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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경대학교 디자인학부 홍동식 교수

    『글꼴을 보다, 부산을 읽다』 저자 홍동식의 눈에 비친 ‘부산 속 글자’ 혹은 ‘글자 속 부산’


    인터뷰. TS 편집팀

    발행일. 2012년 07월 13일

    부경대학교 디자인학부 홍동식 교수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그래픽디자인계에 신출귀몰 홍길동이 있다면 부경대학교 홍동식 교수가 아닐까. 논문 발표에 이어 수만 건에 달하는 부산의 글꼴을 직접 발품을 팔아 수집, 분석하더니 지난 2월 기어코 책으로 묶어 냈다. 게다가 7월 영국 맨체스터에 열릴 개인전 <담론III>까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홍동식 교수를 만났다. 

    부산은 오늘도 부산스럽다. 말투와 억양이 강해 늘 대화는 전투적이다. 덩달아 행동도 부산스럽기 그지없다. 이러한 부산은 풍토적인 말과 글이 존재한다. 때로는 정겹다. 이런 부산스러움과 정겨움으로 이루어진 타이포그래피. 즉, 글꼴들이 대한민국 제2의 항구 도시 속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홍동식 저서 『글꼴을 보다, 부산을 읽다』(2012) 중

    얼마 전 『글꼴을 보다, 부산을 읽다』라는 책을 출간하셨죠? 부산은 개성이 매우 강한 도시인데요, 부산을 대표하는 여러 상징 중 유독 글꼴을 통해 부산을 읽고자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작년에 「에드워드 펠라의 해체주의적 그래픽디자인의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마쳤습니다. 여기에 그래픽디자인에 있어서의 지역성과 풍토성(the Vernacular Design)에 관한 연구가 있었어요. 그래서 실제로 내가 살고 있는 부산의 지역성에 대한 디자인 연구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꼭 실현시켜보고 싶었던 소재이기도 하고요. 이에 타이포그래피적인 접근, 그러니까 부산만의 독특한 글꼴 문화에 따라 문화, 행정, 교통, 산업을 살펴보게 되었죠.

    글꼴을 통해 교수님이 발견한 부산의 특성은 무엇인가요?

    제가 본 부산은 오늘도 축제 중이며, 늘 부산스럽습니다. 부산 사람의 행동이, 사투리가, 마음이, 해운대 바다가 모두 부산스럽습니다. 부산체 또한 투박함이 부산스럽습니다. 이런 부산이 바로 부산의 매력 아닐까요? 부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항구도시입니다. 남해안과 동해안에 좋은 어장을 가지고 있어 해산물이 풍부하고, 남북을 굽어 흐르는 낙동강 주변의 기름진 농토에서 농산물도 넉넉하게 생산되고 있고요. 이러한 생활방식으로 인해 부산은 여느 타 도시와 차별화된, 독특한 모습이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수산물이라고 하면 김, 다시마, 미역, 멸치, 고등어 등이 있는데, 이러한 수산물을 중심으로 패키지 등 다양한 시각디자인이 형성될 수 밖에 없죠. 또한 180여개에 이르는 전통시장들 역시 부산만의 독특만 타이포그래피, 즉 글꼴들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부산만의 풍토적, 문화적 글꼴이 바로 지역 주민의 삶을 대변하고 있는 거죠.

    ▲ 부산의 다양한 글꼴들
    ▲ 『글꼴을 보다, 부산을 읽다』 표지와 내지
    ▲ 『글꼴을 보다, 부산을 읽다』 내지 레이아웃

    “발품을 많이 팔았습니다. 제자들인 부경대 시각디자인학과 학생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출간은 어려웠을 겁니다.” ― 『부신일보』 인터뷰(2012.2) 중

    출간하며 힘들었던 순간과 즐거웠던 순간이 있다면?

