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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디자이너 조현열

    “디자이너가 작가 성향을 갖는 건 좋은 자세예요. 다만, 현실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지가 문제죠.”


    인터뷰. 인현진

    발행일. 2013년 06월 20일

    그래픽 디자이너 조현열

    토독토독,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이었다. 작업실 창문 너머로 자전거가 비를 맞고 있었다. 빗방울 소리까지 다 헤아릴 것만 같은 섬세한 눈빛을 지닌 그는 말을 시작하다 말고 커피 한 잔 드실래요? 라며 작업실을 나갔다 왔다. 이웃이 하는 커피집에서 사온 커피는 향이 진하고 맛있었다. 비 오는 날, 진한 커피, 공간에 스며드는 빗소리. 이런 일상의 분위기가 그의 작업 속에서 어떻게 번져 나올까, 궁금증이 일었다.

    디자인을 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누나가 조각을 전공했어요. 누나 학교에 가서 작업하는 모습을 봤는데 그 순간 너무 감동을 받았어요. 나도 저런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은 조소과를 가야겠다고 결심했는데 부모님께서 반대하셨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이과 전공으로 대학엘 갔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더라고요. 한 학기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재수를 했어요. 그때 처음 미술학원에 다닌 거죠. 순수미술을 하고 싶었는데 학원 선생님께서 말리시더라고요. 밥 굶는다고(웃음). 그렇게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건데 좋았어요. 미적분학은 어려웠고 지루했거든요.

    다방면으로 작업하고 계시는데 어떤 게 제일 재미있으세요?

    대부분 디자이너가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자유롭고 실험의 여지가 열려있는 작업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현업에서는 여러 제약이 있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다 보니까 제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 용기가 필요할 때도 있고요. 수용이 어려울 땐 타협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겪죠.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자신의 창작 욕구 사이의 균형 잡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맞아요. 작업에 대한 개인적인 스타일에 대한 집착과 욕구가 강하다 보니 현업에서 부딪치는 점이 생기더라고요. 요즘은 ‘균형’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다 보면 항상 갈등이 생기죠.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전에 편집 디자이너를 다룬 재미있는 일러스트레이션을 하나 봤는데, 초보 디자이너가 처음으로 자기가 디자인을 한 결과물이 나와서 부모님께 보여 드렸더니 이렇게 물으셨대요. 네가 그림 그렸니? 아니요. 네가 내용을 썼니? 아니요. 네가 사진 찍었니? 아니요. 넌 도대체 뭘 했니?(웃음). 디자이너가 드러나는 게 쉽지 않지요. 하지만 작업이 쌓이고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그 진가가 나타난다고 생각해요.

    ▶ [좌] <계간그래픽 25호>, 인쇄특집  [우] <계간그래픽 23호>, 영감의 오브젝트 
    ▶ <계간그래픽 21호>, 아카이브 월간<디자인> 1976-2011 (클릭)
    ▶ <계간그래픽 21호>, 아카이브 월간<디자인> 1976-2011 (클릭)
    어느 에디터가 이런 말을 했다. 학생 때 동경의 대상으로만 보던 디자이너를 일하면서 직접 만나게 되는 게 커다란 즐거움 중의 하나라고. 본인은 묵묵히 자기 일을 할 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모르는 사이 동경의 대상이 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듯 밝음이 강하면 그림자도 깊을 터. 예일대를 졸업하고 뉴욕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이미지, 언어 그리고 그래픽 형태의 관계를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관찰하고 재해석한 작품을 내놓으며 주목받았지만,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자리를 잡는 일은 그런 그에게도 녹록한 일만은 아니었다.

    블로그에 진짜 링크가 많이 되어 있는 디자이너신데 인지도를 실감하시나요?

    모르겠어요. 왜 저를…?(웃음) 작업한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데 자꾸 뭔가를 기대하시는 분들이 많으니 그게 스트레스였던 적은 있어요. 협업에 몰두하다 보니 개인 작업을 할 여력이 없더군요. 자연스럽게 뒷전이 되어 버렸죠. 늘 갈증을 느끼곤 하지만 현실 상황 탓만 하고 있어요. 어찌 보면 변명이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은 어떻게 가르치세요?

    귀국하고 처음엔 대학원생 수업에 해당하는 것을 학부생한테 가르쳤어요. 아무 감이 없었던 거죠(웃음). 강의 평가를 보면 알 수 있어요. 몇몇 학생들은 이렇게 적어놓았더군요. “디자인 수업이라기보다 순수미술 수업 같다.” 제가 봐도 열의만 높은 초짜였죠. 3년쯤 지나니까 길을 좀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처음엔 매체도 다 필요 없어. 너희의 크리에이티브를 발산해봐, 이러면 다 자기 길을 알아서 찾아갈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웃음). 주제만 던져주고 책이든 영상이든 퍼포먼스든 다 열어두었는데, 지금은 인쇄 매체로 한정하는 편이에요.

    상업적 비즈니스를 하는 디자이너보다는 작가적 성향이 강하다고 느끼진 않으세요?

