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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철의 저작권 일상 #7 『구름빵』과 이상문학상, 우리 출판계의 슬픈 평행이론

    법학박사 하동철과 함께 알아보는 우리 일상 속 저작권 ― ‘매절계약’은 어쩌다 관행이 되었나


    글. 하동철

    발행일. 2020년 02월 14일

    하동철의 저작권 일상 #7 『구름빵』과 이상문학상, 우리 출판계의 슬픈 평행이론

    이상문학상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문학상이다. 그런데 얼마 전, 올해 제44회 수상자로 선정된 작가들이 상 받기를 거부했다. 김금희 소설가의 경우, 작가 생활 11년 만의 첫 이상문학상 수상이 됐을 텐데도 거절했다. 최은영·이기호 소설가는 “다른 문학상에선 이런 조건을 겪은 적이 없다”라며 수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제33회 수상자인 윤이영 소설가는 절필을 선언하기까지 했다. 이상문학상 수상 대상자들의 잇따른 수상 거부 소식은 언론 매체 등을 통해 전해지며 뜨거운 이슈를 낳았다.

    이상문학상은 작가 이상(李箱, 1910-1937)의 업적을 기리는 연례 문학상이다.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과 더불어 국내 3대 문학상으로 불리며, 출판사 문학사상사가 1977년부터 지금껏 운영해 오고 있다. 이청준, 박완서, 이문열, 신경숙 등 유명 작가들도 이상문학상을 거쳐갔다. 한마디로 이상문학상은 한국 현대문학의 역사와 궤를 같이해 온 셈이다. 이런 큰 상을 작가들이 거부했으니, 문단 안팎으로 큰 화제가 될 수밖에. 결국 문학사상사는 수상작 발표와 수상자 기자간담회를 무기한 연기했다.

    문단에선 작가들의 소중한 노동의 결과물을 ‘상’을 명목으로 빼앗지 말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올해 수상 작가들 중 한 명인 김금희 소설가는 “작가에게 불리한 것을 취하고 독자들에겐 상을 포장하는 셈이에요. 이건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죠. 상의 의미는 격려잖아요.”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가장 명성을 자랑하고 수많은 유명 작가를 양산했으며, 대상의 경우 상금 3,500만 원이 주어지는 이 상을 작가들은 왜 거부한 걸까.

    지난해 출간된 제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 출처: 알라딘

    작가와 출판사의 ‘저작권 양도계약’

    2018년 7월 문화관광체육부는 출판 분야 종사자를 위한 표준계약서 5종을 개정했다. 출판권 설정, 이용허락, 양도계약에 관한 계약서들이다. 출판권 설정이란, 작가가 특정 출판사에게 출판 독점권을 주는 계약을 의미한다. 출판권을 획득한 출판사는 해당 작가의 작품을 독점 출판할 권리와 함께 다른 출판사의 출판 행위를 금지할 권리까지 갖는다. 라이선스로 불리는 이용허락은 독점과 비독점 출판 허락으로 나뉘며 출판할 권리만 보유한다.

    이번 ‘이상문학상 거부 사태’와 관련해 문제가 된 것은 출판권 설정도 이용허락도 아닌 ‘양도계약’이다. 저작권 양도는 작가의 모든 권리를 상대방에게 넘기는 계약이다. 마치 물건의 소유권을 넘기는 것과 비슷하다. 이에 비하여 ‘이용허락’은 물건을 빌려주는 행위와 유사하다. 일정 기간 동안만 이용 권리를 허락하는 것이다.

