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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애프터뷰 #17 일상의실천

    일상의실천 권준호·김경철·김어진 interVIEW in 2013 / afterVIEW in 2021


    인터뷰. 임재훈

    발행일. 2021년 01월 29일

    인터뷰/애프터뷰 #17 일상의실천

    interVIEW / afterVIEW
    
    인터뷰(interview)는 말 그대로 서로(inter) 보는(view) 일이다. 서로 보는 일이나, inter-see가 아니라 inter-view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인터뷰는 책, 기사, 영상 등 ‘인터뷰 콘텐츠’를 전제로 한 서로―보기다. 인터뷰 자체를 콘텐츠 제작 과정의 일부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콘텐츠에는 기획 의도가 있으므로, 콘텐츠를 위한 만남과 대화는 어느 정도 기획적·의도적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인터뷰 또한 그렇다. 인터뷰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기보다, 관점과 관점의 상호작용이다. 즉, view와 interaction의 결합이다.
    
    『타이포그래피 서울』은 2011년 창간 이후 국내외 디자인계 인물 약 300명을 인터뷰했다. 타입디자이너, 그래픽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설치미술가, 대학교 디자인학과 교수, ···. 어느 날 문득, 그들의 인터뷰 이후가 궁금해졌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view를 재확인해보고 싶었다. 지금쯤 그들은 어떤 위치와 어떤 view를 지닌 채 살아가고 있을지. 지금의 view에 새로운 interaction이 더해지면 어떤 interview가 가능할 수 있을지. 그들과 다시 서로―보기를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다. 연재 코너 [인터뷰/애프터뷰]를 마련한 까닭은. 특별한 기획의도는 없다. 다만, 그들을 다시 보고 싶었다는 것 외에는.

    interVIEW in 2013

    2013년 4월 ‘일상의실천’이라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가 문을 열었고, 이 소식을 들은 「타이포그래피 서울」은 5월에 스튜디오 운영진을 만나러 갔다. 당시 인터뷰(1부, 2부)의 주요한 키워드는 ‘청춘’이었다. 일상의실천 권준호·김경철·김어진은 이제 막 스튜디오를 시작한 청춘 디자이너로서, 비영리 단체와의 협업, 사회 이슈를 함의한 작업을 지속하는 이유 등 자신들이 추구하는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했다. 경제적 걱정 같은 긴한 생활담을 터놓기도 했다.

    일상의실천의 일상론과 실천론을 8년 전 인터뷰 답변인 “거짓말이 아닌 작업을 해보자”라는 제하에 놓아본다면, 일상의실천만의 문법(문학 용어로 치면 ‘문체’ 혹은 ‘style’)은 ‘거짓말이 아닌 대상과 마주하기’ 단계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 가정법에 따르면 일상의실천은 ‘거짓말이 아닌 대상을 디자인하는 스튜디오’가 된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거짓말이 아닌 대상과 마주하도록, 그래서 그들 각자가 저마다의 스타일로 일상-실천(everyday-practice)을, 세계-운동(world-movement)을 이룰 수 있도록 안내하기.

    afterVIEW in 2021

    2017년 김어진이 권준호·김경철을 인터뷰한 어떤 글에 “한국 사회에서 좁고 납작하게 다뤄졌던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그로부터 디자이너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는”(「경계에서 발언하는, 일상의 실천」, 지콜론북, 2017)이라는 소개문이 등장한다. 이 문장의 “함께 고민하는” 주체는 일상의실천만이 아닐 것이다. 이 스튜디오에 영향을 받은 학생들, 현업 디자이너들이 분명 있을 것이므로.

    그래서 위 2013년에 대한 기술은 일상의실천을 아는/애호하는 이들에게 딱히 새삼스러울 것 없는 내용일 듯하다. 8년 전만 해도 저러한 태도를 지닌 스튜디오의 출현이 흥미로웠겠으나 어느덧 시간이 흘렀다. 일상의실천이 저러하다는 건, 하이데거 식으로 거기-있음(다자인, dasein)의 세계만큼이나 확고하고 자연한 상태가 됐다. 그만큼 일상의실천은 독자적인 디자인계-내-존재(in-der-design-sein)로 자리를 잡은 셈이다.

