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출판사에서 책을 발행함에 있어 바탕이 되는 권리는 바로 ‘판권’ 곧 출판권이었다. 이러한 출판권은 “저작물을 복제·배포할 권리를 가진 사람(복제권자)이 해당 저작물을 인쇄 그 밖의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문서 또는 도화(圖畵)로 발행(복제·배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허락함으로써 생긴 권리”를 가리킨다. 반면에 ‘배타적발행권’이란, 기존의 발행(복제·배포)에 더하여 복제·전송할 권리를 포괄하여 설정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과거에는 컴퓨터프로그램저작물에만 적용되어 온 것을 전체 저작물로 확대한 권리다.
그런데 출판권에 해당하는 복제란 “인쇄 또는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만 한정되므로 녹음 또는 녹화에 의한 복제와 더불어 복제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새로이 나타난 비종이책, 즉 오디오북 또는 전자책(e-Book) 등은 배타적발행권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출판 실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주의가 필요하다.
출판권 바로 알기 #1 출판권자의 의무
저작권법에서 말하는 ‘출판권’이란, “저작물을 인쇄 그 밖의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문서 또는 도화로 발행하고자 하는 자가 이를 출판할 권리”다. 저작권법에 따른 출판권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저작권법에 따라 출판권을 설정 받은 사람에게는 ‘출판권자의 의무’가 적용된다. 출판권이 설정되면 일단 복제권자는 제3자를 통한 출판을 할 수 없으므로, 출판에 의한 복제권과 배포권의 실질적 작용을 보호하려면 출판권자에게 일정한 의무 사항을 부과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취지에서 마련된 규정이다.
①은 특약이 없는 때에 있어서의 출판 시기에 대한 것이다. 즉, 출판권자는 ‘언제까지 출판하기로 한다’는 약속이 없는 한, 완전 원고를 받은 날로부터 9개월 이내에 출판해야 한다. 여기서는 “출판권의 목적인 저작물을 복제하기 위하여 필요한 원고 또는 이에 상당하는 물건”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이는 실무에서 흔히 사용하는 용어인 ‘완전 원고’라는 말로 보아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아울러 여기서 말하는 “9월 이내에 출판하여야 한다”의 ‘출판’은, 단순한 복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복제물을 배포하여 유통의 상태에 두는 것, 즉 일반 서점에 진열되어 있어서 독자들이 구입해 볼 수 있는 상태에 있는 것을 뜻한다. 또한 “특약이 없는 때에는”이라고 했으므로 특약에 의해, 즉 설정 행위를 정함에 있어서 그 기간은 단축하거나 연장할 수 있으며 설정 행위로 결정된 기간은 나중에 출판권자의 의무 위반을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②는 특약이 없는 한 관행에 따라 계속해서 출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출판권이 존속하는 기간 중에는 저작물의 복제물이 항상 시중의 유통 상태에 있어서 그것을 구매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으로, 적어도 품절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편, “관행에 따라”라는 표현은 출판권자의 입장을 감안한 것이다. 만일 일방적으로 “계속하여 출판해야 한다”라고 한다면, 출판권자의 경제적 이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출판계의 관행에 비추어 보면, 어떤 책을 출판한 이후 아무리 홍보에 치중해도 구매율이 저조해 반품된 재고가 많이 쌓이면 절판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조항 때문에 계속해서 출판해야 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독자들의 구매 욕구가 매우 왕성함에도 불구하고 복제권자와의 불화를 이유로 더 이상 출판물을 유통시키지 않는 등의 악의적인 상황이 아닌 한, 일반적인 출판 관행에 따라 계속 출판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③은 말 그대로 복제권자를 표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약이 없는 때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복제권자의 표지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대해서는 저작권법 시행령 제38조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와 같은 “복제권자를 표지할 의무”를 지키지 않는 출판권자에게는 출처 명시 위반의 죄와 같이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출판권 바로 알기 #2 저작물의 수정 및 증감
저작권법에 따르면 저작자에게는 저작물의 내용에 대한 수정 또는 증감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는 저작인격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런 까닭에 저작재산권자 또는 복제권자라고 하지 않고 ‘저작자’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저작물을 다시 출판하는 경우에 저작자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그 저작물의 내용을 수정하거나 증감할 수 있다. 여기서 “저작물을 다시 출판하는 경우”란, 중쇄(重刷) 혹은 중판(重版)의 경우를 뜻한다. 저작물에 수정이나 증감을 해도 출판권자에게 별다른 부담을 주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따라서 “정당한 범위 안에서”라는 표현 역시 무조건적인 저작자의 의사에 의한 수정·증감이 아닌 합리적인 수정 또는 증감을 나타낸다. 즉, 저작물을 수정하거나 증감함으로써 출판권자로 하여금 출판의 시기를 놓치게 하거나 출판 공정에 많은 변동을 주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끼치는 행위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수정 또는 증감이라고 할 수 없다.
