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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애프터뷰 #13 김의래

    김의래 interVIEW in 2013 / afterVIEW in 2020


    인터뷰. 임재훈

    발행일. 2020년 06월 18일

    인터뷰/애프터뷰 #13 김의래

    interVIEW / afterVIEW
    
    인터뷰(interview)는 말 그대로 서로(inter) 보는(view) 일이다. 서로 보는 일이나, inter-see가 아니라 inter-view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인터뷰는 책, 기사, 영상 등 ‘인터뷰 콘텐츠’를 전제로 한 서로―보기다. 인터뷰 자체를 콘텐츠 제작 과정의 일부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콘텐츠에는 기획 의도가 있으므로, 콘텐츠를 위한 만남과 대화는 어느 정도 기획적·의도적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인터뷰 또한 그렇다. 인터뷰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기보다, 관점과 관점의 상호작용이다. 즉, view와 interaction의 결합이다.
    
    『타이포그래피 서울』은 2011년 창간 이후 국내외 디자인계 인물 약 300명을 인터뷰했다. 타입디자이너, 그래픽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설치미술가, 대학교 디자인학과 교수, ···. 어느 날 문득, 그들의 인터뷰 이후가 궁금해졌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view를 재확인해보고 싶었다. 지금쯤 그들은 어떤 위치와 어떤 view를 지닌 채 살아가고 있을지. 지금의 view에 새로운 interaction이 더해지면 어떤 interview가 가능할 수 있을지. 그들과 다시 서로―보기를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다. 연재 코너 [인터뷰/애프터뷰]를 마련한 까닭은. 특별한 기획의도는 없다. 다만, 그들을 다시 보고 싶었다는 것 외에는.

    interVIEW in 2013

    『타이포그래피 서울』의 시작은 2011년 말이었고, 2012·2013년 두 해쯤에 걸쳐 정착기를 지냈다.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신생 매체였다. 적힌 것도 그려진 것도 없는 새하얀 도화지. 시간이 흐르면서 뭔가가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했고, 독자들이 생겨났다. 낯선 백지를 선뜻 건네받아준 이들 덕분이다. 인터뷰이로, 또는 컨트리뷰터로 참여했던 디자이너들 말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적히고 그려지면서 그 종이도 색채라는 걸 갖게 된 것이다. 김의래는 그때의 한 사람이다.

    『타이포그래피 서울』이 디자인 웹진으로 자리잡는 데 여념이 없던 2012년, 김의래는 자신의 스튜디오 창업기를 연재하기로 했다. 대학 졸업 후 곧장 ‘스튜디오 [밈mim]’을 차렸다는 그의 나이는 20대 중반이었다. 연재는 그해 2월부터 7월까지 다섯 달 동안 이어졌다. 최종회가 발행되고 나서 1년이 좀 지난 무렵, 『타이포그래피 서울』은 김의래를 다시 만났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당시 인터뷰는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대학교 소모임에서 타이포그래피를 접한 이후 집요한 관심과 연구를 거듭하여 세상과 공유하려는 이”.

    afterVIEW in 2020

    김의래는 30대 중반이 되었고, 스튜디오 [밈]보다도 먼저 만든 ‘타이포그래피 야학’은 2017년에 진즉 10주년을 맞았다. 2020년 6월의 김의래는 “디자이너보다는 디자인 교육자 쪽에 더 가까운 모습을 갖게 된 것 같다”고, “교육자는 반드시 사람과 사람이 함께하는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7년 전의 소개문―집요한 관심과 연구를 거듭하여 세상과 공유하려는 이―은 여전히 시의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좀더 적확한 문장이 되었다. 김의래의 한결같음으로 문장이 덕을 본 것이다. 7년 전의 문장은 고쳐 쓰여야 할 일 없이, 7년치의 농밀한 정직성 내지 우직함만을 더한 채 그대로 있다.

    『타이포그래피 서울』과 한때 퍽 긴밀한(?) 관계였습니다. 2012년에 「스튜디오 [밈] 창업기」를 7회에 걸쳐 연재해주셨죠. 당시 상당한 인기를 모은 연재였습니다. 글 전반에 흐르는 독특한 무드―저는 ‘지적인 근성’ 내지 ‘지성인의 근성’이라 표현하고 싶습니다―도 인상적이었고요. 이듬해에는 인터뷰이로도 함께했고요. 그리고··· 어느새 7~8년이 지났습니다. 그때의 김의래와 지금의 김의래.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이 한결같다고 생각하세요? 스튜디오 [밈]의 근황도 궁금합니다.

