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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는 전시 아닌 ‘들어가는 전시’ 〈팀보타: 머스타드 블루 ‘탐의 숲’〉

    〈팀보타: 머스타드 블루 ‘탐의 숲’〉은 보태니컬 아트 전시다. 전시 주체는 아트 그룹 팀보타(Team Botta)다. 공간 연출은 디자인 오키즘(Design Okism), 전시장 내 방향(aroma) 연출은 연작(Yunjac)이 각각 맡았다.


    글·취재. 임재훈

    발행일. 2022년 06월 21일

    보는 전시 아닌 ‘들어가는 전시’ 〈팀보타: 머스타드 블루 ‘탐의 숲’〉

    〈팀보타: 머스타드 블루 ‘탐의 숲’〉은 보태니컬 아트 전시다. 전시 주체는 아트 그룹 팀보타(Team Botta)다. 공간 연출은 디자인 오키즘(Design Okism), 전시장 내 방향(aroma) 연출은 연작(Yunjac)이 각각 맡았다. 팀보타는 디자인 오키즘에서 결성한, 보태니컬 아티스트들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이다. 디자인 오키즘의 소개에 따르면 “자연 중에서도 꽃과 식물을 통해 생, 죽음, 순환, 질감, 빛, 어둠, 소리 등의 주제를 다루는”* 것이 팀보타의 방향성이자 정체성이라고 한다.
    * 출처: 디자인 오키즘 블로그

    〈팀보타: 머스타드 블루 ‘탐의 숲’〉은 여느 보태니컬 아트 전시처럼 체험형 전시다. 전시장 안에서 자유롭게 사진을 찍고, 구조물과 접촉할 수 있다. 어느 스폿에 서든 그곳이 곧 포토존이다. 이른바 플라워 디스플레이라 명명되는 공간 연출과 미디어 아트는 시선을 사로잡는다. 전시장 전역에 은은히 퍼지는 식물 고유의 향과 전초(全草) 아로마 또한 ‘보태니컬 무드’를 더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야기’가 있다. 〈팀보타: 머스타드 블루 ‘탐의 숲’〉을 단순 체험형 전시의 범주 안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요인이다. 이 전시가 제시하는 ‘숲’은 작가적 상상으로 구조화된 배경이고, 총 일곱 개 관에 걸쳐 이어지는 스토리라인은 ‘숲’에 입장하는 관객 모두를 객-손님 이상의 주인공으로 격상하며 독특한 관람 경험을 제공한다.
    팀보타: 머스타드 블루 ‘탐의 숲’〉

    2022년 3월 20일 ― 8월 20일
    갤러리아포레 서울숲 | 전시 사이트

    팀보타 아티스트가 동행한 “일곱 개의 탐의 숲 속” 걷기

    〈팀보타: 머스타드 블루 ‘탐의 숲’〉(이하 〈머스타드 블루 ‘탐의 숲’〉)이라는 제목이 다소 난해하다. 관객에게 던져지는 키워드가 세 가지나 된다. 머스타드 블루, 탐, 숲. 각 낱말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일지, 세 낱말들이 전시명 안에서 어떤 의미를 조합해내는 것인지 잘 그려지지 않았다. 팜플릿이나 브로셔를 읽어보고 싶었지만 〈머스타드 블루 ‘탐의 숲’〉은 그 어떤 안내물도 제공하지 않았다.(팀보타가 의도한 것이며 이에 대해서는 후술하기로 한다.) 다행히 전시 사이트에 ‘나의 탐을 마주하는 시간’이라는 부제와 함께 아래와 같은 설명이 부연되어 있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탐’에 관한 이야기

    여느 평범한 날, 모든 건 그린의 편지로부터 시작되었다.
    블루에게 전달되어야 할 편지를
    몰래 뜯어본 머스타드,
    그 순간 숨어 있던 탐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린의 편지로부터 시작된 머스타드의 이야기처럼
    타인에 의해 씌워진 껍데기를 벗겨내고
    일곱 개의 탐의 숲 속에서 거닐며
    오롯이 당신만의 이야기로 쓰이길 바란다.

