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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리 깊은 나무’ 그래픽 디자이너 김나무

    “시각화를 금지하고 글쓰기 연습을 하다 보면 폭발적으로 뽑아내는 때가 와요. 그때부턴 전혀 제약을 안 둬요.”


    인터뷰. 인현진

    발행일. 2013년 09월 06일

    ‘뿌리 깊은 나무’ 그래픽 디자이너 김나무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고. 그를 만나기 전 용비어천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를 만나고 난 후에는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려도 자기 삶을 살아가면서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영국 국제 타이포그래피 학회 어워드(International Society of Typographic Designers Awards), 그라피스 포스터 애뉴얼(Graphics Poster Annaual) 등 굵직한 상을 연이어 수상한 국립한경대학교 디자인학과 김나무 교수를 만났다.

    타이포그래피에 대해선 어떤 관점을 갖고 계신가요?

    타이포그래피를 전문적으로 하고 계신 분들에 비하면 저는 이론적 기반이나 기술력이 많이 부족해요. 제 입으로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생각을 얘기한다는 게 좀 그러네요(웃음).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역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타이포그래피뿐만 아니라 디자인 전반에 관한 주제이기도 하지만요. 그게 전제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타이포그래피가 어떻고, 로마자나 약물은 어떻고 자간 행간이 어떠해야 한다고 얘기한들 별로 안 다가오더라고요.

    자신만의 작업 방식이랄까, 교수님만의 방법론이 궁금하네요.

    특별히 방법론처럼 말할 수는 없는 거라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네요. 우리나라 그래픽 디자이너들을 보면 진짜 잘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분들은 디자인을 안 배웠어도 잘했을 것 같아요(웃음). 전 대학 때 전공을 바꿔서 디자인을 시작한 거라 정식으로 그림 공부를 해본 적이 없어서 드로잉을 전혀 못해요.

    회사 다닐 땐 인터페이스디자인을 하다가 유학 가서 전통적인 그래픽디자인을 배우다 보니 제가 생각해도 뒤죽박죽 섞여 있어요.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는 정식 루트가 없는 상태에서 꼭 이렇게 해야 해? 이렇게 하면 안 돼? 오히려 용감하게 이랬죠. 그런데 마침 유럽에 있을 때 일한 스튜디오가 프로세스와 시스템이 탁월한 곳이었어요. 거기서 많이 배웠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제 나름대로 정리가 되기도 했고요.

    구체적인 프로세스의 과정을 좀 듣고 싶어요.

    예를 들어 이런 거죠. 처음 스케치를 할 때 동그라미가 있었어요. 그러면 그 학생의 결과물에 동그라미가 나올 확률이 굉장히 높아요. 80% 이상은 정말 그게 나와요, 세모가 있었으면 세모가 나오고(웃음). 그래서 처음부터 아예 시각적으로 그리는 것을 일부러 못하게 했어요. 시가 돼도 좋고 수필이 돼도 좋으니까 최대한 문자를 활용해서 표현을 하라고 해요. 동그라미를 그려서 같이 얘기하는 거랑 동그라미를 써놓고 얘기하는 거랑은 생각하는 폭이 굉장히 달라지거든요.

    그리기부터 시작하지 않고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이 학생들에겐 낯설기도 하겠네요.

    처음엔 어려워하죠. 같은 동그라미라도 누군가는 점, 누군가는 공, 이렇게 다양할 수 있는데 시각적으로 고정되면 수많은 단서를 다 날려버리게 돼요. 시각화를 금지하고 글쓰기 연습을 하다 보면 폭발적으로 뽑아내는 때가 와요. 그때부턴 전혀 제약을 안 둬요. 뽑아낼 수 있는 대로 모두 뽑아내고 그걸로 그때부터 같이 얘기해서 가능성이 있는 걸 남기고, 또다시 하고, 남기고, 남기고 해서, 결과를 만들어내죠. 이렇게 하면 몇 가지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오고, 여기까지가 하나의 프로세스처럼 짜여 있어요.

     ▶ know, care, like
    ▶ Attention, Please!
     ▶ Desktop Signals 
    디자이너가 갖춰야 하는 능력이 작업에 대한 테크닉만은 아닐 것이다. 작업은 당연히 잘해야 되지만 어떻게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인간적 유대관계를 맺고, 클라이언트와 갑을관계를 떠나 서로 공생하는 관계로 만들어 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가 주는 한계성은 분명 존재하지만, 대화를 통해 소통의 물꼬를 트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시각적으로 규정되는 틀을 깼을 때 언어가 주는 자율성이 장점으로 작용할 것 같아요.

    그렇죠. 사실 많은 아티스트가 쓰는 방법이에요. 글 쓰는 분들은 반대로 연습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처음부터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그림 같은 걸 먼저 보기도 하고. 자신의 작업 방식에서 벗어나거나 반대로 활용하는 방식이죠. 리서치 같은 경우도 해오라고 하면 학생들은 거의 인터넷에서 찾아와요. 그것 자체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오직 그 방법 하나를 쓰기보다 필드에 가서 현장학습이나 답사를 하면 더 좋거든요. ‘차별화’를 만들어내는 요인 중 하나가 독창적 해석인데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신만의 감각을 느끼고 적용하는 게 크게 도움이 되죠.

    필드 리서치는 자신만의 감각과 해석을 훈련시키는 과정이 될 수도 있겠네요.

