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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삼열이 들려주는 ‘안삼열체’ 이야기

    “시작부터 끝까지 ‘내 것’인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서체 개발의 매력은 오롯이 ‘혼자’ 작업한다는 점 같아요.”


    인터뷰. 임재훈 / 사진. 이희진

    발행일. 2012년 01월 26일

    안삼열이 들려주는 ‘안삼열체’ 이야기

    그래픽 디자이너 안삼열은 늘 글자의 의미보다 모양에 집착해왔다. 그의 말에 따르면, 글자들을 콘텍스트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것들의 디자인을 따지려 하는 직업병을 앓고 있는 탓이다. 타입(type)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인 그에게, CF·책·리플릿·간판 등에 쓰이는 문자와 기호들은 때로는 흉물스럽고, 또 때로는 미려한 피사체로 보일 것이다.
    
    이런 피사체들을 대할 때, 그래픽 디자이너의 눈은 자동적으로 조리개가 열리고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자에 집착하던 안삼열이 직접 서체를 만들게 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지난해 12월 26일에 자신의 첫 번째 서체인 안삼열체를 내놓았다. 산돌커뮤니케이션(산돌)을 통해 출시된 안삼열체는 가로획과 세로획의 대비가 강한 제목용 서체다.
    
    올해 1월 3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북카페 땡스북스에서는 안삼열체 출시를 기념한 〈타이틀 매치展〉도 열렸다. 안삼열을 비롯해 민병걸, 이기섭, 이경수, 정진열 등 그래픽 디자이너 5인이 안삼열체로 제작한 작품들을 소개하는 전시였다. 예보에도 없던 눈발이 날린 전시회 마지막 날, 안삼열과 함께 전시장을 둘러보며 차 한 잔을 마셨다.

    그동안 주로 편집 디자인 쪽 일을 해왔는데, 처음 작업해본 서체 개발은 어땠나요?

    서체 디자인에 대한 이론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개발하는 거랑은 또 다른 차원이니까 공부를 많이 했어요. 맨바닥부터 완전히 다시 시작했죠. 산돌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이호 실장한테서 폰트 랩(font lab) 프로그램 사용법을 익혔죠. 제가 대학 시절에(안삼열은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90학번이다) 배웠던 서체 개발 툴은 폰토그라퍼(fontographer)였는데, 요즘에는 거의 안 쓰이고 폰트 랩이 많이 사용된다고 하더라고요. 폰트 랩의 로직이 기본적으로 폰토그라퍼와 유사하고, 인터페이스도 일러스트레이터랑 비슷해서 금방 익숙해질 수 있었어요. 진짜 어려운 건 본격적인 개발 작업이었죠.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나요?

    굉장히 많이.(웃음) 예를 들어 ‘가’ 열부터 ‘하’ 열까지 작업을 하는데, ‘라’ 열에서 실수를 발견하면 ‘가’ 열부터 다시 시작하는 식이었죠.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니까 나중에는 너무 힘들어서 서체 개발 자체를 포기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본문용이 아닌 제목용 서체를 개발한 이유가 궁금하네요

    일단, 처음부터 본문용 서체를 만들기에는 제 내공이 부족했어요. 기왕 만들 거면 기존의 sm명조, 나눔명조, 윤명조 같은 서체들을 능가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제가 더 내공을 쌓아야죠. 그리고, 예전부터 한글에도 이탈리아의 보도니(bodoni)처럼 크기를 확대해도 세련미가 유지되는 제목용 글꼴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안삼열체의 가로획과 세로획 대비를 강하게 준 것도 보도니를 참고한 것이죠.

    〈타이틀 매치展〉에 전시된 작품들을 살펴보니, 대개 열다섯 자 내외의 낱말들을 조합한 문장들이 많던데요. 글줄 길이도 최대 세 자를 넘지 않더군요. 제목용 서체로서의 미(美)를 강조한 것인가요?

    그렇죠. 안삼열체는 본문용 글꼴이 아니기 때문에 글줄이 길거나 많으면 가독성이 떨어지고, 모양도 별로일 수밖에 없거든요. ‘단어 양이 어느 정도이면 가장 예쁘게 보일까’ 고민하면서 글자들을 나열해봤더니 글줄은 여섯 줄 정도, 글줄당 자수는 세 자, 총 자수는 열다섯 자 내외가 딱 보기에 좋았죠. 그런데 또 세 글자라도 조형미가 썩 마음에 안 드는 단어들도 있었어요. 그럴 경우에는 솜/이불, 생/갈치 등처럼 억지로 문단을 나누기도 했죠.

    작품에 적힌 문구들은 일본의 17자시 하이쿠(俳句) 같기도 하네요. 직접 창작한 건가요?