    이상문학상 대상 및 우수상 수상자로 선정된 작가들은 문학사상사와 저작재산권(저작권) 양도계약서에 서명하게 된다. 작가들은 양도자(넘겨주는 쪽), 출판사는 양수자(넘겨받는 쪽)가 되는 계약이다. 이 계약서는 문학사상사가 ‘대상’ 작품의 저작권을 3년간 양수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과거에는 ‘대상’만 양수하다가 지난해부터 ‘우수상’까지로 양수 범위가 확대됐다고 한다. 문학사상사는 대상 및 우수상 작품들을 계약기간 동안 단행본으로 출간하거나 별도의 작품집을 제작해 출판할 수 있다. 대상 수상작의 경우, 3년간 ‘저작권자’는 해당 작가(저자)가 아니라 출판사인 것이다.

    출판 분야 표준계약서(2018년 7월 개정) 중 ‘저작재산권 양도계약서’ 내용 일부 /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위 ‘저작재산권 양도계약서’의 제1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만, 위 저작물을 원저작물로 하는 2차적저작물을 작성하여 이용할 권리의 포함 여부는 별도로 정한다.’라고 기술돼 있다. 즉, 양수자에게 저작권 일체가 부여된다 해도, 2차저작물에 대해서만큼은 ‘별도’라는 뜻이다. 만약 이상문학상 수상자가 영화사로부터 영화 판권계약 제안을 받는다면 어떨까? 원작(이상문학상 수상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2차적저작물이다. 따라서 원작자(원저자)가 출판사와 저작권 양도를 했다 하더라도, 해당 영화의 저작권은 그대로 원작자에게 남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사정은 좀 더 복잡하다.

    2차적저작물이란 ‘원저작물을 번역, 편곡, 변형, 각생, 영상제작 등으로 작성한 창작물’을 뜻하며 (원작의 아류가 아닌) 독자적 저작물로서 보호된다. 콘텐츠 업계는 다양한 2차저작물을 만들어 수익을 올린다. 웹툰이 인기를 끌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고, 웹툰 캐릭터로 이모티콘을 판매하는 식이다. 출판물의 경우, 2차적저작물의 시장 가치는 출판 수익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는 콘텐츠 시장 활성화에는 좋은 일이지만 2차적저작권까지 양도한 원작자에게는 비극이 되기도 한다. 그 대표적 사례가 『구름빵』이라는 그림책이다. 이 책은 작가들과 출판계에 적잖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4천억 수익’ 『구름빵』, 원작자 저작권료는 1,850만 원

    『구름빵』 원작자 백희나 작가는 손으로 일일이 작은 종이인형들을 만들고, 그것들을 사진으로 찍어 그림책으로 제작했다. 2004년 출판 이후 지금껏 인기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그림책으로는 상당한 성공을 거둔 작품으로 40만 권이나 팔렸다. 포털 사이트에 ‘구름빵’을 검색하면 저작권 분쟁 내용이 꼭 나온다. 내용인즉슨, 『구름빵』으로 인해 발생한 가치가 4,400억 원에 달하는데도 ‘매절계약’이라는 출판계 관행 탓에 원작자의 저작권료가 1,850만 원뿐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 / 출처: 알라딘

    2004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백희나 작가는 무명이었다. 지금은 더 심하지만 그때도 무명작가가 자기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아 원고료를 받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보통 첫 출간의 경우, 일시불로 원고료를 받는 게 아니라 조건부 인세를 받는 방식으로 계약을 한다. 책 한 권이 팔릴 때마다 정가의 10퍼센트가 저자에게 돌아가는 게 일반적이다.

    매절계약은 우리 출판계의 오랜 관행이다. 일시에 대가를 지급하고 모든 저작권을 사 오는 계약이라고 보면 된다. 마치 물건을 사는 것과 비슷하다. 본질은 저작권 양도인데, 2차적저작물 작성권까지 함께 양도·양수하는 계약이다. 말 그대로 ‘매절’이다. 백희나 작가와 출판사가 맺은 『구름빵』 매절계약서에는 ‘원작자가 2차적저작물 작성권까지 양도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구름빵』 사건을 더 깊이 알아보기 전에, 우리나라 저작권법이 2차적저작물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살펴보자.(문구 자체가 직관에 반하기 때문에 몇 번을 읽어봐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저작권법 제45조(저작재산권의 양도)
    ② 저작재산권의 전부를 양도하는 경우에 특약이 없는 때에는 제22조에 따른 2차적저작물을 작성하여 이용할 권리는 포함되지 아니한 것으로 추정한다.

