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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옥마을 사는 안삼열의 양옥 작업실

    서울 가회동 한옥마을의 2층짜리 양옥 건물, 그곳이 바로 안삼열의 작업실


    글. 임재훈 / 사진. 이희진

    발행일. 2012년 01월 26일

    한옥마을 사는 안삼열의 양옥 작업실

    서울 인사동 거리에서 북촌 방향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탄다. 서너 정거장을 거치면 가회동 한옥마을이 나타난다. 집집마다 얹어진 기와들은 옛 선비들의 갓처럼 단정하다. 마을 주변에 위치한 젓대공방, 옷공방, 염색공방, 자수공방 등 전통 공방들의 통유리 너머에는, 한복이나 두루마기를 입은 장인들이 보인다.

    이 동네에 작업실을 둔 그래픽 디자이너 안삼열의 차림새는 어떠할지 궁금해진다. 낮은 기와집들 사이로 난 북촌로 골목 깊은 곳에서, 융기된 듯 우뚝한 이층짜리 양옥 한 채를 발견한다. 문 앞에는 가죽재킷을 걸친 남자가 웃음을 띠고 있다. 여기가 바로 안삼열의 작업실이구나.

    그가 5년 전에 구했다는 이 건물은 한옥들에 비하면 ‘초고층’에 속한다. 북촌 한옥마을은 전통 주거지를 보전한다는 서울시의 계획에 따라 2008년 5월 제1종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되었는데, 이를 통해 고층 양옥 개발과 재건축이 제한되었다. 높은 양옥은 낮은 한옥들 사이에서 더 이상 층수를 높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안삼열의 작업실은 이곳의 전망대와도 같다.

    이층 베란다에 서면 빼곡한 기와지붕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겨울에는 기와 위에 소복이 함박눈이 쌓여가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어디 그뿐이랴. 봄에는 사방에 날리는 꽃잎들, 여름에는 기와들의 골을 따라 흐르는 장맛비 소리, 가을에는 기와 곳곳에 떨어진 단풍들. 그야말로 사시사철 절경이 펼쳐진다. 안삼열은 “작업을 이어가기 힘들 정도로 창밖 풍경에 취할 때가 많다”는 푸념을 털어놓기도 한다.

    작업실 내부는 수평과 수직 공간 모두 넓은 구조다. 특히 지하 1층부터 2층까지를 전부 개방시킨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즉, 지하 1층에서 1층과 2층을 올려다볼 수 있고, 2층에서는 1층과 지하 1층을 내려다볼 수 있다. 지하 1층은 사람 키의 두 배 높이 되는 책장들이 들어선 서재다.

    1층은 안삼열의 작업 공간, 그리고 함께 건물을 사용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정진열과 그의 디자인 스튜디오 ‘텍스트’ 소속 디자이너들의 사무실이다. 아, 사무실이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따로 실(室)로서 나눠질 만한 구획도 없거니와 이들의 책상은 파티션도 없이 전면 개방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양말 신은 발로 방바닥을 밟으며 일할 수 있으니, 여러 모로 사무실보다는 펜션이나 자택 같은 분위기다.

    회의실로 이용되는 2층에서는 베란다 창을 통해 한옥마을이 훤히 내다보인다. 목재 롱테이블 한 귀퉁이에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담요 위에 웅크리고 있다. 과연 이런 운치 있는 공간에서 회의를 한다면 어떤 아이디어들이 나오게 될까. 1층이 사무실처럼 보이지 않았듯이, 2층 역시 회의실이라기보다는 고아한 찻집이 더 어울린다. 외부인의 이 같은 감상에 집주인도 동조한다.

    “여기에 와 있으면 잡생각이 다 사라져요. 그게 문제죠. 잡생각이 남아 있어야 일을 하는데.(웃음) 이 작업실의 가장 좋은 점은 사계절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거예요. 자연이 움직이는 속도와 제 자신을 맞출 수가 있죠. 그러다 보면 사고가 유연해지고, 작업할 때 필요한 영감이 떠오르기도 하거든요. 낮 시간에 혼자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도 들고. 그러다가 계속 작업 때를 놓치고, 야근을 하게 되는 거죠.(웃음)”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 안삼열은 자신의 작업 공간 한곳에 오디오 장비도 마련해놓았다. 앰프 모델은 익스포져 2010S INT(Exposure 2010S Integrated Amplifier), 스피커 브랜드는 바우어스 & 윌킨스(Bowers & Wilins), CDP 브랜드는 데논(Denon)이다. 그는 뉴에이지 계열과 록 음악을 즐겨 듣는다. 라빈(Ravin)이라는 인도 출신 뮤지션의 앨범 한 장을 재생해 청음 기회를 제공해준 안삼열은 “볼륨을 높여야 음질이 더 확실한데, 지금은 직원들이 일하고 있으니 작게 틀었다”면서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낮은 담벼락의 한옥들 틈에서는 고작 이층 양옥마저 고층이다. 주위를 둘러봐도 더 높은 건물은 없다. 자기보다 높은 게 없다는 건, 시야가 막히지 않았다는 뜻이다. 매일 낮은 기와지붕들을 바라보며 휴식한다는 안삼열의 눈 역시 그러할 것이다. 북촌 한옥마을의 양옥 작업실에는, 이층의 높이를 멋스럽게 즐길 줄 아는 디자이너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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