다음으로, 특약이 없는 한 저작물에 대한 저작자의 정당한 수정·증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출판권자가 저작물을 다시 출판하고자 할 경우에는 그 사실을 미리 저작자에게 알려야 한다. 이는 저작물에 대한 결정적인 오류를 뒤늦게 발견했거나, 시간이 지나 저작물의 내용을 바꿔야 하는 중대한 사실이 있는 저작자가 새로운 출판 시기를 알지 못해서 수정 또는 증감을 할 수 없게 되는 경우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저작자가 사망했다거나 특약에 의해 재출판의 시기를 알리지 않기로 했다면 출판권자에게 이 조항에 따른 통지 의무는 없다.
출판권 바로 알기 #3 출판권 존속 기간
저작권법에 따르면 설정 행위에 특약이 없는 한 출판권은 맨 처음 출판한 날로부터 3년간 존속한다. 이때 ‘맨 처음 출판한 날’이란, 출판권 설정 후에 저작물의 복제물인 출판물이 서점 등에 유통되어 구매 가능한 상태에 놓인 날을 가리킨다. 즉, 발행 및 배포가 완전하게 이루어진 날이다. 일반적으로는 서적 등의 판권지에 적혀 있는 초판 1쇄의 발행일을 뜻한다.
출판권 바로 알기 #4 출판권의 소멸 통고
출판권자가 의무 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때, 그리고 그 밖의 사유로 출판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복제권자가 출판권의 소멸을 통고할 수 있다. 즉, 출판권자가 9개월 이내의 출판 의무 또는 계속 출판의 의무를 위반했을 경우에 다시 한 번 6개월 이상의 기간을 정해서 성실히 이행할 것을 알린 다음, 그래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출판권의 소멸을 통고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정에도 불구하고 출판권자의 사정으로 보아 출판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출판권자에게 출판할 의사가 없는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의무의 이행을 촉구할 필요 없이 즉시 출판권 소멸을 통고할 수 있다. 여기서 출판이 불가능하다거나 출판할 의사가 없다는 것은 출판권자가 아닌 복제권자가 판단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그 기준이 엄격하게 해석되지 않으면 악용될 소지도 있다.
출판권 소멸의 효력 발생 시기의 경우, 위에서 살핀 이유를 근거로 복제권자가 출판권의 소멸을 통고한 경우에는 출판권자가 통고를 받은 때에 출판권이 소멸한 것으로 본다.
출판권 바로 알기 #5. 출판권 소멸 후의 출판물 배포
저작권법에 따르면 출판권 소멸 후에도 계속해서 남은 출판물을 배포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설정계약 규정에 따라 출판권 존속 기간이 끝났거나 여러 사유로 소멸됐을 때, 그 출판권자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한해서 출판권 존속 기간 동안 만들어진 출판물을 계속 배포할 수 있다.
출판권 바로 알기 #6 출판권의 양도·제한
저작재산권자의 동의 없이는 출판권 양도나, 출판권을 목적으로 하는 질권(質權)의 설정이 불가능하다. 출판권도 하나의 재산권이므로 그것을 양도하거나 질권의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출판권은 어디까지나 저작권자의 권리 중 일부인 복제권과 배포권을 출판과 관련하여 설정 받은 것일 뿐 아니라, 출판권자에게는 저작권자에 대한 의무가 뒤따르므로 원권리자인 저작권자의 의사를 무시한 채 출판권자가 마음대로 처분하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출판권자가 어느 저작물의 출판권을 제3자에게 양도하거나 질권을 설정하고자 할 때에는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출판권자의 사망으로 그 권리가 상속되는 경우에는, 저작재산권자로부터의 별도 허락 없이도 자동적으로 출판권이 상속인에게 이전되는 것으로 본다. 반대 경우로서 출판권이 설정된 저작물의 복제권을 저작권자가 처분하려 할 때는 출판권자의 동의가 없어도 가능하다. 그렇게 하더라도 출판권자의 권리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출판권을 세분하여 양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출판권을 설정 받은 사람이 단행본 출판과 문고본 출판을 분리하여 그중 한쪽은 자신이 갖고 다른 쪽은 제3자에게 양도하는 식의 분리 양도는 있을 수 없다.
한편, 저작권법 제54조 ‘권리 변동 등의 등록·효력’에서 “출판권의 설정·이전·변경·소멸 또는 처분 제한, 출판권을 목적으로 하는 질권의 설정·이전·변경·소멸 또는 처분 제한 등은 이를 등록할 수 있으며, 등록하지 아니하면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이러한 등록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출판권등록부’에 기재하여 행한다. 그리고 여기서의 출판권 등록은 그 권리의 효력 발생을 위한 요건이 아니라 단순히 제3자에게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거래의 안전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저작권 연구자, 세명대학교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미디어와 저작권의 상관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출판 편집자로 일했으며 국립중앙도서관 문헌번호운영위원장, 한국전자출판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연구재단 연구윤리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각종 기관과 단체에서 저작권 및 연구 윤리에 관한 자문, 강의를 맡고 있다. 2018년 ‘생활 속의 표절과 저작권’이 K-MOOC 강좌에 선정되었다. 저서로 『출판실무와 저작권』, 『김기태의 저작권 수업』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