    ‘스튜디오 [밈] 창업기’를 다시 읽으니 얼굴이 화끈거리네요. 그때는 진지하게 고민하던 것들인데, 지금은 ‘뭐 저런 일로 굳이 심각해졌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의 김의래는 과거의 김의래보다 확실히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체감하는 기분이랄까요. 과거의 글과 고민을 진지하게 들여다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만, 저로서는 더 진지하게 글을 쓸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기록이 남아 있으니 말입니다.

    스튜디오 [밈]은 잠시 휴식기입니다. 현재 저는 디자인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는 회사를 설립하여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래픽디자인 작업보다는 디자인 교육 실험과 강의, 교육 콘텐츠 제공 플랫폼 설계에 더 많은 힘을 할애하는 중입니다. 디자이너보다는 디자인 교육자 쪽에 더 가까운 모습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예전의 김의래는 날이 서 있고 다듬어지지 않은 이상주의자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김의래는, 날카로움이 지닌 여러 문제를 깨닫고 이념을 통한 사회적 메시지보다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과 시간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가까운 사람들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의 이념’이 가진 무서움과 문제를 깨달았다고 할까요?

    그래서 요즘은 주변 사람들을 인간답게 사랑하는 것에 대한 경험과 공부, 그리고 현실적 관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한결같이 유지되고 있는 것’을 물어보신다면, 끊임없이 과거의 김의래를 돌아보면서 다 더 나아지려고 한다는 것, 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타이포그래피 서울』 편집팀 멤버 중에 김의래 작가님 수업을 들었던 인물이 있습니다. 편의상 L군이라 칭하겠습니다. 2017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시각디자인과에서 마련한 ‘북메이킹’ 특강의 수강생이었다고 해요. 그때 L군이 기록했다는 강의 노트를 슬쩍 들여다봤는데요. 소쉬르, 야콥슨, 비트겐슈타인, 데리다 같은 이름들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간단히 뭉뚱그려서 ‘인문학을 타이포그래피에 접목한 수업’이라고 해버리기엔, 언급된 철학자들의 계파가 너무나 특정적이었습니다. 이른바 구조주의라는 테마로 묶일 만한 학자들이니까요. 엄밀히 따져서 데리다는 구조주의를 비판한 인물이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구조주의를 얘기할 때 빠뜨려서는 안 될 듯합니다.
    저는 현대 그래픽 디자인이나 타이포그래피 이론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만, 요즘의 경향은 ‘해체주의’ 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 설은 귀동냥을 근거로 조심스레, 어쩌면 김의래라는 인물은 ‘진보적 원칙론자’일지도 모르겠다고 추측해봤습니다. 규칙(혹은 전통, 프레임)을 벗어나려면 우선 그 규칙을 착실히 공부해야 한다, 모든 혁신은 혁신 이전의 역사로부터 차근차근 빌드업이 돼야 가능하다, 라고 생각하시는 쪽이랄까요. ‘34567’이 아니라 반드시 1부터 시작해 ‘234567’로 나아가야 하는 쪽이라고 해야 할지. 어디까지나 저만의 비약이고 넘겨짚기입니다. 뜬금없으시겠지만, 이 엉뚱한 인상 비평에 대한 반론 혹은 부연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편집팀에 제 수업을 들은 분이 계시다니 신기하네요. 다만 ‘홍대 북메이킹 특강’은 제가 진행한 게 아닙니다. 아마도 L군이라는 분이 홍대 특강에 참여하던 시기에 어디선가 제 수업도 들었던 게 아닐까요?

    언급된 철학자들을 보니, 제가 진행하는 인문학 수업 중 ‘디자이너를 위한 언어철학’ 과목 일부를 수강했던 듯합니다. 언어철학 커리큘럼의 ‘구조주의 언어학’ 파트에서 배우는 철학자들이거든요. 그리고 데리다의 경우는, ‘구조주의 언어학 다음은 어떻게 되나요?’라는 한 학생의 질문에 제가 답하며 언급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시각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인문학 바탕이 ‘언어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은 다양한 기호로 이루어져 있고, 기호를 이해하려면 ‘시각 기호’를 분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시각 언어’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이해가 디자이너의 역할을 더 풍성하게 해줍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디자이너를 위한 언어 철학 강의를 진행해온 것이고요.

