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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석훈의 백 투 더 90 #12 ‘머리정체’

    윤디자인그룹 편석훈 회장의 1990년대 ‘윤폰트’ 리뷰 ― 베스트셀러 제목체 ‘머리정체’


    글. 편석훈

    발행일. 2022년 11월 17일

    편석훈의 백 투 더 90 #12 ‘머리정체’

    90년대 발표된 한글 폰트들을 통해
    누군가에겐 당시의 초심을,
    또 누군가에겐 새로운 디자인 크리에이티비티를!

    머리정체는 1990년, 윤디자인그룹의 전신인 윤디자인연구소에서 출시한 첫 번째 제목용 서체다. 90년대 당시는, 사진식자 편집 시대와 디지털(매킨토시) 시대가 혼재되고 있었는데, 디자이너들이 디지털 편집을 꺼려한 이유 중 하나가 다양하지도 않고 사용하기도 어려운 서체 때문이었다.

    당시 제목체로는 드물게 머리정체는 4종 굵기(Ultra light, Light, Medium, Bold)를 지원했는데, 이 점이 셀링 포인트로 작용했다. 머리정체로 인해 국내 디지털 편집 시대를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컴퓨터 편집에 있어 사용성 좋은 서체와 안정감 있는 속도가 기존 디자이너들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이다.

    이후 머리정체는 윤디자인연구소의 베스트셀러 서체로 자리잡았고, 2015년에는 ‘머리정체2 베이직’과 ‘머리정체2 스페셜’ 2019년에는 ‘머리정체2 베리어블(Variable)’ 버전으로 파생되어 재탄생되기까지 했으니, 가히 윤디자인그룹의 대표 서체라 할 수 있다. 머리정체와 관련된 내용은 저자가 저술한 『편석훈의 한글 디자인 품과 격』에 자세히 소개한 바 있어, 그 내용을 일부 인용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윤디자인의 첫 제목용 서체, 머리정체

    머리정체 개발 배경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의 우리나라 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는 머리정체의 개발 배경이기도 하다.

    90년대 초 매킨토시가 국내 출판계에 본격 도입되면서 인쇄 환경은 크게 변화했다. 아날로그 방식인 사진식자에서 전자 출판 시스템, 즉 DTP(desktop publishing)로 진일보한 것이다. 디지털화 된 서체라는 뜻의 ‘폰트’ 개념이 정착한 시점도 이때다.

    이후 우리나라의 여러 출판사, 잡지사, 언론사 등은 DTP를 속속 도입하기 시작했다. 기존 편집 조판 시스템의 대대적인 판 갈이가 이루어진 셈인데, 요컨대 출판 환경이 완전히 디지털로 전환된 것이다.

    인쇄매체 시장에서는 새로운 니즈가 발생했다. 디지털 환경과 호환되는 다양한 한글 폰트의 개발이다. 이 같은 시대적 배경 속에서 윤디자인연구소를 비롯한 폰트 회사들이 태동했다.

    다시 머리정체 이야기로 돌아오면, 당시 윤디자인연구소는 본문용 폰트뿐 아니라 제목용 폰트 개발에도 주력했다. 본문용 한글 폰트 개발이 시대적 요구에 발맞춘 행보였다면, 제목용 한글 폰트 개발은 당시 시장 상황을 주시하며 세운 전략적 행보였다.

    오늘날 시점에서 80~90년대는 인쇄 시장의 번성기로 구분되곤 하는데, 나 역시 동감하는 바다. 다종다양한 총서와 잡지가 등장했고, 독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한마디로 ‘많이 읽고 읽히던 시대’였다. 그중에서도 꽃은 잡지였다고 생각한다. 거짓말 조금 보태 눈 뜨고 일어나면 새 잡지가 창간하던 때였다. 잡지 시장이 활성화됨에 따라 인쇄 광고물도 쏟아졌다.

    머리정체는 90년대 초반 디지털 환경의 광고 시장을 겨냥한 기획물이었다. 그때만 해도 국내엔 지금처럼 폰트 가짓수가 많지 않았고, 광고마다 똑같은 폰트가 쓰이기 일쑤였다.

    이런 배경에서 등장한 머리정체는 감각적 디자인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4종 굵기 지원 등 메시지(광고 카피) 전달의 표현 다양화까지 주도했다. 헤드라인(headline)의 ‘헤드’, 즉 ‘머리’를 붙여 제목용 서체임을 부각한 직관적 네이밍도 머리정체의 인기에 한몫했다.

