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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튜디오 ‘그래픽바이러스’ 임창순

    “환상을 버리고 진중하게 매진하는 마음. 진중함은 언제나 상대에게 감흥을 줄 겁니다.”


    인터뷰. 인현진

    발행일. 2015년 10월 06일

    스튜디오 ‘그래픽바이러스’ 임창순

    성북동, 문 앞 계단을 오르면 겉과 다른 백색의 공간이 나타난다. 단정하고 정갈한 곳, 주인의 성품과 기호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기본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픽적으로 화려한 것을 보여주려고 애쓰기보다 호흡을 길게 하고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킨다. 스튜디오 ‘그래픽바이러스(Graphicvirus)’ 임창순 디자이너를 만났다.

    디자인을 시작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텍스트를 편집하고 이미지를 생성하며, 멕킨토시를 다룸에 익숙함이 있었기에 그래픽 디자인은 저에게 접근이 쉬운 자연스러운 끌림이었어요. 규칙을 갖고 켜켜이 종이에 담겨 뿜어내는 물성이 주는 설렘은 변할 수 없는 감정이죠.

    스튜디오를 운영하시면서 지키는 원칙이 있으신가요?

    바운더리를 명확히 규정짓는 편이에요. 미술, 건축 등 예술 관련 분야도 다수를 차지하지만, 저희는 상업적인 일을 하기에 아무래도 버짓이 높은 기업의 의뢰 또한 많아요. 하지만 그래픽바이러스와 부합된 작업의 선택을 취해왔어요. 공통된 생각을 가지고 모인 멤버가 아니라면 몇 명만 모여도 아이덴티티가 쉽게 사라져요. 의뢰받은 프로젝트 모두를 취하며 일과 규모에 대한 욕심을 부리기보단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는 ‘그래픽바이러스다움’을 선택했죠.

    일을 하다 보면 직업적 발달 단계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주어진 환경적 요인으로 소위 말해 꺼리는 작업부터 선망하는 작업까지 모두를 경험했어요. 그 경험의 가치는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등 그것을 행함에 있어 다른 접근법을 주는 것 같아요. 때로는 악바리 같은 근성을, 언제는 눈물 머금은 슬픔을, 다시금 두근대는 설렘이 반복되던 시절들이 저에게 성장의 밑거름이자 자양분이었어요.

    남다른 이력을 갖고 계시는데 그런 점이 일하는데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아요.

    여러 매체를 다루었고 각기 다른 환경을 접한 저에겐 다종의 작업물이 존재해요. 한곳에 치우치지 않은 작업물은 퀄리티를 떠나 귀중한 자산이죠. 오래전 작업물도 빠짐없이 보관하는데 오로지 포토샵만으로 작업한 첫 포트폴리오도 그중 하나예요. 누구한테 보여줄 수도 없을 수준이지만 지금도 가끔 보며 자극을 받아요(웃음). 그것도 지금의 저를 만든 일부이니까요. 예전 모 백화점 그래픽을 전담하는 곳에선 아침저녁으로 밤새 수정하고 일주일에 네 번 인쇄물이 나오며 그것을 이틀 만에 만들어야 했기에 일이 많았어요. 출퇴근이 무의미한 곳이었죠(웃음). 그런데도 일이 고되거나, 이 일은 못 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블록버스터를 보듯 흥미로움을 가지고 있었고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그에 비하면 지금의 작업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시간이 제공되며 그래도 디자이너라는 조금의 존중을 받기에 예전보다 이 일에 대한 긍정적 가치관 형성이 저에게 중요한 영향이라고 봐요.

     [좌] 그래픽바이러스 2주년 노트 [우] 덴마크 건축가 Bjarke Ingels 작품집
    국립현대미술관 알레프 프로젝트
    그린섬 미술학원 브로슈어
     국립현대미술관 <건축가 김종성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조화> 도록
    그는 멈추지 않고 성장하는 디자이너다. 그렇기에 작업을 할 때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그의 작업 스타일은 갖고 있는 것을 함부로 쓰기보다 가둬두었다가 조금씩 열면서 시나브로 영역을 확장하는 식이다. 영문 폰트도 대부분 헬베티카만 썼을 정도로 절제했다. 초반에는 컬러도 무채색 계열의 사용이 주였다가 최근 컬러를 비롯한 다양한 시도를 모색하지만 쉽게 바꾸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 기준을 벗어난 새로움의 시도는 그에게 진중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래픽바이러스의 정체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뭘까요?

    일반적으로 디자이너는 무엇보다 돋보이게 내세움의 강박이 좀 있는 편이에요. 그런데 저는 반대였던 것 같아요. 단조롭고 심플하게, 예를 들면 흔한 모조지에 블랙 타입, 다른 컬러는 전혀 사용치 않은 채 적합한 위치와 깔끔한 그리드의 조합만으로 뿜어내는 결과물이 더 근사하고 설레었어요. 이는 그간 추구해온 그래픽바이러스 정체성의 근간이죠.

    그래픽바이러스라는 이름은 어떻게 만드신 건지요?

