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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한글서체의 유형과 명칭

    한글은 종래 한자를 빌려 쓰던 틀을 완전히 깨고 우리말에 맞도록 창제된 소리글자라는 점에서 발생학적인 특수성을 갖는다.


    글. 허경무(한글서체연구회장)

    발행일. 2012년 10월 03일

    조선시대 한글서체의 유형과 명칭

    한글서체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1990년대에 들어와 활성화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으나 서체의 분류나 명칭에 대한 견해는 각양각색이어서 서체연구에 상당한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선행연구들이 각각의 기준을 바탕으로 서체를 분류한 것에 의하면 모필과 관련된 서체용어만도 40여 종1)이나 된다. 이러한 현상은 조선시대에 생산된 서체가 그만큼 복잡다단함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서체란 일정한 시기에 통용되면서 사회성을 확립하여 ‘정형화’될 때 한 유형으로 인정되는 바, 서체 분류에 있어 일정한 기준이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까지 한글 서체 연구는 주로 글자 기계화와 관련하여 글자체 개발을 위해 이루어져 왔으며 조선시대 서체에 대한 연구는 그나마 서예 예술적 측면에서 주로 다루어졌다. 그래서 한글 서체의 분류 및 그 명칭들이 서예 예술적 요소들을 기반으로 삼고 있어 보다 본질적인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가령 어떤 합리적인 기준이 미비한 채 단순히 선행연구의 것들을 적절히 절충한 명칭으로 분류하는 단편성 등이 그것이다.

    물론 각 연구자마다 서체의 분류 명칭이 다른 점은 조선시대에 출현한 한글 자형이 그만큼 복잡해서 일정한 기준을 두고 유형화하기 어려움이 따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다행인 것은 선행 연구자들의 서체분류의 바탕을 살펴보면 서체를 대략 세 가지 군으로 유형화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첫째, 훈민정음 창제와 함께 문자의 시원을 보인, 직선, 둥근 원, 둥근 점으로써 정방형으로 이룬 글자체군. 둘째, 붓글씨로 썼을 때 나타나는 필서의 기운이 있는 것으로서 필사본의 글씨체나 활자본, 판각본에 나타난 글자체군. 셋째, 이 붓글씨체 중 노봉으로 기필하여 오른쪽 흐름 축을 맞추어 독특하게 구성된 서체군이 그것들이다.

    조선시대 한글 서체의 형성요인

    한글은 종래 한자를 빌려 쓰던 틀을 완전히 깨고 우리말에 맞도록 창제된 소리글자라는 점에서 발생학적인 특수성을 갖는다. 우선 글자의 자형과 글자가 가지는 음가를 정확하게 제시해야 할 뿐 아니라 정형화된 글꼴을 제시해야 글자를 이해하는 데 혼란이 없을 터인즉, 창제 당시를 보면 나름대로 글자의 도안적 성격과 아울러 기본 글꼴로서의 가치를 가짐과 동시에 서체의 대강을 제공하고 있다.

    다음은 글자보급과 관련된 특수성이다. 이 또한 한글이 창제 글자라는 특수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곧, 창제된 글자를 언중에게 최단기간에 보급하기 위해 당시 어떤 방편을 강구했을까 하는 문제인데, 현전하는 당시의 자료가 주로 판본이나 활자본인 점을 고려하면 판각이나 활자에 의해 다량의 서책을 찍어내는 방법을 취했음을 알 수 있다. 서체연구에 있어서 판본이나 활자본, 필사본을 그 목적에 따라 나누어 연구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으나, 판본과 활자본도 결국 필사한 서체를 모사한 것이기 때문에 간본에 의거해 서체를 연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한글 창제 초기에 도안된 서체와 그 뒤 붓글씨 형태의 서사적 글꼴이 주를 이루는 시기가 서체분류에 있어 큰 분수령이 되므로, 서사형태나 방법에 의해 서체를 나누는 것이 좀 더 변별성과 객관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낱자의 ‘모아쓰기’ 로 하는 문자생활도 또 하나의 특수성이다. 한글은 소리글자로 창제되었는데 실제 문자생활에서는 초성자, 중성자, 종성자를 합자하여 한 음절에 하나의 합자형이 대응되도록 했으므로 서체연구는 합자형과 관련하여 할 수밖에 없다.조선시대 당시 서사도구가 ‘붓’ 이었다는 점도 서체연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사도구의 변천은 단순하다. 개화기 이전까지의 자료는 판본이나 활자본, 또는 필사본으로 남아있는데, 이들은 붓글씨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개화기 이후에나 ‘펜’ 종류가 유입됨으로써 붓과 펜이 혼용된 것으으로 미루어, 조선시대 한글 서체에 대한 연구는 붓으로기록된 자료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한글 서체의 분류기준