    1997년 제작된 윤서체 매뉴얼 『윤놀이』 중 머리정체 소개 페이지

    『윤서체 아카이브』에 설명된 머리정체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기존의 제목용 서체에 비하여 다양한 굵기를 가지고 있으며, 글자의 판독에서 첫 닿자에 시선이 머무르는 점을 감안하여 첫 닿자를 크게 만들었다. 제목용에서 많이 쓰이는 장체의 개념을 감안하여 수평보다는 수직적인 긴장감을 강조한 서체다.”

    그리고 다음 내용은 폰코(FONCO)에 소개된 머리정체에 대한 설명이다. “기본기만 충실하다면, 무한한 변주가 가능한 법입니다. 제목용 폰트의 기본에 충실한 모범생 같아 보이지만, 다양한 굵기를 가지고 있어 어디든 요긴하게 쓰인다고요. 끝을 모르는 무궁무진한 활용도, 오늘부터 직접 경험해보세요.”

    『윤서체 아카이브』에 소개된 머리정체 소개 페이지

    머리정체2 베이직과 스페셜, 그리고 베리어블

    80년대 후반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화 못지않게, 2000년대 디지털 기술의 고도화 또한 미디어 환경에 큰 영향을 미쳤다. 90년대 초반의 머리정체는 2015년 ‘머리정체2 베이직’과 ‘머리정체2 스페셜’, 2019년 ‘머리정체2 베리어블’ 등 세 가지 버전으로 파생되어 재탄생했다.

    기존 머리정체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최신 미디어 환경과 트렌드를 반영한 머리정체 베이직과 스페셜의 경우, 기획부터 개발까지 총 3년이 걸렸다. 머리정체 베이직 시안 작업은 수차례 앙케트를 통해 사내외 의견을 적극 반영했으며, 윤디자인그룹 서체 디자이너들, 그리고 실무직에 종사하는 외부 전문가 패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진행되었다.

    기존 머리정체(왼쪽)와 머리정체2 베이직의 형태 차이

    머리정체2 스페셜은 베이직의 재해석 버전으로, 머리정체 자체의 주목성 강한 시각 특성은 유지하되, 시장의 사용성과 트렌드를 고려해 개성을 가미한 것이다. 촘촘한 자간과 두꺼운 세로 획으로 주목도를 키운 ‘카카오’부터, 군더더기 없이 굵고 간결한 ‘네이비’, 가로세로 획 대비(굵기 차이)를 크게 처리한 ‘올리브’, 장식성을 강조한 ‘바이올렛’까지.

    머리정체2 스페셜 4종은 제목용 서체로서의 사용성을 극대화한 결과물이다. 상품명, 신문 및 뉴스의 헤드라인, 광고 카피, 포스터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시각 표현 요소로써 효과적으로 기능하는 제목체인 것이다.

    각기 다른 4종 스타일로 구성된 머리정체2 스페셜
    폰트 스타일 조절이 가능한 머리정체2 베리어블

    머리정체2 베리어블은 ‘내 마음대로 내 취향대로 폰트를 가지고 놀다’라는 콘셉트를 표방하며 2019년 출시됐다. 세리프(명조), 산세리프(고딕), 인라인, 글자 선·면의 색상을 사용자가 직접 변형해 쓸 수 있는 폰트다.

    출시 당시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베리어블 폰트는 아직 범용화 단계로는 진입하지 않았다고 본다. 어쩌면 베리어블 폰트라는 개념 자체가 낯선 이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일부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반응형 타이포그래피 같은 특정 작업 시 드물게 사용되는 듯한데, 그마저도 보기는 드물다.

    그럼에도 머리정체2 베리어블을 시장에 내놓은 까닭은, 오랜 기간 폰트를 연구하고 개발해온 기업으로서 하나의 사례를 남기고 싶어서였다. 신서체 개발을 통한 수익 창출에만 급급한 기업이 아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변화를 연구하고 기존 서체를 끊임없이 최신화시키는 기업, 폰트의 품질뿐 아니라 폰트 시장의 품질까지 높이는 기업. 내가 생각하는 윤디자인그룹은 그런 기업이다.

    ㈜윤디자인그룹 대표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우리 문자 한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꾸준한 본문체 프로젝트, 국내외 유수 기업들과의 전용글꼴 개발을 이끌어 오고 있다.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한 브랜딩 영역을 개척함으로써 윤디자인그룹의 정체성을 기존의 글꼴 디자인 회사에서 타이포브랜딩(typo-branding) 기업으로 전환했다. 저서로는 『한글 디자인 품과 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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