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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포그래퍼 유사라

    ‘유소년 아티스트’ 육성하는 타이포그래퍼 유사라


    인터뷰. 임재훈

    발행일. 2012년 02월 02일

    타이포그래퍼 유사라

    타이포그래퍼 유사라는 5년 넘게 초등학생, 중학생들과 한글 디자인 작업을 협력해 왔다. 한글을 소재로 다채로운 디자인 시도를 해봄으로써, 아이들이 우리글의 언어적 우수성뿐만 아니라 시각적 조형미를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한다는 취지다. 또한, 이 같은 과정에 남다른 흥미를 보인 아이들을 장차 한글 디자이너로 육성한다는 장기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 유사라는 자신과 함께하는 아이들을 “유소년 아티스트”라고 부른다. 일방적인 지도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 대등한 아티스트로서 존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과의 작업을 "동행"이라고 표현한다.
    
    유사라 외에도 두 어른이 아이들과 '동행'하고 있다. 청와대 홍보실 및 서울디자인센터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한바 있는 캐릭터디자이너 박용민, 세계 각국 오지를 여행하며 수권의 에세이를 저술하며 사진작가 유별남. 이들 세 어른은 이구동성으로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이 오래전에 잃어버린 순수성이 있다. 아이들이 순수성으로 빚어낸 디자인 작품들은 그 자체로 이미 예술이다”라고 말한다.
    ▲ <훈민정음 날애展>에서 11명의 유소년 아티스트들과 함께 /  [왼쪽부터] 유사라, 유소년 아티스트 박도현·김명현, 박용민, 유별남

    유소년 아티스트 11인, 일본에 소개되다

    2010년 4월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는 유사라와 유소년 아티스트들의 첫 번째 전시 ‘훈민정음 날애展’이 열렸다. 훈민정음 본문의 어제서문과, 훈민정음 해례본 가운데 제자해 원리를 레터링과 아트북으로 표현한 기획전이었다. 유사라와 박용민이 각각 기획자와 아트디렉터로 참여했다. 물론, 전시작 40여 점을 창작한 주인공들은 11명의 유소년 아티스트들이었다.

    ▲ 2010년 일본 아키타공립미술공예단기대학 갤러리에서 열린 <훈민정음 날애展>

    아이들은 방과 후 유사라의 작업실에 모여 각자의 작품을 구상했다. 한글 자소를 디자인 도구로 부리는 방법에 대해 궁리하고, 이런저런 실험을 거쳐 습작들을 만들었다. 방학 중에는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창작열을 올렸다. 이렇게 쌓인 아이들의 작품들은 한 권의 아트북으로 묶여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한국의 초등학생·중학생 들이 아트북 전시회를 열었다는 소식은 일반 관람객들과 디자인계 인사들의 입소문을 타고 멀리 일본 아키타 현까지 전해졌다. 이곳에 위치한 아키타공립미술공예단기대학(秋田公立美術工芸短期大学)이 때마침 큰 관심을 보였고, 그해 11월 당교 갤러리에 ‘훈민정음 날애展’ 작품들을 소개했다. 이 같은 성과를 기점으로 유사라는 유소년 아티스트들의 활동 범위를 차츰 해외무대로 넓혀줄 계획을 갖게 되었다.

    “외국인들에게 한글 디자인을 알리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넓은 시각을 갖게 해주고 싶어요. 그러려면 일단 국내에서의 지원이 필요한데,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예술 장르 발전에 대한 제도적 기반이 부족하다는 걸 실감해요. 기업들이 예술단체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기업메세나가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타이포그래피의 새로운 가능성, 유소년 아티스트

    유사라가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대학(서울여대 시각디자인과) 시절 은사인 고(故) 김진평 교수의 영향 때문이다.

    “대학 다니면서 교수님을 타이포그래퍼로서, 교육자로서, 그리고 어른으로서 늘 존경했어요. 사적인 욕심을 완전히 배제한 채 디자인 작업을 하셨던 분이랄까. 진로 문제로 선생님과 개인 면담을 하던 중에 제가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요’라고 말해버렸죠. 제 또래 디자인 학도들 중에서 김진평 교수님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학생은 없을 거예요.”

    ▲ 2010년 서울 마포구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린 <훈민정음 날애展>
    ▲ <훈민정음 날애展> 초대장과 아트북 / 유소년 아티스트 박도현이 만든 세종대왕 캐릭터

    대학 졸업 후 유사라는 동대학원에서 타이포그래피를 전공했고, 2005년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VIDAK) 타이포그래피 분과가 주최한 ‘교과서 디자인 포럼’ 책임간사를 맡기도 했다.

    타이포그래피의 다양한 표현기법을 고민하던 그는 아이들에게서 그 가능성을 엿봤다. 시류에 얽매임 없이 분방한 아이들이라면, 전혀 색다른 예술 장르를 개척하리라고 판단했다. 또한, 예술적 재능이 잠재된 아이들이 시험 위주의 학습이 아닌 체계적인 창의력 수업을 통해 전문 아티스트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사라의 오랜 지기인 박용민과 유별남도 뜻을 같이해 조력자로 나섰다.

