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문의





    검색

    닫기
    t mode
    s mode
    지금 읽고 계신 글

    박선영의 캘리 & 그래피 #3 ‘참이슬’에서 ‘참이슬’로

    ‘참이슬’의 잦은 리뉴얼이 아쉬운 까닭 ― 박선영의 캘리 & 그래피(aka 캘리그래피 야화)


    글. 박선영

    발행일. 2012년 02월 03일

    박선영의 캘리 & 그래피 #3 ‘참이슬’에서 ‘참이슬’로

    연초에 새롭게 출시된 ‘참이슬’은 기존 ‘참이슬 Fresh’의 리뉴얼 제품이다. 알코올 도수가 19.5도에서 19도로 낮아졌다. 이미 ‘참이슬’ 병을 본 소비자들은 눈치 챘을 것이다. 라벨 디자인 및 캘리그래피가 기존 ‘참이슬 Fresh’의 것에서 바뀌었다는 사실을.

    소주 시장은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이 이끄는 과점시장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유통과 마케팅의 영향력이 크다. ‘참이슬’이 수도권에서 ‘처음처럼’과 혈투를 벌이는 사이, 지방 업체들은 앞다퉈 저도주(低度酒)를 시판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저도주 중심의 감성적 캘리그래피를 사용한 새로운 브랜드들이 줄이어 출시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후 지방 업체들의 해당 지역 점유율은 크게 성장했다. 이 영향으로 한때 55%를 넘었던 ‘참이슬’의 점유율은 47%대로 떨어졌다. 하이트진로는 ‘참이슬’의 리뉴얼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강화, 점유율 50%대 회복을 노리고 있다.

    처음처럼의 침투

    ‘처음처럼’ 라벨 변천(2006•2007•2010),  ‘처음처럼’ 라벨(2010)

    빅 브랜드에 익숙한 소비자들에게 새것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이렇다 할 경쟁자가 없던 ‘참眞이슬露’에게 ‘처음처럼’의 도전은 거셌다. ‘처음처럼’은 신영복 교수의 시에서 따온 문구를 캘리그래피 로고로 도입해 기존의 로고타입들과 차별화된 브랜드 이미지는 물론, 강력한 설득력까지 갖춰 소비자들로부터 신선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처음처럼’은 출시 초기 참신하고 독특한 네이밍으로 눈길을 끌었다. ‘언제나 처음 같은 마음으로’ 살고자 하는 이상을 품고, 그런 자신과 닮은 소주인 ‘처음처럼’을 선택할 것으로 예상되는 20~30대 헤비 유저들이 주요 타깃이었다. 라벨은 장식 없는 단순함으로 순수함을 반영했다. 로고타입에는 신영복 교수의 안정감 있는 순수서예작품을 사용했다. 새 소식을 전하는 까치와 새싹을 표현함으로써 ‘처음 시작하는 소주’, ‘새로운 소주’의 의미를 형상화했다.

    2007년 소폭 리뉴얼을 통해 ‘처음처럼’은 로고의 선을 부드럽게 처리하여 유려한 느낌을 강화했다. 또 가시성 증대를 위해 로고 크기를 15% 확대했다. 2010년 10월부터는 자원순환과 환경을 고려해 공용병을 사용했다. 이때도 리뉴얼과 더불어 라벨 디자인이 바뀌기는 했지만, 이전 디자인과의 지속성을 고려한 듯하다. 자세히 보면 로고타입의 조합과 하단 디자인 요소가 변화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본래 하단 디자인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풀숲 모양이었는데, 리뉴얼 버전에서는 물줄기를 연상시키는 획 한 줄로 바뀌었다. 전체적으로 더 세련되고 시원해진 느낌이나 풀숲 그림에서 품었던 이야기는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

    로고타입을 그대로 유지한 채 라벨 디자인을 바꾼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소주병은 초록색이며 라벨은 미색, 캘리그래피는 검은색을 사용한다. 다른 색상을 쓰면 소주라는 술이 지닌 고유의 분위기와 맛을 나타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류업체들이 병과 라벨 색상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 이유다. 실제로 라벨을 흰색으로 바꾸기만 해도 소주 느낌이 사라지고 청주 같은 분위기가 풍긴다.

