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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 개념어 사전_최범 편] ① 디자인

    오늘날 디자인이라는 말은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된다. 대체로 세 가지 정도의 맥락을 구별할 수 있다.


    글. 최범

    발행일. 2014년 07월 04일

    [디자인 개념어 사전_최범 편] ① 디자인

    오늘날 디자인이라는 말은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된다. 대체로 세 가지 정도의 맥락을 구별할 수 있다.

    디자인의 용법

    첫째는 디자인이라는 말의 본질적이고 일차적인 의미로서 의도, 계획, 구상 등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경우 디자인은 인간의 의식이나 행위에 내재하여 있는 속성으로서 비가시적이다. 미래를 디자인한다, 국가 디자인 등이 그에 해당한다. 이러한 디자인 개념은 오늘날 지배적인 것은 아니지만, 현재 사용되는 디자인의 개념이 이따금 되돌아가서 비추어보는 참조점과 같은 역할을 한다. 둘째는 근대에 들어와 정착된 조형적 의미로서 가장 지배적이다. 이때 디자인은 근대적인 생산과정에서의 조형적 고려를 가리키는데, 시각디자인, 산업디자인, 공간디자인 등이 그것이다. 셋째는 사회적으로 확장되고 부풀려진 의미인데, 매우 모호하지만 뭔가 세련되거나 프리미엄의 이미지를 주기 위해 사용된다. 심지어 디자인 교회나 디자이너 호텔이라는 식의 용례도 보이는데, 이때 디자인은 그저 장식적인 의미 이상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디자인 개념의 현실적인 존재 양태임은 분명하다. 이 세 가지 의미 맥락을, 문화의 중층적 구조에 대한 레이먼드 윌리엄즈의 구분에 적용하면, 첫 번째 개념은 ‘잔여적인 것(the Residual)’, 두 번째 개념은 ‘지배적인 것(the Dominant)’, 세 번째 개념은 ‘부상하는 것(the Emergent)’이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인의 일차적인 의미로서 의도, 계획, 구상 등을 뜻하는 비가시적인 개념은 말 그대로 인간의 의식이나 행위에 잠재된 것으로서 외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 경우에 디자인은 의식이나 행위의 내적 과정에 ‘삽입되어(Embedded)’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모든 행위가 의도(계획)-실행(생산)-결과(산물)라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때, 여기에서 첫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것이 디자인이다. 이러한 사이버네틱스 모델로 인공물 생산 일반을 설명하고자 한 예로는 미국의 인지과학자인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의 <인공물의 과학(The Sciences of the Artificial)>을 들 수 있다. 미국의 디자인 이론가인 리처드 뷰캐넌은 허버트 사이먼을 디자인 연구(Design Studies)의 선구자로 꼽지만, 사실 그의 방식은 오늘날 조형적 의미의 디자인과는 거리가 있다.

    디자인의 이차적인 의미야말로 오늘날 가장 지배적이다. 근대적인 생산방식이 자리 잡은 이후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생산과정에서의 조형적 고려 또는 그 산물로 이해된다. 이는 디자인이 근대 산업사회의 조형적 실천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근대 산업사회에서 디자인은 산업사회의 시스템인 대량생산(Mass Production), 대중소통(Mass Communication), 인공환경(Artificial Environment)에 각기 대응하여 산업디자인(Industrial Product Design), 시각디자인(Visual Communication Design), 공간디자인(Environmental or Space Design)으로 분화되었다. 디자인의 세 번째 의미는, 디자인이 근대적인 생산과정을 넘어서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의미를 획득해나가는 부분인데, 이는 현대의 대중적인 소비문화와 생활양식을 구체적으로 반영하는 것으로서 현대 신화의 일부를 이룬다고 하겠다. 롤랑 바르트의 <신화(Mythologies)>는 이 측면을 잘 설명해준다.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 외관(출처: 바로 가기) 
     DDP 내부(출처: 바로 가기) 

