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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뚱상상: 레터빌런의 침공 #7 엉뚱상상체 플레이!

    본격 ‘주의 산만’ 폰트 [엉뚱상상체]


    글. 엉뚱상상 레터빌런

    발행일. 2022년 05월 12일

    엉뚱상상: 레터빌런의 침공 #7 엉뚱상상체 플레이!

    폰트를 완전히 다르게 즐기기 위해
    읽고 쓰는 도구 너머의 폰트 신세계를 위해
    디지털 환경이 아닌 디지털 ‘시대’의 폰트를 위해
    레터빌런―Letter Villain이 되기로 작정한
    엉뚱상상의 이야기

    상상하기는 늘 두근거리는 일이다. 다양한 생각에 잠기고, 그 생각 속을 맘껏 유영하다 보면 새로운 상상의 산물들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해양 탐사 로봇이 해저 깊은 곳에서 희귀 심해어종을 발견하듯이. 그런데······.

    상상의 자기 검열 극복하기

    미지의 영역으로 한껏 뻗어나가야 할 상상이 막힐 때가 있다. 해양 탐사 로봇이 바닷속에서 갑자기 멈추는 것이다. 이 오작동의 원인은 바로 ‘자기 검열’이다. 많은 글자체를 만들면서도 이와 같은 이슈를 경험할 때가 있다. 최초의 숱한 상상의 나래들 중 살아남는 건 몇 안 된다.

    체크 리스트를 보며 트러블슈팅을 마칠 때마다 항목을 지워 나가듯, 자기 검열을 하며 하나씩 하나씩 상상을 삭제하는 것이다. 무한의 상상이 아닌 유한의 상상이다. 그렇게 어느 순간 사고의 틀에 갖혀버린다. 이걸 깨닫고는 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다.

    글자체 만들기에서 ‘사고의 틀’이란 가독성과 판독성이다. 이 두 가지는 작업자의 머릿속에서 자기 검열을 가동시키는 동인이다. 상상을 듬뿍 반영한 구상과 시안에 대해 “가독성이 안 좋군요”, “판독성이 별로입니다” 같은 피드백을 받다 보면, 작업자 입장에서는 자연히 가독성·판독성에 근거한 자기 검열을 일종의 제작 표준으로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이 대목에서 고민을 해본다. 가독성·판독성의 벽을 해제하고 상상력으로만 갈 데까지 가볼 수는 없을까.

    요즘 우리는 줄임말로 대화하거나 자소 또는 초성만으로 텍스팅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ㅇㅇ = 응]이나 [ㅇㅋ = 오키(오케이)] 같은 식이다. 문자 언어의 본태가 얼마간 축약 또는 변형되더라도 의사 소통이 가능한 셈이다. 어째서일까? 추측해보건대,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음성 언어 소통을 통해 충분히 [ㅇㅇ]을 [응]으로, [ㅇㅋ]를 [오키]로 독해할 만한 인지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위 가설을 글자체에도 적용을 해보려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문자 언어를 수시로 접한다. 즉, 글자(문자)의 가독성과 판독성에 대해 시나브로 학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글자가 일정 범주를 벗어난 형태라 할지라도―“가독성과 판독성이 좋지 않네요”라는 피드백을 받을 만한 디자인이라 해도―사람들은 그 글자를 큰 어려움 없이 인지할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생각은 ‘가독성·판독성의 벽을 해제하고 상상력으로만 갈 데까지 가보고 싶은’ 우리의 바람과 태도를 합리화하기 위한 억지 논리일지도 모른다. 만약 정말로 그렇다 해도, 이런 괴이한 논리 혹은 엉뚱한 상상을 작정하고 엄중히 다룬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새로운 생산물을 탄생시키는 파운데이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본격 ‘주의 산만’ 폰트의 탄생: [엉뚱상상체]

    일반적으로 글자체 한 종을 만들 때는 형태, 굵기, 모듈 등을 균일하게 설계한다. 구조적 체계를 잡는 과정이고, 이래야만 가독성과 판독성이 확보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레터‘빌런’답게, 체계 대신 상상력과 애드 리브의 길을 택해보았다. 각기 다른 형태와 굵기와 모듈을 혼합한 서체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글자체는 항상 고정되어 있어야 하는가? 글자체는 항상 통일되고 고르게 만들어져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 제기와 함께, 아래와 같이 네 가지 재료를 혼합해본다는 목표를 세웠다.


    ❶ 전체가 굵은 형태 ❷ 전체가 얇은 형태 ❸ 가로만 굵은 형태 ❹ 세로만 굵은 형태

    굵거나 얇은 형태를 다양하게 조합하여 글자체를 구성한다.
    또한 글자의 영역을 무작위로 배치함으로써 글자체가 고정돼 있지 않고
    가지각색 형태를 연출할 수 있도록 한다.

    글자의 조합도 변칙적으로 구성했다. 사용자가 타이핑을 할 때나 패밀리를 변경할 때, 굵은 형태가 얇은 형태로 스위치되는가 하면 가로만 굵은 형태가 세로가 굵은 형태로 스위치되기도 한다. 획들이 도무지 가만히 있질 않는 글자체! 당신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글자체! 바로 [엉뚱상상체]다.

    연쇄적 n차 상상은 여러분의 몫

    [엉뚱상상체]는 한글 글자체의 시각적 형태 경계를 허물고자 한 시도다. 기존의 글자체들이 하나의 일관된 조형성을 갖는 반면, [엉뚱상상체]는 무규칙과 변칙에 입각한 다채로운 조형성을 보여준다. 2021년 초 [페스타체]라는 프로젝트명으로 시작하여 1년 여간의 상상력 인큐베이팅을 거쳐 [엉뚱상상체]로 선을 보이게 되었다.

    상상의 묘미는 연쇄다. 상상 1이 상상 2를, 상상 2가 상상 3과 상상 4를, ···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동안 최초의 상상은 세포 분열을 하듯 개체를 늘리고 규모를 늘인다. [엉뚱상상체], 그리고 우리 레터빌런이 의도하는 바다. 우리가 키운 상상이 사람들의 상상과 결합하여 연쇄적인 n차 상상물로 구체화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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