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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튜디오 ‘바프(BAF)’ 이나미

    이나미가 ‘북 디자이너’ 대신 ‘북 프로듀서’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


    인터뷰. 황소영

    발행일. 2013년 01월 04일

    스튜디오 ‘바프(BAF)’ 이나미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매력적인지 몰랐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것은 마치 단면으로만 알던 어떤 것을 3D로 보는 경험이랄까. 디자인 = 프로듀싱 =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바프(BAF)’ 이나미 대표의 디자인은 하나의 행위가 아닌 본질적인 물음으로 시작되는 처음과 끝. 그 모든 것이란다. 이토록 지적인 사유를 투영하는 디자인은 어떤 모습일까? 눈이 비처럼 내리던 어느 토요일, 이나미 대표를 만났다.

    ‘북 프로듀서’로 유명하시잖아요. 디자이너라는 말 대신 프로듀서라고 명명하신 이유가 뭔가요?

    ‘디자인이란 뭘까?’라는 물음에서 모든 일이 시작돼요. 예를 들어 내가 책을 디자인한다고 했을 때 다 만들어진 내용을 중심으로 서체를 선택하고 레이아웃을 잡는 것이 디자인이라고 한다면 그건 동의하기 어려워요. 보기 좋게 결과물을 장식하는 일이 아닌 근본적인 것들로 시작해서 결과물을 만드는 것까지가 디자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북 프로듀서’라는 표현도 거기에서 비롯된 거죠. 보통 프로듀서라고 하면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구현시키기 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이루어 실제 일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잖아요.책도 마찬가지죠. 어떤 이야기를 어떤 형식의 글과 어떤 이미지로 버무려 구성하면 좋을까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사용자 입장을 고려하여 결과물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이지요. 어떤 부분에 매력을 느껴서 그 책을 선택했고 표지에서 본 기대감이 책장을 넘기면서도 일관성을 가져야 하는 것. 그 모든 것을 연출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 끌림으로 책을 시작하게 됐고 지금도 하고 있죠.

    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재미있고 다양한 일들을 하시잖아요.

    책을 시작한 지 몇 년이 되지 않아 ‘스튜디오 바프’를 열게 됐어요. 책으로 시작했지만, (책이 아날로그적이라면) 곧 사회 곳곳에서 디지털적인 이슈들이 생겨났고 그에 대한 디자인의 필요성도 생겼지요. 이후로 웹 디자인 의뢰를 많이 받게 되었어요. 처음엔 웹 쪽을 하려던 게 아니었고 기획자로 개입했다가 클라이언트가 원하니까 팀을 꾸리게 되고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된 것이죠. 워낙 새로운 일을 꾸리는 것을 좋아해요. 이후로는 영역을 확장시켜 패키지 디자인이나 브랜딩 관련해서 네이밍부터 아이텐티티를 만들어 온·오프라인 홍보와 관련된 디자인 일을 하기도 하고 광주디자인비엔날레처럼 전시 기획과 관련된 일도 하게 됐어요. 그런 다양한 영역의 일들을 하다 보니 지금은 ‘시민청 결혼식’ 프로젝트에까지 참여하게 되었네요.

    ▶ Clipping Together Il and BAF (1996)
    ▶ [좌] Needle and Thread (1997)  [우] Dream of Seven Matches (1999)

    ‘시민청 결혼식’ 프로젝트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어요. 그 이야기를 더 들려주세요.

    서울 시청 내 ‘시민청’이 곧 오픈을 앞두고 있어요. 시민청의 ‘청’ 자가 들을 청. 말 그대로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뜻이지요. 이 공간의 마스터플랜 작업에 관여하게 되었는데요, ‘시민활동을 위한 플랫폼’을 디자인하는 것이 기획의 주안점입니다. 이 공간에서 시민들의 다양한 활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이지요. 시민들이 언제든 들러 쉴 수도 있고, 만남의 장소가 될 수도 있어요. 곳곳에 전시 장소도 있어서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해요. 특히 이곳의 공간을 결혼식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어요. 서울 시민이라면 누구나 이곳에서 결혼할 수 있도록요. 사실 우리나라 결혼식이 허례허식 때문에 문제가 많잖아요. 남들이 하니까, 라는 의식에서 시작해서 무리하여 빚을 내고 그 과정에서 신랑, 신부를 비롯한 가족들에게까지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죠. 시민청 결혼식은 ‘서울이 먼저 시작하는 아름다운 결혼문화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시작됐어요. 작지만 뜻깊은 결혼식의 모델을 만들고 싶어서 제가 제안했던 건데, 서울시 측에서 흔쾌히 받아주셨네요.