    르네상스 시대의 디세뇨

    개념은 사유의 대상으로서 의식 속에서만 존재할 수도 있지만,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물질적으로 가시화되기도 한다. 의도, 계획, 구상 등의 의미를 띠는 디자인 개념이 역사 속에서 최초로 가시화되는 것은 르네상스 시대이다. 영국의 미술 이론가 허버트 리드(Herbert Read)는 산업디자인이 미술로부터 독립된 분야로서 본래 영국적인 개념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1) 근대적인 의미의 디자인은 그럴지 모르지만, 오늘날 영어 ‘디자인(Design)’의 어원은 라틴어 ‘디세뇨(Disegno)’이다. 디세뇨는 현대 이탈리아어에서도 그대로 사용된다. 예컨대 이탈리아어로 산업디자인은 디세뇨 인두스트리알레(Disegno Industriale)라고 한다. 바로 이 디세뇨가 오늘날 디자인의 형태적 기원이다.

    1) 허버트 리드, 정시화 역, <디자인론>, 미진사, 10쪽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의 디세뇨는 오늘날의 디자인이 아니라 미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오랫동안 장인의 기술로 분류되어왔던 회화, 조각, 건축이, 그로부터 분리되어 미술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 바로 르네상스 시대이다. 이 최초의 미술 탄생에 붙여진 이름이 바로 디세뇨였던 것이다. 어째서 의도, 계획, 구상 등을 의미하는 디세뇨가 당시 새로운 인문학으로서의 회화, 조각, 건축의 공통 명칭으로 선택되었는가는, 이 말이 바로 중세의 장인 기술에서 풍기는 육체노동의 이미지를 지우고 대신에 고상한 정신노동의 분위기를 표상하기에 적합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늘날 조형적 의미의 디자인도 어디까지나 시각적인 구상 단계를 가리키면서 직접적인 생산과는 일정하게 분리된 차원에 속한다는 점에서 구조적으로는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이 서구 최초의 미술 개념이 바로 디세뇨의 복수형인 ‘디세뇨의 기술들(Arti del disegno)’이었으며, 18세기에 순수미술(Fine Arts, Beaux-arts, Schönen Künste)이라는 말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사용되었다. 비록 오늘날의 지배적인 의미와는 다르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디세뇨야말로 의도, 계획, 구상 등을 의미하는 비가시적인 디자인 개념이 역사적으로 가시화된 최초의 경우라 하겠다.

    노동의 분업과 디자인의 탄생

    디자인의 두 번째 의미, 즉 오늘날 지배적인 조형적 의미는 근대에 이르러서 탄생한다. 이 역시 디자인의 잠재적 개념이 서구 근대의 역사적 과정에서 물질적으로 가시화되는 것에 다름없다. 영국의 디자인사가인 에이드리언 포티에 의하면 최초의 산업 디자이너는 18세기 후반 영국의 도자기산업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2) 웨지우드의 도자기 회사에서 등장한 원형 제작자(Modeler)가 바로 오늘날 디자이너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조형적인 의미의 디자인 역시 이전의 장인 노동에 속해 있던 것이 ‘노동의 분업(Division of Labor)’의 결과로 객관화된 것으로서, 공장제 기계공업 이전의 공장제 수공업(매뉴팩처) 단계에서 이미 등장했다는 것이다. 에이드리언 포티에 따르면 디자인은 흔히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기술혁명(산업혁명)이 아니라 경영혁명(분업생산)의 산물이 된다.

