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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뚱상상’ 디자이너의 〈스테판 사그마이스터 展〉 관람기

    〈스테판 사그마이스터 展〉이 열리는 세종문화회관에 다다랐을 때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외부에 설치된 거대한 원숭이었다.


    글. 이은지

    발행일. 2012년 10월 31일

    ‘엉뚱상상’ 디자이너의 〈스테판 사그마이스터 展〉 관람기

    몇 주 전, 스테판 사그마이스터(Stefan Sagmeister)가 내한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전 세계를 열광시키는 뮤지션이나 스타가 아님에도 그의 내한 소식에 가슴 떨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디자인을 배우는 학생이나 현직 디자이너들일 것이다. 스테판 사그마이스터는 개인적으로 남다른 느낌을 주는 디자이너다. 학생 때 그를 다룬 디자인 북을 만든 적이 있다. 주제로 주어진 디자이너 혹은 작가의 스타일을 벤치마킹해 그와 그의 작품을 소개하는 작업이었는데, 스테판 사그마이스터에 관한 자료를 조사하면서 그의 작품과 작업 방식 외에도 가치관과 그동안 해왔던 일 등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의 디자인 철학에 매료되었다.

    〈스테판 사그마이스터 展〉이 열리는 세종문화회관에 다다랐을 때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외부에 설치된 거대한 원숭이었다(원숭이의 정체는 전시 마지막 부분에 알 수 있다). 전시회장에 들어서면 사그마이스터가 작업한 아트카를 만나게 된다. 공간 전체가 거대한 워드 퍼즐(word puzzle)로 꾸며져 당장이라도 줄을 그어 단어를 찾아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한쪽 벽면 정도는 방문객들이 직접 단어를 찾아 표시할 수 있도록 꾸며졌어도 재미있지 않았을까!)

    전시는 앨범 재킷과 미술관 도록 등 문화와 관련된 프로젝트로 구성된 [Selling Culture], 기업들과 진행한 상업 광고 등의 프로젝트로 구성된 [Selling Corporation], 자신의 친구들을 위한 디자인으로 구성된 [Selling My Friends], 그리고 자신을 표현하는 프로젝트들로 구성된 [Selling Myself]로 나뉘어 있다.

    [Selling Culture]

    지금의 사그마이스터를 있게 한 작품들 – 예를 들면 앨범 재킷 작업- 을 만날 수 있다. 작품 도록이나 대학원 작품집, 가이드 북등 다양한 작품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앨범 재킷 디자인 작업이 기억에 남는다. 음악을 좋아해 앨범 재킷 작업을 하고 싶었던 사그마이스터는 당시 흔히 볼 수 있던 씨디 케이스 형태의 디자인에서 벗어나 색다른 스타일의 앨범 재킷을 만들었다. 손으로 만져보고 싶을 만큼 입체적인 디자인부터 하드커버로 만들어진 앨범 재킷, 레드와 그린의 보색을 이용해 이중적인 모습을 표현한 패키지까지, 그의 작업은 다채롭고 독특하다.

     Everything That Happens

    첫 섹션만 봐도 새로운 시도의 독특한 디자인으로 자신만의 색을 드러내고자 하는 그의 욕구가 느껴진다. 진열된 앨범을 보면서 디자인을 의뢰한 쪽이나 앨범을 구매한 쪽 모두 만족할 만한 디자인이 아닐까 싶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의 입체적인 작업들을 직접 만져 느껴볼 수 없다는 것.

    New Vienna Now

    [SELLING CORPORATION]

    그가 진행했던 상업 광고들을 볼 수 있다. 이 섹션에서도 그의 독특한 시도는 계속된다. 여러 국가에서 촬영된 다양한 형태의 타이포그래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스탠다드 차타드 은행(Standard Chartered Bank)의 광고 영상, 철저히 분해하고 재구성한 청바지로 이 옷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리바이스(Levi’s) 광고. 또 ‘문화는 움직인다’는 메시지가 담긴 BMW 컬처북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뮤지엄 플라자(Museum Plaza)’와 ‘카사 다 무시카(Casa Da Musica)’의 로고-아이덴티티 작업이 가장 흥미롭다. 두 작업 모두 건물 외관의 특징을 따와 로고를 만들었는데, 이름을 이용해 타입 형태로 응용하거나 심볼을 만드는 통상적인 로고디자인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CI(Corporate Identity)를 제작한 것이 눈에 띈다.

    ‘뮤지엄 플라자’와 ‘카사 다 무시카’의 특이한 건물 외관 덕에 만들어진 로고이기는 하지만, 그 특징적인 형태에서 대상을 연상하게 만든 로고야말로 최고의 킬러 디자인이 아닐까. 직선으로 뻗은 건물인 ‘뮤지엄 플라자’에서 유일하게 사선인 케이블카, 그 케이블카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기울어진 사각형 로고는 어디에 넣어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반대로 어디에 넣어도 ‘뮤지엄 플라자’를 떠올리게 하는 영특함이 있다.

    또한 독특한 외관으로 유명한 ‘카사 다 무시카’의 로고는 다각도에서 본 건물의 외관을 응용해 만들었는데, 다차원적인 형태와 변화무쌍한 컬러가 눈에 띈다. 형태나 색상이 한정되지 않은 ‘카사 다 무시카’의 로고는 대상에 따라 변하지만 자신의 정체성만은 잃지 않는 신통방통한 로고라고 생각한다. 전시회 끝 부분에 놓인 컴퓨터를 통해 사진을 찍고, 그 사진에서 얻어진 컬러로 자신만의 ‘카사 다 무시카’ 로고를 만들어볼 수 있다.

