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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수호의 문화와 저작권 #10 저작자가 되는 첫걸음 ‘글쓰기’

    언론학 박사 손수호의 ‘크리에이터를 위한 저작권 상식’ 강의 ― 글쓰기를 시작할 결심


    글. 손수호

    발행일. 2020년 11월 09일

    손수호의 문화와 저작권 #10 저작자가 되는 첫걸음 ‘글쓰기’

    저작권은 매력적이다. 창작과 동시에 선물이 주어진다. 선물은 바나나를 닮았다. 바나나는 10개가 무리 지어 한 송이를 이룬다. 재산권 7가지와 인격권 3가지. 정신노동자에 대한 보상이자 창작을 북돋우는 인센티브 성격이다. 여기에다 보호기간을 사후 70년으로 늘려놨고, 침해에 대한 보호장치도 촘촘하게 짜놨다. 이 얼마나 멋진가! 남은 것은 저작자가 되는 일이다.

    무엇을 저작할 것인가. 애초에 저작권이라는 발명품을 탄생시킨 주인공은 글이다. 시와 소설을 담는 그릇이 책이었고, 그 책의 저술과 유통을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가 저작권 제도였다. 뒤이어 음악 연극 무용 등 공연예술, 미술 건축 사진 등 시각예술이 저작권의 세계에 들어왔고, 지금은 음악과 영상저작물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일반인의 접근이 용이한 것은 어문저작물이다. 작곡을 한다거나, 조각을 한다거나, 안무를 한다거나, 설계도를 그린다거나,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은 전문가의 영역이다. 사진은 좀 수월하지만 워낙 많은 저작물이 범람한다. 글쓰기를 통해 저작권의 세계에 다가가는 방법을 권한다.

    당신은 지금 글을 쓰고 싶다

    글쓰기는 저작권 외에도 덕목이 많다. 쓰는 이에게 삶의 의미와 가치를 공급한다. 글 쓰는 과정이 진지해 성찰의 삶으로 이끈다. 사람을 정신적으로 견고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개인의 내면이 열매처럼 여무는 것이다. 글은 나를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 다른 자아를 찾고, 숨어있던 잠재력을 일깨워준다. 때로는 치유의 효과를 본다. 명상을 하고, 여행을 하고, 강한 노동을 통해서도 내려놓을 수 없던 고통이 글을 쓰는 과정에 스르르 해소된 경험자가 많다.

    사회적 관계의 진전은 어떤가. 글을 쓰면 어딘가에 발표하게 되고, 누군가 읽게 되면서 새로운 만남을 가져다준다. 그 만남은 혈연이나 지연, 학연과 달리 동지적 유대감으로 발전하기에 좋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단체의 연결을 통해 변화의 주체로 거듭나는 것이다.

    근래 들어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의 길에 들어서는 것은 이런 매력을 알기 때문이다. 기생충학자 서민, 건축가 임형남·노은주 부부, 배우 유아인, 판사 문유석 같은 이는 글을 통해 자신의 삶을 넓혀나간 주인공들이다. 비전문가들의 참여로 인해 출판의 볼륨이 커지고, 독서의 전선이 한결 넓어졌다.

    이 좋은 글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 저작물로서의 효용까지 갖추면 더욱 좋겠다. 언론사에서 오랫동안 글을 쓰고 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쳐온 나는 주제, 구성, 표현의 3요소가 잘 어우러지면 좋은 글이 된다고 믿는다.

    주제 찾기 = 거울에 ‘나’ 비춰보기

    먼저 주제는 합당하고 명료한 생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이는 스스로 지적인 삶, 생각하는 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글감이 널려 있다. 그것을 자신의 지성과 감성으로 엮으면 된다.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는 “영감은 모든 것에서 온다(You can find inspiration in everything)”고 말했다.
    주제를 찾는 방법은 자신을 거울에 비추는 일이다.

    거울 비추기의 대표적 행위가 독서다. ‘독자생존(讀者生存)’. 남의 글을 읽지 않고 쓰겠다는 것은 도둑놈 심보다. 좋은 글은 신문과 책에 있다. 장안의 일급 필자들은 아직도 신문에 쓰기를 원한다. 책은 에디터십이 작동되는 출판사의 책을 권한다. 에디터들은 책에 관한 전문가 집단이다. 식견과 선구안이 있다. 좋은 글과 그렇지 않은 글, 출판의 가치가 있는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을 구분한다. 에디터의 판단과 손길을 거쳐 나온 책이 진짜다. 나는 저자가 출판인이 되는 경로를 신뢰하지 않는다.