    2) 에이드리언 포티, 허보윤 옮김,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 일빛

    역사적 디자인은 현실의 물질적 과정을 통해서 등장하게 되지만, 이러한 현실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며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언제나 담론(Discourse)이다. 산업 생산이 본격화되는 19세기에는 역사주의 양식이 유행하게 되는데, 이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디자인 양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기계미학(Machine Aesthetics)이 대두하였다. 이러한 양식적, 담론적 혼란을 겪으면서 20세기 초에 이르면 이른바 모던 디자인(Modern Design)이 등장한다. 모던 디자인은 그때까지 서구에서의 근대적인 산업 생산과 디자인에 관련된 문제들을 설명하는 최초의 종합적인 담론이자 양식으로서 이후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20세기 초 바우하우스는 디자인이 대량생산되는 물건의 원형(Model)을 만드는 작업이라는 교의를 완성하지만, 사실 이는 에이드리언 포티가 지적한 대로 이미 18세기 영국의 도자기 산업에서 실현된 것에 대한 미학적 확인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바우하우스의 경우에는 공방 모델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중세적인 구분이 남아 있었던 반면, 오늘날과 같은 시각디자인, 산업디자인 같은 장르 구분은 2차대전 이후 울름조형대학(Hochschule für Gestaltung Ulm)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울름조형대학에는 시각전달(Visuelle Kommunikation)과 제품조형(Produktgestaltung) 학과가 있었는데, 이는 오늘날 시각 디자인, 산업 디자인에 각기 해당한다.

    디자인 개념의 변용과 확장

    근대사회의 발전에 따라 디자인의 의미와 역할도 변모되어갔다. 특히 산업사회 초기의 생산 합리성에 대한 관심은 시간이 가면서 생산보다는 소비, 즉 소비자공학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간다. 디자인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기는커녕 오히려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미국의 자동차 산업에서 등장하여 2차대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간 ‘스타일링(Styling)’은 오늘날 대표적인 디자인 기법으로서 사실상 디자인의 의미를 대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디자인은 판매촉진을 위한 수단으로서 넓은 의미에서 마케팅 행위의 일환을 이룬다. 물론 오늘날에도 유럽의 모던 디자인 전통은 여전히 디자인에서 구조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미국에서 유래한 산업디자인은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며 마케팅적인 가치를 적극적으로 추구한다.

    물론 디자인사에는 디자인 개념을 근본적으로 재구축하려는 시도들도 있다. 예컨대 1970년대에 빅터 파파넥은 디자인의 보편적 개념을 설정하고자 하였다. 그는 디자인을 이렇게 정의했다. “모든 사람은 디자이너이다. 거의 매 순간,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디자인이다. 왜냐하면 디자인이란 인간의 모든 활동의 기본이기 때문이다….”3) 파파넥은 현대의 소비주의 디자인을 비판하고 모던 디자인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디자인을 인간 삶의 지평 위에서 보편적으로 재정립하고자 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디자인의 일차적인 의미, 즉 의도, 계획, 구상 등을 조형적 실천에 재도입하면서 결합을 꾀하려는 움직임을 엿볼 수 있다. 아무튼, 오늘날에는 전반적으로 소비주의 디자인이 지배적인 가운데, 일부 대안적인 디자인이 하위문화로서 새로운 의제를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 빅터 파파넥, 현용순 조재경 옮김, <인간을 위한 디자인>, 27쪽