    이번 책이 다섯 번째입니다만 매번 출간 작업은 힘든 작업입니다. 특히 이번엔 콘텐츠 제작에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됐어요. 뜬구름 같은 아이디어를 현실화시켜야 할 뿐 아니라 시각화된 그림을 구체적으로 그려야 하는 작업을 먼저 해야 하니까요. 몇 년 전부터 부산의 타이포그래피 관련 자료를 수집해 책을 만들겠노라 계획은 두고 있었지만, 막상 작업을 시작하고 보니 그림이 예쁘게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마침 부산문화재단으로부터 일부 지원금을 받게 되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덕분에 마감일이 정해져 작업에 박차를 가하게 됐거든요(웃음). 결과적으로는 지난 겨울방학을 꼬박 『글꼴을 보다 부산을 읽다』에 매달린 셈입니다. 힘들었던 순간은 학생들과의 작업 장소가 마땅치 않아 강의실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작업을 했던 것과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분이겠죠. 작업 막바지에는 디자인을 맡은 F-Studio에 모두 모여 매일 기획 회의를 하고 디자인 레이아웃을 고민했어요. 모두 출판 인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경제적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사실 내지로 결정된 재생지 문켄이 꽤 높은 가격이라 고민했는데, 두성종이 최병호 이사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즐거웠던 순간은 마지막 파일을 넘기고 레이아웃한 디자인이 한 장 한 장 인쇄소 윤전기에서 돌아가고, 인쇄와 건조과정을 거처 제본된 책이 무사히 제 손에 들어왔을 때입니다. 함께한 학생들도 굉장히 감동스러워했습니다.

    제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책을 출간하기 힘들었을 거란 얘기를 하셨는데요. 제자들, 더불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어떤 시각커뮤니케이션디자인 요소라 해도 디자이너가 주체가 되어 한 시대의 문화를 만들어간다는 인식이 없으면 제대로된 디자인을 만들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테크닉을 배워 장식적인 요소를 훈련하는 것보다는 바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창작의 과정이 필요한 거죠. 물론 이를 위해서는 디자이너들뿐 아니라 정책 전반적인 문제점들이 함께 해결되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디자인에 관한 올바른 사회적 인식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디자인은 철학과 사회, 문화적인 요소를 담는 그릇으로, 하나의 문화를 형성함에 있어 중요한 역할이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서 디자이너가 ‘왜 디자인 작업물을 만드는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거죠. 테크닉을 키우는 것은 디자이너의 철학이 만들어졌을 때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단 한 장의 포스터로 과연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디자이너가 만들어내는 대부분의 결과물들은 그 시대를 대변하는 문화로 이미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젊은 디자이너들이 비록 한 장의 포스터라 하더라도 디자이너의 숨은 노력과 염감이 함축적으로 담겨, 보는 이에게 순간의 감동을 전달하는 디자인을 했으면 합니다.

    ▲ 부산체

    “부산체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부산시는 지난 2010년 9월 부산체를 개발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용두산공원 표지판, 중구청의 체력단련장 안내판도 부산체와 비슷한 한양울릉도체이지요.” ― 『부산일보』 인터뷰(2012.2) 중

    2010년 부산체가 개발되었는데요, 부산체의 특징이라면?

    부산체는 부산 특유의 투박한 느낌이 강합니다. 조형적으로는 패밀리(같은 종에서의 다양한 변화)로서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되고요. 패밀리 없이 전용서체 단 한 가지만 있어 활용하기가 쉽지 않은 거죠. 예를 들어 서울체의 경우 서울한강 장체 L, M, B, EB, BL, 그리고 서울남산 장체 L, M, B, EB, BL 등 많은 패밀리를 가지고 있어 활용이 용이하지요. 게다가 부산체는 한양울릉도체와 비교했을 때 형태적으로 특별한 차이점이 없습니다. 이 부분은 좀 더 연구되고,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도시를 대변하는 전용서체인 만큼 조형적인 아이덴티티를 가져 차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주관 부서인 부산시 도시경관기획단과 여러 가지 논의 중입니다. 사실 한글 글꼴 개발은 영문 글꼴 개발과 비교했을 때 시간이나 비용면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한글 글꼴 한 벌에는 최소 2,350자부터 최대 11,172자까지 모아 쓴 낱자가 들어가고 로마자, 숫자, 한자, 특수기호까지 한글과 어울리게 설계되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글꼴을 통해 우리의 지역성과 향토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심을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위스의 헬베티카(Helvetia), 영국의 존 바스커빌(John Baskerville), 이탈리아의 보도니(Bodoni), 일본 모리사와에서 개발한 서체들은 그 지역과 문화를 대변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

