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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 스튜디오 ‘프랙티스’ 유윤석

    “검정과 흰색만이 저의 친구고 나머지는 두려움의 대상이에요.”


    인터뷰. 인현진

    발행일. 2014년 01월 27일

    디자인 스튜디오 ‘프랙티스’ 유윤석

    경복궁 전철역을 나와 인왕산의 넓은 어깨를 보며 걷다가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곳곳에 눈이 가는 카페들, 밥집들. 문득 고개를 드니 경복궁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길이 보인다. 왕궁 옆이라, 이렇게 호사로운 동네라니! 많이 변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마을 분위기가 살아 있는 곳이다. 여기에 작업실을 두면 없던 창조성도 막 생기지 않을까? 라는 생각. 갑자기 동네 부동산을 찾아가서 묻고 싶어진다. 스튜디오 ‘프랙티스(Practice)’처럼 좋은 장소 없나요?

    인터뷰 요청을 받고 어떠셨어요?

    제가 특별한 삶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서, 뻔한 이야기를 하게 되지 않을까, 다른 디자이너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이고 직업이라 내가 무슨 말을 하지, 할 말도 별로 없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인터뷰하면서까지 꺼낼 이야기도 없고. 그런데 다른 분들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니 발톱들은 다 숨기고 이야기 하셨길래(웃음) 이 정도라면 저도 뭐…(웃음).

    최근 근황은 어떠신가요?

    한국 와서 서촌에 자리 잡은 지 올해 만 3년이 되는데 그 사이에 저로선 감사한 일도 많았고 흡족한 일도 많았고 좀 더 욕심을 내고 싶은 일도 많아서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빨리 지나간 것 같아요. 작년엔 하고 싶었던 분야의 일들을 아쉽지 않게 했어요. 작은 일부터 수습이 안 될 정도로 큰일까지. 올해도 작년만큼 버라이어티하고 흥미로운 사람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얼마 전에 인턴 친구도 와서 같이 일하고 있고요. 그리고 사적으로는 최근에 아이가 태어나서 육아에 힘쓰고 있습니다. 현재 가장 큰 프로젝트에요(웃음).

    인턴은 부담도 되실 것 같아요.

    인턴처럼 대하는 게 아닌가, 그것만 경계하고 있어요. 소속감을 느끼고 일을 할 수 있도록 직원처럼 대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어요(웃음). 뉴욕에서 일할 때 인터내셔널 인턴들이 끊임없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 리크루트를 제가 했었어요. 인턴들 겪은 적이 많아서 그런지 유형들이 있어요. 열정을 보여서 왔는데 이력서 한 줄이 급했던 친구가 있는가 하면 아무 사심이 없이 일하고 싶어서 온 친구들도 있고. 이젠 보낸 이메일만 봐도 대충은 알 것 같아요. 인턴은 기왕 할 거면 좀 길게 하면 좋겠어요. 학교 다니면서도 할 수 있는 곳을 찾거나 휴학을 한 경우라면 적극적으로 도전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전 참고로 밝은 사람을 좋아합니다(웃음).

    뉴욕에서 돌아오신 후엔 어떠셨어요?

    처음 스튜디오를 차렸을 땐 워크룸 덕을 굉장히 많이 봤어요. 한국에 왔더니 그 전에 알던 사람들도 행방을 알 수가 없고(웃음).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유로 뭐 있다고 알려주고, 같이 해보자고 해주고, 자리 잡는 데 크게 도와주셨어요. 슬기와민 두 분 선생님께도 도움 많이 받았고요. 가끔 한국에 왔을 때 이 근처에서 일하면 좋겠다,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네요. 다행히 같이 작업실에 있는 분들도 좋아서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인터뷰하셨던 기준 씨한테 말씀 많이 들으셨겠지만 서촌이 참 좋아요.

    4 Corners, 매스스터디스, 2012
    Being Political Popular, 이솔 지음, 현실문화, 2012
    Sites & Systems, 매스스터디스, 2013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기는 어렵다고 흔히 말한다. 하지만 그는 솔직하게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살고 있다고 말한다. 구김 없이 환한 미소. 창조적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갖는 고뇌를 그 또한 하지 않을 리 없건만, 그는 기본적으로 자신을 신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수용하고, 타고났으되 계속해서 갈고닦은 재능을 아낌없이 펼쳐 보일 기회를 자신에게 주고 있었다.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으신가요?