    (좌) Adobe Design Achievement Award Poster  (우)Levi’s Billboard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츠 10주년 기념 신문’으로, 설명을 들은 뒤 머리에 탁- 하고 박혀버린 작품이다. 지역 미술관의 10주년 기념 신문인데,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손에 묻어나는 검은 잉크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듯,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츠 미술관 역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표현했다고 한다. 신문을 보는 사람의 손에 스며드는 잉크를 신문의 영향력으로 표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어찌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언론의 중요성을 시사하는 고도의 표현방법이 아닌가 싶었다.

    <Selling My Friends>는 그의 친구들을 위한 디자인들이 전시된 섹션이다. 대상이 그의 친구여서 아이디어를 내는 데 한계를 두지 않은 것 같아 좋았다. 자신의 아이디어와 표현력을 십분 발휘해 상업적 관계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울 작업들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보았다.

    Anni Kuan
     Obsessions

    [Selling My Friends]

    이 섹션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의 연인이었던 패션디자이너 애니 쿠안(Anni Kuan)의 컬렉션 브로셔이다. 통상 의류 브로셔는 의류 사진이나 화보가 실리기 마련인데, 그보다는 애니 쿠안의 브랜드를 상징화 할 수 있는 이미지를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

    직접 옷을 보여주기보다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참신한 디자인과 독특한 정서가 집결된 이 홍보 브로셔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아시안계 패션 디자이너의 입지를 다져주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작품은 그의 친구를 위한 청첩장이다. 그들의 사랑이 너무 뜨거운 나머지 레이저로 글씨를 태워 새겨 넣었다는 설명을 보며 즐거워하며 아이디어를 내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Selling Myself]

    마지막 네 번째 섹션에서는 스테판 사그마이스터 자신을 표현하는 전시 포스터, 명함, 도록 등이 전시되어 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겁내지 않는 디자이너답게 자신의 얼굴이나 몸을 이용해 만든 작품들이 많았다. “디자인이란 인간과 가까워야 하며 곧 자기 자신과 가까워야한다.”고 믿는 그에게 자신의 ‘몸’은 최고의 캔버스였을 것이다.

     Things I have learned

    자신의 얼굴에 독특한 무늬를 넣어 누가 봐도 스테판 사그마이스터의 책이라고 할 수 있는 “지금까지 내가 배운 것들”, 그리고 자신의 벌거벗은뒷모습을 공개하고 그 모습을 닮은 손가락을 프린트한 포스터와 초대장을 만든 첫 개인전 포스터,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을 넣어 만든, 마치 인체 해부도처럼 보이는 쇼몽 전시 포스터까지 하나 같이 특색 있는 작품들이다.

    그래픽 디자인협회(AIGA) 강연 포스터

    그리고 20세기 최고로 충격적이었던 포스터, 볼 때마다 보는 내가 다 아파오는 것 같은 작품인 ‘그래픽 디자인협회(AIGA) 강연 홍보 포스터’도 볼 수 있다. 처음 이 포스터를 접했을 때엔 당연히 그래픽 효과나 분장으로 표현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업을 하면서 느끼는 정신적 고통이나 스트레스, 그리고 창의적인 생각에 도달하기까지 느껴야 했던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칼로 직접 글을 새겼고, 그러다 보니 작업을 하는 자신도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가학적인 작품은 좋아하지 않지만, 디자이너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공감과 교감을 이끌어냈을지 생가하면 그의 작품 중 가장 직설적이면서도 가장 은유적인, 모순적이지만 최고의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시장 한편에는 그의 스케치북이 전시되어 있다. 아무리 사그마이스터가 색다른 방식의 새로운 작업을 좋아한다고 해도 항상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넘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스케치북에 빼곡히 채워진 메모와 스케치를 보며 디자인에 대한 고민과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작곡가가 작곡 노트를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듯 디자이너 역시 아이디어 노트는 굉장히 중요한 것일텐데, 그는 그것을 팀원들과 함께 공유한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스케치북을 함께 보며 예전에 적어둔 메모에서 현재 작업에 필요한 도움을 얻기도 하고, 더 좋은 작업을 위해 고민을 하기도 한다.

    Aïzone Identity

    마구잡이 떠오르는 대로 디자인한 게 아닐까 하고 오해를 할 정도로 독창적인 그의 작품. 하지만 쭉 살펴보면 모든 작품에 확실한 메시지가 들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위의 작품들 역시 그가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메시지를 명확하게 내포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그래서 내가 스테판 사그마이스터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다. 단순하면서도 재밌고, 어떤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는 디자인이라니. 그의 작품은 복잡해 보여도 뺄 것이 없는 ‘완성형’에 가까운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자신의 팀원을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할 줄 아는 모습도, 디자인과 새로운 것에 대한 지치지 않는 열정도, 분야에 제한을 두지 않고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는 모습까지도 존경스러웠다. 그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는 아트디렉터를 꿈꾸고 있는 디자이너로서 많은 귀감과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전시회였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디자이너, 스테판 사그마이스터를 만나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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