    “디자인은 성인들만의 영역이 아니에요. 특히 한글은 작업자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인 모티브거든요. 한글 디자인에 있어서는 아이들의 시각이 어른들보다 고급스럽다고 느껴요. 저는 폴 랜드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의 유머러스한 작품들을 볼 때마다 ‘아, 이 사람은 진짜 즐기면서 작업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유소년 아티스트들의 작업 스타일도 어찌 보면 폴 랜드와 같죠. 아이들은 늘 즐거워하거든요.”

    당시 유사라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소규모 그룹 미술지도를 맡고 있었는데, 이 아이들 중 자발적 참여 의사를 밝힌 몇 명과 함께 디자인 팀을 결성했다. 이들이 손에 쥔 도구는 바로 한글이었다. 한글 디자인을 팀 프로젝트로 결정한 데에는 유사라만의 시각예술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디자인의 본질은 대중과 공감 가능한 감성, 그리고 생활과 연결된 기능성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 모국어 글자인 한글은 훌륭한 디자인 소재가 될 수 있죠. 표음문자이기 때문에 자소 결합으로 다양한 소리와 의미, 그리고 조형미까지 동시에 표현할 수 있잖아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열려 있어 아이들과 제가 시도해볼 수 있는 영역도 무척 넓죠. 또 한글은 디자인 배경과 디자이너(세종대왕)가 명확한 세계 유일의 문자라서 사용자들에게 자부심을 줍니다.”

    유사라와 유소년 아티스트들은 지난 1월부터 ‘친절 한글씨, 친절한 글씨’라는 이름의 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글자와 그 의미, 그리고 사진을 한데 합친 일종의 개념미술(Conceptual Art)을 준비 중이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에는 유별남도 참여 작가로 합류했다. 유소년 아티스트들이 한글 단어를 디자인하면, 그가 해당 단어의 의미를 정물이나 풍경 등의 사진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유소년 아티스트들과 성인 포토그래퍼의 협업인 셈이다.

    아이들의 감성이 서로 다른 만큼, 어른들은 상상하기 힘든 독창적인 예술작품들이 나올 것으로 유사라는 기대한다. 도자기를 빚듯 한글을 주무르는 유사라와 아이들의 손이 지금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 아이들을 좋아하는 유별남은 세계 오지의 아이들을 촬영해왔다

    미니 인터뷰

    김명현(15)과 박도현(12). 유소년 아티스트인 두 사람은 유사라의 각별한 제자이자 디자인 파트너다.

    먼저 김명현. 초등학교 시절부터 유사라에게 지도를 받은 그는 한글 글꼴 디자인으로 이미 세 차례 한국청소년디자인전람회 수상 경력을 세웠다. 오선지와 음표의 모양을 한글 자음과 모음에 적용시킨 ‘놀이동요체’, 실에 꿴 구슬을 디자인 모티브로 채택한 ‘구슬놀이체’로 각각 동상을 받았고, 사춘기 시절의 연애 감정을 형상화한 ‘어린 청춘체’로 특선에 올랐다.

    얼굴에 장난기를 가득 머금은 박도현은 매 순간 상상 속에 사는 듯하다. 하지만 그 상상은 공상이나 허상은 아니다. 언제라도 즉물적 실체로 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 말하자면 발사 준비가 완료된 ‘디자인 끼’라고도 할 수 있겠다. 종이를 접었을 때 만들어지는 갖가지 모양을 한글 자소로 변형시킨 ‘종이접기체’가 바로 그 끼의 증거다.

    김명현과 박도현. 이 두 명의 아티스트들은 어떤 생각과 꿈을 갖고 살아갈까.

    요즘 최대 관심사는?

    김명현(이하 김) : 물론, 한글 디자인.

    박도현(이하 박) : 힙합.

    힙합?

    박 : 원래 신나는 것을 좋아한다. 랩도 곧잘 따라한다. 디자인도 신나니까 하는 거다.

    ▲ 김명현 ‘구슬놀이체’ / ‘놀이동요체’ / ‘어린청춘체’

    유사라와의 작업 과정은 어떤가?

    김 : 아이디어 구상부터 썸네일 스케치까지 우리(유소년 아티스트들)가 직접 하게끔 길을 잘 잡아준다. 종종 실습 과제도 내주는데, 그걸 통해 디자인에 대한 우리만의 생각을 계속 표출하고 공유할 수 있다.

    박 : 재미있고 즐겁다. 재미있으니까 즐겁다.

    ▲ 박도현 ‘종이접기체’

    앞으로의 꿈은?

    김 : 타이포그래퍼가 되는 게 목표다.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좀 더 전문적으로 공부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유사라 선생님과 해온 디자인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학업에도 더 충실하고 싶다.

    박 : 얼마 전부터 레고에 빠졌다. 레고 블럭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게 재미있다. 역시 재미있으니까, 즐겁다. 레고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음, 그 밖에는,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감독도 되고 싶고, 래퍼를 꿈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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