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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디자이너 유재완

    터닝포인트란 절대로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인터뷰. 임재훈

    발행일. 2021년 04월 21일

    그래픽 디자이너 유재완

    유재완은 네이버에서 UI 디자인을 했고, 2020년부터는 브렌든(Brenden) 소속으로 그래픽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다. UI 디자이너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의 커리어 전환인 셈이다. 급격히 이루어진 전환은 아니라고 한다. 유재완은 브렌든 이도의 대표와 오랜 시간 협업을 해왔고, 이러한 작업의 연과 볼륨이 쌓여가며 자연스럽게 ‘커리어 전환’이라는 궤가 형성된 것이다.
    
    애초 네이버에 입사할 때 유재완의 목표는 ‘브랜드’였다고 한다. BX 디자이너 신규 채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일단 지원했다. 우선은 UI 디자이너로 들어간 뒤, 차차 BX 팀으로 보직을 옮길 생각이었다고.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나 보다. 그는 “UI 디자인만 하다가 퇴사했다”고 말하면서도, “재미있게 잘 다녔던 것 같다”라는 소회도 덧붙인다.
    
    그러고 보면 스토리텔링에서든 커리어에서든, 급작스러운 터닝포인트란 없는 것 같다. 발단-전개-절정-위기-전환 순으로 착실히 스토리가 구축되듯, 누군가의 커리어 또한 분명 앞단의 순서들이 차례로 배열되고 쌓일 때 비로소 ‘전환’에 이를 것이다. UI 디자이너로 일하면서도 꾸준히 브랜드 관련 외부 프로젝트를 병행한 유재완의 예처럼.

    제1회 〈대강포스터제〉(2018) 전시 때 ‘그래픽 디자이너 유재완’을 알았습니다. 전시장(부천아트벙커 B39)에서 본 〈1980년 제4회 MBC 대학가요제: 마그마 – ‘해야’〉(유재완·이민형 작) 포스터, 저한텐 꽤 강렬했습니다. 제게 익숙한 ‘해야’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였거든요. 후렴구 “해야 떠라 해야 떠라 발갛게 해야 솟아라”를 스크리밍이나 그로울링으로 부르면 저런 느낌이 날 수도 있겠다, 혼자 상상하면서 포스터를 감상했더랬습니다.
    올해 2월이었던가, 〈싱어게인〉이라는 오디션 방송 프로그램에 이 노래가 나오더군요. 실력 있는 참가자가 ‘해야’를 불렀고, 무대를 보던 저는 〈대강포스터제〉와 ‘유재완’을 떠올렸고, 어찌어찌 시간이 조금 지나 이렇게 인터뷰까지 이르게 됐다는, 그런 얘기를 드리고 있는 겁니다.(웃음)
    전시 관람객 대다수가 그럴 텐데, 저 역시 인상 깊었던 작품의 작가는 기억해두는 편입니다. ‘그래픽 디자이너 유재완’의 경우, 2018년 당시 포털에 검색을 해보니 네이버 ‘UGC & 커머스 설계 스튜디오’ 소속 디자이너로 나오더라고요. 네이버 블로그의 UI 디자인을 담당한다는 소개글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해야’와 ‘유재완’이 제 기억에 오래 남았나 봐요.
    ‘UI 디자이너가 표현할 법한 이미지는 아닌 것 같은데?’ ‘인하우스 디자이너로서 자제(?)해야 했던 표현욕을 이렇게 외부 활동으로 해소한 걸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초장부터 제가 말이 많네요. 죄송합니다.(웃음) 첫 질문은 그래서, 이겁니다. 포스터 ‘해야’는 어떻게 탄생한 건가요?

    에디터님 말씀대로 외부 활동을 통해 표현욕을 해소한 것이 맞습니다. 포스터 작업은 네이버 UXDP(User eXperience Design Practicum, 네이버의 디자이너 양성 프로그램 ― 에디터 주) 동기이자 당시 네이버 디자인센터 인터랙티브 스튜디오에 재직 중이던 이민형 님과 함께 작업했습니다. 저희 둘 다 음악을 좋아하고 함께 모션 포스터 작업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좋은 기회였습니다.