    네. 사실 학생들에게 시키면 좀 귀찮아하기도 하지만(웃음). 예를 들어 명함을 만든다고 쳐봐요. 인터넷에서 명함 몇 개 보는 것보다 직접 사람들을 만나서 명함을 받아보면 그때 분위기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거든요. 직업군에 속한 사람마다 특징이 다르고 디자이너의 명함은 좀 유별나기도 하고요(웃음).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한테서만 나올 수 있는 인사이트를 보여줄 수 있으면 되는 거죠. 최대한 부딪쳐보고 해석한 결과가 드러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리서치 자체보다 궁극적으로는 인사이트에 의미가 있는 건가요?

    일종의 훈련이죠. 물론 그런 과정 없이 직관에 의해서도 분명 좋은 게 나올 수 있어요. 그래서 리서치 단계를 무의미하게 보는 분들도 있고요. 앉은 자리에서 쓱쓱 그렸는데 그게 엄청나게 좋은 경우도 있어요. 다만 제가 그렇게 잘 못하거든요(웃음). 학생들한테도 꼭 리서치를 해야 한다기보다는 생각하는 방식이나 방법을 연습시킨다는 의미에서 좋은 거죠. 직접 경험하면서 인사이트를 뽑아내는 일종의 훈련을 하는 방법으로 리서치가 도움이 되고요.

    디자이너와 교수, 밸런스를 맞추는 생활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어려워요(웃음). 치열하게 디자인을 하지 않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옳은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그래서 작업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하죠. 3년 전, 5년 전 제가 했던 작업을 가지고 우려먹듯 이야기하는 것도 우습잖아요. 교수라는 위치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안정된 일이긴 하지만 수업의 질이 떨어져도 학교에서 잘릴 위험이 없다는 건 어찌 보면 무시무시한 일이거든요. 무거운 책임감이 생기죠. 그래서 저를 좀 더 몰아붙이게 되는 것 같아요. 방학에도 쉬는 날 없이 일 하고(웃음).

    ▶ 석사논문
    ▶ ㅎ-백지
    ▶ 뉴미디어 아트 스페이스 레터링
    나무. 부를수록 참 좋은 이름이다. 이름부터 사람들에게 회자될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그는 살아오면서 어디에 가든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국제학을 공부하려고 했던 그가 디자인으로 인생 항로를 바꾸게 된 것도 기숙사에서 같이 방을 쓰던 룸메이트 선배들 덕분이었다니! 큰 나무 그늘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법. 지금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열정을 쏟고 있는 그가 땡볕과 폭풍우 앞에서도 당당한 거목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디자인이 많이 대중화된 시대인데 이런 환경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고민할 지점이 많지만, 희망은 있는 것 같아요. 저희 때만 해도 디자인은 약간 신성 영역이었는데 지금은 한 해에도 몇만 명이 졸업을 하잖아요. 제도적 뒷받침이 없으니 고생할 수밖에 없는 작업환경이죠. 하지만 디자이너가 디자인만 잘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봐요. 오히려 일반인이 디자인의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니까(웃음). 어지간한 포토샵도 다 할 줄 알고 웬만한 영상편집에 책도 써서 만드니까요. 이걸 막는 게 아니고 함께 넓혀나가면 좋겠어요. 자기 수요가 창출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그게 베이스가 되어 새로운 가능성이 될 거라고 믿고요. 하지만 저절로는 안 되고 열심히 해야죠.

    수업할 때나 작업할 때 갖고 계신 기준이 있으신가요?

    기준이라면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는 거예요. 옛날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인데(웃음) 밖에서의 길지 않은 경험이 도움됐어요. 남들이 후지다고 하건 말건 내 이름 걸고 하는 디자인에 프라이드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바쁘거나 힘들다는 핑계를 대거나 쉽게 하려고는 안 해요. 뭘 베끼거나 참고하는 것도 최대한 피하고요. 학생들한테도 나 같으면 이렇게 안 하고 저렇게 할 텐데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죠. 학생들 졸업 후의 취업과 관련해서도 고민이 많으시겠어요. 일단은 계속 디자인을 하고 싶은지 안 하고 싶은지 물어봐요. 하고 싶다고 하면 몇 년 동안은 스튜디오 형식의 회사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라고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권장해요. 그런데 막상 가서 일해 보면 힘들잖아요. 그래도 버텨서 열심히 해야 나중에 그곳에서의 경험이 좋은 스타트 포인트가 돼요. 저도 4년 정도 한 회사에 다녔는데 그 오기로 유학도 가게 된 거에요. 주변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분들도 많고요. 최근에 시스템을 바꾸려고 하는 스튜디오도 많이 생기니까 희망은 있다고 봐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한마디 해주세요.

    학기 끝날 때나 시작할 때 학생들에게 많이 하는 얘긴데 전 디자인을 하는 게 연애하는 거랑 거의 같다고 생각해요. 디자인 잘하면 상대의 호감도를 높일 확률이 확실히 높아요(웃음).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갖는다는 건 상대가 원하는 걸 알고 있다는 거잖아요. 작업자가 표현한 것을 통해 보는 사람들한테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느냐의 차이인데 그걸 대놓고 너 사랑한다고 하는 방법도 있을 거고, 쪽지를 줄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친구한테 돌려서 퍼트릴 수도 있는 거고. 자기를 표현하는 데 뭐든 장점은 하나씩 있을 거 아녜요? 그러니 그 사람한테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하고 그걸 자꾸 해보면 재미가 생기죠. 소통의 즐거움을 누리세요(웃음).

    ▶ 문화예술공간 페리지홀 정기 공연 팜플렛(김민수와 공동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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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건 개인전 포스터 – Almost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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