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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창원의 한글 이야기 #2 발상의 전환 그 자체, 한국인의 문자생활사

    한국인의 문자생활사는 발상의 전환 그 자체였다. 똑같은 길이의 작대기 여섯 개를 가지고 정삼각형 네 개를 만들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2차원의 평면 위에서 만들려고 하면 영원히 만들지 못할 일이다.


    글. 박창원

    발행일. 2013년 08월 07일

    박창원의 한글 이야기 #2 발상의 전환 그 자체, 한국인의 문자생활사

    한국인의 문자생활사는 발상의 전환 그 자체였다. 똑같은 길이의 작대기 여섯 개를 가지고 정삼각형 네 개를 만들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2차원의 평면 위에서 만들려고 하면 영원히 만들지 못할 일이다. 그러나 차원을 달리하여 3차원의 입체를 생각하여 정사면체를 만든다면 순식간에 만들 수 있는 일이다.

    한국인의 문자생활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한자 내지는 한문을 수용하되 그대로 사용한 것이고, 둘은 한자를 수용하되 변용하여 사용한 것이고, 마지막은 새로운 문자를 창제하여 사용한 것이다. 한국인의 문자생활사 중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역사는 발상의 전환에 의한 새로운 역사의 창조였다.

    사진 출처: 플리커 Jay P. Lee  CC BY-NC-SA

    한자의 차용과 변용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내지 2,500년 전쯤에, 인접해 있는 종족의 문자인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게 된다. 그런데, 한국어와 중국어는 음운·통사에 있어서 큰 차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문자를 사용하더라도, 그 표기의 대상인 언어의 차이로 인하여 용법상의 큰 차이를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한자는 고립어1)인 중국어의 특징을 반영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교착어2)인 한국어를 표기하기에는 부적절한 면이 드러나 한자를 차용한 우리의 조상들은 한자로써 우리말을 표기하기 위해 새로운 용법을 만들게 된다.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표기한 방식은 대체로 네 가지 즉, 서기체 표기, 향찰체 표기, 이두체 표기, 구결체 표기로 분류해 볼 수 있다. 한자를 수용하여 변용한 표기에서 나타난 특징을 몇 가지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어순을 국어의 어순으로 바꾸었다.
    우리말에 해당하는 뜻을 가진 한자를 빌려와 우리말 어순대로 나열하여 사용한 것이다.

    둘째, 단어 문자인 한자를 빌려와 음절문자식으로 변용하여 표기하였다.
    예를 들면 ‘隱, 遣, 都, 古’ 등은 각각 우리말의 ‘은, 고, 도, 고’ 등을 표기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우리말의 음절을 표기하기 위해 비슷하거나 동일한 음을 가진 한자를 사용하여 문법 형태소를 표기한 것이다.

    셋째, 단어 문자인 한자를 빌려와 음소문자식으로 변용하여 표기했다는 점이다.
    앞에서 예를 들면 향가인 〈제막내가〉의 4행의 ‘去內尼叱古’의 ‘叱’은 15세기 국어 ‘가 1_.jpg 닛고’의 ‘ㅅ’을 표기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고, 5행의 ‘早隱’의 ‘隱’은 ‘이른’의 ‘ㄴ’을 표기하기 위해 차자3)된 것이다. 또한, 6행에 나타나는 ‘落尸’의 ‘尸’는 ‘ 2_.jpg ‘의 종성을 표기하기 위해 차자된 것이다.

    1) 고립어(孤立語): 언어를 형태론적 특징에서 볼 때에, 어형 변화나 접사 따위가 없고, 그 실현 위치에 의하여 단어가 문장 속에서 가지는 여러 가지 관계가 결정되는 언어. 중국어, 타이 어, 베트남 어 따위가 있다.

    2) 교착어: 언어의 형태적 유형의 하나. 실질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 또는 어간에 문법적인 기능을 가진 요소가 차례로 결합함으로써 문장 속에서의 문법적인 역할이나 관계의 차이를 나타내는 언어로, 한국어ㆍ터키 어ㆍ일본어ㆍ핀란드 어 따위가 여기에 속한다.

    3) 차자표기법: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기록하던 표기법.