    앞서 지적한 바에 근거해 조선시대 한글 서체의 분류 기준이 되는 자질로 ‘전형성’ ‘중앙축성’ ‘기필의 노봉성’을 들고자 한다.

    전형성

    전형성은 글자로서 보편성을 확보하기까지 글자의 전범으로 주어지는 특성으로 글자 창제 때 나타나는 특성이다. 훈민정음이 창제될 당시에 사대부를 비롯한 지식층은 한자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어서, 읽기나 쓰기가 꽤 자유로워 한자의 필기엔 대단히 능숙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새로운 글자를 창제하여, 그것을 지배층 뿐 아니라 일반에게까지 보급하기 위해서는 자형을 쓰기 위주 보다는 읽기 위주로 구성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으며2), 또 시각상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엄격히 제한된 도안적인 형식을 구사해야 했을 것이다. 이러한 의식을 바탕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오는 고딕체 모양의 글자 형태가 나왔을 것이며 바로 그 점에 전형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창제 후 간행된 「용비어천가」,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동국정운」등에서의 자형이 「훈민정음 해례본」과 같은 전형성을 가진 형태로 나타난 점은 바로 ‘읽기 위주’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글자는 필서의 맛이 없이 직선적이면서 모가 나고 원은 완전히 둥근 형태여서 판각이나 활자로 사용하기에는 적당했을지라도 당시의 주 필기도구였던 붓으로 쓰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형태였다. 아래 <그림 1>을 보면 창제 글자로서의 전형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략 세 가지 원칙이 부여된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서선의 굵기가 일정하며 끝과 모서리는 둥글게 다듬었다.

    둘째, 글자의 획은 직선과 둥근 원만으로 구성되었다.

    셋째, 시각성을 강조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보여지듯이 한글과 한자를 동일한 면에 함께 사용했음에도, 한자의 해서나 행서와는 전혀 다른 고딕체 형태의 한글을 사용한 것은 시각적으로 현저함을 드러내기 위함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후 「훈민정음 언해본」에 오게 되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전형성이 다소 약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래 <그림 2>에서 그 변화를 비교해볼 수 있다.

    위를 비교해 보면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정방형의 직선적인 글꼴이던 것이 「훈민정음 언해본」에서는 붓글씨체 느낌으로 완성됨을 볼 수 있으며, 우선 중성자의 길이가 차츰 길어지기 시작하여 정방형을 벗어남과 동시에, 획 간 공간 조절이 강조되어 조형성이 생기기 시작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수평이던 가로 서선이 오른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쓰기가 중심이 되는 이른바 궁체에 오게 되면 <그림 3>에서와 같이 한글 창제 당시의 전형성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 아래의 <그림 4>는 이러한 전형성의 변화를 해례본의 서체에서부터 궁체 흘림체까지의 흐름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중앙축성

    다음 기준은 모아쓰기 방식으로 운필함에 특정한 순서가 있다는 점을 바탕으로 글자 구성의 축을 어떻게 잡았느냐 하는 것이다.

    운필 시 흐름의 축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각 서체별 특징이 나타나는데, 해례본에서는 정방형 틀에 모아쓰기 하는 한글의 제자원리에 따라 자소를 직선, 둥근 원, 둥근 점만으로 구성하되 획의 연결성은 전혀 없으면서 앞선 자소의 좌우 혹은 상하의 중앙부분에 다음 자소를 위치시키는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획의 순서와 관계 없을 뿐 아니라 획의 모양에도 변화가 없고, 오직 흐름의 무게를 두는 흐름축이 글자 가운데에 있는 이러한 특징을 바로 ‘중앙축성(中央軸性)’형이라 한다.

