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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 스튜디오 203’ 장성환의 작업실

    모듈화된 여백으로 채워진 공간, 장성환의 ‘203 디자인 스튜디오’


    글. 임재훈 / 사진. 이희진

    발행일. 2012년 04월 05일

    ‘디자인 스튜디오 203’ 장성환의 작업실

    디자이너 장성환은 어느 인터뷰에선가 “Less is more”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그는 “아직도 얻지 못 한 지혜”라고 덧붙였다. 그가 지금 이 지혜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more’보다 ‘less’에 집중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많은 것들을 덜어내려 하는 그만의 공간 활용이 그 증거다.

    공간(空間)을 활용(活用)한다는 건, 단어 그대로만 보자면, 비어 있는 틈을 잘 살려 사용하는 것이다. Use of space. 장성환이 서교동 홍대 앞에 꾸린 그래픽 편집 디자인 스튜디오 ‘디자인스튜디오203′(203)은 바로 그런 ‘활용된 공간들’을 찾는 재미가 쏠솔하다. 장성환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내 물건들은 내가 직접 디자인해 쓰고 싶다”고 말한다. 203 구석구석을 둘러보니, 이 말이 비단 사물에 한해서만은 아닌 듯하다. 많은 것들을 덜어낸 자리에 공간을 채운 모양새 때문이다.

    모듈화된 여백

    한 공간 안의 사물이 한 공간 안의 사물이 모듈화되어 있으면, 자연스레 그 여백 또한 모듈화에 따른 나머지 값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사물 + 여백 = 공간’이란 등식을 세울 수도 있지 않을까. 203엔 여백이 많다. 그 여백은 일종의 규격화되고 모듈화된 것인데, 이는 사물들로부터 기인한다.

    일례로 장성환이 직접 디자인했다는 책상과 책장들은 들쭉날쭉한 법이 없다. 나란하고, 가지런하다. 장성환 나름대로 정한 표준 규격(?)에 따라 형태가 통일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불필요한 공간 낭비를 없애기 위해 일반 OA가구의 표준 규격보다 작게 제작한 것도 있다. 특히 소속 디자이너들의 책상은 앞면 바(bar)를 떼어내고 온열판을 달았다. “뭔가가 필요할 때마다 같은 모듈을 적용하는 거예요. 모든 가구에 모듈이 적용되어 있어요. 책상들도 크기만 다를 뿐 같은 모듈이죠. 아무래도 디자이너다보니까 모듈이란 것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스튜디오 곳곳에 공간을 설명해주는 인포그램과 픽토그램, 해외 아티스트들의 에피그램이 있다

    이렇게 203의 여백은 단지 비어 있는 게 아니라 모듈화된 것이므로, 단지 감상용으로만 머무르지는 않는다. 이런 특징은 들보 위만 봐도 알 수 있다. 그곳에는 과월호 잡지들이 차곡히 정리되어 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잠깐의 수고로움이 ‘허공’이라는 널찍한 보관실을 만들어준 셈이다.

    들보 위에 정리된 과월호 잡지들

    직접 디자인한 책상과 책장

    여백은 장성환의 개인 작업실 겸 서재로 들어가면 ㄱ자 모양의 책상이 눈에 띈다. 이 책상은 끝과 끝이 가까운데, 장시간 작업에 용이하도록 장성환이 직접 디자인한 것이다. 세로로 긴 일자형 책상을 ㄱ자로 꺾어놓은 형태이다. 그 꺾인 지점에 사용자가 위치한다. 그저 팔을 좌우로 뻗는 것만으로도 많은 자료들을 신속히 집어 볼 수 있는 동선이 고려된 디자인이다. 장시간 집중해 작업을 하다보면,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간조차 아까울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럴 때, 이 ㄱ자 책상은 시간을 조금이나마 절약해주는 효자 노릇을 할 것이다. 일자였던 공간이 구부러지는 것. 그걸 디자인이라 말할 수 있지도 않을까. 또한, 공간을 구부릴 줄 아는 사람. 그를 디자이너라 칭할 수 있지 않을까.