    사회적 신화로서의 디자인

    디자인의 의미는 생산과정에 한정되지 않고 사회로 흘러넘친다. 처음에 산업 생산의 조형적 언어였던 디자인은 대중사회에서 사회적 언어로서 새로운 얼굴을 갖게 된다. 이제 디자인은 사회적으로 과잉된 것으로서 마구 증폭되고 있다. 물론 오늘날 모든 것이 디자인된다는 사실과 모든 것에 디자인이라는 이름이 붙는다는 것은 다른 일이다. 하지만 점점 후자가 전자를 합리화해가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은 물론 현대사회의 전반적인 키치(Kitsch) 화와 무관하지 않다. 모던 디자인은 키치와 대립하지만, 현실은 점점 키치의 승리로 향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미국의 미술평론가 할 포스터는 <디자인과 범죄>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디자인 상품이 당신의 가정인지, 아니면 당신의 사업인지, 혹은 당신의 축축 늘어진 얼굴(디자이너 성형술)이거나, 혹은 당신의 꾸물거리는 성격(디자이너 약품)인지, 아니면 당신의 역사적 기억(디자이너 미술관)이나 당신의 유전자 미래(디자이너 아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날 디자이너 행세를 하거나 혹은 디자인되기 위해서 엄청나게 돈이 많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4) 할 포스터는 20세기 초 아돌프 로스가 <장식과 범죄>에서 장식을 공격한 어조를 흉내 내 현대의 디자인을 비판하고 있다. 포스터에 의하면 오늘날 디자인은 20세기 초의 과잉장식과도 같이 기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디자인은 조형적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신화로서의 의미를 더욱 강하게 획득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4) 할 포스터, 손희경 이정우 옮김, <디자인과 범죄, 그리고 그에 덧붙인 혹평들>, 시지락, 33쪽

    한국에서의 디자인 개념

    서구에서 발생한 디자인 개념은 한국 사회에 들어오면서 변용을 겪게 된다. 그리하여 디자인의 존재방식도 서구와는 많이 다르다. 물론 1960년대 이후 한국 사회가 산업화하면서, 생산과정에서의 조형적 고려라는 의미의 디자인이 정착되어갔으며, 그 점에서는 서구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디자인을 서구와 가장 다르게 만드는 것은 사회적 담론과 호명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산업화 자체가 국가에 의해 위로부터 이루어지고 사회적으로 동원된 형태를 띠었기 때문에, 디자인 역시도 생산과정의 한 요소라는 의미로 머물지 않고 처음부터 강력한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띠기 시작했다. 특히 경제개발 과정에서 디자인은 ‘미술 수출’이라는 구호로 국가주의적인 의미를 강하게 띠면서 전반적으로 국가 주도의 디자인 진흥정책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한국의 경우에는 서구와 같은 모던 디자인 운동을 찾아볼 수 없다. 그 부분을 국가에 의한 동원 디자인이 대신했기 때문이다. 이 점이 서구의 모던 디자인과 한국 디자인의 가장 커다란 차이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도 1990년대 이후 고도 소비사회로 접어들면서 디자인의 의미 역시 증폭되어갔다. 이제 디자인은 소비사회를 가리키는 일종의 기호로 작용하게 되었다. 전문교육을 받은 디자이너들은 이러한 경향에 대해 불만감을 표시하기도 하지만, 어떤 개념이 사회적으로 증폭되어가는 것은 일부 전문가 집단에 의해서 제어될 수 없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전문가 영역보다도 훨씬 더 사회적 현실을 잘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서 디자인의 용법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또 다른 모습을 보인다. 공공디자인(Public Design)이나 커뮤니티 디자인(Community Design) 같은 말들이 본격적으로 대두하게 되고, 특히 시민운동가 박원순이 사용한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라는 용법이 마치 새로운 디자인 영역을 가리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확산되기도 하였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서울시가 ‘디자인 서울’ 정책을 추진하면서 디자인이라는 말은 마침내 도시 정치의 수사가 되어 더욱 증폭되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아무튼, 건실한 시민사회의 성장 없는, 후발 자본주의 사회인 한국에서 서구의 모던 디자인과 같은 양태를 발견할 수는 없다. 전반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디자인이라는 개념은 정치적이거나 아니면 소비주의적인 의미로 양극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디자인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뿌리내리지 못한 채 여전히 부유하고 있다.

    한국디자인진흥원 외관(출처: 바로 가기)
    [좌] 한국디자인진흥원 로비 [우] 한국디자인진흥원 북카페(출처: 바로 가기) 

    최범

    디자인 평론가이자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디자인인문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여러 대학에서 디자인 이론을 강의하며 디자인 연구와 전시,

    공공부문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평론집으로 <한국 디자인을 보는 눈>,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

    한국 디자인 신화를 넘어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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