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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철의 저작권 일상 #10 야구장 응원가와 ‘저작인격권’

    법학박사 하동철과 함께 알아보는 우리 일상 속 저작권 ― ‘저작인격권’을 아시나요?


    글. 하동철

    발행일. 2020년 03월 06일

    하동철의 저작권 일상 #10 야구장 응원가와 ‘저작인격권’

    1980년대에 ‘노가바’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를 약칭한 말이다. 노가바의 개사는 흥이나 오락을 위한 것이기보다 시사적 성격이 강했다. 노가바의 주무대는 노동 운동이나 사회 비판의 시위 현장이었다. 귀에 익숙한 대중가요 곡조에 풍자적 가사가 더해져, 80년대 노가바는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노가바 곡 대부분은 음지에서 만들어진 개사곡이었다. 음악 저작권자로부터 허락을 받았을 리 없었다. 당시 노가바 곡이 담긴 노래집을 배포한 목사가 저작권 위반으로 처벌을 받았는데, 이 판례는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유명해졌다.

    야구장에 울려 퍼진 ‘노가바’

    최근 몇 년 사이 노가바가 되살아났다. 부활(?)의 무대는 야구장 관중석이다. 개사된 유행가가 응원가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응원가를 만든 주체는 야구팀 구단들이었다. 내막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구단주들이 원곡에 대한 저작권료를 지불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음악 저작권자들이 저작인격권을 침해 당했다며 소를 제기했다.

    사실, 구단주들은 음악저작권협회와 매년 음악 이용 계약을 한다. 보통 ‘포괄 이용 허락(blanket liecense)’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매년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횟수에 관계없이 음악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형태다.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의 ‘정액제’ 개념과 비슷하다. 이용 횟수가 많아지더라도 계약된 저작권료는 고정이다. 그렇다면 왜 음악 저작권자들이 소를 제기한 걸까. 원곡 가사를 임의로 바꿔 틀거나 부르는 행위를 음악 저작권자들은 저작인격권 침해라고 주장한다. 삼성 라이온즈의 응원가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원곡 ‘슈퍼맨’ 가사

    아들아~ 지구를 부탁하노라~
    아버지~ 걱정은 하지 마세요~
    오늘도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살리고 살리고 살리고 살리고
    돌아라 지구 열두 바퀴!
    응원가 가사

    상수야~ 안타를 날려주세요~
    상수야~ 신나게 날려주세요~
    오늘도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날리고 날리고 날리고 날리고
    날려라 삼성의 김성수!

    저작자에게는 재산권에 해당하는 저작권 외에 저작인격권이 부여된다. 저작인격권은 저작물이 창작자의 ‘브레인 차일드(brain child)’라는 사상에 바탕을 둔 것이다. 저작인격권 중에는 ‘동일성유지권’이라는 것이 있다. 저작자가 자기 저작물의 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다. 쉽게 말해 오직 저작자만이 자신의 저작물을 수정·변형하거나 개작할 수 있는 권리다. 야구팀 응원가의 원곡 저작권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저작재산권은 비록 음악저작권협회에 맡겼더라도, 저작인격권은 자신들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고등법원은 야구장에서 쓰는 개사 응원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저작인격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①야구장 관객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음역대를 좀 높이거나 박자 템포를 좀 빠르게 변경한 것으로, 음악 전문가가 아닌 야구장 관객들로서는 원곡과의 차이를 알아채지 못할 만큼 다르게 한 정도에 불과하다. ②대중적 성격을 갖는 대중가요의 특성상, 저작자로서는 어느 정도의 변경 내지 수정을 예상하거나 감내하여야 할 상황 또는 필요성이 있다. ③응원가로 사용되는 음악의 경우, 대다수가 대중에게 알려진 유명한 곡들이어서 야구장 관객들 입장에서 응원가가 원곡 그 자체라고 오인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각 구단은 법원의 판단을 계기로 응원가를 자체 제작하거나 저작권이 소멸한 곡을 사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응원가 중에는 노랫말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다 바꾼 것도 있었다. 본래 노래에 가사만 새로 넣은 셈이다. 가사를 따로 떼어놓고 곡만을 본다면 동일성이 훼손됐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경우까지 동일성이 훼손됐다고 볼지는 아직 사례가 없기에 판단하기 쉽지 않다. 저작권법 교과서를 뒤져 보면, 음악저작물의 악곡과 가사는 분리 가능한 각 독립 저작물로서 결합저작물의 관계를 갖는다는 설명이 나온다. 곡은 곡대로 가사는 가사대로 독립된 저작물이라는 의미다. 즉, 곡에 다른 가사를 붙이거나 가사에 다른 곡을 붙여 만들 때 한 쪽 저작자의 허락만 받으면 된다는 것이다.