    ‘머스타드 블루’(라는 모종의 창작된 수식어)가 아니라 ‘머스타드’와 ‘블루’다. 둘이 캐릭터임을 알 수 있다. 〈머스타드 블루 ‘탐의 숲’〉은 스토리라인이 존재하는 전시라는 의미다. 그 이야기는 아마도 ‘탐(greed)’에 관한 것일 테고. 전시 공간이 총 일곱 개 관―“일곱 개의 탐의 숲 속”―인 의미도 설명이 된다.

    이러한 내용을 아티스트의 입을 통해 직접 확인받고 싶었다. 하여, 전시장을 지키고 있던 강이안(Kang Ian, 팀보타 아트 디렉터) 작가에게 말을 걸었다. 말 건 시점은 이미 『타이포그래피 서울』 에디터가 전시 관람을 마친 뒤였는데, 강이안 작가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어 “일곱 개의 탐의 숲 속” 동행을 요청했다. 도슨트 역할을 해달라는 것은 아니었고, 전시장을 걸으며 일종의 미니 인터뷰를 진행하자는 제안이었다. 사전 협의 없는 그야말로 기습적 요청이었음에도 강이안 작가는 흔쾌히 응해주었다.


    Q. (『타이포그래피 서울』). 전시장 안 식물들은 모두 생(生)인가?

    A. (팀보타 아트 디렉터 강이안). 대부분 살아 있는 식물들이다. 계속 물을 주고 온도와 습도를 관리해주고 있다.*

    Q. 브로셔와 팜플릿을 생략한 이유가 있나?

    A. 사전에 제시된 설명에 근거하여 관객들이 제한적으로 전시를 감상하기보다는, 오롯이 관객 각자의 정서와 느낌으로 ‘탐의 숲’을 거닐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다.

    뿌리가 공기 중에 노출된 양란을 볼 수 있는 1관(위), 향나무로 채워진 4관(아래)

    Q. 식물 종수가 다양하다. 각 관마다 주가 되는 식물들도 각기 다른 것 같다. 특별히 주목해서 봐야 할 식물이 있을까?

    A. 전시 인트로라 할 수 있는 1관에 양란(서양 난)이 있다. 뿌리가 노출된 난이다. ‘탐’의 감정들이 뿌리처럼 뻗어나가는, 즉 ‘탐의 숲’의 시작을 형상화한 것이다. 4관은 초록 향나무로 채워져 있다. 향나무 숲 안에는 카페와, 잠시 앉았다 갈 수 있는 통나무들이 놓여 있다. 관객들이 초록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시간을 들여 ‘나’를 사유해보도록 구성한 공간이다.

    Q. 전시장 안 거울과 벽면에 짤막한 글귀들이 있다. 〈머스타드 블루 ‘탐의 숲’〉을 위한 스토리텔링 요소인가?

    A. 그렇다. ‘그린’, ‘머스타드’, ‘블루’가 등장하는 이야기다. 관객 각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탐’에 관한 이야기, 그러니까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읽어주신다면 좋겠다.


    [보기]에서 [들어가기]로―
    관객을 ‘거대한 그림책’ 속 주인공으로 초대하기

    전시는 작가가 펼쳐놓은, 전시 기간 동안만 열리고 그 뒤에는 사라지고 마는 임시의 세계다. 상설 전시가 아닌 한 그 입구는 언제나 한시적인 차원문이다. 세계의 주인이 어떤 법칙과 주술을 걸어놓았는지 알아둔다면 전시 관람 경험에 얼마간 초현실성이 더해지기도 한다. 그만큼 ‘나’의 전시 체험에 단독성과 특수성이 부여될 수도 있다.

    〈머스타드 블루 ‘탐의 숲’〉은 관람의 단독성과 특수성을 담보하기 쉽지 않은 전시다. 어쩌면 보태니컬 아트 전시가 지닌 강점이자 한계일 수도 있을 텐데, 내적인 감상―전시작 앞에서, 턱에 한쪽 손을 올린 채 짐짓 진지한 태도로 한참을 서 있게 되는―보다는 감각을 자극하는 체험―보고 듣고 맡고 만지는―에 특화돼 있기 때문이다. 감각적 체험의 경우는 으례 ‘인증샷’으로 기록되는데, 그러한 기록들을 모아 보면 사실 다 비슷해 보인다. 해시태그 ‘#탐의숲’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오천여 건 인스타그램 게시물들도 그렇다. 전시 공간 안에서 촬영한 관람객들의 수많은 인증샷(유명 배우의 전시 인증샷도 검색된다)은 마케팅 효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다만, 이렇듯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평이한 ‘체험의 기록’들이, 예비 관객들의 내면 속에서 충분히 단독적·특수적일 수 있는 전시의 잠재력을 축소시키지는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강이안 작가와의 짧은 현장 인터뷰를 끝내고 일곱 개 관을 다시 한 번 걸었다. 전시의 주체, 즉 팀보타 아티스트들의 의중을 듣고 난 뒤의 두 번째 관람인 셈이다. 관객이 꼭 작가의 의도대로만 전시를 감상해야 하는 법은 없지만, 어느 정도는 창작자의 기획 의도를 염두에 두고 자신만의 이해력을 발휘해보는 쪽을 『타이포그래피 서울』 에디터는 선호한다.