    훈민정음의 창제

    훈민정음 창제자는 초성(자음) 자를 제자하기 위해 초성의 ‘聲(소리 ‘성’)’의 ‘理(다스릴 ‘이’)’에 대한 관찰을 하게 된다. 초성의 ‘理’를 훈민정음 창제자가 조음 위치와 조음 방법에 따라 파악했다는 것은 초성의 배열에서부터 나타난다.

    제자의 근거를 논하는 기술에서 그 순서를 ‘牙舌脣齒喉(아설순치후)’4)로 하고 있고, ‘五行(오행)’과 관련하여(夫人之有聲本於五行) 자음을 설명하는 자리에서는 그 순서를 ‘喉牙舌齒脣(후아설치순)’으로 하고 있다. 전자의 순서는 조음 방식과 조음 위치를 동시에 고려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전체적인 순서에서는 폐쇄음의 순서를 폐쇄음이 아닌 것의 앞에 두고(아설순치후), 폐쇄음끼리의 순서에서는 폐쇄의 위치가 허파에 가까운 것을 앞선 순서로 하고 있다. 그리고 폐쇄음이 아닌 것의 순서는 폐쇄음에 가까운 것을 그 순서에서 앞서게 하였다. 이러한 순서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면 초성의 특징이라는 것이, 중성(모음)과 대비하면, 바로 폐쇄성에 그 특징이 있다고 관찰하였기 때문이라고 추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 즉 ‘五行’과 관련한 서술에 있어서는, 그 순서를 조음의 위치가 허파에 가까운 것에서부터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五行’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과 관련되겠지만 조음 위치에 대한 정확한 관찰이 선행되어야 가능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관찰된 초성의 ‘理’에 의해 초성의 제자가 이루어지는데, 훈민정음 해례에 나타나는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初聲凡十七字 牙音ㄱ象舌根閉喉之形 舌音ㄴ象舌附上齶 之形 脣音ㅁ象口形 齒音ㅅ象齒形 喉音ㅇ象喉形 ㅋ比ㄱ 聲出稍厲故加畵 ㄴ而ㄷ ㄷ而ㅌ ㅁ而ㅂ ㅂ而ㅍ ㅅ而ㅈ ㅈ而ㅊ ㅇ而ㆆ ㆆ而ㅎ 其因聲加畵之義皆同 唯ㆁ爲異 半舌音ㄹ半齒音ㅿ 亦象舌齒之形而異其體 無加畵之義焉 초성은 무릇 17자이다. 아음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닫는 모양을 본뜨고 설음 ‘ㄴ’은 혀가 위 입몸에 닫는 모양을 본떴다. 순음 ‘ㅁ’은 입의 모양을 본뜨고 치음 ‘ㅅ’은 이의 모양을 본뜨고 후음 ‘ㅇ’은 목구멍의 모양을 본떴다. ‘ㄱ’에 비해서 ‘ㅋ’ 은 소리가 세기 때문에 획을 더했다.(중략) 소리에 따라서 획을 더한 뜻은 다 같다. 오직 ‘ㅇ’만이 다르다. 반설음 ‘ㄹ’ 반치음 ‘ㅿ’ 모두 혀와 이의 모양을 본떴는데, 그 체가 다르며 획을 더한 뜻이 없다.

    4) 牙舌脣齒喉(아설순치후): 아음[어금니], 설음[혀], 순[입술], 치[이빨], 후[목구멍]

    표기법의 혁신

    개화기에서부터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이 만들어지기까지 표기법의 개혁을 기하기 위해 토론을 벌이는 과정에서, 국어학사적으로는 많은 소득을 가지게 되는데, 방법론 내지는 인식의 전환을 보여 주는 논의들을 몇 가지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언어와 문자(주시경(1908)의 표현에 의하면 ‘音理와 語式’)를 분리하여 인식하였고, 그러면서도 그것의 조화를 주장한 것은 주시경(1908)에서부터다.
    – 언어음에는 표준음과 간음5)(현대 언어학적으로 표현하면 구체 음소와 표면 음성 정도가 될 것이다)이 있다는 인식은 박승빈(1931)에서부터다.
    – 공시론6)과 통시론7)을 구분하는 인식이 실질적인 작업에서 구체적으로 반영되고, 음소의 음절 위치에 대한 인식이 반영되는 것은 신명균(1933)에서부터다.
    – 추상적인 주장 내지는 이론을 제시한 후, 그에 대해 구체적인 증거로 논증하는 것도 신명균(1933)에서부터다.

