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문의





    검색

    닫기
    t mode
    s mode
    지금 읽고 계신 글

    캘리그래퍼 허수연

    반도체 기업 다니던 20대 후반 직장인, 퇴사 후 붓을 잡다


    인터뷰. 임재훈

    발행일. 2012년 01월 02일

    캘리그래퍼 허수연

    서울 동교동의 ‘이안(2an)’이라는 카페에 가면 벽면과 테이블 위를 장식한 갖가지 붓글씨들을 만날 수 있다. 한글 캘리그래퍼 허수연(29)의 작품들이다. 캘리그래피 애호가인 카페 사장님의 자청으로 이곳은 허수연의 개인전시관처럼 꾸며져 있다. 매주 한 번 그의 캘리그래피 강좌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커피 볶는 냄새와 은은한 묵향이 공존하는 이곳에서 허수연을 만났다.

    반도체 기업 다니던 회사원은 왜 붓을 잡았을까

    허수연이 한글 캘리그래퍼라는 직함을 처음 사용한 건 2008년 프리마켓에서였다. 프리마켓은 예술가들이 매주 토요일마다 홍대 앞 놀이터에 모여 각자의 작품을 행인들에게 소개하고 판매하는 일종의 주말 예술시장. 허수연은 ‘허슈그라피’라는 이름으로 사람들과 만났다. 이 예명은 허수연만의 브랜드 네임으로 ‘허슈(그의 애칭)의 그라피’ 또는 ‘H.SHU Graphy(Her Special Holic Unique Graphy)’라는 뜻이다.

    허수연은 주로 시구나 잠언, 직접 창작한 짧은 문구들을 붓글씨로 옮긴다. 엽서, 목재 열쇠고리, 머그잔, 티셔츠 등 다양한 오브제들에 그의 캘리그래피가 새겨지고 있다. 이 가운데 티셔츠는 국내 SNS 업체 홀씨(holsi.com)와의 협업을 통해 상품화되기도 했다. 그가 단독으로 작업한 캘리그래피 머그잔, 화선지에 쓴 작품을 표구한 일명 ‘마음액자’ 역시 디자인 소품 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허수연은 한글학회가 주관한 손글씨 공모전과 MBC의 2012년도 슬로건 공모전에 동시 입상하기도 했다.

    작품 활동 외에도 직장인, 교사, 학생 들을 대상으로 한 캘리그래피 강좌와 재능기부도 꾸준히 해왔다. 허수연은 이 모든 것의 모티브를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정기적으로 주한 미군 부대를 방문해 자신의 한글 캘리그래피 작품을 소개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상경계열 대학 졸업 후 반도체 기업의 무역 부서에서 근무하던 회사원은 어쩌다 캘리그래퍼가 되었을까. 업무도 잘 맞았고 회사생활도 만족스러웠지만 왠지 모를 허기를 느끼게 될 무렵, 허수연은 자연스럽게 붓을 잡게 됐다고 한다.

    “업무 능력과는 별개로 뭔가 새로운 걸 창조해내는 또 다른 재능이 제 안에 있다고 믿었어요. 그런데 그걸 발견해내거나 개발하지 못하니까 답답하기도 하고, 심적으로 방황했죠.”

    정서 순화에 좋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로 서예를 배우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수강생이라곤 자신과 낯선 할아버지 둘뿐이었던 허름한 서예 학원에 몇 달간 다니며 먹을 갈고 붓 잡는 법을 배웠다. 묵향과 문방사우에 익숙해지자 붓으로 짤막한 문구들을 써보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보는 일을 즐기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붓을 이용한 한글 캘리그래피에 대해 알게 되었고, 공부를 시작하면서 자음·모음·받침으로 한 자를 이루는 한글의 조형미에 매료되었다. 특히 획의 굵기, 삐침과 파임, 글자의 기울임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시각적 느낌이 흥미로웠다. 허수연에게 이것은 단지 필체의 차이가 아니라 사람의 표정 변화처럼 다가왔다. 한 획 한 획 모여 자(字)가 되고, 그 자들이 문장을 이뤄 표정을 지었다. 컴퓨터 자판이나 휴대폰 키패드를 누를 때에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새로운 경험이었다.

    획을 긋다

    허수연은 재미삼아 회사 동료들의 좌우명을 붓글씨로 써서 그들에게 손수 선물해보았다. 단지 한 줄의 글을 썼을 뿐인데 사람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렇게 한 줄의 글이 점차 길어져 손편지가 되고, 연하장이 되고, 누군가의 청첩장이 되기도 했다. 이 과정들이 허기진 직장생활을 보내고 있던 허수연에게 포만감을 주었다.

