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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체 이야기]한글 레터링, 그리고 싶다면 이것을 주의하라!

    초등학교 시절 포스터 참 많이 그렸다. 불조심 포스터, 반공 포스터, 교통안전 포스터 등등. 필자가 포스터를 그릴 때마다 제일 신경 썼던 부분은 바로 글자. 일정한 크기의 네모 칸에 글자를 그려 넣어야 하니, 표어 문구의 글자 수를 적게 하게나 최대한 그리기 쉬운 글자들을 쓰려고 머리를 이리저리 굴렸던 기억이 있다.


    글. TS 편집팀

    발행일. 2014년 12월 18일

    [서체 이야기]한글 레터링, 그리고 싶다면 이것을 주의하라!

    초등학교 시절 포스터 참 많이 그렸다. 불조심 포스터, 반공 포스터, 교통안전 포스터 등등. 필자가 포스터를 그릴 때마다 제일 신경 썼던 부분은 바로 글자. 일정한 크기의 네모 칸에 글자를 그려 넣어야 하니, 표어 문구의 글자 수를 적게 하게나 최대한 그리기 쉬운 글자들을 쓰려고 머리를 이리저리 굴렸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한글을 그리다 보면 신경 쓰면서 그리긴 했는데 무언가가 어설프거나 어색하고 덜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때는 무슨 이유에서 그랬는지 몰랐지만, 지금은 그 이유를 잘 안다. 그래서 오늘은 한글을 그릴 때 조심해야 하는 몇 가지 유의사항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 이 기사는 윤디자인연구소 공식 블로그 ‘윤톡톡’에 포스팅한 글을 재구성한 것입니다.(원문 바로 가기)

    어느 초등학교 아이들의 불조심 포스터, 출처 바로 가기

    지금 말할 것은 한글을 그릴 때 적용해야 하는 규칙들인데, 이는 디자인 콘셉트를 우선으로 드러내는 한글 레터링에 적용할 수 있고, 비교적 표준화된 글꼴을 가져야 하는 폰트 디자인에서도 적용되는 규칙이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글자를 구성하는 획 굵기에 관련한 규칙과 글자들끼리 모였을 때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자소의 크기를 조절하는 규칙이다.

    획의 굵기를 일정하게 하라

    하나의 글자는 여러 직선과 곡선의 획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한 글자가 굵기에서 안정감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이들 사이 무게의 균형이 필요하다. 포스터 글자와 같이 글자를 고딕체로 그린다고 가정했을 때, 일단 같은 굵기의 획으로 가로획, 세로획을 긋는다. 그러다가 ‘ㅅ’이나 ‘ㅈ’과 같은 자음이 오면 별다른 고민 없이 가로획과 세로획에 쓰인 획의 굵기 그대로 대각선을 긋는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 분명히 같은 굵기로 대각선을 그렸는데, 어랏? 획의 굵기가 각각 달라 보인다.

    같은 굵기의 획임에도 획의 방향에 따라 굵기가 각기 다르게 보인다.

    위 그림의 1, 2, 3 기둥을 보자. 똑같은 사각형으로 방향만 다르게 한 것뿐이다. 그러나 시각적으로 보이는 굵기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먼저 1과 2 기둥을 살펴보면, 같은 굵기라도 세로획보다는 가로획일 때의 시각적인 굵기가 더 굵어 보인다. 이는 우리가 한 글자를 볼 때 우리 눈이 초성부터 위에서 아래 순으로 보기 때문에 글자 하나하나를 읽어나갈 때 수평보다는 수직 방향에 하중이 실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획의 굵기가 일정해 보이는 고딕체의 경우라도, 세로획보다는 가로획을 더 가늘게 만든다.(내용 참고: 〈윤영기의 한글디자인〉, 도서출판 정글, 1999)

    같은 굵기의 획임에도, 대각선이 수직선보다 더 굵어 보인다.

    그리고 2와 3 기둥을 보면, 이 역시 같은 굵기지만 수직선보다는 대각선일 때의 시각적인 굵기가 더 굵어 보인다. 이것도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두 기둥 일부분을 떼어보면 우리 눈으로 측정하는 넓이가 a, b와 같아서 수직선의 기둥보다는 대각선의 기둥이 더 굵어 보이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대각선의 획을 그릴 때에는 기존 수직선의 획보다는 더 가늘게 처리해주어야 두 획이 균일한 굵기로 보인다.