    <그림 5>와 <그림 6>은 모아쓰기를 함에 있어 ‘ㅡ, ㅗ, ㅜ, ㆍ’와 어울리는 글자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축성이 중앙에 있음을 알 수 있다3).

    <그림 6>은 모아쓰기를 하여 글자를 구성할 때는 구성의 차례를 좇아 각 자소 위치는 반드시 앞 구조의 중앙에 배치됨을 보인 것이며,〈그림 7〉은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등에서 볼 수 있는 중앙축성의 실례들이다.

    이러한 중앙축성은 「훈민정음 언해본」에 오면 다소 변형된다. 「훈민정음 언해본」에서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방형 서체구성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으나, 차츰 필서의 맛이 나는 서체로 바뀌게 되면서 다음 획으로 향하는 필의를 살려 씀에 따라 글자 모양도 변형되고, 조형성까지 갖추는 등 다양하게 써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오른쪽 세로획을 중심으로 한 오른쪽 종렬 축의 서체가 된 것이 아니고, 한자의 행서나 해서의 필서와 같이 글자의 중앙에 흐름의 축을 싣고 있다. 특히 국한문 혼용을 많이 사용하게 됨으로써 한글도 그 흐름 축이 한자와 같이 중앙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구성했다.

    다음의〈그림 8〉과〈그림 9〉를 보면 글자의 중앙을 흐름의 축으로 하여, 좌우 같은 비율로 변화를 주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점이 「훈민정음 해례본」의 글씨와 다르다.

    궁체 단계에서는 위의〈그림 10〉에서 보는 바와 같이 초·종성자의 오른쪽 끝과 우측 중성자의 맨 오른쪽 세로획에 흐름의 축을 두고 맞추어 쓰도록 구성, 초·중·종성자 모두 종렬축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또한 우측 중성자는 더욱 길게 늘어나고 우측 중성자나 종성자의 세로획은 반드시 끝을 뽑아서 아래에 있는 다음 획으로 향하게 한다. 즉, 궁체에는 글씨의 흐름을 오른쪽 흐름 축에 정확히 맞추어 쓰는 서체적 특징이 있다.

    이상을 바탕으로 글자의 축성을 개념도로 보이면 <그림11> 과 같다.

    기필의 노봉성

    다음 분류 기준으로는, 서체에 작용하는 것이 필법이며 조선시대의 서사도구가 붓이 중심이었다는 점을 고려하여 ‘기필의 노봉성(露鋒性)4)’을 들 수 있다. 획의 기필(입필)에 있어 역입 여부에 따라 각 서체의 특징을 찾을 수 있는데, 「훈민정음 해례본」의 글씨체는 획이 곧은 직선이나 둥근 원이면서 시작의 머리 모양이 한자의 전서처럼 둥글거나 막대 모양으로 뭉툭하게 된 것이 특징이다. 붓끝을 감추지 않으면 획의 시작 머리를 만들 수가 없는 것이 필봉의 이치다. 따라서 「훈민정음 해례본」의 글씨체는 기필할 때 반드시 역입하여 필봉을 감추어 장봉으로 휘필하는 필법을 구사하고 있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판각을 목적으로 하였기에 편리한 쪽으로 생각하여 디자인하거나 판각기술로 다듬었을 것이나, 만일 붓으로 한자의 전서처럼 획을 쓴다면 기필에서 반드시 역입, 장봉하여 서사해야 필봉의 뾰족한 맛을 감출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훈민정음 언해본」에 쓰인 글꼴은 한자 해서의 필획과 닮은 점이 많다. 다음의〈그림 12〉에서 보다시피 가로 세로획은 마제잠두(馬蹄蠶頭) 형으로, 기필에서 송필을 거쳐 ‘수필’ 에서는 회봉함으로써 필압에 따라 서선의 변화가 뚜렷이 나타난다. 이는 당시 한자 필서에 익숙했던 식자층들이 필서를 하다 보니 한자 획과 닮은 부분이 자연스럽게 많아지게 된 것으로, 한자 해서를 서사할 때 기필을 역입하여 장봉하는 운필법을 따랐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궁체는 앞의 해례본체와는 달리 기필을 역입하지 않고노봉으로 서사했다는 점이 방법상의 큰 특징이다. 따라서 아래〈그림 13〉과 같이 봉이 겉으로 드러나(노봉) 날렵한 맛이 나며 주로 작은 글씨에 많이 썼다.