    하여, 이번 인터뷰는 얼마간 세속적(?) 세계관을 유지하려 했다.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 같은 대승적·철학적 주제도 물론 좋지만(이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긴 했다), 그보다는 권준호·김경철·김어진 개인의 일상과 실천이 좀더 궁금했다. 그 결과,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 보컬 학원까지 다녔다는 (세 사람 중 누군가의) 실천적 일상을 알게 된 것이다.

    일상의실천 제작 2021년 달력 ‘일상의역사’, 2020

    2013년 인터뷰 이후 무려 약 8년 만입니다. 이 정도 시간차를 전제로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하고 묻는 건 그야말로 ‘디테일 퉁치기(!)’인 것 같아서(웃음), 지난해 연말 인스타그램에 올리신 글귀 한 토막을 인용하려고 합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우리의 일상은 늘 두려움과 인내, 절망과 의심의 연속이었습니다”라고 쓰셨던데요. 두렵고 인내하고 뭔가에 절망하고 뭔가를 의심하는 상황이라 함은, 혹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것이었을까 하고 추측해봤더랬습니다. 그런데 또 곰곰 생각해보면, 일상의실천이 두려움·인내·절망·의심 같은 단어를 언급할 때는 왠지 그럴 만한 사회적(사회 과학적) 배경이 있을 것도 같아요. 지난 한 해를 다소 어두운 키워드들로 정리했던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예상하신 대로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꽤 전염성 높은 질병 정도로 인식했고, 건강을 조심하자는 경각심 수준에 머물렀던 것 같은데요.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준비 단계에서 중단되거나 연기된 사례가 있기는 했습니다. 코로나19 영향 탓이라기보다는, 저희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실무 차원의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전혀 다른 변화들을 목격하게 됐어요. 뭐랄까요, 사람들의 내면에 억눌려 있던 정서가 한꺼번에 표출되는 풍경 같은. 그런 정서로부터 작동한 이기심, 불신, 폭력성이 퍽 광범위하고 동시다발적이었습니다. ‘우리 세 사람도 그와 같은 정서의 변이로부터 과연 자유로웠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래서 지난 한 해의 가장 큰 아쉬움을 꼽아본다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많은 이들이 내적 여유를 잃고, 소중한 관계를 훼손당했다는 점일 겁니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전 〈MaytoDay〉 포스터 디자인, 2020
    한글 제호 레터링: 김정진, 장수영(양장점)
    후지필름이 운영하는 창작 공간 ‘파티클(Particle)’을 위한 그래픽 디자인, 2020

    몇 년 전 어떤 철학자의 강연을 듣다가 고개를 갸웃했던 적이 있습니다. 기업 노조나 시민단체 등이 시위의 형태로 메시지를 발산하려 할 때 ‘스타일’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라고 그 철학자는 얘기하더군요. 실제로 ‘스타일’이라는 단어를 썼는진 기억이 희미하지만, 요지는 이런 거였습니다. 누가 봐도 근사한 옷차림으로 거리에 나와줬으면 좋겠다는.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모습 말고, 누구의 눈에도 세련되고 멋지게 보일 이미지로.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상당히 불편했어요. 생활을 걸고 투쟁하는 이들을 두고 ‘스타일링’을 이야기하다니···. 그런데 지금은 어느 정도 공감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디자인 매체에서 일을 해 온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적 메시지를 그래픽 디자인으로 발화한 사례들, 이를테면 일상의실천의 작업 같은 사례들을 보면서 시나브로 변했던 것 같아요. 어떤 대상 또는 테제, 메시지의 발화 주체를 ‘쳐다보게 만드는 힘’이랄까요? 그런 게 그래픽 디자인에는 있다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제 경우는 일상의실천이라는 스튜디오에 관심을 가진 결과로, 여성사회공동체 ‘여기공’이라든지 노동자를 위한 시사 잡지 『워커스』의 존재를 알게 됐거든요. 그래서 상당히 원론적인 질문을 하나 드려보고 싶습니다. 그래픽 디자인을 운용하는 스튜디오로서, 일상의실천이 고수하는 작업관이나 태도는 무엇인가요?

    일상의실천을 시작하기 전까지 저희 셋은 각자 다른 경험을 거쳐 왔었습니다. 어떤 경험들은 현재 일상의실천의 방향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그 영향력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대학 시절의 한 경험을 끄집어내보고 싶습니다. 진보적인 학생 모임을 이끌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는 기존의 운동권 행사와는 다른 성격의 모임을 만들고자 했고, 저희에게 자신이 주최하는 행사의 디자인을 부탁했죠.