    ‘작지만 의미 있는 결혼식’의 그림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나요?

    ‘작은 결혼식’에 대한 공감대가 사회 전체적으로 퍼지고 있어서 많은 공공장소들이 결혼식장으로 개방되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공간 안에서 시민 스스로가 결혼식을 진행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지요. 어떤 결혼식을 어떻게 치러야 하는가…. 그 내용에 대한 마땅한 포맷이 없는 거예요. 시민들이 널리 활용할 수 있는작지만 뜻깊은 결혼식의 포맷을 디자인하자는 것이 저의 의도입니다. 하여, 전문연구팀을 구성, ‘테마가 있는 친환경 결혼식’과 ‘전통의 현대화를 통한 한식결혼식’, 이렇게 두 종류의 결혼식 포맷을 제안하게 되었어요. 친환경결혼식의 선두주자이신 ‘대지를 위한 바느질’과 전통의 현대화에 많은 노력과 성과를 기울여오신 ‘아름지기’가 기꺼이 연구팀으로 합류해주셨지요.

    시민청 결혼식의 특징은 결혼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가 주체가 되어 함께 아이디어 내고 본인들 개성에 맞게, 예산에 맞게 진행할 수 있어요. 친구들만 불러서 결혼 서약만 간단히 하면 얼마든지 무료 결혼식도 가능하고요, 기본 70명 하객을 기준으로 500~600만 원 정도가 드는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사진, 헤어, 메이크업, 축가, 연주 등 각 분야의 재능 나눔 네트워크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에요.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이 무료는 아니고요, 최소한의 금액 기준을 마련했어요. 일반적인 비용의 절반도 안 되는 금액이지만, 이 네트워크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올바른 문화를 바로 세우는 목적을 갖고 있어요. 작지만 뜻깊은 결혼을 하려는 사람, 그 결혼을 도우려는 사람, 식이 진행될 수 있게 도와주는 주체. 삼박자가 맞아야 하지요. 젊은 사람들이 작은 결혼식 할 수 있도록 사회가 돕고, 본인들도 축의금 일부를 사회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나누기도 하고. 제가 하는 일은 이 모든 순환의 시스템을 잘 디자인 하는 것이에요. 결국, 디자인의 목적이 뭐예요. 대중의 행복을 위한 것이잖아요. 그 행복이 외형적으로 멋있는 물건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스스로 해결 못 하는 것을 해결해주면 그게 가장 행복한 일이 아닐까요.

    ▶ ‘시민청 결혼식’ 프로젝트 시뮬레이션
    ▶ 아름다운 가게 초대장 (2005)

    첫 작품이 동화책이라고 들었어요. 의외인데 재미있어요. 어떻게 하시게 되었나요?

    홍대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하다가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그림을 발견하게 됐어요. 지금은 낯설지 않지만, 제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그런 장르가 없었거든요.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고 그게 대량 생산돼서 사람들에게 닿아 소통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그림을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그런데 졸업을 하면서 느낀 것은 정체성의 혼란. 그러니까 선진국의 그림 잘 그리는 사람들을 흉내 내고 따라 하게 됐다는 생각이었죠. 가장 중요한 내가 빠졌던 거예요. 이후 그림으로 내 정체성을 나타낼 방법은 무엇일까에 관한 생각 끝에 우리나라 전래동화를 프로듀싱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됐고, 대학원 프로젝트로 하게 되었어요. 그때 나온 책인 <호랑이 형님>입니다. 구전 동화는 우리나라 고유의 감수성과 지혜, 정체성이라는 매우 아름다운 가치가 있잖아요. 그걸 다시 구성하고 영어로 번역하고. 그런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하는 그림을 그려서 그림책을 만들었던 거예요. 1988년에 처음 출간된 <호랑이 형님>은 지금까지 영어, 일어, 독일어로 출판돼 팔렸고요, 이 책 때문에 뉴욕에 퍼트넘이라는 유명한 출판사에서 두 번째 책까지 내게 되었네요. 책의 힘은 참 놀라워요. 저에겐 가장 중요한 디자이너로서의 근간이 되었죠.