    이 궁체는 궁중 여성들에 의해 많이 필서되었으며 획의 시작과 대부분의 끝 획에서 필봉이 겉으로 드러남으로써 그 미세한 변화를 엿볼 수 있으며 단아하면서도 활달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이는 운필상 방필에 의한 서체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조선시대의 서체를 전형성, 중앙축성, 기필의 노봉성을 자질로 들어 분류해 보았다. 이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위〈표 1〉에 따르면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체는 읽기 위주의 서체이며 중앙 흐름 축을 가진 서체로 운필상 역입하여 장봉하고, 「훈민정음 언해본」의 글씨체는 쓰기 위주의 서체로서 초기에는 중앙 흐름 축 중심으로 쓰다가 점차 오른쪽으로 흐름 축이 이동하는데 운필상으로는 역입하며, 궁체는 쓰기 위주이나 우측에 흐름 축을 형성하며 기필 시 역입하지 않고 반드시 노봉으로 시작한다.

    조선시대 한글 서체의 유형과 명칭

    위의 분류기준에 따라 조선시대의 한글 서체를 ① 훈민정음 해례본체(줄여서 해례본체), ② 훈민정음 언해본체(줄여서 언해본체), ③ 궁중서체(줄여서 궁체) 등으로 3대분할 수 있다. 이렇게 명명한 것은, 서체적 특징을 정형화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그 형성범위가 넓으면서 내용은 객관적이되 고유한 성격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이 전제되었을 때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명칭을 붙인 좀 더 구체적인 이유5)는 다음과 같다.

    1) ‘해례본체’는 훈민정음 창제와 더불어 처음으로 목판으로 나온다. 여기에 사용된 글자는 자·모의 모아쓰기 형태로서 자형은 바른네모꼴이다. 서선이 곧고 획의 굵기가 일정한 것이 마치 그려서 디자인한 모양으로 붓글씨 맛은 없다.
    이와 같이 만들어진 글자가 목판에 새겨지면서 붓의 맛보다는 칼의 느낌이 강하고, 시각적으로는 창제 글자의 전형을 보여주는 형태로 강하고 뚜렷한 글자형을 나타내고 있다. 획은 직선과, 완전 둥근 원, 그리고 둥근 점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뒤에 나온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 등에 사용된 글자형들도 다 이 체로 분류할 수 있다.

    2) ‘언해본체’는 해례본체와는 달리 당시의 서사용구인 붓의 특징을 잘 살려서 쓴 서체이다. 붓으로 쓴 육필이나 혹은 육필을 모본(등재본)으로 하여 판각한 판본이나 활자본에 나타난 붓글씨체로서 후에 나온 궁체를 제외한 모든 한글 붓글씨체는 「훈민정음 언해본」에 쓰인 글씨와 같은 유형이므로 ‘언해본체’로 분류할 수 있다.
    「훈민정음 언해본」은「월인석보」전후의 ‘세종어제 훈민정음’만을 따로 제책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흔히 ‘훈민정음 국역본’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세종의 어지와 예의 부분만 언해했는데, 처음에는 해례본의 이름과 같은 「훈민정음」으로 시작하였으나 세종 때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조 때 간행되어 나오면서 제목을 고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훈민정음」에 없는 치두, 정치에 관한 규정이 추가되어 있으며 해례본 간행 직후 1년 이내에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 원간본은 1459년 세조 4년에 간행되었지만,「석보상절」의 권두에도 실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 훈민정음이 반포된 후 1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월인석보」의 권두에 ‘세종어제 훈민정음’을 새로 넣었다기보다는 1447년 간행된 「석보상절」의 체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 즉 ‘세종어제 훈민정음’의 언해는 1446년 9월 「훈민정음 해례본」의 반포 이후 1447년 「석보상절」의 간행 이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에 판각된 서체는 판의 체제나 서체로 볼 때 한문필서에 익숙한 사람의 글씨를 등재본으로 하여 ‘세종어제’란 4자를 추가하고 앞 부분의 넉 줄을 개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필획을 보면 기필, 송필, 수필의 기맥이 뚜렷하고, 가로획 서선은 오른손 쓰기에 의해 오른쪽으로 어깨가 차츰 올라가고 있다. 또한 서사하는 순서에 의해서 초·중·종성자가 놓이는 위치와 모양이 다르게 변하고, 획에는 시작과 중간과 끝의 서체적 특징이 있어 획간과 자간의 연결과 흐름은 물론 필서로서의 속도감이 뚜렷해 보이는 붓글씨체이다.

