싸이월드의 전성기에 대해 몇 가지 부언해야겠다. 우선 1999년에 설립된 싸이월드는 2005년 전체 회원수가 1천 6백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비약적인 성장을 한, 국내 1세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다. 개인 미니홈피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일촌을 중심으로 이웃을 맺으며 커뮤니티를 형성해나가는 공간이었다.

    소위 ‘싸이월드 세대’라면 2000년대 전후로 싸이월드가 얼마나 큰 인기를 누렸는지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지금의 인스타그램 못지 않았을 것이라 장담(?)하는 나 역시 싸이월드 세대다. 당시 ‘싸이질’ 좀 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니홈피를 꾸미기 위해 스킨이나 배경음악, 글꼴을 구매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스킨이나 글꼴을 판매하는 싸이월드의 선물가게 헤비 유저가 2005년 당시 약 100만 명으로 추산될 정도로 싸이월드는 정말이지 괄목할 성장을 이루고 있었다.

    싸이월드 선물가게에서 판매하는 폰트들은 모두 ‘웹 폰트’들이었다. 웹 폰트는 특정 웹 사이트에서만 구현되는 비트맵(bitmap, 컴퓨터 화면상에 나타나는 데이터 저장 방식) 형식으로 완성한 한 벌의 폰트를 말한다. 즉, 싸이월드 선물가게에서 웹 폰트를 구매하면 자신의 컴퓨터에 해당 폰트가 내장되어 있지 않더라도 싸이월드에서는 자유롭게 구매한 폰트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작은 사이즈의 비트맵 폰트는 12×12 총 144개의 픽셀에 점을 찍듯이 칸을 채우면서 제작되기 때문에, 인쇄매체용 폰트인 아웃라인(outline) 폰트에 비해 글자 표현에 있어 한계가 있다. 하지만 비트맵 폰트는 메모리를 최소화할 수 있으며, 개인의 감성을 표현하는 재미 요소에 초점을 맞춰 좀더 쉽게 폰트를 제작할 수 있기에, 수많은 폰트 회사들이 웹 폰트를 경쟁적으로 출시했다. 오로지 싸이월드에 웹 폰트를 납품할 목적으로 설립된 폰트 회사들도 상당수 있었으니, 당시 상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싸이월드로 대표되는 웹 폰트 시장만큼은 아니지만, 모바일 폰트 시장 역시 2005년 이후로 조금씩 진화해나갔다. 당시 주요 모바일 콘텐츠의 카테고리는 뮤직, 게임, 채팅 등이었는데, 점차 ‘폰 꾸미기’ 콘텐츠가 부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블로그나 미니홈피와 마찬가지로 휴대폰 역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구현하는 공간이 되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폰 꾸미기 콘텐츠 중에 벨소리 다음으로 성장세를 보인 곳이 바로 모바일 폰트 시장이었다.

    모바일 폰트는 모바일 기기의 발전에 따라 변화되었다. 초기 비트맵만 지원하던 모바일 폰트는 이후 아웃라인 폰트로 발전해, 다양한 스타일의 폰트를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삼성 애니콜랜드의 MCP(Main Content Provider)였던 윤디자인연구소는 처음에는 애니콜체, 고딕체, 구름체, 아이리스, 초코쿠키, 쿨재즈 등의 폰트를 제공했으며, 이후 선보인 스타폰트는 모바일 폰트 시장을 확장해나가는 데 상당한 몫을 담당했다.

    애니콜랜드 스타 폰트 웹 화면

    스타폰트의 한계 하지만 열려 있는 가능성

    모든 스타폰트들은 사실, 웹 폰트와 모바일 폰트로만 판매할 계획이 아니었다. 온라인에서는 플래쉬 카드나 e-카드, 음악편지 등으로, 오프라인에서는 폰트 패키지나 프린터 번들용 혹은 문구류 등의 상품에도 활용하고, 이외에도 TV나 게임 자막 등에도 활용할 계획이었다. 멀티미디어 플래시 저작 솔루션을 개발하여 콘텐츠 다운로드 서비스를 기획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타폰트는 결국 싸이월드 웹 폰트나 애니콜랜드 모바일 폰트 외에는 그다지 확장되지 못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가장 먼저, 스타폰트 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를 지적할 수 있다. 자필 폰트는 가급적 그 원형을 크게 해치지 말아야 하는데, 해당 스타에게서 느껴지는 이미지와 자필의 느낌이 너무 다른 경우 혹은 스타의 자필이 너무 악필이어서 가독성에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특정 연예인의 팬임을 알리고 싶지 않아 해당 스타폰트가 좋아도 일부러 쓰지 않는다거나 혹은 안티 팬들의 이유 없는 저항 등 민감한 사안들이 섞여 있어 생각만큼 만만한 분야가 아니었다.

    또한, 몇몇 소속사를 제외한 대다수 스타 소속사의 매니지먼트가 지금처럼 전문적이지 않았다. 스타 콘텐츠를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보기 보다는, 당시만 해도 당장의 수익으로 연결되는지를 더 중요시 여겼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콘텐츠 개발은 진행이 어려웠다. 때문에 당장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싸이월드와 모바일에서만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윤디자인그룹 스스로도 홍보나 마케팅이 부족했고 좀더 발전된 결과물을 보여주지 못한 한계도 있었다. 어쨌거나 지금 생각해보면, 2000년대 상황에서 스타폰트는 시기적으로 너무 앞선 기획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 다시 스타폰트를 진행하게 된다면, 이제는 폰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미디어에 접목할 것인가’에 주목할 것이다. 예를 들어,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자필로 쓴 ‘대한민국’을 그래픽화해서 그 이미지를 전세계에 알릴 수 있다면, 정말 멋진 프로젝트가 되지 않을까. 이처럼 가장 먼저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이에 맞는 새로운 디자인 상품을 개발하고 여기에 폰트가 접목된다면, 자연스럽게 스타폰트는 또 하나의 문화사업으로 자리매김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꺼지지 않는 한류처럼, 스타폰트는 여전히 충분한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디자인그룹 대표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우리 문자 한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꾸준한 본문체 프로젝트, 국내외 유수 기업들과의 전용글꼴 개발을 이끌어 오고 있다.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한 브랜딩 영역을 개척함으로써 윤디자인그룹의 정체성을 기존의 글꼴 디자인 회사에서 타이포브랜딩(typo-branding) 기업으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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