    5) 간음: 주시경의 본음과 이음을 현대 언어학적인 용어와 비교한다면 ‘형태음소와 변이음’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병서’에 관한 한 주시경은 그러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6) 공시론: 어떤 언어 현상을 한 시대에 한정하여 연구하는 학문

    7) 통시론: 어떤 언어 현상을 여러 시대에 걸쳐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한글맞춤법의 의의

    음소적 표기가 그 나름대로 장단점을 가지고 있고, 형태소적 표기 역시 그 나름대로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면, 개별 사항의 표기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그 시대의 사람들이 결정할 사항이 될 것이다. 그런데 현행 한글맞춤법에서는 두 원칙의 균형을 고려하여 안배한 흔적이 역력하다. 총론에서는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으로 규정하고, 각론에서는 ‘어법에 맞추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소리대로를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두 원칙은 상반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한쪽의 우위는 다른 쪽의 위축을 초래할 위험성이 있어서 이들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조치로 이해할 수 있다.

    때로는 음소적 표기를 하고 때로는 형태소적 표기를 한다는 것은 상반된 원칙을 적절히 혼용하는 것인데, 이것은 언어현실과의 조화를 꾀하고자 한 것이고, 또한 상반된 규칙이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경쟁적 발전 내지는 논쟁점의 끊임없는 발아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상반된 두 원칙이 그 지향하는 바가 상반된다고 하여 모든 경우를 다 포괄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냇가’, ‘못하다’ 등의 표기는 음소적 표기인가, 아니면 형태소적 표기인가. 이들은 현대의 공시적인 상태에서 볼 때 ‘ㅅ’으로 표기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렇다고 하여 다른 문자로 표기하는 것도 마땅하지 않다. 이들을 ‘ㅅ’으로 표기한 것은 이전부터 해 오던 관습을 존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전의 관습적인 표기를 그대로 따르는 것을 역사주의적 표기라고 하는데, 한글 맞춤법에는 형태소적 표기와 음소적 표기 외에 역사주의적 표기를 채택하여 세 원칙이 균형을 이루도록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언어현실과 표기의 부조화를 최대한 줄이고, 역사적으로 해 왔던 관습까지 존중하여, 언어와 표기 그리고 관습의 조화를 꾀하는 것이 현행 한글 맞춤법의 정신이고, 이것이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정신문화이자 전통이다.

    문자생활로 본 문화유산

    훈민정음 창제 이전의 문자 차용 시기에 나타나는 ‘수용과 변용의 정신’, 훈민정음(세종 25년)에 나타난 ‘창조적인 정신’, 유 희(1824)와 주시경(1908, 1910, 1914)에 나타난 ‘혁신적인 사고’, 한글파와 정음파가 보여 준 ‘토론의 장’,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만들 때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정신’ – 이것들은 국어의 표기 내지는 국어에 대한 논의와 관련하여 국어학의 선각자들이 후학들에게 물려 준 국어학의 전통이고, 크게는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정신문화라고 생각된다.

    이로써 우리 조상의 문자 생활과 관련된 문화 유산의 교훈적인 의미를 되돌아보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첫째, 고유의 것이 없을 때는 차용(수용)하되, 한국적인 실정에 맞게 변용하라.
    둘째, 수용과 변용이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에는 스스로 창조하라.
    셋째, 실질적인 운용에서는 그것의 기능을 고려하여 혁신하되 충분한 토론을 거쳐라.
    넷째, 실재체(實在體)의 조화를 꾀하되, 상반된 원리의 균형을 항상 생각하라.

    박창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어학을 연구하고 교육하고 있으며, 
    한국어세계화재단 운영이사, 국립국어원 어문규범연구부장을 지냈다. 
    〈훈민정음〉, 〈중세국어자음연구〉 등 100편 내외의 연구업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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