    곡과 가사가 별도의 저작물이라면, 원곡의 멜로디를 바꾸든 노랫말을 바꾸든 어쨌든 ‘저작물의 원형을 변형한’ 셈이 된다. 과연 이것을 ‘원곡과의 동일성이 유지된다’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위 법원 판결의 근거처럼 ‘원곡과의 차이를 알아채지 못할 만큼 다르게 한 정도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는 걸까? 원곡의 멜로디는 유지하되 가사 전부를 바꾼 응원가는 ‘절반의 동일성’이 유지되는 걸까···? 판단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원곡 저작권자들의 애타는 속내가 이해되기도 한다. 그래서 일각에는 저작인격권(동일성유지권)의 까다로운 판단/성립 기준을 비판하는 목소리들도 존재한다. 음악 저작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오히려 안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의견이다. 예를 들어, 그리 유명하지 않은 노래가 야구장 응원가(개사곡)로 불리고, 심지어 방송에도 소개된다면 큰 홍보 효과를 누리게 된다. 원곡 저작자에게는 저작권료 수입도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원작자가 동일성유지권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이 모든 일은 그저 ‘남의 일’에 불과하다.

    ‘귀여운 여인’은 되고 ‘컴백홈’은 안 된다?

    패러디는 대중에게 알려진 원작을 흉내내거나 과장·왜곡해 비평하고 웃음을 자아내는 문학 기법이다. 저작권 영역에서 패러디는 자유로운 행위로 인정된다. 그렇다고 모든 패러디가 공정 이용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패러디가 저작권 침해로부터 자유로우려면 두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본다.

    첫째, 기존 작품을 비평·논평·풍자했음이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단순한 베끼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둘째, 원작의 시장 가치를 침해할 가능성이 없어야 한다. 패러디 작품을 감상하더라도 원작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지 않는다는 경험적 사고에 근거한 것이다. 이 밖에도 ‘비영리적이어야 공정 이용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일명 ‘귀여운 여인’ 사건을 계기로, 영리적이라 하더라도 패러디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립되었다.

    〈귀여운 여인〉은 1990년대 큰 성공을 거둔 영화다. 주연배우 줄리아 로버츠와 리처드 기어의 인기도 높았다. 이 작품의 주제곡 제목 또한 ‘귀여운 여인’이다. 로이 오비슨(Roy Orbison)이라는 가수가 불렀다. 영화의 빅히트로 주제곡도 덩달아 히트송 반열에 올랐다. 인기의 영향 탓인지, 투 라이브 크루(2 Live Crew)라는 랩 그룹이 ‘귀여운 여인’을 편곡 및 개사해 음반을 출시한 일도 있었다.