    ‘참이슬 Fresh’의 반격

    ‘참眞이슬露’ 라벨 변천(1998•2002•2006)

    ‘참眞이슬露’는 참이슬이라는 진로 본래의 의미를 되살리고, 맑고 깨끗한 제품의 속성을 표현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회사명이자 브랜드명인 진로(眞露)에서 한자 훈을 따온 것으로 크로스포인트의 손혜원 대표가 지었다. 발매 초기 상품명은 ‘참眞이슬露’였으며, 2006년 8월 ‘참이슬 Fresh’ 출시 이후 ‘참眞이슬露’와 ‘참이슬’ 브랜드를 혼용하다가 2009년 12월 리뉴얼과 더불어 브랜드명을 ‘참이슬’로 통일했다.

    ‘참이슬’ 라벨 변천 (2006•2007)

    브랜드 확장의 정석을 보여주는 ‘참이슬 Fresh’는 소주 소비 연령대가 젊은 층으로 내려오면서 신선한 이미지로 탈바꿈을 시도했다. 이에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디자인 개발이 무엇보다 강조되었다. 캘리그래퍼 강병인에 의해 개발된 글꼴 콘셉트는 ‘젊음, 깨끗함, 이슬’ 같은 느낌이었다. 신세대, 특히 젊은 20~30대 여성 소비층을 고려한 글꼴이었다. 기성세대 소비자들은 ‘참眞이슬露’에 그대로 두고, 도수에 좀 더 민감한 젊은 층을 ‘참이슬 Fresh’로 끌어들이고자 한 것이다.

    ‘참이슬 Fresh’의 라벨 디자인은 대나무 잎에 이슬이 맺힌 형상을 표현하여 순수하고 깨끗한 자연미를 살렸다. 2006년 성공적인 출시를 이룬 것으로 보이는 ‘참이슬 Fresh’의 디자인은 1년이 지난 2007년 10월에 빠르게 교체되었다. 당시 ‘참이슬 Fesh’와 ‘처음처럼’의 설탕 첨가 논쟁으로 인한 이미지 제고와 알코올 도수의 추가 인하로 인한 소폭 리뉴얼이었다.

    새 라벨 디자인은 바탕에 파란색 번짐 효과를 줌으로써 깨끗한 이미지를 강화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글자꼴 또한 좀 더 세련된 인상을 주는 것으로 교체되었으나, 리뉴얼 전과 똑같은 구도를 사용해 알아채기 힘들 정도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에서 ‘ㅏ’획의 대나무잎 형상화나 ‘슬’에서 ‘ㄹ’을 더 흘려 쓴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참이슬’ 라벨(2009), ‘참이슬’ 광고컷(2009)

    2009년의 리뉴얼은 기존의 변화 추이보다 확 바뀐 형태로 리디자인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다. 카툰 타입의 일러스트는 대중적인 이미지를 담으려 적용되었다. 복고풍 이미지가 연상되어 친근함은 더했지만, 세련미에서는 멀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카툰을 소재로 한 것은 20∼30대의 미래 고객까지도 사로잡겠다는 전략적 포석이었다. 그러나 과연 효과적이었는지는 생각해볼 문제이다. 아울러 대나무 마디를 닮은 글자체를 사용해 자연을 닮은 모습을 표현하려 했지만, 이슬처럼 깨끗한 ‘참이슬’ 네이밍과의 어울림, 일러스트와 삼행시와의 조화 여부에는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다.

    ‘참이슬’ 라벨(2012)

    2012년 1월부터 진로는 기존의 ‘참이슬 Fresh’를 ‘참이슬’로, ‘참이슬 Original’은 ‘참이슬 Classic’으로 리뉴얼을 단행했다. 아저씨 이미지로 굳어온 소주에 젊음과 깨끗함, 도전 등의 새로운 이미지를 덧칠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이미지의 추구는 이미 2006년과 2009년 리뉴얼 때 나오지 않았던가? 진로의 분석대로라면, 2009년 리뉴얼이 젊은 이미지 형성에 한계를 보였다는 이야기인데, 그때의 디자인과 글꼴이 당시 진로가 추구했던 이미지와 부합했던 것인지 살펴볼 일이다.