    몇 개가 있는데 작년 타이포 잔치는 뜻밖의 의뢰였고요. 덩어리가 굉장히 많더라고요. 이걸 다 해요? 정말요? 이렇게 막 물을 정도로(웃음). 그런데 일의 양에 비하면 거의 걸림돌이 없었고, 작업 시간이든 뭐든 다 순조로워서 오히려 놀라웠어요. 여러모로 기억에 많이 남네요. 그걸로 기사도 나고 상도 타고. 잊고 있던 친구가 너 책에서 봤어, 라고 연락을 해오기도 하고. 그리고 또 하나는 부산에 있는 축산 수산물 가공 및 냉동 창고의 아이덴티티를 의뢰받은 일이에요. 뮤지엄, 아트센터, 박물관 이런 일만 하다가 냉동 창고 일을 하게 되니 흥미롭더라고요. 올해의 프로젝트라고 부르면서 정말 열심히 했어요. 스케치도 엄청나게 했고요. 클라이언트도 너무 안목이 있는 분이셔서 일하는 과정도 결과도 굉장히 만족스러웠어요.

    클라이언트와의 진정성 있는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 같아요.

    실제로 얼굴을 안 보고 일을 하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해요. 이거 윗분이 싫어해요, 이렇게 일방적으로 전달받는 관계는 어렵죠. 직접 보고 의견을 나눠야 합의를 하는데 그렇다고 메신저를 팰 일도 아니잖아요(웃음). 결정권자를 대면하지 않고 일을 할 경우 경험상 결과가 별로 좋지 않더라고요. 이유도 모른 채 고쳐야 한다는 건 위험한 일이기도 하고. 의견을 내는 게 싫은 게 아니라 수용되는 방식이 좀 이상한 거죠. 저를 존중해주고 제가 존중할 수 있는 분과 일을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것 같아요. 디자이너는 이유가 있고 클라이언트에겐 관행이 있으니 그게 충돌하면 관행 앞에선 이유가 안 먹히고, 또 이유 앞에선 관행이 하찮은 고집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그런 소모적인 일은 피하고 싶죠.

    그런 갈등이 생겼을 때 조율하고 협의하는 것도 일인데 어떻게 하세요?

    그게 참 어려워요. 저도 잘 못 하는 것이고. 그래서 처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한 번 꼬이면 나아지지 않더라고요. 초반에 신뢰를 많이 얻고 가거나, 일을 이렇게 하겠다는 스펙트럼을 잡거나, 초반에 일이 많은 게 낫지 뒤로 갈수록 많아지면 일을 잘 못하고 있다는 증거거든요. 처음에 준비를 많이 해서 마스터 플랜을 보여주는 프레젠테이션을 하려고 해요. 우리 생각은 이러니 의견을 달라는 것부터 시작하면 의견차가 많이 좁혀지거든요. 주먹구구식으로 그때마다 하는 게 아니라 계획을 갖고 하는구나, 라는 신뢰가 쌓이고 시간약속만 잘 지키면 그다음은 많이 수월해지죠. 초기 신뢰 관계가 틀어지면 악몽이 시작되는 거죠(웃음).

    이 작업을 오래 하려면 자신의 미적 감수성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그게 높아질지도 모르겠어요. 대학생들이 되게 안 예쁜 것을 보면서 예뻐라, 하면 좀 걱정돼요(웃음). 저도 취향이 세련된 사람이 아니라서 이게 구린 거다, 라는 걸 자각하는 게 최선인 것 같아요. 한물갔거나 이미 정형화된 형태인 것은 아닌지, 예전에 했던 버릇에서 나온 건 아닌지, 깨닫는 것 정도가 저한테는 일종의 미적인 감각이기도 해요. 제일 안 좋은 취향은 대세를 따르는 것 같고요. 개인적으로는 취향이 높아지는 건 고사하고 더 낮아지지 않기만 바랄 뿐이죠. 가르칠 수도 없는 것 같고요. 하지만 개인의 취향으로 존중은 하되 게으르거나 성의가 없는 건 다르겠죠.