    출처: ARTIST RIGHTS
    원곡 ‘Pretty Woman’ 가사

    Pretty woman won’t you pardon me
    Pretty woman I couldn’t help but see
    Pretty woman that you look lovely as can be
    Are you lonely just like me

    개사곡 가사

    You need to shave that stuff
    Big hairy woman you know, I bet it’s tough
    Big hairy woman
    All that hair, it ain’t legi-i-it
    ‘Cause you look like cousin I-I-I-I-It
    Big hairy woman

    원곡의 ‘pretty woman’이 패러디 곡에선 ‘big hary woman’으로 역변(?)했다. 투 라이브 크루의 노래는 로이 오비슨의 원곡처럼 큰 성공을 거뒀다. 이에 원곡을 작사·작곡한 아티스트가 발끈했다.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미국 연방순회법원은 투 라이브 크루의 개사곡이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됐으므로 단순 패러디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미국 대법원의 시각은 정반대였다. 개사곡은 ‘귀여운 여인’이라는 원곡을 풍자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상업적 목적이 있었는지의 여부에 관계없이 정당한 사용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원곡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은 기존의 판례와 학계의 시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상업적 목적이라면 공정 이용이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깨졌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패러디와 관련한 선구적 판례가 있었다. ‘컴배콤’ 사건이다. 2001년 가수 이재수 씨는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곡 ‘컴백홈’을 빌려 ‘컴배콤’이라는 곡을 만들었다. 그는 원곡뿐 아니라 뮤직비디오까지 패러디했다. ‘컴백홈’ 뮤직 비디오 속 서태지 씨와 비슷한 의상을 입고 두루마리 휴지를 든 채 변기에 앉아 있는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곡에 대한 모독이라고 느꼈던 것일까. 서태지와 아이들 리더이자 ‘컴백홈’을 작사·작곡한 서태지 씨가 법원에 소를 제기하게 된다.

    법원은 이재수 씨의 개사곡을 ‘원곡에 나타난 독특한 음악적 특징을 흉내내 단순히 웃음을 자아내는 정도에 그칠 뿐’이라고 보았다. 원곡에 대한 비평적 내용을 부가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법원 판결 근거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컴배콤’은 ‘컴백홈’을 패러디했음이 명확히 드러나 있고, 따라서 ‘컴배콤’의 풍자 대상은 원곡 ‘컴백홈’에 국한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재수 씨는 원곡뿐 아니라 사회 현실까지 풍자했다. 상업적으로 이용한 것도 문제다. 개사곡으로 인해 원곡에 대한 사회적 가치와 잠재적 수요가 하락할 수도 있다.

    요컨대 ‘귀여운 여인’ 패러디곡과 ‘컴배콤’의 판례는 두 가지 중요한 기준에 대해 각기 다른 판단을 한 것이다. 첫 번째 기준은 개사 행위를 ‘변형’으로 보느냐 ‘베끼기’로 보느냐, 두 번째는 패러디곡이 원곡의 잠재적 수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다.

    ‘귀여운 여인’ 패러디곡

    가사를 변형
    원곡을 풍자
    상업적 이용
    잠재적 수요 영향 없음
    ‘컴백홈’ 패러디곡

    가사를 그대로 베낌
    원곡과 사회 현실을 풍자
    상업적 이용
    잠재적 수요 하락 예상

    패러디곡은 상업적 목적이 아닌 공정 이용의 범주 안에서 그 풍자 대상을 원곡으로 삼아야 한다고 우리 법원은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패러디라는 것의 본질이 ‘원곡을 변형하여 세태 비평과 풍자를 하는 기법’ 아니던가. 패러디물이 상업적으로 이용된다 해도, 큰 범주에선 공정 이용의 영역에 속한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의 패러디 가수 위어드 알 얀코빅(“Weird Al” Yankovic)은 마이클 잭슨, 너바나 등을 패러디하면서 원작을 뒤엎는 독특한 메시지를 던져 왔다. 그의 이름 앞에는 ‘패러디계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까지 붙는다.

    원작을 변형하고 비평이나 풍자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이 원작의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패러디를 저작권을 떠나 자유로운 표현의 자유 영역으로 바라 보기, 이러한 시도를 통해 보다 폭넓은 문화적 논의가 생성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상상해본다.

    현재 KBS 공영미디어 연구소 연구원(법학박사)이자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등에서 강의 활동을 하였다. 동 대학원에서 「공연권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믿기 힘든 저작권 이야기』, 『디지털 콘텐츠 저작권』, 『음악 저작권』 등 저작권과 관련한 다수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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