    읽는 행위에서 나아가면 독해의 단계에 진입한다. 독서가 텍스트를 읽는 행위라면 독해는 텍스트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영화 관람을 예로 들어보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객석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 서둘러 극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생리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한동안 의자에 앉아 영화를 리뷰하는 시간을 갖는 게 바람직하다. 어떤 장면이나 대사, 배우의 연기, 음악 등 자신에게 깊이 다가선 부분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이때 독해가 이루어지고 글감이 생긴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가면 영화를 봤다는 사실 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고등어를 잘 구워야 구성이 맛있다

    구성은 설득력 있는 논리와 흐름을 말한다. 일종의 로직(logic)이다. 나는 글쓰기 강의를 할 때 늘 고등어 굽기를 강조한다. 머리 한 토막, 몸통 세 토막, 꼬리 한 토막으로 이뤄지는 고등어 구이가 글쓰기 구조에 제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친구들은 어물전에 갔다가 고등어를 보면 내 생각이 난다고 카톡을 보내오기도 한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런 충동으로 소설 쓰기를 시작했다고 하지 않나.

    머리는 도입부를 말한다. 주제를 꺼내는 서론이다. 여기서는 독자의 관심을 끌어당길 소재를 살짝 제시하는 게 좋다. 일화, 기록, 속담, 사료, 영화, 소설, 그림 등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겠다. 이렇게 산뜻하게 출발한 뒤 본론과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선동열 국정감사’와 대의정치의 함정들」(서울대 정치학과 박원호 교수, 중앙일보, 2018. 10. 12.)이라는 글을 검색해 보자.

    제목과 도입부에 선동열이 나온다. 선동열이 누구인가. 연식이 있는 사람은 광주일고와 해태 타이거즈의 전설적인 투수로, 젊은 사람들은 국가대표 야구팀 감독으로 잘 안다. 필자는 많은 사람들이 아는 선동열을 등장시켜 시선을 확 끌어들인 뒤 국정감사의 문제점을 짚고 있다. 처음부터 국정감사 이야기로 바로 시작하는 것에 비해 주목도가 훨씬 높아진다. 내로라하는 글쟁이들이 보편적으로 쓰는 기술이다. 이 글을 쓴 박원호 교수도 고등어를 많이 구워본 사람이다.

    몸통에서는 이유와 주장을 밝힌다. 의견은 A-A-A, A-B-A, B-A-A 등 자유롭고 편한 형식을 택하면 된다. 여기서 A는 주장, B는 반론이다. 따라서 B-B-A 구성은 실격이다. 주장은 하나씩 대등하게 혹은 강약으로 배치하되 단락 간의 통일성, 주장 간의 유대가 이뤄져야 한다.

    꼬리에서는 자신의 입장을 재삼 강조한다. 더듬거리지 않고 확신에 찬 목소리를 내야 한다. 글쓰기 프로들은 수미(首尾)가 어울리게 꾸민다. 맺음이 제대로 이뤄지면 읽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필자 이름을 기억하고 싶어한다. 다만 강조한답시고 지나치게 교훈 혹은 설교조로 적어서는 안 된다

    비유의 언덕, 그리고 두 번의 용기

    표현은 문장과 어법의 영역이다. 아직도 글에 자신이 없다면 에드워드 기번의 말을 새길 필요가 있다. 『로마 제국 쇠망사』라는 불후의 저작을 남긴 저자의 멘트는 이렇다. “글 쓰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생각하는 습관에 익숙지 못했으며, 창작기술에 능하지 못했기 때문에, 책을 쓰기로 했다.” 쓰기는 예술이 아니라 기술임을 강조하고 있다. 충분히 연습하면 된다. 주부와 술부의 거리를 짧게 한다거나, 이중수식을 금지하는 따위의 기법은 다 알려진 바다.

    문장의 기본을 넘어서면 비유의 언덕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은유가 최고봉이다. “은유는 서로 먼 관념을 연결하고, 닮지 않은 것들에서 닮은꼴을 찾아낸다. 은유만이 기쁨을 낳는 경이를 만들어 낸다. 은유를 구사할 줄 아는 것은 배움을 통해 얻는 최상의 기술이다.” 움베르트 에코가 한 말이다. 비유가 능숙하면 글은 문학의 향기를 띤다.

    글쓰기의 마지막 단계는 고쳐 쓰기다. 글을 쓰는 과정에는 두 번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첫 문장을 쓰는 용기와 고쳐 쓰는 용기. 그만큼 수정과 퇴고가 중요하다. 세상에 고치지 않는 글은 없다. 고쳐 쓸 때는 글의 윤리까지 체크해야 한다. 누구든 ‘표절’ 꼬리표가 붙으면 치명적이다.

    이제 마무리할 차례. 글쓰기는 다른 삶을 가져온다. 세상 보는 시선과 그 눈이 조망하는 풍경이 달라진다. 가을 햇살에 알곡이 익는 느낌, 뿌리 깊어 풍우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 저작자에게 주어지는 영광의 훈장들이다. 저작권법이 부여하는 10가지 권리는 덤으로 주어지는 선물이다.

    언론학 박사. 울산 출생. 경희대학교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경향신문 기자, 국민일보 문화부장 및 논설위원, 미국 미주리대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을 지냈다. 저서로 『책을 만나러 가는 길』, 『문화의 풍경』, 『도시의 표정』(이상 열화당) 등이 있다. 건국대, 경희대, 동아방송예술대, 숙명여대, 중앙대에서 강의했다. 현재 인덕대학교 교수,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국민일보 객원논설위원, 『복지저널』 편집위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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