    디자이너를 위한 인문학 수업은 대체로 인기가 없습니다. 첫 수업인 ‘구조주의 언어학’에만 항상 수강 인원이 많아요. 이후 과정―‘경험주의 언어철학’, ‘탈구조주의’ 등의 철학자와 사상에 대한 강의―을 이어 듣는 학생들은 극히 소수입니다. 첫 강의만 접한 학생들, 그들로부터 강의 내용을 전해 들은 사람들이 저를 ‘진보적 원칙론자’로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고 봅니다.

    강의 설계도 비슷합니다. 1년 단위 학부 강의를 예로 들면, 1학기는 보통 원칙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고는 다음 학기 때 변칙적인 과정을 도입해서 학생들을 다소 어리둥절하게 만듭니다. 제 의도이기도 한데요. 철학 사조를 전체 강의 흐름 안에 함축해놓은 겁니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강의 설계에 있어서만큼은 제 자신이 원칙론자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제게 인문학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철학자는 G. 레이코프(George Lakoff), 이졸데 카림(Isolde Charim), 최봉영, 이성민 등입니다. 최봉영, 이성민 선생님은 레이코프 이후 답보 상태였던 언어 철학 사유를 우리말로 이끌어 깨달음을 주는 분들입니다. 이졸데 카림의 『나와 타자들』은 현대 인간관계의 이면을 냉철하게 들여다본 저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공부와 사유를 바탕으로 저는 끊임없이 디자이너를 위한 인문학 강의 커리큘럼을 확장하고 있어요. 하지만 언제나 ‘구조주의 언어학’이 첫 강의라서, 앞으로도 이 수업만 들은 학생이 대다수일 것 같습니다.(웃음)

    ‘비약’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거기에 저도 말을 좀 보태보겠습니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비약을 합니다. 그러나 비약으로라도 꼭 이해하고 가까워지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은 꽤 괜찮은 인물이 아닐까 합니다.

    2007년 설립한 비영리 교육 공동체 ‘타이포그래피 야학’이 10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2017년에 10주년 행사도 열렸었고요. 어떤 공동체가 10년 동안 지속되면, 자연스럽게 분기점 같은 것이 형성되지 않나 싶습니다. 10주년을 기준으로 before/after가 구분된다고 할까요? 20주년을 향하고 있는 ‘타이포그래피 야학’, 어떻게 운영해 나가실 계획인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아울러, 최근 브런치 채널에 꾸준히 글이 연재되고 있는데, 타이포그래피 야학의 새로운 지평과도 연관이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타이포그래피 야학 10년은 제게 의미가 큽니다.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까지 김의래의 활동을 보여주는 시간이니까요. 그래서 10년이 되었을 때 나름대로 유의미한 기념 방식을 고민했고, 그렇게 체현된 것이 〈모두의 낮, 야학의 밤〉이라는 행사입니다.

    지난 10년간 타이포그래피 야학은 디자인 교육의 차이와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무료 디자인 강의를 제공했습니다. 교육 기회의 차등은 우리에게 계급적 이념을 심어주고, 그로 인해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문제를 타이포그래피 야학을 통해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싶었습니다.

    야학을 운영하는 동안 유튜브가 대중화되고, 개인 영상 미디어가 발달했습니다. 세상의 시선과 흐름이 변한 겁니다. 그래서 오프라인 무료 교육만으로는 사회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기 어렵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어떤 것이 진보하는 사회를, 그리고 사람을 만들 것인가?’ 하고 자문했고, 이 물음은 야학 활동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브런치 활동, 디자인학교의 유튜브 방송 모두 그 연장선에 놓인 일부라 할 수 있습니다.

    교육이라는 게 온라인으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온라인은 오프라인 교육과 연결점을 만드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합니다. 온라인을 제외하고는 이제 그 어떤 오프라인 교육 시스템도 자리잡기 힘듭니다. 이 둘은 함께 병행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타이포그래피 야학의 활동 일부를 온라인으로 옮기고, 오프라인 활동은 디자인학교를 통해 실행하는 중입니다.

