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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수호의 문화와 저작권 #6 톨스토이 부부의 저작권 갈등

    대문호 톨스토이도 겪었던 저작권 문제 ― 언론학 박사 손수호의 ‘크리에이터를 위한 저작권 상식’ 강의


    글. 손수호

    발행일. 2020년 09월 11일

    손수호의 문화와 저작권 #6 톨스토이 부부의 저작권 갈등

    러시아는 전통적인 문화강국이다. 소설 『전쟁과 평화』에서 묘사하듯 왕조시대에 상류사회의 예술취향은 유럽 못지 않았다. 문학, 음악, 무용, 연극, 미술, 건축 등 많은 분야가 그랬다. 이중 문학의 성취가 더욱 우뚝한데,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라는 불세출의 두 거장이 있기 때문이다.

    수도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3시간 정도 자동차로 달리면 톨스토이(1828~1910)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자작나무 숲이 끝없이 펼쳐지다가 한 마을을 만날 수 있으니 바로 ‘야스나야 폴랴나(Ясная Поляна)’다. 러시아어로 ‘빛나는 들녘’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단순한 생가가 아니라 중간에 시냇물이 흐르고, 소작농 마을을 꾸린 거대한 장원이다.

    저작권자의 배우자, 저작권을 주장하다

    작품은 이곳을 무대로 시작된다. 『톨스토이의 마지막 정거장(The Last Station: A Novel of Tolstoy’s Last Year)』. 미국 작가 제이 파리니가 1990년에 쓴 톨스토이 전기소설이다. 국내에서는 궁리출판에서 2004년에 번역출판했다. 톨스토이의 비서로 마지막 1년을 함께 보낸 발렌틴 불가코프의 일기를 바탕으로 삼았다. 2009에 제작된 영화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의 한 장면
    출처: Daum 영화

    소설은 대문호의 쓸쓸한 말년을 집중적으로 다룬 데 비해 영화는 부부 사이의 저작권 다툼을 부각시킨 점이 특징이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톨스토이 수제자인 블라디미르 체르트코프는 스승의 개인비서로 문학청년 발렌틴 불가코프를 추천한다. 야스나야 폴랴나에 머물게 된 불가코프는 톨스토이와 부인 소피아와 사이에 펼쳐진 재산분쟁을 생생히 목격한다. 톨스토이가 제자들의 권유에 따라 전 작품의 저작권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생긴 일이다. “이것으로 선생님 권리는 대중의 것이 됩니다. 영원히!”

    말년의 톨스토이와 소피아 부부
    출처: Yandex Zen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소피아는 폭발한다. 평생 내조해 온 자신은 물론 가족에 대한 배신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녀는 제자그룹을 이끌고 있는 체르트코프를 향해 격렬한 원망을 쏱아내고 급기야 연못에 뛰어든다. 복잡한 상황을 접한 톨스토이는 삶의 마지막을 혼자 조용히 지내고 싶다며 1910년 10월 29일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나이 82세에 일어난 일이다.

    대립은 선명하다. 먼저 톨스토이. “재산은 사람을 타락시키지…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부귀영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위한 거요.” 젊은 시절의 방탕을 회개하듯 작품 속에서 자유와 평등과 청빈, 박애와 사랑을 강조했고, 말년에 드디어 소유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음으로서 스스로 톨스토이즘을 실천했다.

    소피아는 다르다. “우리 애들 유산을 훔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당신도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악필을 다 옮겨 적었고, 작품을 쓸 때 내가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를 주었는데… 더구나 당신 애를 13명이나 낳아주었지?” 실제로 톨스토이는 워낙 악필이라서 편집자들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장편의 분량은 엄청나게 길다.

    제자들은 스승을 작가나 철학자, 사상가를 넘어 위대한 성자로 만들고 싶어 한다. “유언장을 바꾸어 저작권을 인류사회에 기증하는 것은 귀한 뜻이지… 이로써 세상의 민중이 자유롭게 선생님의 글을 읽을 수 있게 됐어… 소피아는 남편의 선의를 무너뜨리려 해… 그 여잔 우리 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지.”

    여기서 불가코프는 톨스토이 사상에 심취했으면서도 저작권 분쟁 국면에서는 소피아에게 연민을 보낸다. 기록에 따르면 불가코프는 톨스토이 사후에 체코슬로바키아로 이주해서 소피아에게 저작권을 되찾아주기 위해 노력하였고, 러시아 정부도 1914년 가족에게 저작권을 인정했다고 한다.

    인류의 미래와 가족의 현실 사이

    톨스토이 부부의 사안을 지금의 법제에 대입하면 어떨까. 좀 안됐긴 해도 소피아에게는 아무 권리가 없다. 예술가의 성취에 배우자의 기여분이 있겠으나 저작권을 나눌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개발새발 흘려 쓴 글을 정서하고, 소설의 중요 아이디어를 제공해도 실제 창작행위에 관여하지 않는 이상 공동저작자의 지위에 오를 수 없다. 아이를 13명이 아니라 31명을 낳아주어도 저작권과는 무관하다. 예나 지금이나 감수자, 교열자, 조력자, 스폰서는 창작에 도움을 준 은인일 뿐 권리자가 아니다.

    야스나야 폴랴나에 있는 톨스토이 무덤
    셀수스협동조합 기증저작물(https://bityl.co/3Rnp, http://copyright.or.kr)

    톨스토이와 소피아의 다툼은 인류의 미래와 가족의 현실이 부딪친 형국이라고나 할까. 저작권은 인류의 문화발전을 이끄는 기관차이면서 때로는 가족을 파탄 내는 뇌관의 역할도 한다. 톨스토이가 저작권 분쟁의 상처를 안고 숨을 거둔 아스타포보(Astapobo)역 역장 관사. 유해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정든 장원의 구석에 묻혔다. 흙무덤은 소박하되 자작나무 숲이 작가의 영생을 근위하고 있다. 미당 서정주가 여기서 지은 시 「레오 톨스토이의 무덤 앞에서」(1992.8.11)가 심금을 울린다.

    야스나야 폴랴나의 톨스토이 무덤을 찾아갔더니
    이분 사진의 수염처럼
    더부룩한 잡초만이 자욱할 뿐,
    나무로 깎어 세운 碑木(비석) 하나도 보이지는 않습디다.
    2백50만 마지기의 땅을
    농민에게 모조리 그저 노나주고
    자기는 손바닥만 한 碑石 하나도 없이
    풀들과 새, 나비들과 바람과 하늘하고만 짝해서 누었습디다.
    ‘참 잘했다 영감아!’ 하는 소리가
    하늘에서 그래도 올려옵디다.

    언론학 박사. 울산 출생. 경희대학교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경향신문 기자, 국민일보 문화부장 및 논설위원, 미국 미주리대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을 지냈다. 저서로 『책을 만나러 가는 길』, 『문화의 풍경』, 『도시의 표정』(이상 열화당) 등이 있다. 건국대, 경희대, 동아방송예술대, 숙명여대, 중앙대에서 강의했다. 현재 인덕대학교 교수,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국민일보 객원논설위원, 『복지저널』 편집위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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