    기업은 물론 여러 지자체에서 전용서체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지역별 글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지역별 글꼴은 서울(서울 한강, 서울남산체)과 부산체, 제주도(제주한라산체), 양평(양평군체) 등 지자체별로 다양한 스타일로 만들어져 저작권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죠. 각 지자체에서 그 지역을 가장 잘 대변하는 형태와 모습의 글꼴을 개발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지역의 고유한 서체들은 세련미를 높이고, 지역민들의 일체감을 높인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서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는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과 디자인에 있어 다양성보다는 획일화 혹은 양식화됨이 염려스럽습니다. 예를 들어 각 시와 구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간판정비사업의 경우 정갈함과 정리된 아름다움은 있지만, 가이드라인과 양식의 획일화에 따른 단순성으로 인해 다양성이 상실되지요. 비슷한 매락 아닐까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체를 만든다고 해도 사용자들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스위스의 헬베티카처럼 오랜 세월이 지나 자연스럽게 인정받을 수 있는 확실한 조형미가 없다면 정말 힘든 작업이 되겠지요. 아래 사진은 작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에 출품된 일본 나고야 시의 전용서체 ‘나고야(名古屋)’입니다. 저에겐 꽤 감동적인 전용서체의 발견이었습니다.

    ▲ 나고야체 
         ※ 나고야 ― 17세기 초에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나고야 성(城)을 축조하고,
                            아홉 번째 아들을 성주로 봉한 뒤 대영주(大領主)의 거성(居城)을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
                            일본을 통일했다는 자부심과 유명한 장군들을 배출한 도시라는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메이지유신 이후 현청 소재지가 승격되면서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전용서체를 개발했다.

    서울서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디자이너들도 적지 않습니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서체를 개발함에 있어 주의해야 할 점과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서울 시민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서울서체는 서울시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무료로 다운 받아 쓸 수 있으며, 저작권에문제도 없습니다. 사인물, 표지판, 문화행사 포스터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고요. 어떻게 보면 서울서체는 주인 없는 팬시한 서체로 전락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무료보다는 적당한 저작권료를 지불해 필요와 목적에 따라 활용되어야 함이 옳지 않을까요? 헬베티카는 스위스 국제타이포그래피양식의 대표적인 서체로 중립적인 색을 띄어 성공했지만, 서울서체는 대한민국 어느 지방에서나 필요 또는 목적 없이 마구 쓰여지고 있는 예쁜 서체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울의 대표 서체로 서울체가, 부산의 대표적인 서체로 부산체가 그 도시에서 꼭 쓰여야 한다는 것은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는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고 보고요.

    ▲ 영국 맨체스터에서 개최되는 개인전 <담론 III>를 위한 작업들

    부산 전통시장 ‘수다’, 영국 간다 ― 『국제신문』 기사(2012.7) 중

    “부산에도 디자이너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죠. 해외서 큰 상을 받았을 때도, (기자들이)저만 빼고 서울 사람들만 인터뷰하던 일이 잊혀지지 않아요.” 그 일 이후 시험 제작한 디자인 도서의 제목이 오죽하면 『메이드 인 부산』이겠는가. ― 『한국일보』 인터뷰(2008.9) 중

    7월에 영국 맨체스터에서 <담론III – 부산, 시장 속으로> 전시가 시작되는데요.

    영국 맨체스터에 있는 메트로폴리탄대학교(Manchester Metropolitan University)의 그래픽디자인 학장인 조셉 맥컬라프(Joseph McCullaph) 교수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개인전입니다. 언어는 우리의 의사소통이 용이하게 해주지만, 시각적으로는 감성을 충분히 전달하기에는 부족하죠. 우리의 일상생활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캡처한 이미지 ― 캡처 당한 상황은 조금 과장된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 감정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글을 부여합니다. 생활을 설명합니다. 열심히 타자에게. 이러한 모습을 다양한 작품으로 구성해 현시대의 생활상을 영국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대학교에서 24점의 작품을 통해 제시할 예정입니다. 이번 전시는 담론 시리즈의 연장이며, 세 번째 시리즈입니다. 첫 번째는 다양한 표정의 탈을 통해, 두 번째는 일상생활 속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상황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번 세 번째는 부산에 있는 전통시장에서의 이야기들입니다.