    <나의 디자인 이야기>라는 에세이도 내셨잖아요. 글 쓰는 디자이너, 참 매력적이에요.

    지금 저에게 글은 디자인 도구에요. 말하자면 ‘글’로 디자인하는 것이지요. 사람들에게 생각을 전달하려면 말이나 그림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그래도 가장 객관적이고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한 보편타당한 툴이 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시간에 쫓기지 않고 가장 몰두하고 싶은 것은 책을 쓰는 일이에요. 디자인 활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낀 그 경험들 자체가 굉장히 가치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대중에게 그 뜻을 어떻게 재미있게 전달할 것인가. 그 자체를 저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하죠. 그 결과물은 분명 한글로 할 것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책이 됐건 온라인상의 무엇이 됐건 디자인할 수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해요. 그런 것들의 총체적인 프로듀싱에 늘 관심을 갖고 있어요.

    ▶ 나의 디자인 이야기 (2005)
    ▶ 일민미술관 MI (2001)
    ▶ Vium 홈페이지 (2002) (클릭하세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나 작품은요?

    항상 지금 하고 있는 것. 아울러 미래에 하게 될 일. 돌아보면 매번 새로운 일을 많이 해왔던 것 같아요. 저는 그것을 ‘맨땅에 헤딩하기’라고 말하죠.(웃음) 저는 뭐든 축적한 걸 응용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해요. 재미가 없으니까. 모든 걸 맨땅에 헤딩하기.(웃음)

    창의성 혹은 아이디어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나요?

    아이디어는 문제를 잘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뜬금없이 팍팍 튀어나오는 것이 절대 아니죠. 지금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좋은 솔루션을 찾는 것. ‘What to do’, ‘How to do’ 전에 ‘Why to do’가 먼저이지요. 왜 하는지를 알아야 어떻게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게 돼요. 디자인은 결국 생활을 근간으로 하고 있잖아요. 우리가 어떤 걸 디자인하려고 할 때 그 대상이 누구고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하잖아요. 그걸 알려면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잘 파악을 해서 감정 이입을 하고 공감을 하는 것이 중요해요. 저는 이것이 디자이너로서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의 원천이라고 생각하고, 좋은 디자이너의 자질이라고 생각해요.

    디자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한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한글은 그것이 만들어진 의도 자체가 매우 훌륭한 디자인이었죠. 오로지 사용자를 위한 글자였기 때문이에요. 글자가 없는 백성은 생각을 전달할 수도 없었고, 그 때문에 불이익을 받아 억울해도 호소할 방법이 없었어요. 한글 창제는 문제를 발견하고 솔루션을 제안했던 행위에요. 그런 연유로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이도를 꼽기도 했습니다. 한글의 가장 큰 품위는 장식적인 느낌 보다는 그 원래 차체가 조형적이기 때문에 세대가 지나도 좋은 디자인에 대한 기준을 늘 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에게 대단한 자부심이죠.

    타이포그래피를 보시는 시각도 조금 다르실 것 같아요.

    타이포그래피를 보는 관점에서 저는 형태에 매이기보다는 의미 전달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쪽이에요. 한글은 디자인적으로 충분히 실험적인 부분은 많겠지만, 타이포그래퍼들이 종종 글자를 가지고 의미와 내용을 간과하면서 형태적인 유희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게 타이포그래피의 재미나 디자인이라고 한정 짓는 것이 좀 아쉽죠. 한글 타이포그래피 하면 한글을 통해서 어떤 말이 어떻게 전달되는가. 어떤 가치를 내는가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고, 그것에 대한 디자이너의 관심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 -더할나위없는- (2009)
    ▶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 -더할나위없는-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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