    네. 안삼열체로 표현하기에 시각적으로 적합한 단어들을 우선 골라 놓은 뒤에 문장을 만들었어요. 원래는 기성 시구들을 인용하려고 했는데, 그게 또 잘 안 되더라고요. 편집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보면 분명히 조형미가 좋지 않은 단어들이 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제 마음대로 시의 단어들을 바꾸면 안 되니까, 그냥 제가 문구를 만들기로 한 거죠. 또 편집 디자이너의 생리라는 것이 사진은 포토그래퍼에게 받고, 글은 작가에게 받아서 디자인 재료로 버무리는 거잖아요. 저는 시작부터 끝까지 ‘내 것’인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서체 개발의 제일 큰 매력은 오롯이 저 혼자만의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 같아요.

    편집 디자인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순수 미술을 하고 싶었어요. 제가 색약이 있는데, 그때만 해도 대부분의 미술대학들은 색약을 결격사유로 정해놓고 있었거든요. 유일하게 입학을 허용해주던 미대가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였어요. 입학한 뒤에 안상수 선생님의 편집 디자인 수업을 듣게 되었죠. 그러다가 졸업 즈음에 안그라픽스의 인턴 편집 디자이너가 되었어요. 당시 안그라픽스에서 대리 직함으로 근무하던 민병걸 형의 추천이었죠. 실제 현장에서 편집 디자인을 해보니까 재미있더라고요. 적성에 잘 맞았던 거죠. 졸업 후에 곧바로 안그라픽스를 첫 직장으로 삼아 6년간 일했어요.

    잡지사에도 근무했었죠?

    안그라픽스에서 경험을 쌓은 뒤에 잡지사 편집 디자인 일을 시작했어요. 지금 <에스콰이어>, <바자> 등 패션잡지들을 발행하고 있는 가야미디어가 오래전에 <지오(GEO)>라는 다큐멘터리 사진잡지를 낸 적이 있어요. 2005년 2월호인 144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되었죠. 저는 폐간되기 전 1년 동안 <지오>에서 일했어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보는 눈’을 밝힐 수 있었죠. 보통 20~24페이지인 기사 한 꼭지당 사진이 300컷 정도 들어와요. 그중에서 15컷만 선별해서 디자인을 하는데, 그 일이 정말 행복했어요. 세계적인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매일 수백 장씩 볼 수 있다는 게 큰 복이었죠. 300컷 전부를 갖고 책 한 권을 내도 될 만큼 수준이 높았어요. 덕분에 디자이너로서 시각적인 감각도 기를 수 있었죠.

    디자이너 동인 ‘진달래’에서도 활동하신 걸로 압니다

    예전에요. 지금은 아니고요. ‘진달래’ 결성 멤버인 김두섭 형이 “한번 해볼래?” 하고 권유해서 그냥 시작하게 된 거예요.(웃음)

    2005년 발행된 『진달래 도큐먼트 01 – 시나리오』를 보니까 “디자인은 자본가의 장난감에 불과하고, 자본이 바라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디자이너는 홀로 서기 힘든 게 현실이다”는 글을 썼더군요.

    음, 그 글을 쓸 때에는 생각이 많이 미숙했던 것 같아요. 뭐랄까, 지금은 균형을 찾으려고 애쓰죠. 그래픽 디자이너라면 다들 한 번쯤 클라이언트잡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을 거예요. 정말 자유롭게 나만의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죠. 그런데 또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위해서는 클라이언트잡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디자이너로서의 창작 열망과 생활 유지라는 두 가지의 균형을 잘 맞춰야겠죠.

    대학에서 강의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안 해요. 오래전에 한 학기 동안 디자인 수업을 했는데, 제 자신이 아직 누군가를 가르칠 만한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어느 날 강의실에 들어갔는데 학생들이 정원 20여 명 중에 6명만 와 있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다른 교수님의 공모전 지도 수업에 참석했더라고요. 저한테 사전 통보를 안 해준 예의 문제는 둘째 치고서라도, 무척 실망스러웠어요. 공모전에 참여해 수상 경력과 포트폴리오를 채우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죠. 하지만 학생 시절에는 일단 기본기부터 탄탄히 다져야 하는데, 결강까지 해가면서 공모전에 집착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더구나 지도교수가 학생 옆에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면서 공모전 출품작을 완성시키는데, 그게 과연 온전히 학생의 작품일까요? 이미 지도교수의 생각과 판단이 개입된 거잖아요. 공모전 중심의 디자인 교육이 빨리 바뀌어야 좋은 디자이너들이 양성될 수 있다고 봐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안삼열체를 만들고 난 뒤에 서체개발에 완전히 매료됐어요. 매년 새로운 서체를 제작할 계획을 갖고 있어요. 두 번째, 세 번째 안삼열체가 나왔으면 좋겠는데 잘 실현될지는 모르겠네요. 훗날 내공이 쌓이면 본문용 서체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궁극적인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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