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문의





    검색

    닫기
    t mode
    s mode
    지금 읽고 계신 글

    [시리즈 다시보기] 신항식의 Designology #1 타이포그래피, 목소리 그리고 문자 문명

    문자는 청각의 모방이라는 진실 ―기호학자 신항식의 디자인-학(design-ology) 강의


    글. 신항식

    발행일. 2023년 10월 10일

    [시리즈 다시보기] 신항식의 Designology #1 타이포그래피, 목소리 그리고 문자 문명

    타이포그래피(인쇄체 문자 그림: Typo+Graphy)는 최근에 만들어진 단어이다. 인쇄체(type)라는 단어가 1843년에 쓰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타이포그래피를 인쇄체의 의미와 연관시켰다. 그러나 타이포그래피는 그보다 의미가 더 넓다. 라틴어 typus는 ‘정해진 모습, 형태, 종류’를 뜻한다. 그리스어 typos는 ‘찍다, 그림, 원본’을 뜻한다. 산스크리트 조응어 prakara도 ‘형태, 그림’이라는 뜻이다. 즉 무언가 ‘형태화된 모습’이다. 그렇다면 typography란 사물의 모습(청각이든 시각이든)을 잘라서 그려낸 무엇을 말한다. 깊이 생각해 볼 문제는 단순히 그린다(graphic)는 것이 아니라, ‘형태'(type)에 있다. 무엇을 어떻게 형태로 만들어 그렸다는 말인가? 음성을 잘라 문자 형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타이포그래피의 움직일 수 없는 뜻이다.

    문자, 인류의 충격적인 산물

    “태초에 말이 있었다.”란다. 물론,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가 최소 20만 년이 넘는다는데, 말이 먼저 있었을 리는 없다. 태초에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이 먹고살기 위해 서로 적은 수의 제스처와 말을 했을 것이며, 선을 긋듯이 그림도 그렸을 것이다. 선사시대 동굴벽화 같은 것은 당시로 보면 오히려 선진문명이었을 터이다. 어찌 되었든, 인간과 함께 말도 태초의 모습을 가졌을 터이고, 시각도 그리했을 것이다. 반면 문자는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는 최신의 것으로 기껏해야 1만 년을 넘지 않는다.

    사람이 질러대는 소리를 문자로 시각화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인가? 수백만 가지의 산세를 삼각형 1개의 모습으로 축약하거나, 수만 종의 사과를 원형 1개로 그리는 추상화 방법도 19세기 말에 와서나 확신했으니 말이다. [으악]의 목소리가 수백, 수천만인데 이것을 ‘으악’이라는 1개의 문자로 표현하다니? 사람이 웬만한 의욕과 과학적 기술을 가지기 이전에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목소리나 그림이 아니라, 문자가 시작되는 시대를 문명 혹은 역사라고 불렀다. 문자란 그만큼 인류의 충격적인 산물인 것이다.

    성음문자, 음성의 진실을 유지하다

    문자 문명은 이렇듯 과학의 역사다. 그러나 문자의 역사 뒤로 사라져 버린 목소리의 실제 역사가 있다. 음성이 비슷하면 뜻도 거의 비슷했고, 뜻이 유사하면 음성이 거기에 따라갔던 목소리의 역사 말이다. 이 목소리의 역사를 성음문자가 품고 있다. 성음문자는 다른 방법 없이 입의 모양과 기능에 기대어 문자를 그린 것으로 입술을 동그랗게 만들면 [O]가 되는 경우와 같다. 날카로운 소리는 [i]이므로 무언가 잘라 내거나 독립적이거나 더 나아가 인공적인 뜻을 지닌다. 그래서 입을 거의 닫는 모양새(i)를 취한다. 개인주의적이며 모던하다. 현기, 승기, 윤지, 현지와 같은 사람 이름은 개인적이며 모던한 무의식을 드러낸다. 영자, 윤아 같이 터진 음성과 반대이다. 그러니까 성음문자는 음성의 진실을 최대한 유지하고자 했던 노력의 산물이다.