    저희는 당시 유행하던 디자인 스타일을 가져와서 마치 미술관의 전시 홍보 느낌을 담아 포스터를 제작했습니다. 정말 많은 학생들이 그 행사에 참여했어요. 친구는 매우 들뜬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포스터만 보고 참여한 학생들이, 막상 행사가 시작되자 당혹스러워 하더군요. 포스터의 ‘느낌’과는 전혀 상반된, 이를테면 한복 입은 출연자들이 민중가요에 맞춰 전통춤을 추는 모습에 벙쪘던 것 같아요. 하나둘 자리를 뜨던 학생들의 얼굴―마치 사기당했다는 표정―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요.

    이 얘기의 주제는 이런 겁니다. 저희가 만든 그 포스터는 시각적으론 근사한 스타일을 가졌을진 몰라도, 포스터가 알리고자 하는 콘텐츠를 왜곡해 전달한 셈이에요. 행사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초래했습니다. 내용과 형식의 불일치가 만들어낸 씁슬한 결과물이죠.

    여성 기술자 양성 및 기술문화 콘텐츠 제작 시민단체 ‘여기공 협동조합’ 홍보 포스터 디자인, 2020

    시간이 흘러 스튜디오를 시작하면서, 저희는 ‘표현으로서의 디자인’과 ‘(내용을 왜곡 없이 전달하는) 매개로서의 디자인’ 사이의 균형감을 정말로 많이 고민했어요. 숱한 시행착오야 말할 것도 없죠. 이 둘의 균형은 디자이너 스스로의 자아관과도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예를 들어 크리에이터 의식이 과한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의 요청 사항을 뒤세운 채 자신이 추구하는 표현 방식에 과업을 끼워 맞춥니다. 그런가 하면 용역 의식이 너무 투철한 나머지 어느 순간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디자이너도 있고요.

    크리에이터 의식과 용역 의식 사이의 균형 맞추기. 이 작업은 표현으로서의 디자인과 매개로서의 디자인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데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민’이라는 걸 안 할 수 없는 거죠. 내가 완수해야 할 디자인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어떤 대상을 향하고 있는지, 담고자 하는 내용에 어울리는 그릇은 무엇인지, ··· 등등에 대한 다면적인 고민으로부터 모든 디자인은 시작되어야 한다, 라는 것이 저희가 추구하는 작업관입니다.

    이러한 맥락, 즉 ‘균형감’이라는 측면에서 에디터님이 언급하신 철학자의 언표(‘스타일’)도 신중하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환경 단체와 꾸준히 협업을 하고 있는데요. (좀 과한 가정일 테지만) 그들이 지나치게 스타일을 의식해서 가죽옷을 입고 거리에서 피켓 시위를 한다면,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스타일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지겠죠. 이른바 ‘스타일’이라는 걸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 빚어진 사태인 셈입니다.

    가죽옷 대신 이런 건 어떨까요. 친환경 종이, 재활용 방식 제본, 가독성 좋은 서체와 편집 디자인으로써 완성된, 그야말로 ‘형식과 내용의 균형을 이룬’ 인쇄물 말입니다. 그들의 목소리에 스타일리시한 힘이 실릴 수도 있을 겁니다.

    예술가와 스타트업의 협업을 지원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 ‘제로원’ 아이덴티티 디자인 및 영상 제작, 2020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에이징 월드: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 참여작 ‘골든실버타운’, 2019
    〈타이포잔치: 제6회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출품작 ‘감정조명기구’, 2019

    “뭐랄까 ‘쟤들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할까’ 싶은 작업을 해보고 싶은 거예요. ‘청춘 디자이너’니까, 청춘이니까 해볼 수 있는 거잖아요.”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세 분을 이제 ‘청춘 디자이너’의 범주로 모시기엔 어느덧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웃음) 2021년 1월 현재 시점에서 일상의실천이 가장 해보고 싶은 작업, 또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작업이란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저런 말을 부끄럼 없이 한 걸 보니 그땐 정말 청춘이었나 봐요···.(웃음) 시간이 꽤 지났어도 ‘왜 저렇게까지 할까 싶은 작업’에 대한 열망은 여전해요. 다만, 작업을 담는 도구와 매체에 대한 관심은 2013년에 비해 좀더 넓어진 것 같습니다.