    대각선 굵기의 잘못된 예, 출처: 영화〈<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팸플릿

    위의 이미지는 대각선 굵기의 잘못된 예이다. 수직선의 획을 너~~무 배려하다 보니 이렇게 대각선의 굵기를 확 줄여버린 것. 다른 수직선 획들은 두툼한 반면, ‘ㅈ’의 대각선 획은 무지 가냘파 보여서 살을 찌워주고 싶을 정도이다.(한 군데가 부실한 듯한 근육화초 빈 디젤님…. T_T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이것 또한 대각선 획을 만들 때 흔히 하는 실수이다.

    이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글자를 일단 만들고 나서 계속 보는 게 필요하다. 한글을 만들 때는, 글자의 한 획 한 획의 물리적인 수치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시각적으로 보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어딘가 한 부분이 눈에 걸린다, 싶으면 규칙을 넘어서라도 시각적으로 균일하게 보이도록 해야 한다. 글자의 본질적 역할은 글 내용 전달에 있기 때문에 글자를 볼 때 눈의 걸림이 없이 읽혀야 하는 것. 글자의 형태가 아무리 유려해도 글을 읽을 때 눈의 걸림이 있다면 좋은 글자라고 하기는 힘들다.

    시각삭제를 생각하라

    글자꼴은 획의 길이, 굵기, 바탕 공간 등이 어우러져 의도하지 않았던 여러 가지 착시 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중 가장 많이 일어나는 착시현상이 시각삭제인데, 글자 한 자 한 자가 차지하는 공간을 보통 정사각형으로 설정하는데, 분명히 같은 면적임에도 모양에 따라 시각적 크기가 다르게 보인다. 이것이 바로 시각삭제(visual off-cuts)이다.(내용 출처: 〈윤영기의 한글디자인〉, 도서출판 정글, 1999)

    자, 그림으로 이야기해볼까? 아래 세 가지 도형(사각형, 삼각형, 원)이 있다. 이는 각각 한글 자음 ‘ㅁ’, ‘ㅅ’, ‘ㅇ’을 형상화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세 도형은 물리적으로 같은 높이이다.(1번). 그러나 시각적으로 세 도형의 크기는 동일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사각형이 가장 크게 보일 것이다. 이는 삼각형과 원형에 시각적으로 삭제되는 부분(빗금 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이 세 도형이 모두 동일한 크기로 보이기 위해서는 이렇게 삭제되는 부분을 보완해주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사각형의 높이보다 조금 더 크게 그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시각적으로 사각형과 삼각형, 원이 모두 같은 크기의 도형으로 보이게 되는 것.

    이런 보정의 과정은 한글의 자음 ‘ㅅ’과 ‘ㅇ’, 그리고 ‘ㅂ’ 등에 적용할 수 있다. 이런 형태의 자음들을 의도적으로 작게 보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각형을 기준으로 형태가 많이 깎여있는 자음들을 만들 때는 사각형보다 더 키워주는 것이 필요하다.

    같은 높이라도 시각삭제 현상으로 인해 1번과 같이 높이가 달라 보인다. 그래서 3번과 같이 크기를 보정해야 한다.

    얼마 전 디자인페스티벌에 지원근무를 나갔다가 학생들을 만나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한글 2,350자를 만드는 기간은 얼마나 되나요?” 필자는 이 질문에 “마음먹고 그 작업만 만지게 되면 짧게는 1~2개월 안에 모두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참 놀랍지 않은가? 학생들 또한 놀랐다. 그러나 이것은 기계적으로 한글을 파생했을 때의 이야기이므로 이것으로 한글 디자인을 다 끝마쳤다고 (절대) 말할 수 없다. 어떤 디자인이나 다 그렇겠지만, ‘만들어 놓고 장땡’이 아니니까.

    우리가 한글폰트를 만드는 이유는 이 글자들이 사용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쓰이기 위해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수정작업이 필요한 것. 위에서 살펴보았다시피 한 글자 안에서도 굵기를 물리적 수치가 아니라 시각적으로 확인하면서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며, 그뿐만 아니라 다른 글자들과의 조화도 보면서 수정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 노하우는 있을지 몰라도 정답은 없다. 그래서 작업자가 계속해서 자기의 글자들을 보면서 수정하고 또 보고 또 수정하고. 이런 과정을 지속적으로 거쳐서 한 벌의 폰트가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한글을 그리고 싶다면, 위 규칙들을 유의해서 그려보고 그 후에 글자를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에서도 보고 혹은 작게도 뽑아보고 크게도 뽑아보면서 ‘이 정도면 됐다!’ 싶을 정도까지 수정하면 좋겠다. 이 과정에서 1pt의 위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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