    비록 과거의 야학처럼 무료는 아니지만, 누구나 교육의 일부를 온라인으로 경험하고, 오프라인으로는 더 깊이 있는 공부와 공동체 참여 기회를 얻는 시스템을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디자인학교 유튜브 채널 ‘디자인학교TV’의 〈래래쌤의 아는 것만 알려주는 디자이너〉(약칭 ‘아알디’) 시리즈를 몇 편 봤습니다. ‘래래쌤’이라는 호칭도 각 콘텐츠별 주제도 무척 친근했습니다. 이를테면 ‘디자이너가 모여 있는 조직에서 리더급인 사람은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할까요?’, ‘디자이너로서 사회적 활동에 기여할 때 그 이슈와 거리를 얼마큼 두는 게 좋을까요?’ 같은 주제들요. 아무래도 교육 현장에 계시니(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겸임교수, 디자인학교 선생님), 학생들과의 효과적인 소통 방식을 계속 고민하실 것 같습니다. 타이포그래피 야학에서는 직장인들과도 수업을 진행하고요. 여러 연령대와 소통하며 터득한 교육 스타일, 또는 철학에 대해 들어보고 싶습니다.

    ‘아알디’는 타이포그래피 야학의 온라인 강의 버전으로 기획된 것입니다. 초기에는 실시간 스트리밍 방식으로 제공했었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유튜브 성향에 맞춰 변화를 주었습니다. ‘함께 고민하고 위로하는 방송’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구독자들의 요청으로 일종의 요약본을 따로 편집해 올리다 보니 지금의 클립 영상 형태가 된 것입니다.

    현재 업로드된 방송들은 2018년도 촬영분입니다. 총 20회 분량을 촬영했는데, 업로드는 6회분까지만 돼 있는 상황입니다. 편집할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고, 장비가 열악해 화질과 음질이 고르지 않다 보니 더 이상 편집본을 올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장비가 더 나아졌지만, 여전히 시간이 없어 방송을 못하고 있네요.

    온라인 교육을 지나쳐선 안 되겠지만, 저는 오프라인 교육을 좀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교육이 시각과 청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육은 필히 시청각에 촉각이 더해져야 완성됩니다. 시청각 요소는 기술적으로 복제와 대량 생산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촉각은 그렇지 않지요. 한자어인 교육(敎育)은 우리말로 ‘배우다’입니다. ‘배우다’는 ‘배기다(바닥에 닿는 몸의 부분에 단단한 것이 받치는 힘을 느끼게 되다)’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즉 교육은 단지 듣고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경험하고 숙달하고 상호 소통하면서 완성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배움은 ‘정보’로서의 교육보다 더 큰 의미를 갖습니다. 서로가 서로에 의해 배우고 배기게 되는 과정이니까요.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차이를 잊게 해주는 배움의 과정인 것입니다. 교육자는 반드시 사람과 사람이 함께하는 경험을 설계하고,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하는 지점들을 교육 체계로서 구축해야 한다고 봅니다.

    오프라인 교육의 경우, 선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 개개인과의 ‘관계’입니다. 학생의 진도와 성취도, 현재 상태들을 고려해 적절한 조언을 건네고 끌어주려면, 선생은 학생보다 늘 ‘딱 한 발짝’만 앞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생이 너무 뛰어나거나 뒤떨어진다면 학생은 금세 흥미를 잃고 맙니다.

    어느 순간 수업에 재미를 붙인 학생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상승효과는 실로 대단합니다. 일단 이 단계로 들어서면, 학생들은 스스로 배우기/배기기 시작합니다. 선생으로서 이 단계까지 학생들을 끌어가는 부분이 늘 제일 힘듭니다. 지금은 선생 한 사람이 담당해야 할 학생들이 많기도 하고,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학생들과의 나이 차도 많아져서인지 점점 더 힘이 듭니다.(웃음) 그렇지만 언제나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인터뷰 시점을 기준으로, 곧 시절은 2020년 하반기로 들어섭니다. 절반 남은 한 해 동안 꼭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요.

    브런치에 올린 글들을 정리해서 올해 안에 책으로 낼 계획입니다. 김의래라는 한 개인의 10여 년 타이포그래피 강의가 잘 정리된 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한동안은, 거칠게 작성된 브런치 글을 시간 나는 대로 계속 다듬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강의를 시작한 지 13년이 되어가니 해가 갈수록 힘이 부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체력 관리에 신경을 씁니다. 체력 탓에 뒤처진다거나 강의를 놓치게 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쉽진 않겠지만, 배움을 원하는 이들에게 늘 최선을 다하는 선생으로 남는 것이 목표입니다. 매번 멋지고 훌륭한 강의를 할 수 있다면야 물론 좋겠죠. 만약 그게 어렵더라도, 최소한 ‘전보다 더 멋지고 훌륭해지기 위해 항상 노력하는 선생’의 태도는 꺾지 않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제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맡은 바 수업을 잘 마무리하기. 이것이 디자인 교육자로서 매해, 매 분기, 매 순간 갖는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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