    일상의실천 초기 때 저희는 ‘어딘가 투박한, 조금은 거칠지만 날것 그대로의 생생함이 살아 있는 수작업’을 다른 작업자들과의 차별점으로 삼았었어요. 그래서였는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우리의 몸으로써 구현하는 작업을 주로 했습니다. ‘그런 배를 탔다는 이유로 죽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2014), ‘살려야 한다’(2015),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2016) 등이 그 결과물들입니다.

    이후 이어진 매체에 대한 관심의 확장은, 저희 셋 모두의 성향이 반영된 자연스러운 귀결 같습니다. 셋 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껏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내러티브’에 매료돼 있는데요. 그래서 평면적·단편적 이미지가 아닌 ‘서사성을 갖춘 이야기-디자인’ 형식을 늘 갈망해 왔었어요. 세 사람 공통의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프로젝트의 첫 단계, 포스터(키비주얼)에 해당 프로젝트의 내러티브를 심는 방식으로 구체화됐고, 여러 시퀀스를 통해 주제를 좀더 입체적으로 전달하는 모션 포스터 작업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런 변화는 앞서 이야기했던 ‘작업의 주제와 표현의 방식에 대한 고민’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고민을 거듭하던 중에 저희 나름의 방법을 발견했는데요. 물리적 제약이 없는 웹 환경에서, 저희가 구상하던 것들을 실현해볼 기회를 모색하게 된 거죠. 소규모 웹사이트 작업으로 시작했던 것이 최근에는 비교적 규모가 큰 웹사이트 작업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시도를 통해 ‘사용자가 어떻게 우리의 작업을 체험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질문과 답 사이엔 수많은 고민들이 놓이게 되잖아요.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아직은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하는 시민사회 단체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적합한 작업은 무엇인가, 물리적 작업과 디지털 기반 작업의 균형은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가, 이런 작업들을 대하는 우리는 주제와 표현의 균형을 잘 맞춰가고 있는가, ······. 저희는 지금 이런 고민들을 건너가고 있습니다.

    이상한 문장일지 모르겠는데, 고민들이 꾸준히 이어질수록 저희가 찾는 답에 점점 가까워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2021년도 아마 고민의 고민의 고민의 연속일 것 같아요.(웃음)

    DDP 디자인 아카이브 기획전 〈행복의 기호들〉 모션 포스터 디자인, 2020
    두산아트센터 주최 ‘두산인문극장 2020: Food’ 모션 포스터 디자인, 2020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 5주년 기념전 〈바이오필리아: 흙 한 줌의 우주〉 모션 포스터 디자인, 2020
    제18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모션 포스터 디자인, 2020

    “큰 단체랑 일하려고 제안서를 넣는데, 이 단체가 업체를 선정할 때 ‘매출 몇 억, 직원 몇십 명 이상’ 이렇게 제약을 걸어놓고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규모가 있는 회사면 더 잘 하지 않을까 하는 인식이 있는 겁니다. [···] 또 다른 부분이 있는데, 비영리단체에서 오히려 디자인을 재능기부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동에는 어느 정도 최소한의 임금이 지급되어야 하는 건데, 그렇지 못한 거죠.”
    8년 전 언급했던 위와 같은 상황이 지금은 어떨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당시 인터뷰에서 스튜디오 운영의 가장 어려운 점으로 ‘통장 잔고’를 꼽기도 하셨어요. “여러 루트를 통해서 수익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말과 함께요. 첫 인터뷰를 진행했던 2013년은 일상의실천이 결성된 해이기도 합니다. 이제 10년차를 바라보는 스튜디오가 된 셈인데요. 디자이너로서라기보다는 스튜디오 운영자로서, 초창기에 비해 지금은 어떤 면이 더 나아졌고 여전히 만만찮은 부분은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2013년만 해도 ‘청춘 디자이너’의 스튜디오였으니, 당연히 생계에 대한 막연함이 컸을 테지요. 지금은 그때에 비해 상당한 안정세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스튜디오에 새로운 구성원도 세 분 들어오셨고, 프로젝트 범위 또한 웹 디자인, 웹 개발, 영상 등 여러 매체에 걸쳐 확장되고 있어요.

