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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조의 몽상측면 #5 둥근 집

    실재하지만, 오해해왔던 ‘둥근 집’ ― 스튜디오 ‘기조측면(Kijoside)’ 김기조 디자이너가 그린 측면의 일상 혹은 몽상


    글. 김기조

    발행일. 2013년 03월 06일

    김기조의 몽상측면 #5 둥근 집

    언제나 붉은 녹을 뒤집어쓰고 있던 철탑과 전신주, 짐을 비운 화물 열차 위로 진한 붉은빛이 한 겹 더 덮일 때 나도 모르게 넋이 나가서 해가 지기 전까지 멍하니 노을을 바라보곤 했다. 동네의 뒷산을 넘어 내려가면 저 멀리 개천이 하나 흐르고 있었고, 또다시 그 너머로는 제법 큰 화물역과 함께 시멘트 출하기지가 있었는데, 어릴 때는 시멘트 출하기지의 저장탑-사일로를 누군가가 살고 있는 집이라고 생각했다.

    둥근 기둥, 그리고 구 모양의 저장탑을 멀찌감치서 보며 바닥이 없어 보이는 그 안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모양으로 살아갈까, 나름대로 염려 섞인 고민도 했었다. 언젠가 어른이 되면 꼭 저런 집에서 살 것이라 결심한 뒤에 돌아오는 나를, 잔뜩 네모나게 맞아주던 우리 집은, 내게는 더없이 초라한 공간이었다.

    저 멀리 신기한 건물들이 서 있던 산 너머의 이국적인 풍경은 월세계처럼 신비로운 땅이었다. 마치 중력이 미치지 않는 곳 같은. 또 그때는 그곳에 한참 아파트들이 들어설 때였으니까…. 한 동, 한 동, 아파트들이 모여 이루어내는 갑작스러운 벽은 거대한 성처럼 보였고, 때로는 월면의 전진기지가 되어있기도 했다. 나의 ‘산 넘고, 개천 넘어 저쪽’에 대한 동경은 날이 갈수록 나를 두근거리게 하는 것이었다.

    – 2004년 어느 날의 일기에서 발췌

    어린 시절, 대강의 기억으로는 일곱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동네 뒤의 야트막한 산에 오르면 보이던 저 멀리의 세계는 당시로써는 인식 가능한 범위를 넘어선 곳이었다. 5층짜리 연립주택 말고는 고층아파트를 볼 일 없는 동네에서 살았으니, 아파트의 장벽에 둘러싸인 기묘한 형태의 건물들은 동경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중에도 가장 뇌리에 강하게 박힌 것은 하얗고 거대한 구형의 건물(정확한 용도는 아직도 모르겠다. 오히려 천연가스 저장탑에 가까웠는데, 그런 게 동네에 있을 리가….)이었는데, 건물=집 수준의 인지를 할 때였으니, 분명 그 안에 사람도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이 차가 제법 났던 사촌 형이 ‘저기도 사람들 사는 집이야’라고 했던 한마디를 철석같이 믿어버린 탓도 있겠다.

    그 뒤로도 한참 동안 ‘둥근 집’안에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이리저리 고민을 해 보았으나 꿈결에 두리뭉실한 이미지를 떠올린 것 이외에는 딱히 그럴듯한 것이 없었다. 저런 집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일까. 나도 저곳에 가보고 싶지만, 놀러 오라고 하는 사람은 없겠지. 설사 누군가 나를 그곳에 불러준다고 해도, 그곳은 지구에서 달을 바라보며 월면도시를 상상하는 정도의 거리감이었으니까. 호기심과 동경심 언저리를 맴돌며 어린 시절의 기억은 잠시 묻어두게 되었다.

    달세계로 향한 우주선은 생각보다 어이없이 발사되었다. 중학생이 되고 머리도 제법 크게 된 어느 날, 집이 멀다는 것만 알뿐 어디에 사는지는 잘 몰랐던 친구의 집에 가게 되었다. 항상 그 친구가 사라지던 길목을 함께 지나 긴 육교를 지나는 도중, 이 육교가 어린 시절 멀리서 지켜봤던 그 화물역 위를 관통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눈에 들어온 주변의 풍경들. 많이 낡았었고 때도 탄 채였다. 동경의 실체는 다소 초라했고, 그토록 대단할 것이라 상상했던 사람들은 ‘내 친구만큼이나’ 평범했다.

    이 추억이 담긴 동네가 어디인지 실제 지명을 밝힌다면 꽤 많은 분이 실소를 머금을지도 모르겠다. 그곳의 실제 풍경을 옮겨야 할지, 공상 속의 집을 옮겨야 할지 꽤 고민을 했지만, 그곳의 풍경은 글로써 상상해보시기를 바란다. 여러 가설 중의 하나였던, 외벽을 따라 배치된 방에서 사람들이 살 것이라는 꽤 근사했던 상상을 그림으로 옮긴다.

    지금 나는, 그때 그렇게 동경해마지않던 그 반대편, 그것도 몇 단계는 더 멀리 넘어야 하는 이곳에 살고 있다. 아쉽지만 이곳에 토끼 같은 건 없었다. 저장탑 몇 개는 철거되었고, 아파트는 페인트 부스러기를 떨군다. 달에 가야만 푸른 지구가 보이듯, 이곳에서는 예전에 살던 동네의 푸른 산이 보인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_마찬가지로 2004년의 일기 중에서 발췌

    김기조 
    붕가붕가레코드 수석디자이너. 스튜디오 기조측면 운영 중. 
    전반적으로 시크하지만 칭찬 앞에서는 과감히 무너진다. 
    다양한 작업에 관심이 많고 스스로 재능도 있다고 믿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뭘 보여준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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