    ※ 전시정보

    <담론 III – 부산, 시장 속으로> (Discourse 3 – The Traditional Market in Busan) · 장소: 영국 맨체스터 RIBA Hub Manchester · 기간: 2012.7.16(월) ~ 7.20(금)

    조금 엉뚱한 질문을 드릴게요. 왜 부산인가요?

    부산은 저의 제2의 고향입니다. 부산은 서울에 비해 도시 크기와 규모면에서 비교가 되지않지만 역동적이고 역사적이며 상대적으로 비문화적입니다. 그래서 문화에 대한 갈망과 움직임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디자인 분야 또한 불모지라고 생각합니다만 조금씩 조금씩 움직임이 있어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산의 축제 관련 디자인(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단편영화제, 부산국제건축문화제, 부산불꽃축제, 부산에서 개최된 전국생활체육대축전, 부산국제광고제, 부산수영구어방축제, 부산매직페스티벌 등)의 디자인 결과물을 만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부산은 국제영화제의 성공으로 영화만 있는 도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가 공존해 있으며 그 속에 디자인도 있습니다. 한국의 제2의 도시답게 꼭 디자인분야도 발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논문 「아방가르드 이후 현대 그래픽디자인의 전개」로 <2011 디자인트렌드 국제학술대회>에서 최우수 논문 발표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논문의 주제와 현재 하고 계신 작업의 방향이 다르게 느껴지는데요?

    100여 년 전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이란 화가가 그린 그림들이 석판화를 통해 포스터가 되었듯이 그래픽디자인과 다른 예술, 특히 순수회화의 경계가 애매한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작업을 통해 그래픽디자인, 타이포그래피와 순수미술 간 경계의 넘나듦을 좋아하며, 논문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이윤을 추구할 때에는 디자이너로서, 평상시에는 운동선수들이 다음 경기를 위해 연습을 하듯 기량이 녹슬지 않게 저의 감각을 회화적 경향, 즉 매력적인 감성을 표현하려는 모습으로 다듬어 놓는 상태라고 할 수 있죠. 현대 그래픽디자인은 아방가르드와 포스트모던의 소용돌이 속에서 현대미술과 함께 발전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박사학위 논문 또한 그러한 주제로 연구되었고요. 아직 100여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짧은 그래픽디자인 역사는 프랑스 근대 철학과도 깊이 연계되어 있으며,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기에 계속 연구 중입니다.

    “타이포그래피는 이미 숨을 거둔 박제처럼 종이에 흡착된 검정색 잉크 자국이 아니라 숨쉬고, 노래하고, 진노하고, 잔잔한 미소를 띠고 또 호소하는 생명체입니다.” ― 『국제신문』 기사(2012.2) 중

    시각 디자인을 선택한 이유, 특히 글꼴과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적 제가 배운 첫 번째 언어는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였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저는 한국에 와 한국어를 배우는 기간 동안 의사 전달을 그림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 어렵다 보니 친구가 없어, 외로움을 달래는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는 취미가 생겼죠. 아마 이러한 의사 전달의 방법이 지금 디자이너로서의 제 모습을 만든 것 같습니다. 디자인의 시작이라기보다는 의사 전달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제 삶을 지배하게 된 셈입니다. 타이포그래피는 프랑스 출신 캘리그래퍼인 할아버지 선생님께 배웠어요. 그 선생님은 본인의 캘리그래피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하셨고, 한국에서 받은 문자 도안과는 다른 개념의 교육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이후로 매 학기 늘 힘든 타이포그래피 수업이었습니다만, 타이포그래피는 그 자체로 가슴을 설레게 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부경대학교에서 타이포그래피 수업을 매 학기 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웃음) 사

    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으시다고 들었어요. 만약 디자인이 우리 사회를 더욱 행복하게 바꿀 수 있다면, 그 힘은 무엇일까요?