    저작권을 양도하더라도 2차적저작권은 창작자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면 그것까지 모두 양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계약서에 별도 표기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모든 저작권 양도에는 2차적저작물 작성권도 포함된다’라고 말이다. 저작권 양도계약서에 이런 명시가 없는 한, 2차적저작물 작성권은 원저작자에게 속하는 것이다.

    우리 저작권법은 왜 굳이 2차적저작물에 대한 조항을 따로 두었을까? 이는 오랜 경험과 거래 관행을 법에 반영한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오늘날 위대한 화가로 기억된다. 그러나 정작 고흐 자신은 생전에 몹시 가난했다. 작품성을 인정받지 못해 화가로서 우울한 생애를 보냈다. 고흐는 예감이라도 했을까? 자신의 그림들이 훗날(슬프게도 자신의 사후)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게 되리라는 것을. 자기 작품의 미래 가치를 정확히 예측하는 예술가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자신의 그림·소설·음악이 ‘2차적저작물’로서 큰 인기를 끌게 되리란 걸 어떻게 짐작할 수 있겠는가.

    매절계약은 선진국 출판계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특이한 계약 관행이다. 무명 혹은 신진 작가처럼 자기 작품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출판사가 제시하는 계약서를 거부하거나 계약 내용을 바꿔달라고 요청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우리 저작권법은 아무리 저작권 양도계약이라 해도, 별도 특약이 없는 한 2차적저작물 작성권이 원자작자에게 속하도록 법제화해둔 것이다. 저작권을 양도한 예술가들의 ‘예상치 못한 성공’에 대하여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해 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출판계는 과거부터 투자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매절계약이란 관행을 만들었다.

    그림책 『구름빵』이 원작인 동명 애니메이션 / 출처: PLAYYKIDS 유튜브

    출판 저작권료인 인세는 부가상품 판매로 인한 수익에 한참 못 미친다. 백희나 작가가 『구름빵』 인세를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권당 10,000원씩 40만 부 판매되면 도서 매출은 40억 원이다. 인세는 그 10퍼센트인 4억 원이다. 앞서 언급했듯 『구름빵』이 도서 판매 및 2차적저작물 등으로 올린 총 수익은 4,400억 원에 달한다. 원작자의 인세 4억 원은 총 수익의 1퍼센트도 안 되는 0.09퍼센트에 불과한 셈이다.

    어떤 출판물이 폭발적 인기를 끌면 인세보다는 2차 상품이나 서비스에서 더 큰 수익이 발생한다.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는 물론 책도 많이 팔렸지만, 영화화와 테마파크 개장 등으로 수조 원을 벌어들였다. 『구름빵』 또한 총 수익의 대부분이 도서 판매보다는 테마파크, 애니메이션, 인형 등으로 인한 것이었다.

    작가들의 연이은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 선언 후, 문학사상사는 대상 수상작의 3년 저작권 양도계약 조항을 삭제하고 출판권 설정으로 계약을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요즘 책을 읽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면서 출판계가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익히 아는 바다. 하지만, 저작자가 자신의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하면 더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낼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여러모로 ‘『구름빵』 매절계약’과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는 서로 닮았다. 십여 년째 이런 일이 우리 출판계에 반복되고 있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과연 이상문학상 수상거부 사태는 오랜 시간 작가들을 절망케 해 온 계약 악습을 깨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현재 KBS 공영미디어 연구소 연구원(법학박사)이자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등에서 강의 활동을 하였다. 동 대학원에서 「공연권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믿기 힘든 저작권 이야기』, 『디지털 콘텐츠 저작권』, 『음악 저작권』 등 저작권과 관련한 다수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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