    프랙티스 1, 2주년 기념 가방, 2011
    TV Commune, 백남준아트센터, 2011
    미술과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김장언 지음, 현실문화, 2012
    스물하나의 방, 백남준아트센터, 2011
    그는 자신의 작품을 건조하다고 평가한다. 감성보다는 이성, 비약보다는 논리에 기대는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그는 이야기의 골목을 누비다가도 질문을 잊지 않고 다시 중심으로 돌아왔다. 본질로 회귀할 줄 아는 능력은 그의 논리적 사고력에 기반을 둔 것일까.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개성이 드러나듯, 색을 거의 쓰지 않고 명암으로 표현되는 흑백의 세계에 주로 머물러도 그가 한 작업에선 그만의 어떤 '색'이 느껴진다. 

    작품에서 선을 참 잘 다루시는 것 같아요.

    음, 그런가요? 말씀 듣고 보니 선을 적극적인 요소로 쓴 게 몇 개 떠오르긴 하는데 특별히 어떤 의도를 가졌던 건 아니고요. 면을 써야 하는데 너무 무거울 때 선을 쓴 것 같아요. 너무 단순한가? 스타일로 선을 쓰는 건 오히려 경계해요. 밑줄 긋거나 레이아웃 안에서 선 긋고 이런 건 남들이 한 걸 보는 게 좋은데 나까지 저걸 하면 안 되겠지 싶어요. 너무 팬시한 디자이너들이 많은데 내가 하면 절대로 저렇겐 안 될 테니까, 안 해야지 이런 마음으로 소박한 디자인을 하고 있어요(웃음). 모든 디자인을 미적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이성적으로 하려고 하니 그게 단점일 수 있어요. 시각적 충격보다는 말 되네, 이게 쾌감이라면 쾌감이고요.

    그런데 색감은 어떻게…?

    색은 더 몰라요. 검정과 흰색만이 저의 친구고 나머지는 두려움의 대상이에요. 뉴욕에서 처음 스튜디오에 입사해서 컬러를 가지고 뭘 했는데 아, 드디어 우리 스튜디오에 색을 쓰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컬러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겠다고,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분들은 저보다 더 심하게 흑백 세상에 살고 계시는 분들이었거든요. 그런데 다음 프로젝트 때 제가 색을 쓴 걸 보시더니 역시 우리는 블랙 앤 화이트로 가자고…(웃음). 색만큼 주관적인 게 없잖아요. 클라이언트가 빨간색이 좋다고 하면 빨간색 중에 찾아야 해요. 설득하기 힘들고, 왜 이 색깔이냐고 하면 사실 Why not?이 대답이에요(웃음). 늘 건조한 디자인을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제가 생각해도 그런 면이 있고요.

    자신만의 작업 과정이 있다면요?

    제가 할 이야기가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게, 아이디어 어떻게 만드세요, 작업 프로세스는 어떻게 되세요, 이런 질문에 할 말이 없어요. 저도 분명 해오던 습관이 있을 텐데 체계적으로 정리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작업하기 전엔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다 스케치하면서 해독을 한다고나 할까. 어디서 본 것도 있고, 예전에 생각한 것도 있고, 껍질에 해당하는 것들을 전부 털어버려요. 그런 아이디어를 쓰면 내가 나를 모방하거나 남을 모방하는 것 같아서. 예를 들어 오랜만에 로고 작업을 하면 이것저것 막 그리면서 머릿속에 쌓여 있던 걸 방출해요. 일종의 의식 같은 건데, 한 겹 쌓인 걸 벗겨 내면 한 번 걸러진 거잖아요. 일단 각질을 벗겨 내고 땀 좀 빼고(웃음). 빨리 떨쳐내고 잊어야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으세요?

    다양한 작업을 하고 싶어요. 지금까진 아트 앤 컬처의 분야에서 일을 주로 해왔는데 기회가 있으면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 싶어요. 패션이라든가, 트렌드의 맨 앞에 있는 일이 궁금했어요. 엔터테인먼트나 이런 비즈니스는 해본 적이 없거든요. 저처럼 이성을 중심으로 일하기보다 촉이 좋은 디자이너에게 돌아가는 일이기도 한 것 같고요. 저는 책에서 배운 것보다 거리에서 체득한 지식을 높게 평가하거든요. 그래서 안 해본 일들, 안 겪은 사람들과 함께 뭔가 해보는 것에 대한 바람이 크죠. 올해도 다양하게 일을 하려고요. 한 클라이언트에게 스튜디오의 운명을 거는 일은 안 하고 싶고요.

    신문박물관, 동아일보사, 2012
    정양모빌리티, 정양산업(주), 2013
    타이포잔치, KCDF,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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