    그 부분이 가장 고민이에요. 고민이긴 한데 디자이너가 작가적 성향이 있는 건 좋은 자세인 것 같아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유지하는 게 과연 가능한가, 하는 게 문제죠. 제가 초청 특강에 가서 작업 설명을 하고 듣는 질문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당신은 어떻게 먹고살 것이냐?”였어요. 사실 이 질문은 여러 번 받았습니다. 좀 민감한 사안이긴한데, 가장 디자이너에게 이상적인 것은 작가적 성향을 드러낼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나는 것이지요. 하지만 클라이언트 일에서 그것을 표출하기가 쉽지 않죠. 클라이언트가 수용의 태도를 보이게 만드는 디자이너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그 반대가 많아요. 디자이너가 수용하게 되죠. 아무래도 ‘갑’과 ‘을’의 사이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그렇고요. ‘주체적 자아’를 발견하게 도와줄 것인지, 아니면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해서 디자인 서비스업 수행에 도움이 되는 교육을 따라야 할지. 이 둘의 균형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매번 현장 일선에서 느끼는 자기 실존의 문제일 것 같아요

    고뇌가 많지요. 언론에서 보이는 몇몇 디자이너의 모습은 현실 세계와 다르게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도 스타성에 대한 기질이 있어서 아우라를 분명히 만들어내고자 하거든요. 그 아우라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것은 디자이너 태도가 만들어낸 결과물일 수도 있으니까요. 언론에서 비치지 않은 현실 속 디자이너의 모습이 궁금할 때가 많습니다.

    ▶ <임시 물류창고>, 사진 작가 주황의 작품집 
    ▶ [좌] ‘우민아트센터’ 소개지  [우] ‘새로운 발흥지’, 전시 도록
    ▶ [좌] ‘후인마이의 편지’, 전시 초대장  [우] ‘두리안파이 공장(durian pie factory)’, 전시 초대장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늘 진지한 고민을 한다. 그 어떤 디자인 요소라도 '이것은 꼭 필요한 것인가?'라고 묻는다. 그래서일까. 간결한 몇 가지 요소만으로 완결성을 이루는 그의 작업은 화려하지 않아서 오히려 좋다. 나 좀 봐달라고 아우성치지 않고 저 있을 자리에 그냥 그렇게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편안하게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든다. 말수가 적어 침묵할 때가 많아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처럼, 조용조용 마음을 다독이는 빗방울처럼. 

    간결한 레이아웃을 즐겨 만드시는 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디자인 요소를 넣게 될 때 그것이 왜 필요한지를 묻게 돼요. 이게 왜 있어야 하지? 해답을 찾지 못하면 걷어내고, 또 걷어내고 꼭 필요한 요소만 들어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생각을 너무 오래 하다 보니 표현에 대한 두려움도 생기는 것 같고요. 그러다 보니 주변에선 건조하다는 피드백도 주시고 하네요. 기존의 요소만으로도 충분히 변화를 주고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있긴 해요. 특별하게 장식하는 것 없이 밀고 나가는데 혼날 때도 많아요(웃음).

    수작업도 많이 하시는 편이죠?

    많이 하고 싶어요. 하지만 통 시간이 없다는 핑계만 대네요. 수작업에 대한 애착은 물성에 대한 집착에서 오는 것 같아요. 인쇄물, 특히 책을 넘겨 보게 되면 책의 무게, 종이의 질감, 제본, 그리고 책의 향기가 좋더라고요. 특유의 향이 있어요. 종이에 따른 인쇄 효과를 확인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에요. 손으로 만지고 느껴지는 것에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네요.

    지금까지 하셨던 작업 중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작업이 있다면요?

    항상 아쉬움이 남아요. 늘 만족이 안 되어서 부끄러워요. 자기 작업을 드러내고 자랑도 하면 좋겠는데 결과가 나오면 남의 눈에 띄지 않더라도 제 눈엔 부족한 면부터 보이거든요. 우선 인쇄만 봐도 페이지의 색감이 고르지 않은 결과물도 많고, 먹 농도가 너무 강하거나 약하게 나온 적도 많아요. 종이 선택을 잘못해서 페이지가 잘 안 넘어가거나 뒷묻음이 발생한 일도 흔하죠. ‘완벽’한 책을 만들고 싶은데 늘 실수만 보이네요. 베테랑 디자이너들이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한 실수를 예방하기 위해 수많은 시안을 만들어 보는 거죠. 괜히 밤을 새우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집착 혹은 열정이라고 해도 좋지만 이렇게 살다가 피폐해지기도 하죠(웃음).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시간이 참 빠르네요. 올해 상반기는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아요. 하반기에는 제 마음의 불을 태워볼까 하는데, 지금은 싸워야 할 전선이 너무 많거든요(웃음). 마음의 정리를 하면서 올해는 숨통을 틔우는 시간을 가져볼까 해요. 작업도 앞으로는 좀 다른 방법으로 해볼까 하는데 크게 변할 것 같진 않고요(웃음). A와 다른 B를 만들었다고 생각해도 A-1이 돼버리니까(웃음). 제 작업에 좀더 집착을 하고 싶어요. 그 집착이 완성도 이든 물성이든…. 생산물에 대한 집착을 하는 순간 자기 색깔이 생기고 장인정신이라고 불리는 것이 탄생하는 것 같거든요.

    ▶ ’50:50:50′, 100일 프로젝트 
    ▶ ‘차이와 반복’ 시리즈, <우물우물 9호>를 위한 그래픽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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