    3) ‘궁체’는 오직 궁중에서만 사용하던 서체라는 개념에서가 아니라, 궁중이라는 특수 환경에서 창안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궁체로 된 것은 앞선 다른 서체와는 달리 최초의 간본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하나의 서체가 완전한 필법과 결구로 자형이 정립되어 정형화하기까지는 많은 변화의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그 특징을 드러낼 수 있었기에 최초나 대표적인 간본 자료의 이름을 쓰지만, ‘궁체’만은 서체가 창안된 특수한 환경적 요인과 배경을 중시하여 명명한 것이다. 즉 궁중이라는 공간적 특수성과 여성이라는 신분적 특수성을 배경으로 창안된 서체인 것이다.

    궁체는 붓으로 필서함으로써 붓글씨의 흐름과 특징이 확연한 것으로, 필법에 따른 자형과 결구 등이 한자 필법에 익숙했던 사람들의 서체인 「훈민정음 언해본」에 쓰인 체와는 다른 독특한 서체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당시 한자를 써 오던 습관으로 서사된 획과는 완전히 다른 서체로서, 초성자와 중성자에는 일정한 ‘서법적’ 기준이 있고 글자의 조형성과 정형화된 형태적 틀을 갖춘 정제된 서체이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미려한 감각이 돋보이는 서체라 할 수 있다.

    글씨는 특정 서체를 범본으로 하여 연마되지 않는 한 계속적으로 발전되었다고 볼 수 없다. 한자 서체의 흐름을 ‘전서-예서-초서-해서-행서’로 보되 이를 발전순서 보다는 출현이나 분화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듯이, 궁체도 특수한 여건에서 출현한 것이지 범본이 있어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한글 서체의 유형을 위와 같이 해례본체, 언해본체, 궁체등으로 대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각 유형의 특성을 가지면서 한 자 한 자, 한 획 한 획을 연결 없이 또박또박하게 표현한 것은 ‘정자’로, 획과 획의 붓길(필의)에 따른 연결과 글자간의 연결과 흐름을 살린 서체는 ‘흘림’으로, 글자간의 연결이 있으면서도 획은 축약으로 변형되는 등 글자형은 물론 연결 정도가 커서 어떤 것은 마치 암호처럼 사용된 것도 있는 서체는 ‘진흘림’으로 하위분류하면 다음과 같은 표로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표 2〉에 대응하는 각 서체의 보기는 다음〈그림 14〉<그림 15>, <그림 16>에서 찾을 수 있다.

    1) 홍윤표, 2004, 「한글 서예 서체의 명칭」, 서예학술대회 발표 요지,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부 서예문화연구소, 1~13쪽
    2) 김성계, 2002, 「훈민정음에 나타난 글꼴의 형성원인」, 비닥디자인 저널 통권 1호, 한국시각디자인협회
    3) 해례 초성해 ‘ 與 而爲 之類’ 에서 보이는 ‘ ’ 모양 을 초성자가 없음에도 초성자 자리를 비워 ‘ ’ 으로 쓰지 않고 굳이 중성자를 글자의 중앙에 배열한 것은 창제자가 글자의 축을 중심에 두고자 함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4) 기필(起筆)이란 처음 붓을 대어 쓰기 시작하면서 붓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시작하는 운필의 한 형태이며, 노봉(露鋒)이란 획의 시작과 끝에서 뾰족한 붓의 끝(필봉)이 겉으로 드러난다는 뜻으로, 운필의 한 형태이다.
    5) 동·식물 분류 체계나 성씨 형성 체계를 보면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써 형태적 혹은 본질적 특성을 따거나, 최초의 시원을 나타내는 지명, 조상 이름 등을 따서 명명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한글 문자와 관계되는 명칭 문제는 관련 학문 분야에서 이미 통용되는 것을 활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 이 글은 2009년 2월 『온한글』에 게재된 기사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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