    퇴근 후와 주말을 이용해 캘리그래피 관련 자료를 찾아보거나 전시회를 관람하며 자습했다. 한동안 터널 증후군이라는 손목 경련 증상을 앓을 정도로 격렬히 습작들을 쌓아갔다. 프리마켓에서 자신의 브랜드 네임인 허슈그라피를 처음 선보인 것도 이 시기였다. 화선지에 먹물이 번지듯, 캘리그래피는 허수연의 삶에서 커다란 점으로 변해갔다. 그때쯤 캘리그래퍼로서 오롯이 살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과감히 자기 삶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

    “캘리그래피에만 집중하고 싶어서 2009년에 3년간 다닌 회사를 그만뒀어요. 연봉을 포기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줄 알았는데, 제가 정말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니까 금전적인 고민은 안 하게 되더라고요. 모아놓은 돈도 조금 있었죠.(웃음) 좀 무모하기는 해도 그때가 바로 제 삶의 전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지울 수 없는 글씨를 쓰다

    지난해 5월에 허수연은 효자동 청풍계 자락의 한 전봇대에 자신의 캘리그래피를 새겨놓았다. 이는 사회적 기업 ‘품애’의 전신인 ‘효자동 프로젝트’가 추진한 기획이었다. 허수연은 미리 종이에 쓴 글씨를 전봇대에 붙인 것이 아니라, 전봇대 표면에 흰 칠을 하고 즉석에서 붓질을 했다. 그가 썼던 글들은 조선시대 문신이었던 김상헌의 시문집 『청음집(淸陰集)』에 수록된 시조들을 한글로 옮긴 것이었다. 청풍계 일대를 즐겨 찾았다는 옛 선비들의 정취를 되살린다는 의미였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허수연은 한 번 쓰면 결코 지울 수 없는 붓글씨의 특질을 새삼 깨달았다.

    “글자 자체를 수정하거나 삭제할 수는 없겠지만, 종이에 쓴 글씨는 마음에 안 들면 버릴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전봇대의 경우는 종이처럼 구겨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실수가 용납될 수 없죠. 전봇대 표면에 붓끝을 댄 순간부터 어마어마한 몰입을 이끌어내야만 했어요. 지워지지 않는 글씨를 쓴다는 건, 영원히 세상에 남을 무언가를 남겨놓는 일이니까요.”

    효자동 주민들은 종종 집 밖을 나와 허수연의 작업을 구경했다. 그들 중에는 미숫가루 탄 물을 가져다주거나 “멋진 글씨 써줘서 고맙다.”는 인사말을 건넨 이들도 있었다. 누군가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듣는 일은, 칭찬을 받는 것보다 훨씬 값진 경험이라고 허수연은 생각한다. 칭찬은 누군가에 대한 호의적 ‘평가’이지만, 고마움은 매겨지거나 측정될 수 없는 감정이며 정서이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평가를 받고, 그 평가에 따라 끊임없이 자기 모습을 수정해야 하는 현대인들이 캘리그래피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다고 허수연은 믿는다.

    “최근 들어 대중들이 캘리그래피에 큰 관심을 갖는 까닭은 그만큼 감성적으로 예민해져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자기감정을 숨기는 데에만 익숙했던 사람들이 일종의 분출구를 찾고 있는 모습일지도 모르죠. 실제로 제 캘리그래피 강좌에는 직장인 분들이 많이 오시거든요.”

    한때 교사를 꿈꿨다는 허수연은 요즘 철학 서적을 탐독하고 있다. <아침마당>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캘리그래피와 철학을 엮은 강연을 펼치는 것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란다. 사우나를 워낙 좋아해 커다란 욕조가 딸린 작업실을 갖는 것도 많은 바람들 중 하나다. 또 그는 여태껏 몸에 배어 있는 회사원 시절의 강박적 책임감과 시간 엄수를 털어내려고 애쓴다. 느긋한 태도로 다양한 감정들을 발현해보기 위함이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애인이 있음에도) 종종 혼자 덕수궁 돌담길을 걷고, 따로 시간을 내어 애완 고양이 호야와 놀아주는 것도 그 일환이다.

    “최대한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요. 그래야만 다양한 감정들을 캘리그래피에 담아낼 수 있으니까요. 지워지지 않는 다감(多感)한 글씨를 세상에 남겨서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것이 제 꿈이에요. 그런 글씨야말로 진정 마음으로 쓰는 글씨라고 생각해요.”

    Popular Interview

    인기 인터뷰

    New Interview

    최신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