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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디자이너 이용제

    “폰트 형태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선순환적 글자 생산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인터뷰. 인현진

    발행일. 2013년 03월 22일

    한글 디자이너 이용제

    2013. 2. 5.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한글 디자이너 이용제가 현재 작업 중인 바람.체는 2011년 예술의 전당에서 <타이포잔치-동아시아의 불꽃>에서 전시했던 글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폰트 이름을 '바람'으로 정한 이유는 자연에서 생명을 번지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소망을 뜻하는 '바람'의 의미도 있다. 현재 텀블벅(홈페이지)에서 바람.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그가 글자를 통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폰트 이름을 바람.체라고 이름 지은 이유가 있으신가요?

    바라는 게 있어서요(웃음). 폰트회사나 디자이너들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글자 디자인과는 좀 분리해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자연에 관심이 많아요. 넓게 보면 생명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자연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낱말이 바람이라고 생각해요. 바람이 없으면 생명이 유지되지 않죠. 바람을 타고 생명이 번지고요. 물, 흙, 바람, 나무, 땅, 풀, 이런 낱말들이 좋아요. 이름을 뭐로 할까 고민하다가 바람이라고 써놓고 보니까 바라다의 바람도 되더라고요.

    글자를 만들면서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본문용 글자를 만들면 공간에 대해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데 파고 들어가다 보면 반드시 만나는 게 최정호 체였어요. 어떤 지점에서도 그분을 만나게 되니, 내가 이걸 왜 하지?(웃음)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죠. 그래도 만들고는 싶으니 제 나름대로 다양한 시도를 했죠. 그 과정에서 균형과 비례에 대한 고민도 더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바람.체는 옛 글씨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셨는데 단순히 복고의 의미는 아닌 것 같아요.

    옛날 글자의 미감을 아직 잘 모르겠어요. 꽃길을 만들 때 어려웠던 점도 그거에요. 늘 가로쓰기만 보다가 세로쓰기를 하려니까 뭔가 이상한데 뭐가 이상한지도 모르겠고(웃음). 이젠 좀 익숙해졌어요. 옛 글씨들을 보면 그때 그 사람들이 어떤 정서와 미감을 갖고 있었는지 궁금해요. 서예하시는 분들과 꾸준히 교류를 나누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고요.

    바람.체가 담고 있는 미감과 정서는 어떤 건가요?

    너무 거창한 질문이라…(웃음). 예술이라는 건 고귀한 무언가만은 아닌 것 같아요. 어떤 예술이든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문제가 담겨 있으니까요. 정말 필요한데, 없으면 만들어 쓰는 거죠. 처음 글자를 왜 만들었을까요? 필요하니까 만들었겠죠. 필요에 따라 형태가 따라오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꽃길이나 바람.체도 실용화된 세로쓰기가 없으니 만들어보고 싶었던 거고요.

    ▶ 바람.체 판화 작품
    ▶ 바람.체로 만든 엽서
    세로쓰기인 꽃길과 바람.체는 닮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꽃길을 건너온 바람이 어떤 시간을 통과했는지 미세한 부분까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유추해보자면 글자를 만든 이의 정서가 어딘가에서 변화를 맞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이용제만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미감이 여실히 반영되어 있다는 것. 그의 손길을 거쳐 태어난 꽃길과 바람.체는 보기만 해도 아름답다. 그러나 활자로 쓰이면 훨씬 더 아름답다. 

    특별히 세로쓰기에 최적화된 글자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명조를 대신할 만한 글자를 만들 때 최정호 체를 염두에 두고 만든다면 답이 안 나오겠다 싶었어요. 고민 끝에 세로쓰기에 기본을 두고 궁서체와 펜글씨 바르게 쓰기를 본으로 놓고 만들어본 거죠. 가로쓰기를 할 땐 몰랐던 것들을 많이 배웠어요. 그 이후로 옛날 글씨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요. 시간 순서대로 짚어보기도 하고. 세종대왕은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웃음) 앞으로도 세로쓰기를 전제로 한 글자들을 더 만들어볼 생각이에요.

    세로쓰기만의 특징은 뭐라고 볼 수 있을까요?

    쓰임새로의 매력은 느림이려나(웃음). 예를 들면 시집 읽을 때 누가 빨리 읽는지 친구랑 내기하진 않잖아요. 교감과 공감이 더 중요하죠. 시집 읽으면서 가독성이 문제가 되진 않죠. 속도에 익숙해지다 보니 가독성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판단 기준이 가독성 하나뿐이라면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거창하게 말하면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와도 연관이 있다고 봐요. 디자인적인 면에선 공간 활용이 효과적이에요.