    이전 로고타입과 디자인을 바꿀 필요성은 있었다고 하더라도, 제자리를 맴도는 듯하다. 분명히 이전보다 정리는 되었으나 전체적으로 밋밋하다. ‘참이슬’은 청정한 대나무 이미지로서 ‘처음처럼’의 풀숲 이미지와 상대적인 느낌을 갖는다. 하지만 이번 리뉴얼은 그 디자인 자산을 버리고 이슬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과연 깨끗하고 맑은 이슬 같은 소주라는 제품의 속성을 로고타입에서 충분히 표현했는지 의문이다. 로고타입이 무표정한 얼굴 같기 때문이다. 좀 더 ‘참이슬’만의 이미지와 지향점이 표현되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처럼 일관성 없이 자주 바뀌는 디자인이나 캘리그래피 로고타입의 제작 기준이 궁금하다. 그저 교체를 위한 교체가 아니었는지 묻고 싶다. 로고타입의 지속성에 대한 문제는 제쳐놓고라도 너무 장식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닌지? 경영자와 핵심관계자, 디자이너의 역할이 아쉬운 대목이다.

    추후 디자인 콘셉트에 대한 정보가 공개된다면 더 자세한 사항을 알 수 있겠지만, 일단 ‘참이슬’ 리뉴얼에서 캘리그래피 로고는 작가의 정신과 더불어 제품의 생명력을 담은 브랜드 이미지를 표현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브랜드가 제품으로서의 대상이 아니라 감정을 가진 주체로서 소비자들을 설득하는 차원에 도달해야 한다.

    꼭 대가의 글씨가 아니더라도 기업의 철학이나 마케팅 전략, 그리고 네이밍에 걸맞게 제작된 글꼴이 나오고 유지되어야 한다. 자주 바꾼다는 것은 그만큼 그 디자인이나 철학을 뒷받침할 만한 힘이 약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참이슬’의 가치 제고

    어느 브랜드나 마찬가지겠지만 잘 나갈 때는 굳이 손을 대지 않는다. 괜히 손을 댔다가 역효과가 오면 모든 책임을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매출 감소가 있을 즈음 브랜드 부활을 위해 갖은 노력을 하나,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때 가장 만만한 것이 브랜드 리뉴얼이다.

    잦은 리뉴얼과 로고타입 변화는 상품의 누적 이미지에 악영향을 준다. 제품의 시각적 이미지와 브랜드 자체의 이미지에 혼란을 주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인 브랜드 파워 형성에도 좋지 않다고 본다.  우리가 어떤 제품을 좋아하게 되는 과정은 그 제품의 반복적인 노출과 관련이 있다. 즉 친숙해진다는 건 비주얼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비주얼과의 경험 횟수와 더 관계가 깊다는 말이다.

    ‘참이슬’의 방황은 도수를 낮추고 라벨 디자인을 바꾸는 것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참이슬’의 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장기적 안목의 계획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브랜드 이미지인데, ‘참이슬’은 도수 인하와 같은 제품 자체 변화에 주력했고, 잦은 제품 변경으로 인한 로고타입의 변경과 그래픽의 변화는 소비자에게 브랜드 이미지의 혼란만을 주었을 뿐이다. 기왕 리뉴얼하며 브랜드 이미지 관리작업에 한창이라고 하니 시간을 두고 볼 일이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어린 왕자와 작별하며 비밀 하나를 가르쳐준다. “네가 행성에서 길들였던 장미가 그다지도 소중해진 것은 그 장미를 위하여 잃어버린 수많은 시간 때문이야. 사람들은 이런 진리를 잊고 있어. 언제나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해. 넌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이 대목을 읽으며 ‘참이슬’을 생각해본다. ‘참이슬’ 브랜드는 1998년 출시된 이래 10여 년간 소주 시장의 강자로 군림해오고 있다. 그럼에도 잦은 라벨 디자인 교체와, 그 과정에서의 일관성 결여로 브랜드 이미지 확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이 아쉽다. 여우가 알려준 비밀처럼, 한 가지 통일된 아이덴티티를 책임감 있게 꾸준히 길들인다면 좀 더 확고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박선영
    그래픽디자이너이자 996크리에이티브랩 소장.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창립회원으로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동양적인 문화요소와 조형을 현대적인 디자인 감각으로 융화시키는 작업에 관심이 많은 그는 독립적인 프로젝트 활동 및 문화 관련 프로젝트와 전시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래픽디자인 관련 과목을 강의 중이다. 논문 〈캘리그래피(손멋글씨)의 조형적 표현과 활용에 관한 연구〉발표했고, 이탈리아 Utilila Manifesta/Fight Poverty design contest 2010에서 작품이 선정된 바 있다.

    Popular Series

    인기 시리즈

    New Series

    최신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