    디자인은 예쁘고, 화려하며, 대상을 꾸미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시각디자인을 통해 사회에 기여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1년여 동안 예비 디자이너들과 함께 『대한민국을 바꾸는 61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만들었죠. 2007년 여름, 디자이너들과 함께 우리들이 사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 혹은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모두 나열한 후 그것들을 ‘Do’와 ‘Don’t’ 에 넣어본 뒤, 하나하나의 항목들을 두고 토론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몇 차례의 토론을 거치며 나온 것이 『대한민국을 바꾸는 61가지 방법』이란 책의 목차를 이루고 있는 61가지의 항목들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 자기긍정’부터 ‘지구 온난화 – 반드시 이겨야 할 CO₂와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실천부터 사회적으로 함께 노력해야 할 것들로 정리되어 있죠. 이러한 책 한 권으로 사회가 바뀐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요즘 같은 각박한 사회에서 타인을 위한 배려가 좀 더 행복한 삶을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덕분에 2009년부터는 부산일보에 「홍동식의 그래픽 세상 읽기」 연재를 하면서 사회의 여러 문제를 그래픽적으로 풀어낸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고요.

    ▲ 『대한민국을 바꾸는 61가지 방법』 표지와 내지

    “저의 디자인이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즐거워 하는 커뮤니케이션이랄까요.” ― 『한국일보』 인터뷰(2008.9) 중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지요?

    늘 전쟁(?)처럼 바쁜 시간들의 연속입니다만, 좀 더 편하게 운동도 하고, 영화도 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을 때가 아닐까요?(웃음) 강의 후 ‘오늘 수업은 정말 괜찮았어’, ‘학생들의 눈빛이 살아 있었어’라고 느껴질 때도 행복하더군요.

    타이포그래퍼, 교수, 저자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계신데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저는 그래픽디자이너로, 디자인 교육자로 욕심이 많습니다. 그래픽디자이너로서는 늘 감각적이고, 멋진 작업을 하길 갈망합니다. 세계 그래픽디자인 흐름과 트랜드를 놓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재미있는 그래픽 작업을 하려 합니다. 책도 열심히 만들려고 하고요. 책은 그래픽디자이너의 철학과 아이디어, 콘텐츠 구성에 따른 도큐멘테이션 능력, 비주얼라이제이션(Visualization) 능력을 모두 보여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 결과물이라고 생각하기에 몇 년 전부터 열심히 만들고 있습니다. 현재 출간한 책이 다섯 권인데, 앞으로도 다섯 권 정도를 더 만들 생각입니다. 그리고 부산이라는 도시의 그래픽디자인이 좀 더 발전해 국제도시에 걸맞은 모습을 갖출 수 있었으면 합니다. 광주에서는 디자인비엔날레가 2년마다 열리고 있죠. 하지만 부산에서는 디자인에 관련된 국제행사가 전혀 없는 실정입니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와는 다른 디자인 행사를 구상 중입니다.

    홍동식이 꿈꾸는 미래의 모습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하고 교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픽아티스트로 불려지길 희망합니다. 실제로 제 명함의 직함은 Professor가 아닌 Graphic Artist로 찍혀 있습니다. 늘 새롭고 재미있는 그래픽 작업을 갈구하며 다양한 사람들에게 작업을 평가받기 원해요. 피카소와 초현실주의 작가인 맨 레이(Man Ray)의 셀 수 없는 많은 작업과 철학을 존경하며, 세상의 강력한 디자이너를 만나는 것이 십대 청소년들이 연예인을 만나는 감동에 버금가는, 가슴 벅찬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교육자로서 학생들의 감성을 깨워주는 일이 급선무라 생각합니다. 크랜브룩 스타일을 주창한, 획기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 교육으로 유명한 미국의 에드워드 펠라의 디자인 철학을 거울 삼아 깊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상업적 활동뿐 아니라 작품활동을 통해 세계 디자인비엔날레에 포스터 등을 출품하여 수상도 가끔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미래의 나에게

    “투머치 열정 ― 열정은 운명을 바꾼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며, SNS의 대화명이기도 합니다. 디자인에 대한 열정으로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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