    과거의 맥을 잇는 일과도 연관이 되는 작업인 것 같아요.

    옛날 책의 판형이나 글쓰기 방식은 당연히 지금과 달랐어요. 그런 의미에서 세로쓰기는 과거와 지금을 잇는 작업이기도 하죠. 디자인이 공시성을 무시해선 안 되는 것처럼 문화는 통시성을 무시해선 안 되죠. 그리고 그 접점에 있는 게 글자에요. 그러니까 글자 디자이너는 현재도 알아야 하고 과거도 알아야 하는 거죠. 이렇게 고민은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엄청나게 뭘 잘하는 건 아니에요(웃음).

    바람체가 갖고 있는 통시성과 동시성은 어떤 건가요?

    디자인이 쓰임새를 기반으로 한다고 할 때 세로쓰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또 하나는 그 작업을 통해 내면적인 학습을 원했던 것도 있죠. 당장은 현재 교육 자료로 쓸 거고요. 현재 한국의 타이포그래피라는 실상이 있는데 거기에 세로쓰기가 좀 더 반영되는 게 시대에 맞는다고 생각해요. 디자인 분야에도 느림의 미학이 들어오면 좋겠어요. 이제 와서 ‘느림’ 이야기를 하면 너무 뒷북이려나?(웃음).

    ▶ [좌] 바람.체 스케치  [우] 샘플 글자
    ▶ 바람.체로 쓴 ‘꽃’
    그는 지속가능한 글자 만들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현재 크라우드 펀딩을 실험하고 있다. 책을 쓰든 공연을 올리든 그림을 그리든 공개적으로 사람들의 후원을 받고 후원자들에게 결과를 되돌리는 방식이다. 당장 돈이 없어도 십시일반으로 창조적 행위가 가능해진다. 창작자도 살고 수용자도 즐기는 선구조가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것이다. 움직이고 변화하고 생명을 길러 내는 바람처럼 그의 작업 또한 한글 디자이너들에게 신선한 바람이 되길 기원한다. 

    후원을 받아 폰트를 만든다는 건 발상 자체가 신선하네요.

    폰트 만드는데 후원받는 걸 이벤트 삼아 재미로 하는 건 아니에요. 폰트 형태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선순환적인 글자 생산 구조를 만들고 싶었어요. 기업이나 정부나 폰트 회사에 기대지 않고 어떻게 하면 자생적으로 글자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비롯됐죠. 디자이너 혼자 글자를 만드는 게 아니니까 기획에서 제작까지 숨은 노력이 있다는 것도 알리고 싶고요.

    바람.체를 만들면서 생긴 새로운 숙제가 있으신가요?

    많죠(웃음). 해봐야 할 것도, 해결해야 할 것도 많고요.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할 게 없진 않아요. 바람.체 때문에 생각한 건 아니지만 바람.체로는 문제를 구현해볼 수 있겠다 싶은 게 하나 있어요. 세로쓰기에 더 최적화된 글자를 만들고 싶다는 것. 이것 다음엔 새로운 꽃길이 나올 것 같아요. 지금 작업 중이에요.

    특별히 공을 들인 부분이 있다면요?

    처음에 뭘 만들어야겠다 생각하고 작업을 하지만 언제나 많은 변화를 겪어요. 구상 단계에선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점들이 실제 글자를 만지는 과정에서 나오기도 하니까요. 머리로 아는 것들이 체화되기까진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하고요. 이제 조금 뭘 알 것 같긴 한데 앞으로 갈 길이 또 있죠. 바람.체에 특별히 중요한 게 있다기보다 만드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싶었어요.

    바람.체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어떤 건가요?

    이용제가 글자를 만들어요, 이런 것보다는 글자 디자이너를 목표로 하고 있는 분들이 계속 작업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싶다는 게 제 꿈이에요. 나이를 떠나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 생긴다면 좋겠어요. 이런 상황으로 글자가 계속 만들어질 수 있도록 뭔가를 만드는 게 목표고요. 올봄에 글자와 관련해서 매달 재미있는 일이 생길 거예요. 곧 개봉박두입니다. 기대해주세요(웃음).

    ▶ 바람.체 적용예시 (명함, 책표지,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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