    거창한 의미를 가진 특별함은 없어요. 오래전 당시 유행처럼 번진 URL을 동료와 함께 하나씩 만들었어요. 그들도 그때의 URL이 회사의 네이밍이 되었죠(웃음). 저는 그래픽이라는 단어가 꼭 들어갔으면 했고 이것저것 고민하던 순간 어감 적으로 바이러스라는 단어의 어울림이 좋았어요(웃음). 개인적으로 들어오는 일을 시작하며 그래픽바이러스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독립해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져 자리를 잡았죠. 저에겐 나름의 의미와 추억이 있고 익숙하기에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그래픽바이러스를 퍼뜨려야죠(웃음).

    작업할 때 주로 어떤 과정을 거쳐 하시는지요?

    자료를 찾고 분석하며 썸네일 스케치하는, 특별할 것 없이 여타 디자이너와 다를 바 없는 일반적 과정이에요. 어느 정도냐의 차이겠죠. 주어진 자료들을 어떤 주제와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부합된 요소들이 나오거든요. 그러기에 한 권의 책은 또 다른 무수히 많은 방대한 자료들로 만들어지죠. 좋든 싫든 기록하고 기억하며 보관, 습득해요. 잘 버리질 못해요(웃음). 좋은 건 좋은 대로, 안 좋은 건 안 좋은 대로 볼 게 있거든요.

    디자인하면서 영향을 받은 사람이나 사건이 있다면요?

    저와 함께한 동료들, 여타 그래픽 디자이너 모두가 저에게 영향을 주죠. 제각각의 성향을 지닌 그분들은 상하를 막론하고 수없이 소중한 배움을 제공해요. 제가 고집이 센 편이지만 작업에 대해 쓴소리를 들어도 개의치 않고 습득할 부분이라면 잘 받아들인 것 같아요. 물론 주관적인 관점이지만요(웃음). 그렇게 귀하게 얻은 소양이 발전되어 어느새 그래픽바이러스만의 아이덴티티가 생기고 대중 또한 그래픽바이러스스럽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건축가 정재헌 작품집
    [좌] 함께일하는재단 연차보고서, 2011 [우] 함께일하는재단 연차보고서, 2013
    한국법제연구원 브로슈어
     <영등포 타임스퀘어> 프로젝트 북
    완벽을 추구하는 기질이야 디자이너의 성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에게는 남다른 면모가 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해야 할 일을 놓치지 않는다.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서만은 알고도 넘긴다든가, 귀찮아서 안 한다는 건 그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mm를 옮기는 것도 쉽게 타협하지 않고,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무조건 쉽게 들어주지만도 않는다. 그러나 분명 이유 있는 고집이다. 

    원칙은 만드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어려운데 계속 유지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시작부터 정해놓은 원칙이 아닌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성장해가며 형성된 저만의 작은 규칙입니다. 그러기에 유지도 변화도 동일하게 힘든 것이 사실이에요. 개성 많은 디자이너 사이에서 요즘 눈에 띄는 트랜드가 형성되었어요. 그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원칙을 지키는 것은 꽤 고민스러운 일이에요. 하지만 그 원칙은 그래픽 디자인을 함에 있어 기본적인 요소이기에 유지가 아닌 절대적인 규칙이기도 해요.

    클라이언트와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하세요?

    그래픽 디자인을 함에 있어 클라이언트와의 갈등은 단순합니다. 그리고 늘 존재하는 일이고요. 어떤 식이든 합일점을 찾아야 하는 과정이고 그 과정을 즐기는 편이에요. 그 프로세스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서로 리스크를 줄이려 반복적인 설득이 필요해요. 때론 그래픽 디자이너만이 의식할 미세한 조정의 반복과 제시를 통해 줄다리기를 이어가요. 어떤 부분에서는 타협이 어렵지만, 디자이너로서 합리적인 방법을 제안해야 하기에 쉽게 수용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그만큼의 시간과 공이 들어가기 마련이죠.

    까탈스럽다고 주변에서 불만은 없으셨나요?

    상대적으로 다른 부분 또한 동일하기에 어느 정도 수긍해주시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몇 차례의 수정을 거쳐 클라이언트 컨펌이 완료된 프로젝트를 출력 프로세스가 아닌 최종 가제본을 다시 해요. 처음부터 하나하나 다시 보기 위함이고 시급한 상황에서도 적용되는 필수 과정이에요. 사이트 주소가 잘못됐다든가 영문 오타, 띄어쓰기 등이 발견될 때가 있어요. 또한, 클라이언트가 알지 못하지만 제 눈에 보이는 1mm, 0.5pt의 변경 작업이 진행되죠(웃음). 제작 기간도 더 걸리고 인쇄, 후가공, 제본까지 일일이 감리를 하기에 제작 업체는 늘 난색을 표하지만, 이젠 인쇄기가 돌아가는 첫 작업이 그래픽바이러스가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죠.

    젊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말을 해주신다면요?

    예나 지금이나 그래픽 디자인 오피스는 녹록지 않습니다. 환상을 버리고 진중하게 매진할 마음을 가졌으면 해요. 더구나 요즘 같은 시대에 그래픽 디자이너가 더욱이 가져야 할 다짐이라고 봐요. 진중함은 언제나 상대에게 충분한 감흥을 줄 것이니까요.

     [좌] 그래픽바이러스 탁상달력, 2015 [우]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프로젝트 북
    이상의 집 리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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