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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사이 부족 집 짓기에 가장 필요한 것

    제3세계 디자인의 기본 원칙 세 가지 ―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 진정성 있는 사회적 가치 추구, 지속 가능한 적정 기술의 활용


    글. 배상민

    발행일. 2013년 09월 04일

    마사이 부족 집 짓기에 가장 필요한 것

    필자는 지난주에 2차 필드 리서치를 마치고 아프리카 케냐에서 돌아왔다. 2011년 여름 1차 필드 리서치를 통해 드러난 마사이 부족의 생활에서 문제점 및 사용자 니즈(needs)를 기초로, 필자의 디자인 연구실 ID+IM에서 디자인하고 개발한 쉘터와 정수기, 그리고 태양열 전지의 시제품(prototype)을 설치, 적용하고 그 과정에서 문제점 및 개선사항을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많은 사례와 필드 리서치로부터 발견한 제3세계 디자인의 기본 원칙은 3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로 현지 문화(Local Culture)에 대한 이해, 둘째로 진정성 있는 사회적 가치(Social Value) 추구, 셋째로 지속 가능한 적정 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의 활용이다. 3가지 요소들이 고루 갖추어졌을 때 우리의 디자인이 소외된 지역 주민들의 생활 속에 뿌리를 내려 오랫동안 사용되고, 널리 퍼질 수 있다. 앞으로 3회에 걸쳐서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각 요소에 대해서 전달하고자 한다.

    우선 현지문화(Local Culture)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고려는 모든 디자이너가 알고 있으면서도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현지인들의 문화와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헌 연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반드시 현지인들의 삶에 직접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똑같은 삶을 경험해 볼 때에만 진정으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올로세리안(Oloserian, 평화의 남자)’이라는 마사이 이름을 지어주신 추장의 어머니와 함께

    연구실에만 앉아 조사하고 분석된 자료로 문제점을 발견하고 새로운 디자인 솔루션을 제시한다면 많은 실수를 범하기에 십상이다. 필자의 경우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열악한 마사이 부족의 전통 집 만야타(Manyatta)를 보면서 본능적으로 머릿속에 스칸디나비아(Scandinavia) 스타일의 간결하면서도 인체 공학적이고 위생적인 마사이 부족의 쉘터가 머릿속에 구상되었다. 값싸면서도 공정이 간단하고 운송 및 모듈화가 가능한 쉘터를 멋지게 지어 그들에게 기부해야지 하는 맘으로 가득했었다. 우연히 마사이 부족 마을 바로 근처에 스웨덴 선교사가 지은 현대식 집을 발견하고 그 집에 방문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은 그 집을 사용하지 않고 가축의 우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나 의아해서 부족민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 대답이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 집은 천정도 높고 창이 있어 빛도 들어 오지만 못생겨서 싫어요. 그래서 가축의 우리로 사용합니다.”

     [좌] 열악한 마사이 전통가옥 만야타(Manyatta) [우] 가축 우리로 사용하고 있는 현대식 건물

    내가 구상하고 있던 새로운 쉘터도 디테일만 다르지 그 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필자는 디자이너로서 항상 해오던 대로 사용자 니즈를 파악했고 현재의 문제점을 분석하여 서구식 아름다운 집을 지어 주려 했는데 그들의 고유 미적 감각(Local Aesthetics)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마사이 전통 가옥인 만야타를 보니 그 광활한 아프리카 초원과 너무나도 조화로운 모습으로 조형되어 있었으며 신기하게도 모든 비율이 자연의 비율인 황금 비율과 일치함을 알 수 있었다.

    자연과 조화롭게 형성된 만야타(Manyatta)로 이루어진 올로푸시 마을(Oloopusi Boma)

    그들은 아프리카 초원에서 선조 때부터 몇백 년을 살아오면서 그들만의 고유 미적 감각을 발전시켰고 그들의 환경에 가장 적합한 가옥의 형태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교만스럽게도 나는 내가 훈련받고 습관처럼 행하여 왔던 현대적 미적 감각으로 그들에게 다가갔으니 큰 실수를 범할뻔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실수가 있다. 새마을 운동이라는 명목하에 전국의 초가집을 허물고 콘크리트와 기와로 전국의 시골 마을을 획일화했던 사건이다. 물론 더 실용적이고 현대적인 주거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는 기여하였지만, 전통적으로 각 마을마다 가지고 있던 고유한 멋과 격은 사라지고 말았다. 개발과 현대화라는 명목하에 잃어버린 우리 고유의 전통은 우리가 다시는 범하지 말아야 할 과오이며, 한 민족/부족 전통의 계승과 발전의 중요성은 우리의 역사가 주는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디자인의 전략을 대폭 변경하였다. 마사이 전통의 만야타에 적정 기술을 벽, 천장, 바닥 사이에 포함해 전통적 가옥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위생적이고 현대적인 삶을 지속할 수 있는 형태로 발전 중이다. 또한, 밤낮으로 쌀쌀한 케냐 기후에 맞게 한국식 온돌도 접목하려 한다. 올 12월 3차 방문 시 완성된 쉘터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적정기술을 적용한 만야타 구상안

    마사이 부족은 아프리카 최고의 용감한 전사이며 뛰어난 예술가이다. 그들의 문화와 전통이 현대화라는 명목으로 단절되지 않기를 바란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순수한 마음으로 활동하시는 봉사자, 종교인, 디자이너들이 접촉한 마을과 부족에서도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것이다. 순수했던 원주민들이 사진 한 컷에 돈을 요구하고 구걸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그들의 자존심과 전통을 버리고 거리의 걸인으로 전락하는 경우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우리가 그들을 처음 접할 때 그들의 고유 문화와 인간 본연의 순수함에 감동 받았듯이, 선한 목적일 지라도 우리의 행동이 그 고귀한 문화를 간섭하지 않도록 매우 사려 깊어야만 하겠다. 그들에게는 문화를 주체적으로 선택 발전 시킬 능력이 아직은 없다. 한국 전쟁 후에 대한민국이 그랬듯이 많은 것이 부족하기에 무조건적으로 새로운 것에 호의적이다. 그들이 우리가 겪었던 같은 실수를 범하여 자신들만의 전통을 잃고 난 후에 후회하게 되지 않도록, 우리들의 사려 깊은 배려가 필요하겠다.

    배상민
    현재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디자인 랩 ID+IM 연구소장
    파슨스 스쿨 오브 디자인 제품 디자인과 교수 등을 역임했고,
    World Vision ‘나눔 프로젝트’ 등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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