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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석훈의 백 투 더 90 #6 ‘백제’

    윤디자인그룹 편석훈 회장의 1990년대 ‘윤폰트’ 리뷰 — 삼국시대 시리즈 [백제]


    글. 편석훈

    발행일. 2022년 05월 19일

    편석훈의 백 투 더 90 #6 ‘백제’

    90년대 발표된 한글 폰트들을 통해
    누군가에겐 당시의 초심을,
    또 누군가에겐 새로운 디자인 크리에이티비티를!

    백제체는 지난 5회에 소개한 고구려체에 이어 1996년에 발표한 ‘고구려·백제·신라’ 시리즈 서체 중 하나다. 고구려체에서는 한국적인 디자인에 기인하여 제작된 작업 과정을 설명했다면, 오늘은 다른 각도에서 백제체를 다루어 보려 한다. 바로 폰트 디자인 콘셉트에 관한 것인데, 지난 1회에 소망체를 통해 살펴본 ‘디자인 기획의 중요성’의 연장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번에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폰트 기획 단계에서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에 관한 것이다. 굳이 백제체를 거론하면서 이 주제를 논하는 것은, 백제체 제작 과정에서 느꼈던 디자인 콘셉트의 중요성과 아쉬웠던 점들이 특히 상기되었기 때문이다.

    디자인 콘셉트라는 함정

    ‘고구려·백제·신라’ 시리즈 서체는 90년대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이슈에 발맞춰, 가장 한국적인 것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택한 ‘역사’를 소재로 기획된 서체다. 처음 이미지맵을 만들 때부터 고구려는 강하고 굳센 이미지로, 신라는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운 이미지의 서체로 기획되었고, 백제는 ‘예스러운 느낌을 주는 부드러운 서체’로 기획되었다.

    『윤서체 아카이브』에 설명된 백체체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고구려의 강한 느낌과 신라의 날카로운 이미지와는 차별화되며, 부드러우면서도 절제된 느낌, 예스러운 느낌을 강조하였다. 탈네모꼴의 윗줄맞추기로, 돌기 부분이나 맺음 부분을 굴려서 부드럽게 표현하였다.”

    『윤서체 아카이브』에 소개된 백제체 소개 페이지

    앞서 소망체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디자인 기획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디자인 차별화 전략’과 ‘명확한 콘셉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점에서 백제체는 조금은 어중간한 서체로 기획되었다. 바로 ‘부드러운 서체’라는 콘셉트의 애매함 때문이었다.

    고구려체의 강한 느낌과 신라체의 날카로운 느낌에 대비되는 백제체만의 부드러움을, 한국적인 느낌을 살리면서도 시각적으로 차별화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이런 과정 속에 백제체 디자인 콘셉트로 설정된 것이 바로 ‘디나루’체였다.

    디나루체는 일본에서 상당히 많이 쓰이는 서체 중 하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았는데, 디나루체 자체가 네모꼴을 꽉 채우는 형태여서 획이 많은 글자에서는 그 개성이 드러나지만, 획이 많지 않은 글자의 경우에는 가독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행간을 넓혀야 하는 한계 등 몇몇 문제에 부딪혔기 때문이었다.

    왼쪽이 고딕체, 오른쪽이 디나루체

    이미 윤디자인연구소에서는 백제체를 발표하기 이전인 1995년에 ‘여름’체를 통해 디나루체를 시도한 바 있었다. 여름체 기획 초기에는 디나루체를 디자인 콘셉트로 설정하고 수많은 샘플들을 제작했지만, 결국 여름 콘셉트와 맞지 않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어 포기했던 경험이 있었다.

    백제를 처음 기획할 당시부터 디나루체를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이데이션 작업 과정에서 ‘부드러움’이라는 콘셉트에 집착하다 보니 둥글둥글한 디나루체에 접목하게 된 것이다. 이후 훈민정음의 방점을 응용하거나 획의 마무리 부분을 곡선으로 처리하는 등의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힘들게 백제체를 출시하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백제체는 고구려체에 비해 디자인 시장에서의 반응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못했다. 당시 디자인 업계의 반응을 백제체 기획을 담당했던 디자이너에게 전했더니, 담당 디자이너 역시 부드러운 느낌을 살리기만 했을 뿐 뚜렷한 차별화가 약했던 점을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1997년 제작된 윤서체 매뉴얼 『윤놀이』 중 백제체 소개 페이지

    섬세한 맺음이 돋보이는 백제체

    백제체는 출시 6개월이 지난 후에 재작업에 들어갔다. 백제체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방점이, 가는 글씨로 본문에 쓰일 경우 아주 복잡해 보인다는 디자인 업계의 평가 때문이었다. 결국 방점을 모두 없애고 더 단순화된 형태로 재출시되었다. 다음 내용은 폰코(FONCO)에 소개된 백제체에 대한 설명이다.

    “천천히 방안을 가득 매우는 난향과 같이, 곱씹을수록 배어나오는 은은한 멋. 백제 문화의 정수를 담아내고자 한 폰트입니다. 단정하고 기본적인 꼴에 돌기, 맺음을 섬세하게 표현하여 개성을 더했고, 보면 볼수록 세련된 멋이 느껴질 수 있도록 섬세한 디테일의 표현에 집중하였습니다.”


    백제체 디자인 콘셉트가 ‘부드러움’이라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었다. 부드러운 꼴을 가진 서체들은 지금도 여러 곳에서 필요하고 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백제체 디자인 콘셉트의 아쉬운 점은 부드러운 느낌만 생각하다 보니 곡선 형태에만 집착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 백제체의 경우에는 재출시를 통해 섬세한 맺음 꼴이 완성도를 더했기에 아쉬움을 덜 할 수 있었다.

    현재 버전으로 백제체를 다시 작업한다면, 이제는 폰트 자체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미디어에 접목할까’에 주목할 것이다. 가장 먼저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이에 맞는 디자인 상품을 개발하고 여기에 폰트가 접목된다면, 자연스럽게 한국적 폰트 디자인이라는 소재가 문화사업으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폰트 디자인 콘셉트 설정이나 차별화 전략 역시 이제는 시대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

    유수 기업들과의 전용글꼴 개발을 이끌어 오고 있다.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한 브랜딩 영역을 개척함으로써 윤디자인그룹의 정체성을 기존의 글꼴 디자인 회사에서 타이포브랜딩(typo-branding) 기업으로 전환했다. 저서로는 『한글 디자인 품과 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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