    일상의실천이 이제 8년째가 돼 가는데요. 자본력의 성장보다는, 프로젝트 운영 경험의 성장이 더욱 명확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만큼 여러 클라이언트에 맞는 다양한 문법-결과물을 도출해야 하는 고단함도 수반되죠. 프로젝트마다 매번 성격이 달라서 그때그때 적합한 논리를 갖춰야 하거든요. 디자인 제안서의 구성 수준을 향상하기 위한 방법을 여전히 고민 중입니다. 이런, 또 고민이네요.(웃음)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 웹사이트 개발 및 디자인, 2021
    전통식품 브랜드 명인명촌 웹사이트 개발 및 디자인, 2020
    녹색연합 웹사이트 리뉴얼, 2020
    5·18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전 〈MaytoDay〉 웹사이트 개발 및 디자인, 2020

    뜬금없는 질문인데요. 세 분은 디자인 안 하실 때 무얼 하십니까. 2013년 인터뷰를 다시 읽어보니 “따로 일상에서 분리하지 않고 밥 먹다가도” 아이디어 이야기를 한다고 하셨길래 한 번 여쭤봅니다.(웃음)

    권준호
    “일상에서 분리하지 않고 밥 먹다가도”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는 건 여전해요. 아이디어 회의를 따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엉뚱한 상황에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신나서 얘기하고, 그런 얘기들을 구체화하는 일이 많아요. 코로나19가 극심하기 전에는 독서 모임이나 보컬 학원을 다녔습니다.

    독서에 관해 말씀드리자면 저는 한국 소설들을 주로 읽는데요. 집요하리만치 섬세한 언어 표현과, 그렇게 완성된 문장들 속에서 이미지를 그려보는 과정이 즐겁더라고요. 그리고, 저희 셋 다 대학 시절부터 노래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좀더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보려고 보컬 학원에 등록을 했었습니다. 저는 몸 쓰는 취미 생활로 일상의 활기를 얻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가만히 앉아 작업하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가 봅니다.

    김경철
    그나마 취미라 할 만한 게 식물 가꾸기입니다. 집에 하나둘 식물들을 들여놓다 보니 점점 들여야 할 시간이 많아지고 있네요. 언젠가부터 작업에 너무 치이다 보니까, 일상과 작업을 적절히 분리하는 게 오랜 기간 작업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식물 가꾸기 말고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다른 취미들도 찾아보는 중입니다.

    김어진
    디자인 안 할 때는 대개 주말일 텐데, 딱히 ‘무엇을 한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 정확하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하고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밀린 집안일을 하고, 함께 사는 고양이들에게 집중하면서 콘솔 게임을 하기도 합니다. 간혹 평일 저녁에 저희 세 명이 모일 때가 있는데, 이때 아이디어 이야기를 하는 건 (권준호 씨가 말했듯)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서울국제핸드메이드페어〉 2017·2018·2020 포스터 디자인
    〈서울국제핸드메이드페어〉 2019 포스터 디자인
    아르코미술관 전시 〈리얼―리얼시티〉 포스터, 2019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전시 〈두 번의 똑같은 밤은 없다〉 포스터, 2019

    2020년 12월 31일 송년사에선 ‘두려움’ ‘인내’ ‘절망’ ‘의심’이라는 네 가지 대표어들을 쓰셨습니다. 그렇다면 2021년은 어떤 낱말들의 해가 되기를 원하시나요?

    권준호
    작업실을 꾸려 오며 쉽지 않은 해가 없었지만, 2020년은 유난히 힘에 겨운 날이 많았어요.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듯합니다. 2021년은 ‘믿음’ ‘건강’ 그리고 ‘숙면’을 되찾는 해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김경철
    저는 ‘일상’을 꼽겠습니다. 스튜디오 이름에도 있는 단어라 매우 익숙하지만, 요즘따라 일상의 의미가 더욱더 소중하게 다가오네요. 하루 빨리 일상이 회복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어진
    ‘여유’를 찾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넓게는, 코로나19 사태로부터의 일상 회복을 통해 많은 이들의 정서에 다시금 여유가 찾아왔어면 좋겠습니다. 좁게는, 디자이너로서 작업에 매몰되지 않고 일상생활의 여유를 찾고 싶군요. 긴 호흡을 위해서라도 지나치게 일에 치여 생활하는 방식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더불어, 한 인간으로서 타인을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고의 여유’가 제 안에서 자라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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