    제1회 〈대강포스터제〉 참여작 ‘해야’, 2018
    공동 작업: 이민형

    작업을 위한 곡 선정 당시, 저희가 알 만한 곡들은 이미 다른 디자이너 분들이 모두 선택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남은 곡들 중에서 가장 강렬한 곡인 ‘해야’를 선택했습니다. 사실 그때 저희는 이 곡을 처음 들었는데 70~80년대 해외 헤비메탈 밴드에 뒤지지 않는 보컬과 하드한 연주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렇게 굉장한 분들이니 현재도 음악을 하고 계시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에 근황을 찾아보았는데요. 밴드의 프론트맨이자 보컬이었던 조하문 씨는 현재 목사로 일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의 조하문 씨에게 노래 해야의 ‘해’는 종교적 의미가 아닐까 하는 해석으로 작업한 포스터입니다. 포스터 상단에 적힌 문구는 전도서 1장 5절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라는 내용인데요. 모든 것이 헛된 것이라 느끼고 목사가 되었다는 조하문 씨의 삶과 통하는 구절 같아서 해당 문구를 인용했습니다.

    지난해에 소속을 옮기셨잖아요. ‘브렌든’이라는 브랜딩 기업으로요. UI 디자이너에서 브랜드 디자이너로의 전환인 셈입니다. ‘브랜딩을 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지요? 큰 도전이었을 것 같아요. UI를 다루는 디자이너, 브랜드와 그래픽을 다루는 디자이너. 이 두 직무는 상당히 결이 달라 보이거든요. 이렇게 자신의 커리어에 큰 변화를 주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네이버 UXDP 지원 당시에 BX 디자이너로 지원하려고 했으나 BX 팀은 신입 채용 계획이 없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들어가보자는 마음에 UI 디자이너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입사 후에 BX 팀으로 옮길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요. 운 좋게 UXDP로 인턴을 거쳐 입사를 하게 되었는데 UI 디자인만 하다가 퇴사했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UI 디자인 비중이 큰 IT 회사여서 UI 디자이너로서 재미있게 잘 다녔던 것 같아요.

    브렌든의 이도의 대표님과는 대학교 선후배 사이입니다. 알고 지낸 지는 제가 1학년 때부터니까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함께 작업하기 시작한 시기는 제가 3학년일 때부터인데요. 대표님이 라인프렌즈 재직 중에 회사 업무 외에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함께하자고 먼저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때 함께한 작업을 시작으로 제가 취업한 이후에도 여러 프로젝트들을 같이 진행했습니다. 저보다 먼저 퇴사를 결정한 대표님은 함께했던 작업들과 부산에서 운영하는 카페 옵포드를 기반으로 브렌든을 설립했습니다.

    커리어에 변화를 주게 된 큰 계기는 대표님과 함께 진행했던 ‘지오가닉’ 브랜드 아이덴티티 프로젝트였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시기에 결혼 준비와 회사 업무까지 병행하다 보니 마무리 단계에서는 많은 부분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남은 작업에 대한 아쉬움이 퇴사를 앞당겼습니다. 그리고 개개인의 성향 차이겠지만, 제 경우는 새로운 브랜드를 접하고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일이 당시의 회사 일보다 더 잘 맞더라고요. UI 디자인을 경험한 제가 합류한다면 온오프라인을 통합적으로 볼 수 있는 시너지가 생기지 않을까 하여 브렌든 합류를 결정했습니다.

    국내 최초 한정판 신발 발매 정보 플랫폼 ‘슈프라이즈’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및 웹 디자인, 2020

    음악을 상당히 좋아하시나 봅니다. 2017년 네이버 근무 시절에 쓴 에도 ‘음악 애호가’ 내지는 ‘음반 수집가’로서의 면모가 묻어나던데요. 음반을 살 때 음악 자체 외에도 ‘음반 디자인’을 크게 고려한다는 말에 몹시 공감했습니다. 저는 블루레이를 사 모으는데(물론 저의 수집량이나 수집벽은 하찮은 수준입니다만···), 구매 결정 요인의 8할 정도는 디자인이거든요.
    영화 자체의 선호도와 별개로, 패키지가 눈에 띄면 일단 사놓고 보는 타입입니다. 어떤 영화가, 내가 그 영화에 대해 전혀 떠올려본 적 없는 이미지로 디자인돼 있는 모습, 그걸 발견하고 소장하는 희열이 크더라고요.(그러고 보니 3년 전 ‘해야’ 포스터를 봤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던 듯합니다.)
    제 경우는 그런 ‘낯선 이미지의 발견과 수집’ 행위가 글짓기에 꽤 도움이 됩니다. 디자이너님은 척 봐도 수준급 컬렉터이신 것 같아서, 음반 디자인을 통한 창의적 자극이 훨씬 강렬할 것 같아요. 혹시, 음반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을 하게 될 때도 있나요?