    두 번째로 걸으니 ‘이야기’가 보였는데, 강이안 작가의 말대로 ‘그린’, ‘머스타드’, ‘블루’가 주인공이었다. 이 셋은 아마도 한 존재를 삼분한 분신들 같았다. ‘그린’은 아직 실현되지 못한 이상향, ‘머스타드’는 온갖 감정들, ‘블루’는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을 각각 상징하는 것으로 읽혔다.

    ‘친절한 머스타드야. 이것 좀 블루에게 전해줄래?’
    ‘응!’
    ‘고마워. 역시 해줄 줄 알았어!’
    ‘근데 무슨 편지?’
    ‘비밀~’
    ‘응!’

    편지의 내용이 궁금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선함을 강요당한 나는
    평소처럼 그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린은 나에게 정성스럽게 꾸민 편지 한 통을 건네고선
    급하게 자리를 떠나갔다.

    그린이 떠나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던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나는
    결국 조심스레 주변을 살피다 끝내
    편지봉투를 뜯어보고야 말았다.

    ― 〈머스타드 블루 ‘탐의 숲’〉 도입부 ―

    머스타드[나의 감정들]에게 그린[나의 이상향]으로부터 편지 한 통이 맡겨진다. 수취인은 블루[현재의 나]. 머스타드가 호기심을 못 이기고 편지를 몰래 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즉, 〈머스타드 블루 ‘탐의 숲’〉의 프로타고니스트는 머스타드다. 그리고 머스타드는 (그린의 편지를 전해주기 위해) 블루를 만나야 한다. 이 여정이 〈머스타드 블루 ‘탐의 숲’〉의 스토리라인이고, 여기에는 묘한 긴장이 서려 있다. ‘편지를 몰래 뜯어서 읽은’ 사건이다. 마치 타임슬립 영화처럼 30년 후의 나 자신으로부터 온 편지를 현재의 내가 읽는다고 상상해보자. 다 읽기도 전에 여러 감정이 먼저 일 것이다. 이러한 공상의 사태를 〈머스타드 블루 ‘탐의 숲’〉은 ‘나의 감정이 나보다 먼저 편지를 읽었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작가적 상상이다. 〈머스타드 블루 ‘탐의 숲’〉을 그저 ‘보고 즐기는(그리고 인증샷을 찍는)’ 체험형 전시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결국 이 전시의 주인공은 미래의 나도 현재의 나도 아닌 ‘나의 감정’ 자체다. 관객들은 자신의 감정, 그중에서도 탐[되고 싶은, 하고 싶은, 갖고 싶은]을 사유하면서 “일곱 개의 탐의 숲 속”을 걷도록 초대받은 것이다. 자기 안의 온갖 감정들을 ‘팥죽 쑬 때 끓어오르는 방울들’ 보듯 물끄러미 대해보라는 불교의 옛 이야기 한 토막이 떠오르기도 한다. 〈머스타드 블루 ‘탐의 숲’〉은 방울방울 나의 탐의 감정들이 피어나도록 조성된 공간이다.

    전시 공간 내 거울과 벽면의 글귀-이야기 때문인지, 환상의 숲을 배경으로 한 그림책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 안에 들어온 관객 모두는 거대한 그림책 혹은 아코디언북의 주인공이다. 그래서 〈머스타드 블루 ‘탐의 숲’〉을 ‘보는 전시’가 아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전시’로 명명하고 싶은 것이다.

    전시장 출구 낭하의 벽에 각인된 문구: 이야기의 마지막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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