    스튜디오 안에 위치한 장성환의 개인 작업실 / ㄱ자형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그
    장성환의 책상 / 이 캐리커처의 주인공은 누구?

    그런가 하면, 책장 역시 직접 디자인 한 것이다. 이동이 편리하도록 각각의 책장에 손잡이가 뚫려 있다. 책들이 그대로 꽂혀 있는 상태로 들어 옮길 수 있어 이사 같은 대이동(?) 시 유용하다. 책들의 배치에도 규칙이 있다. 작업할 때, 혹은 컬럼 집필 시 필요한 참고 서적들은 책상과 가까운 곳에 놓였다. “집에 있을 때에도, 자주 읽는 책들은 저랑 가까운 곳에 늘 놓아둬요. 화장실, 침대 머리맡 같은 곳에 한 권씩 두는 거죠. 내가 이동하는 곳에 항상 책이 있으면, 쉽게 손이 가고 읽게 되거든요. 일하다 보면 책 읽을 시간이 없으니까, 그렇게라도 틈틈이 독서를 하려고 하죠.”

    손잡이가 뚫려 있는 책장 / 냉난방기 표면에 ‘평범한 삶은 죄악이다’란 문구가 적혀 있다
    파이돈(PHAIDON) 출판사에서 나온 『Andy Warhol Giant Size』
    앤디 워홀의 작업실 팩토리(Factory), 그의 작업 과정,
        영화배우 리자 미넬리(Liza Minelli) 같은 셀러브리티들과 함께한 모습들이 담겨 있다

    뉴욕에서 날아온 소품들

    장성환은 뉴욕을 좋아한다. 그가 발행하는 홍대 앞 문화잡지 『스트리트 H』의 정지연 편집장과 함께 『뉴욕에서 홍대까지, 카페탐험가』라는 책도 냈을 정도. 그의 작업실에서도 뉴욕에 대한 애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뉴욕 현지에서 구해온 각종 아트 피규어들(포장도 안 뜯겨 있다!), 석 달이 걸려서야 겨우 받을 수 있었던 영국의 거장 디자이너 케네스 그레인지가 디자인한 데스크 라이트, 그 밖의 소소한 액세서리들. 게다가 뉴욕이 배경인 영화의 DVD까지 수집해 진열해놓았다.

    찬찬히 구경하고 있는데, 장성환이 “아, 잠깐, 이것 좀 보세요” 하며 뭔가를 꺼낸다. 그가 꺼내든 건, 뉴욕에서 1925년 2월 21일 창간된 지역잡지 『뉴요커(The New Yorker』다. “저보다 나이를 더 먹은 잡지예요. 뉴욕이라는 도시 역사를 그대로 반영한 거죠. 이런 빈티지는 단순한 ‘물건’ 이상의 의미를 가져요. 신제품에는 없는 ‘시간’이란 액세서리가 덤으로 붙어 있는 거랄까.”

    [왼쪽부터] 『뉴요커』 1949년 8월 13일자 커버, 1964년 5월 9일자 커버
    각종 피규어들
    장성환이 소장 중인 빈티지 LP들
    재즈 섹소포니스트 올리버 넬슨과 작곡가 스티브 앨런의 『Soulful Brass』(1968),
    재즈 뮤지션 지미 스미스와 웨스 몽고메리의 『The Dynamic Duo』(1966), 록밴드 롤링스톤즈의 『Sticky Fingers』(1971)

    그러고 보니, 장성환 역시 다달이 『스트리트 H』라는 지역잡지를 내고 있다. 『뉴요커』가 뉴욕을 담아내듯, 『스트리트 H』 역시 ‘홍대앞’이라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공간 안에, 장성환의 작업실이 빈티지 소품처럼 놓여 있는 거랄까.

    203의 식구인 어린 고양이 ‘나나’ / 출입문 하단에는 나나만을 위한 안내 픽토그램까지!
    [좌] 2009년 상상마당에서 열린 〈간판투성이展〉에 전시되었던 장성환의 작품 ‘뜻 같지 않은 일이 열에 여덟아홉이다’
    [우] 화장실로 들어가는 문(여성용과 남성용을 구분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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