    음반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고등학생 때 스톤로지스(The Stone Roses)의 음악에 빠지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저는 한 아티스트에 빠지게 되면 비슷한 장르 또는 같은 출신지의 아티스트들을 찾아 들어보는 습관이 있는데요. 음악 좋아하는 분들은 다들 이럴 거라 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스톤로지스와 같은 영국 맨체스터 출신인 조이디비전(Joy Division)과 뉴오더(New Order)를 알게 되었고, 그들이 속했던 팩토리 레코드, 정확히는 그래픽 디자이너 피터 새빌(Peter Saville)의 앨범 커버 디자인에 큰 자극을 받았습니다. 이후에 좋아하는 음반 디자인을 더욱 크게 보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로 바이닐을 구매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음반 수집에 더 깊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반 디자인이 저의 실제 작업에 영감을 주는 경우는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네이버에 있을 때는 유저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는 입장이었다 보니 제가 좋아하는 음반 디자인들과는 접근하는 방법이나 맥락 자체가 달랐던 것 같고요. 현재 하고 있는 브랜딩 작업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해야 하는 일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가 아닐까요? 만약 제가 음반 디자인을 하게 된다면 제가 좋아하는 음반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을 것 같긴 합니다.

    2017년 ‘바르셀로나 디자인 위크’ 때 열린 국제 기획전 〈Across the Board〉에 참여하셨지요. ‘난민 아동’을 주제로 한 전시였고, 디자이너님의 참여작 제목은 ‘경계[境界]’였습니다. 한글 ‘경계’와 한자 ‘境界’가 서로 포개진 이미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작업에 대한 해설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Border’를 우리말로 하면 ‘국경’ 또는 ‘경계’인데, 경계라는 단어의 동음이의어 특징을 이용해 작업했습니다. ‘지역이 구분되는 한계’로서의 경계[境界], ‘예기치 못한 침입에 대비해 주변을 살피면서 지킴’이라는 경계[警戒], 이 두 단어를 한자로 표기해 우리말 ‘경계’와 함께 선[border]으로 묘사를 했습니다.

    두 단어 모두 단절, 대립 등의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데, 포개진 단어들을 시각적으로 모호하게 만들어 부정적인 의미를 희석하고자 했습니다. 최종 결과물에서는 터키-시리아 국경을 묘사한 다른 디자이너의 작품과 오버프린트 되었는데, 단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제 작업과 국가의 경계를 명확하게 묘사한 다른 디자이너의 작업이 겹치면서 더 재밌는 결과물이 나온 것 같습니다.

    2021년 4월을 기준으로, 디자이너 유재완은 스스로 어떤 작업을 대표작으로 꼽고 싶으세요?

    대표작이라는 단어는 조금 부담스럽고요. 기억에 남는 작업을 꼽는다면 ‘카카오페이지 AR 달력’을 꼽고 싶습니다. 카카오페이지의 2021년 슬로건인 ‘Beyond Display’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AR 기술을 이용한 달력을 디자인했습니다. 바이럴 마케팅 효과와 접근성을 고려해 인스타그램 AR(Spark AR)로 작업했고, 〈대강포스터제〉 ‘해야’ 포스터를 함께 작업했던 이민형 님이 AR 구현 작업을 담당했습니다.

    첫 인터뷰이께 드리는 공식 마지막 질문입니다. 『타이포그래피 서울』에 「interVIEW / afterVIEW」라는 시리즈가 있습니다. 과거 인터뷰이와 수 년 만에 다시 만나 그간의 얘기를 나누는 코너예요. 2012년 첫 인터뷰 후 2021년 다시 인터뷰를 한 적도 있습니다. 이 사례를 기준으로, 8년 후 「interVIEW / afterVIEW」로 또 한 번 인터뷰를 진행한다면, 그때의 디자이너 유재완은 어떤 모습이 돼 있기를 바라세요?

    매번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새로운 작업을 하는 경험이 지난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지낼 때와는 너무 다른 경험이어서 정신없이 1년을 보냈습니다. 지난 1년이 적응기였다면 현재는 디자인뿐 아니라 브랜드 전체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를 키우고자 합니다. 8년 뒤에는 다양한 작업을 토대로 더욱 넓은 시야를 가진 디자이너가 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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