    각 문명은 수억의 목소리를 이처럼 경제적으로 축약하여 그려냈다. 이것이 알파벳이다. 목소리와 유사성을 가지던 수메르의 그림문자가 이집트를 거쳐 세계 각 지역의 표음문자 즉 알파벳으로 변해갔다. 다시 말하면, 실제 음성과 형상의 관계가 만년 문자의 역사를 거치면서 서로 단절되었던 것이다. 알파벳에서는 더 이상 사물의 실존을 보기 어렵다. 이집트의 암소, 알렢(aleph: 알레프~, 음메~)에서 a 소리만 남은 A로, 집이란 뜻의 벹(bet: 닫침)에서 b 소리만 남은 B로 축약됐다. a, b의 발음에서 우리는 더 이상 암소나 집의 존재를 가정할 수 없게 되었다. 현대 국제음성기호(I.P.A: International Phonetic Alphabet)는 음성 문화의 종말을 선언하고 있다. 음성에 대한 문자의 독재체제는 이렇게 구성된 것이다.

    들리는 음성 그대로 적고 쓰고 그렸다면?

    한국의 훈민정음은 목소리의 족적에 따라 문자를 구성하려 노력한 성음, 표음의 융합문자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주시경, 최현배 같은 이들이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를 파괴, 한국인의 음성 특성을 없애 버렸다. 이들은 [지브로]라는 음성이 문자로 잘 형태화 되지 않는다고 화를 내며 ‘집으로’라고 말을 만들어, ‘집’을 으뜸꼴로, ‘으로’를 방향지시어로 잘라버렸다. 또한 [비치다]라는 음성이 문자 형태로 잘 구분되지 않는다 하여 ‘빛’이라는 으뜸꼴을 만들어 억지로 ‘빛이다’라는 맞춤법을 강제했다. 이밖에 [사르]의 발음을 ‘삶’으로, [아프]를 ‘앞’으로 축약했다. 이로써, 지브로, 비치다, 사르가 지녔을 뜻의 광대한 영역(짚, 지푸라기, 비추다, 삐치다, 사람, 사랑, 살이 등)을 스스로 포기했다. 한민족이 훈민정음의 원리에 맞추어 들리는 음성 그대로 적고, 쓰며, 그리고 살았다면 우리 문화는 어떻게 변했을까?

    산스크리트, 인도유럽어, 그리스, 라틴어의 ‘anuvada’, ‘avatara’, ‘avan-‘, ‘ab-‘, ‘ante-‘는 모두 ‘무언가를 앞에 내세우다’란 뜻을 가진다. 한국어 ‘앞’ 혹은 ‘앞으로’의 뜻을 가진다. 한국어에서 이는 ‘아프'(ap), ‘아브'(ab)의 음성과 상응한다. 놀라운가?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아프다’를 드러난 증상, ‘아빠’를 앞서 태어난 사람, ‘예쁘다’를 드러난 모습으로 유추할 수 있다. ‘앞’의 반대말이 ‘뒤’인데 산스크리트, 인도유럽어, 그리스, 라틴어에서는 ‘dra’, ‘de’, ‘derma’로서 모두 앞에서는 알 수 없는 뒤편의 무엇 혹은 신(deos, theos, zeus, deis)을 뜻한다. 한국어의 ‘뒤'(dui)가 음가 그대로 살아남았더라면 한국어 ‘뒤’는 상당한 양의 신학적 의미범주(theological paradigm)를 생산해 냈을 수도 있었다. 삶의 시간·공간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의 Sahara, Anchal, Sharan 같은 단어와 그와 유사한 음성과 뜻을 가진 영어의 Shelter(거처), Save, Salve(구원), Saint(성인), 독일어의 Sein(존재), 한국어의 사르리, 살다, 살, 사랑, 사리를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가 잃어버린 세계 언어의 음성학·의미론적 유사성을 입증할 자료는 이미 풍부하다. 단지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작용하는 유사성이기 때문에 협소한 현대 과학이 이를 무시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절 과학을 만든 사람들은 예술가였지 학자가 아니었다. 당시 학자들은 근대 과학을 이해할 능력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현대 과학자나 학자들은 이 거대 주제를 다룰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 모든 언어는 인간의 입과 귀로 만든 구어로부터 원류를 얻는 것이지 문자 체계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 기억한다면 언제나 연구 가능한 주제이다. 타이포그래피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문자는 청각의 모방이라는 진실 말이다.

    신항식
    현재 한양대학교 초빙교수 겸 SSBC 연구소장.
    저서로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 <시각영상 기호학>, <디자인 이해의 기초이론> 등이 있고,
    <재현의 논리와 미학의 재구성>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Popular Series

    인기 시리즈

    New Series

    최신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